외채와 국내저축

 

1984년 3월 인하대학교 경영대학원 및 국방대학원 특강

 

  외채와 국내저축이라는 논제를 놓고 먼저 최근의 외채동향을 간략히 살펴보고 그 증가요인을 분석한 다음 단기, 장기 대책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그리고 국내저축을 극대화한다는 것은 결국 투자와 수출을 극대화하고 수입을 극소화하는 것임을 밝히고, 이를 위해서는 재정, 금융정책이 그러한 방향으로 기능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할 것이다.

외채의 증가요인

돌이켜보면, 1978년경까지는 외채 문제가 그다지 심각하게 부각되지는 않았다. 정부 통계에 의하면 1978년말 현재의 장단기 부채를 포함한 대외 부채총액은 149억 달러로 집계되었는데 그로부터 5년이 지난 1983년 말에는 401억 달러로 급증하였다. 5년 동안에 252억 달러가 증가하였는데 그 요인을 분석한 한국무역협회 자료에 의하면, 151억 달러는 제2차 석유파동이 가져온 유가 인상, 23억 달러는 78년 이후의 세계적 고금리 하의 상환부담 증가, 나머지 78억 달러는 기타 요인으로 각각 분석되었다. 요인 중에는 석유관련 원자재 가격의 인상과 일부 수입물품(예컨대 양곡 등)의 물량 증가 등이 포함되었음을 유의하기 바란다. 물론 이와 같이 외채 지출이 증가한 반면에 수출입이 급속도로 증가하였더라면 부채 증가는 실제보다 적을 수도 있었겠지만 잘 아는 바와 같이 1978년 이후 내외의 여러 가지 사정으로 수출 증가율이 현저히 둔화된 바 있다.

  왕왕 70년대 후반의 중화학분야의 시설투자가 78년 이후의 외채 증가에 크게 기여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필자의 기억으로는 중화학시설 투자에 관련된 외자도입은 대부분 1978년 이전에 도착하였고 일부 78년 이후의 도착분은 상기 기타 요인에 포함되어 있을 터인데, 기타 요인의 크기(78억 달러)로 보아 그것이 주요인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결국 1978년 이후의 외채 급증의 주요인은 석유가격 및 국제금리와 같은 해외 요인, 다시 말해서 우리의 힘으로써 어쩔 수 없는 타율적 요인에 의한 것이었다 할 것이다. 하기야 중화학 공업을 건설함으로써 건설 이후의 시설가동에 필요한 원자재, 부품 등의 수입수요를 유발함으로써 국제수지 악화에 기여하였다고도 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산업구조의 고도화를 통하여 국제수지 개선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도 아울러 고려할 필요가 있다.

국제수지에 대한 새로운 시각

어쨌든 다액(多額)의 외채가 있는 이상 그 상환에 차질이 없도록 하여야 하고 나아가서 순채무국의 위치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장단기 대책을 마련해서 실행해야 한다. 지금 400억 달러의 외채를 걱정하는 소리가 높지만 우리가 당장 해야 할 일은 불과 16억 달러 정도의 경상적자를 하루 빨리 해소하는 일이다. 300억 달러대의 수입과 수출을 하는 나라에서 16억 달러 정도의 경상적자를 단시일 내에 해소하지 못할 절대적인 이유는 없다. 우선 소비와 에너지 절약정책만이라도 꾸준히 밀고 나가면 2∼3년 내에 국제수지는 균형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국제수지를 방어함에 있어서는 수요관리, 환율, 외자 도입의 세 가지 정책이 중요하고, 먼저 이 것들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바꿀 필요가 있다. 종래에는 수요관리는 주로 물가안정이라는 시각에서 강조되었고 국제수지 조정의 수단으로는 그다지 중요시되지 않았다. 이것은 60∼70년대의 적극적 외자 도입정책에서 비롯된 착각에서 오는 것인데, 그러나 이제부터는 물가가 안정된 상 태하에서도 국제수지상의 이유 때문에 긴축적 수요관리가 불가피한 경우가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국면을 사전에 예방하자면 평소 건전하고 보수적인 재정, 금융 정책을 견지해야 한다.

  다음에 환율정책에 관해서도 우리의 고정관념을 바꿀 때가 왔다. 과거에는 국내 물가상승에 대한 사후적 조정으로 환율을 변경해 왔지만 이제부터는 국제수지 조 정수단으로서의 환율의 역할이 중요시된다. 다시 말하면 이제 우리의 환율정책은 국내 물가변동 뿐만 아니라 외국의 환율, 금리, 무역정책의 영향을 받는 우리의 국제수지 방어의 수단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부언하건대, 일국의 통화가치는 그 나라의 국제수지 상태를 반영하여 적자일 때 에는 내려가고 흑자일 때는 올라가는 것이 기본원리인데 지금 미국의 달러를 비 롯한 주요국간의 환율관계가 이 원리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기 때문에 무역마찰과 보호주의가 한층 격화되고 있는 것 같다.

  세째로 외자도입정책에 대해서도 재검토를 할 때가 왔다. 이제는 과거와 같이 적극적으로 외자를 유치할 시기는 지났다. 이제는 없으면 없는 대로 지내야지 외 채를 얻어서 큰 일을 벌일 때가 아니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외자도입은 외화가득 (外貨稼得)과 절약으로 연결될 경우에 한해서 허용한다는 전통적 선별기준이 있어 왔다. 필자는 이러한 선별기준이 있었기에 한국에 유입된 외국 자본은 대부분 오 늘의 산업구조를 구축하는 데 쓰여졌고 그러한 산업구조는 조만간에 흑자경제를 가져올 소지를 지니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외국의 채권은행들이 한 국을 남미 부채국들의 방만한 외자도입 유형과 식별하는 주요 근거가 되고 있음 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의 전통적인 선별기준을 더욱더 엄격 히 해서 해외 차입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 대외차입을 억제하면 공업발전과 경제 성장을 억압하지 않느냐 하는 의문이 있을 수 있겠는데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답변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수출의 확대와 직결되는 외자사업은 예외적으로 허용하면 된다. 수입 대체 사업은 국제수지의 균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현금수입으로 대체하고 차입까 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국제금융기관이 공여하는 비교적 유리한 조건의 차관일지라도 이제는 신중을 기해야 하고 이른바 내자조달용 차관 따위도 지양되 어야 한다. 다음에 대외 차입 억제는 초기에 투자를 위축시킬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나, 우리의 공업생산 능력의 현황을 놓고 볼 때 크게 걱정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해외차입을 억제하면 정부와 기업은 그런 대로 내자의존의 투자 패턴을 형성해 나갈 것이고 그에 의하여 성장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의 미에서 외자의존도 하나의 습관의 문제가 아닌가 생각된다.

  대외 차입을 극소화하는 대신에 외국인의 직접투자는 보다 적극적으로 유치해 야 할 것이다. 이 점에 관련하여 중국의 문호개방정책에 따라 구미기업인들의 아 시아지역 진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개방되는 중 국시장에서 제일 큰 몫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일본이고 구미제국은 거리, 언어, 문화 등의 장벽 때문에 매우 불리한 위치에 놓여 있다. 따라서 구미의 회사들이 중국에 근접해 있는 한국에서 진출기지를 찾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한국은 비록 중국과 국교관계는 없으나 지리적으로 가장 근접해 있고 외국회사를 끌 수 있는 산업시설과 입지조건 등을 갖추고 있는 만큼 행정·사회면에서 외국 인 투자 저해요인을 과감히 제거하면 성과가 있을 것이다. 어차피 외국의 기업과 손잡고 그들로부터 기술과 경영을 배워 가면서 우리도 해외로 뻗어 나가는 길을 찾는 것이 국제화 시대를 살아가는 길이 아니겠는가?

경상수지 균형이 이루어지면

단기 대책에 의하여 국제 경상수지상의 적자를 지워 버리고 나면 외채 문제는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하기야 경상수지의 균형이 실현된다 하더라도 네 가지 이유로 해서 대외차입의 필요는 존속하게 될 것이다.

  첫째로 기존 부채의 원금과 이자를 지불하기 위하여 해외차입이 필요하다. 해외차입으로 기한 도래의 원금을 갚아나가면 부채잔액이 늘지는 않는다. 현존 부채잔액에 대한 이자 지급액은 금리변동에 따라 달라지는데 그것은 매년의 경상수지에 반영된다. 예컨대 1983년의 16억 달러의 경상적자는 그 해의 이자지급(12억 달러)이 반영된 숫자이다. 따라서 만약 앞으로 경상수지가 균형을 이룬다는 것은 이자를 모두 지급하고도 경상수지가 균형을 이룬다는 말이다. 국제금리도 이제는 내리는 추세에 있고 또 국제수지 적자규모가 16억 달러선으로 감축된 이상 막대한 이자지급 때문에 국제수지 균형이 불가능하다고 비관할 필요는 없다.

  둘째로 무역규모의 확대에 상응하여 외환보유고(현금준비)를 늘려야 할 필요에 의해 해외차입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대외채무는 그만큼의 대외 자산(외환보유고)으로 상쇄되기 때문에 순부채는 늘어나지 않는다.

  셋째로 경상적 잉여(흑자)가 없는 나라에서 후진국에게 융자나 기타 형태의 신 용을 공여하자면 다른 나라에서 차입해서 줄 수 밖에 없다. 우리의 장기 연불수출 에 따르는 차입소요가 바로 그 예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대외부채와 함께 대 외채권이 발생함으로 순부채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참고로 정부통계에 의하면 1983년말 현재의 대외 총부채액은 401억 달러이나 순부채액은 311억 달러로 집계 되고 있다.

  넷째로 정체불명의 차입요인이 또 하나 있다. 어느 나라의 국제수지표를 보더라 도 '오차 및 누락' 이라는 항목이 있는데 이것은 복잡·방대한 외환거래중에서 기 록에 잡히지 않는 거래(예를 들면 여행자가 암달러를 사가지고 국외로 나가는 경 우, 또는 군사기밀상 내용을 밝히지 않는 거래가 여기에 포함되는 경우도 있다) 에서 유래하는 통계적 불일치인데, 하여튼 이 항목이 적자일 때에는 금융면에서 차입으로 메꾸게 되기는 다른 항목과 다를 바 없다. 1983년의 '오차 및 누락' 항목 의 적자는 975백만 달러에 달하는데 그 내용은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이 항목을 고려해 넣는다 하더라도 일단 국제 경상수지를 균형시키고 나면 외채잔고는 늘더 라도 해외부채에서 해외자산을 차감한 순부채는 크게 늘어나지 않고 금리수준 여 하에 따라 줄어들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400억 달러의 큰 숫자(총외 채)를 놓고 떠들 것이 아니라 16억 달러의 작은 숫자(경상적자)에 초점을 맞추어 대책을 논하는 것이 훨씬 더 실제적이라고 할 수 있다.

흑자전환을 위한 기본과제

  이상에서 단기적으로 경제적자를 해소하는 문제에 관하여 말했으나 한 걸음 더 나아가 국제 경상수지를 흑자기조로 전환하지 않으면 외채를 감축할 수가 없다. 그러면 좀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우리경제가 대외적 적자기조에서 흑자기조로 전환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가하는 문제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우리가 뼈저리게 경험했듯이 우리의 성패는 우리 자신에게만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좌우할 수 없는 해외 요인에도 크게 의존한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자신의 잠재능력을 평가해 볼 필요는 있다.

  제기한 문제에 대한 나의 대답은 대체로 긍정적인 것이고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경상적자의 규모가 수년 내 감소추세에 있고 이 추세가 지속된다면 앞으로 수년 내에 경상수지가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우리는 이미 1977년에 경상수지의 균형을 이루었던 실적이 있고 제2차 석유파동 이후 한때(1980년) 53억 달러까지 치솟았던 적자는 그 후 3년만에 16억 달러 선까지 내려와 있다. 이것은 우리의 경제구조가 국제수지 균형에 접근하는 조건을 지니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둘째로 우리의 국내 저축률은 1978년에 28.5%에 달했던 실적이 있고 그 후 22%까지 떨어졌다가 다시 작년에는 24.8%까지 회복되고 있다. 우리의 정책적 노력 여하에 따라 30%의 경제자립선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셋째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 산업구조의 문제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일부 논자들은 중화학공업 투자는 외채의 절감보다는 유발의 방향으로 작용하였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장기적, 동태적 관점에서 볼 때 인구 4,000만을 포용하는 국내시장과 경공업 분야에 있어서의 후발개도국의 빠른 추격을 고려할 때 중화학공업으로의 이행은 불가피하고 또 타당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불행하게도 우리의 중화학공업전략은 예기치 못했던 2차의 석유파동과 세계경제의 침체국면에 직면하여 부분적으로 곤경에 처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나라의 경우를 보더라도 중화학공업이 성숙하자면 기술, 경영, 판매면에서 상당기간의 경험과 시일이 필요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일찍이 투자를 서둘렀기 때문에 지금의 몇 분지 일의 적은 비용으로 그만한 투자를 할 수 있었던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중화학공업 시설을 마련한 이상 우리는 그것을 최대한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기술과 판매면의 미비점을 보완해 가야 하고, 그렇게 하면 우리 경제를 흑자기조로 이끄는 데 크게 기여하게 되리라고 나는 믿는다. 이 점은 이미 우리 수출구조에 있어서 중화학제품의 비중이 우위를 차지하고 또 날로 커져 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더라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의 국제수지를 적자기조에서 흑자기조로 전환을 촉진하자면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고 그 중에서도 다음의 네 가지가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우리 수출의 저변을 넓혀 나가는 일이다. 대만의 인구는 우리의 반밖에 되지 않는데 수출액은 우리보다 앞서고 있다. 그 이유를 조사해 보면 대만에 비하여 우리의 수출저변이 약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비근한 예로 대만에서는 등록된 무역업자가 4만이 넘는다고 하는데 우리의 경우 한국무역협회에 등록된 무역업자수가 4천 여에 불과하다. 하기야 우리의 방식에 전혀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수출산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전 산업이 수출산업이 된다는 견지에서 중소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여 수출전선에 참여시키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된다. 대만은 우리에 비하여 인구가 적고 따라서 잠재적 국내시장의 규모가 적기 때문에 중화학공업보다는 중소기업형 경공업에 중점을 두어 크게 성공한 예이지만 우리 또한 중소기업형 경공업을 확산시켜 나갈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오히려 우리는 대만의 모델보다는, 중화학 부문에 강한 동시에 경공업 부문에 있어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일본의 모델을 본받아야 한다고 느껴진다.

  둘째로 국제수지의 흑자전환을 위하여 중요한 일은 소재와 부품의 개발과 품질향상에 박차를 가하는 일이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 중화학공업의 미비점을 보완하는 일이 시급한데 그 중에서도 부품과 소재를 개발하여 각종 공업간의 관련도를 높이는 일이 오늘의 기본적인 과제라고 생각된다. 그래야만 수출의 가득률이 높아지고 수입대체가 촉진되어 각종 제품의 국내 부가가치가 높아질 것이다. 물론 이것은 소재와 부품의 국산화를 의미하는 것이지 비교우위를 무시한 국산화를 하자는 말은 결코 아니다. 다만 면밀한 정보와 연구의 결과로서 기업들이 비교우위가 있다고 판단하는 투자사업들을 적극 권장하자는 뜻이다. 이에 관련하여 일부 현존 소재산업의 국제경쟁력이 크게 뒤지고 있고 그것이 우리 수출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게 하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 하겠다.

  셋째로 소재와 부품개발은 기술 및 인력개발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소재와 부품의 품질을 보장하는 기술능력이야말로 경제적 자립화의 관건을 쥐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정부에서 기술개발을 위하여 다각적인 노력을 경주하고 있으나 한편 우리나라 급여 및 인사제도가 기술개발에 매우 불리한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급여제도에 있어서 기술직, 생산직을 천대하고 사무직, 관리직을 우대하는 전통적 불합리가 점차 개선되어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개선의 여지가 많은 것 같다.

  그리고, 기술자의 이직률이 높아 기술이 사내에 유보 축적되기 어렵고 그 때문에 기술개량이 저해되고 있다는 것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일본에서는 대기업이 소기업에게 기술을 전수하고 몇 년 후에 가보면 전수한 기술이 소화,개량되고 있는 것이 보통인데 한국의 경우에는 기술을 전수받은 기술자의 행방조차 알 수 없었다는 것이 어느 일본인의 말이었다. 급여 혹은 인사제도에 결함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인사제도는 기능주의라기보다 위계주의에 치우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가령 정부 내에서 어느 부서의 인원배치를 물어보면 고용원이 몇 명, 주사가 몇 명, 사무관이 몇 명, 서기관이 몇 명, 국장이 몇 명 등으로 대답한다. 그러나 서구의 어느 나라에서 같은 질문을 하면 전기공이 몇 명, 수위가 몇 명, 계리사가 몇 명, 법무관이 몇 명, 통계관이 몇 명, 재무관이 몇 명 등으로 대답했을 것이다. 위계주의 인사제도 하에서 묘한 일이 일어나는데 해외협력을 담당하는 부서에 외국어에 능통한 공무원은 찾아 볼 수 없고 통계국에 통계전문가가 없는가 하면, 법무관 자리는 인사형편에 따라 아무나 갈 수 있는 자리로 되어 있다. 그러나 절박한 필요는 외면할 수 없어서 어떤 실력있는 전문가를 써야 할 경우에는 인사, 급여제도의 제약 때문에 부득이 촉탁으로 채용할 수 밖에 없는 웃지못할 사례가 종종 있다. 민간회사의 경우는 어떤가 하면 위계주의 인사제도하에서 기술자로서는 승진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기술직을 버리고 관리직으로 변신하는 사례가 많다. 유능한 기술자를 이사로 승진시키면 그 후부터는 기술과의 인연을 끊고 회전의자에 몸을 싣는 인사제도하에서 어떻게 기술축적을 극대화할 수 있겠는가? 마땅히 기술자는 기술자로서, 전문가는 전문가로서 일생의 영달을 꾀할 수 있도록 우리의 인사, 급여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기술개발을 위하여 바람직한 일이 아닐런지……

  넷째로 우리의 당면과제인 소재 및 부품산업의 개발과 그를 뒷받침하는 기술 및 인력개발 그리고 수출설비의 개량확장을 위하여 민간투자가 활발히 이루어져야 하겠는데 지금의 투자분위기 또는 기업환경이 좋지 않다는 소리가 높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한마디로 말해서 정부규제가 많아서 사업을 하기가 힘든다는 말들이 많다. 본래 현대 산업사회에 있어서는 정부의 규제가 다기화할 수밖에 없다는것은 이해하지만 우리나라에 와서 기업을 하는 외국인들의 평을 들어 보면 한국에서처럼 사업하기 힘든 나라도 드물 것이라고 한다. 어떻게 하면 기업환경을 좀더 명랑하게 해줄 수 없을까? 이것이야말로 공무원만이 할 수 있고 또 해야 할 일이다. 복잡다기하고 지나치게 기업활동을 얽어 매고 있는 경제법령을 총정리한다든가, 모든 규제와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고 투명화하는 일이 필요하겠고, 산업지원의 기준과 내용을 명백히 제시해 주는 등 개선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은 것 같다. 어떻게 보면, 기업환경의 개선이야말로 경제활성화의 열쇠를 쥐고 있는 가장 중요한 당면과제라고 할 수 있다.

국내저축과 경상수지

 끝으로 국내저축과 국제수지와의 관계에 대하여 말할 차례이다. 국민소득 계정에는 국내저축 = 투자 + 수출 - 수입이라는 항등식이 있다. 이 항등식은 우리에게 평범하지만 매우 중요한 사항을 일러 주고 있다. 즉 이 식은 국내저축은 투자와 수출이 많고 수입이 적을수록 높아진다는 뜻으로 읽을 수도 있고 거꾸로 투자를 극대화하는 동시에 경상수지(수출-수입)의 균형 내지 흑자를 이룩하자면 국내저축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뜻으로 읽을 수도 있다. 현실적으로는 어느 편이 원인이고 어느 편이 결과라고 말하기는 어렵고 양변의 각 항목은 여러 가지 상이한 또는 동일한 요인의 영향을 받으면서 동시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실상이다.

  지금까지 상기 항등식의 우변에 착목하여 경상수지의 균형화 내지 흑자화를 위하여는 단기적으로는 수요관리와 환율 및 외환정책이 중요하다고 말했고 장기적으로는 수출의 저변확대, 소재부품산업의 개발, 그리고 기술 및 인력개발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했으며 투자에 관하여는 기업환경 개선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이제는 상기 식의 좌변으로 눈을 돌려 국내저축에 관하여 말하고자 한다. 국민소득 계정상의 국내저축은 대부분 재정, 금융기능을 매개로 하여 이루어지는 것인데 이 점에 관련하여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국내저축 자금의 동원 못지 않게 그 배분방식이 국제수지 개선과 국내저축 증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의 형편으로서 국제수지 개선이 경제정책에 최우선 순위를 두어야 한다면 상기식 우변에 착목하여 투자와 수출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수입을 극소화하는 방향으로 국내 자금의 흐름을 정책적으로 유도하는 일이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예컨대 정부 통계를 보면 지난 수년간 수출산업에 있어서의 설비투자가 저조했다. 금년에 들어와서 설비투자액이 크게 늘어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지만 이것은 전자, 제철분야의 대기업에 의한 몇몇 대형 투자를 반영하는 것이지 일반적으로 투자가 확산되고 있다는 증표는 아닌 것 같다. 지금 유행되고 있는 건물이나 비경제 분야의 투자를 억제하고 거기서 생기는 자금여유를 수출부문의 설비투자로 유인하면 국제수지 개선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소재·부품산업의 개발과 기술개발이 장기대책에 근간을 이루고 있는 만큼 이 분야의 자금애로를 덜어주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라 생각된다. 돈만 있다고 해서 만사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내외의 경기가 불투명할 때 소재·부품산업이라 하더라도 어디에다 손을 대야 할지 좀처럼 판단이 서지 않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정부, 경제단체, 연구기관 등이 필요한 과학, 기술투자에 관한 정보를 활발히 공급하여 업계의 관심을 자극하는 한편 불황기에 대처하는 재정, 금융상의 조성책 등을 시행하면 기업들의 투자결정이 좀더 수월해지리라고 생각된다.

  예컨대 정부 당국자들은 재정, 금융자금의 배분상태가 투자와 수출을 극대화하고 수입을 극소화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지를 면밀히 검토하여 필요할 경우에는 유도정책을 취하라고 권하고 싶다. 이것은 정부의 금융간섭을 초래하고 금융자율화의 방향에 역행하는 것이 아니냐는 반문이 있을 수 있겠는데 은행에 대한 경영간섭(예를 들면 인사, 예산, 융자 등에 관한 )과 정책적 기능은 별개의 것이다. 은행경영에 간섭하지 않으면서 중앙은행의 재할인정책, 융자준칙, 그리고 정부의 조세정책 등에 의하여 한정된 가용자금의 흐름을 전략부문으로 유도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고 또 필요한 정책기능이라고 생각한다.

맺음말

  이상에서 말한 바는 결코 새로운 발상도 아니고 또 정부가 이미 시행하고 있는 정책과 다를 바도 없다. 다만 그러한 것들에 관하여 내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해 보려고 했을 뿐이다. 문제가 다양하고 복잡할 때에는 문제의 핵심을 가려내고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의 성격과 접근방법을 재확인하는 것이 유용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책을 담당하는 여러분에게 다소나마 참고가 되었다면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