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실체

lkhy1.gif


 1990년 4월 이코노미스트 권두언 


 

오늘의 경제적 고난을 설명하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임금이 올라가고 통화량이 많아지면 인플레가 일어나게 마련이다. 임금이 지나치게 오른데다 환율이 절상되었으니까 해외시장에서 우리 상품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고 수출이 안되는 것은 당연하다. 토지와 주택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한 각종 행정규제에도 불구하고 지가와 임대료의 상승은 막아지지 않는다. 일부기업의 잘못이 있다 하여 이윤추구가 악덕으로 몰리는 사회 분위기가 기업인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투자를 꺼리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토지공개념 및 실명제의 내용과 효과에 대한 의문과 불안이 있기 때문에 증권시세는 떨어지고 돈은 해외로 빠져 나가려 한다. 물가안정이 최대의 과제라고 하지만 그 성패의 관건을 쥐고 있는 것은 식료품과 서비스 가격인데 종합토지세를 몇배로 올리면 임대료와 서비스 가격이 오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모두가 인과의 연쇄로 일어나는 일인데 보는 눈은 각각이고 사태수습은 잘 되지 않는다는 느낌 속에서 위기라는 인식이 높아져 가고 있는것 같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위기의 근원은 먼 곳에 있지 않다.

먼저 우리는 무엇인가 얻자면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잊고 있는것 같다. 민주화 를 이룩하자면, 노사분규도 생기게 마련이고 어느 정도 무질서도 생기게 마련이다. 그로 인해 우리는 지금 민주화의 경제적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셈이다. 어찌 됐든 지금의 국내 여건으로 보아 과거와 같은 고도성장은 바랄 수 없고 또 바래서도 안 된다. 그렇다면 오늘의 중심과제는 저성장경제로의 소프트 랜딩(연착)을 시도하는 것일 수 밖에 없다. 만약 정부가 이 점을 보다 선명히 부각시키고 국민의 이해와 협조를 구했다면 사람들의 위기감은 덜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 치 사회적 여건과 정부의 정책지향의 당연한 결과로서 올 것이 온 것에 불과한데, 한때는 경제를 크게 낙관하다가 갑자기 경제위기라고 강조하고 나서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민주화 과정의 혼란과 우려되는 노사분규에 경종을 울리기 위하여 그 랬다면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부가 말하듯이 건설투자나 왕성한 소비수요에 힘입어 5∼7%의 경제성장을 예견한다면 그것은 위기라는 말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어딘가 현실파악과 방향감각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같은 이치로 형평을 위하여 토지공개념이나 실명제가 필요하다면 거기에도 적지 않은 대가가 있을 것이다. 대가가 어떠한 것인지에 대한 면밀한 검토나 국민경 제상의 손익계산도 없이 당국자들이 이 정책을 내걸었다고는 믿고 싶지 않다. 그러나 지금 토지공개념의 개념이 무엇이며 실명제의 실체가 무엇인지 충분히 밝혀 지지 않은 상태하에서 그 부작용은 이미 현재화하고 있다. 관계자들은 총론의 차 원에서 맴돌지 말고 무엇을 어떻게 하고 그것이 국민경제상의 어떠한 대가를 요 구하는 것인지 우선 그들의 견해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그래야 그것을 기초로 전 문적인 토론이 전개되고 그를 통하여 균형있는 여론이 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많은 개인이나 기업들은 토지공개념이나 실명제는 극소수의 부자나 기업에 게 관련된 문제인데 그를 다스리기 위한 입법이나 조치가 관계없는 개인이나 기 업들까지 싸잡아서 모두를 괴롭히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위에서 전문적인 토론에 대해 언급했지만 토론풍토에도 문제는 있다. 우리나라에는 단순한 이분법이 유행한다. 요즈음 시끄럽게 보도되는 성장론 대 안정론이 그 일례다. 필자가 보기에는 안정만을 위하여 성장을 희생시키려는 사람도 없고 성장만을 위하여 안정을 무시하는 사람도 실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당국자가 말로 안정을 강조했다고 해서 실제로 무엇을 하던 안정론자가 되고 일부 확장적 정책을 거론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성장론자로 대치되는 것은 너무나 단순하다. 앞에 서 지적한 와 같이 모든 정책에는 득실의 양면이 있어 취사선택이 불가피하고 그럴 경우 어떠한 정책배합을 택하느냐가 문제의 핵심이 된다. 하기야 이 정책배합에 어떠한 색깔이 보인다면 그것을 안정주의니 성장주의니 하는 것은 다만 매스컴의 취향에 속하는 문제이다.

토지공개념이나 실명제에 관해서도 총론위주의 이분법이 있는 것 같다. 그 내용이 무엇인지 알아보기도 전에 두 정책에 토를 다는 것은 수구론(守舊論)이고 그를 지지하는 것은 개혁론이 되어 버린다. 아마도 이 나라의 부와 소득의 편중을 시정 하자는 총론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방법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느냐가 문제이다. 세상은 당위론이나 총론을 떠든다 하더라도 행정을 맡고 있는 테크노크라트들은 할 일이 따로 있다. 그런데 그들마저 추상적 당위론(當爲 論)에 현혹되어 정책의 현실적, 과학적 타당성의 검증을 소홀히 하고 있는것 같다. 그 일례로서 토지공개념이나 실명제의 명분에 현실적인 문제점을 충분히 검토할 겨를도 없이 종토법(綜土法)이 국회를 통과했는데 막상 시행하려고 보니 문제 가 너무나 커서 시행도 하기 전에 법률을 개정할 수 밖에 없는 꼴이 된 것이다. 여기에서 얻는 교훈은 시류에 영합하여 초보적 일반론이나 총론을 뒤흔드는 사람 보다는 현실에 깊이 파고 들어 합리적이고 건설적인 '각론'을 제시하는 이코너미 스트들에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근대경제학의 아버지 A. 마셜은 경제학 자는 '뜨거운 가슴과 냉철한 머리'를 가지라고 일렀는데, 냉철한 머리를 갖지 않으면 민주라는 이름의 반민주가 판을 치고, 정의라는 이름의 억지가 통용되고, 평등의 탈을 쓴 불평등이 생기는 것을 막기 어렵다는 것을 경고한 말일 것이다.

폭우같이 쏟아지는 문제점들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정부는 없다. 문제를 쏟아 붓는 비평자도 이 점을 고려해야 하고 문제에 매몰되는 정부도 이에 대처 해야한다. 정부가 하고 있거나 하겠다는 일은 많은데, 모든 것을 다 하겠다는 것은 한 가지도 제대로 못한다는 말과 같다. 정부는 제기되는 문제를 종합 정리해서 긴급성, 중요성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선택된 과업에 대하여는 실행이 보장되는 계 획과 수단을 국민에게 제시하고 나머지는 뒤로 미루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리고 계획의 진척상항을 정기적으로 평가분석하여 국민에게 보고하고 이해와 인내를 구해야 한다. 한편 비평가들은 제기된 문제가 일단 해결 궤도에 올라서면 그 결과를 기다리거나 진행상황에 관하여 쓰되, 연연세세(年年歲歲) 똑같은 문제제기를 되풀이할 필요는 없다. 문제의 해결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어야 목마른 사람들은 희망을 갖고 기다릴 수 있게 되고 세상은 좀더 차분해질 수 있지 않을 까?

지금과 같이 매사에 세론이 분분하고 이해와 협조의 정신이 희박한 상황하에서 정부가 어떤 정책을 추진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는 알고도 남음이 있다. 예 나 지금이나 관계부처간의 협조와 팀워크 그리고 리더십의 중요성이 크게 강조 되지만 문제의 심각성은 날로 더해가고 있는 것 같다. 각 부처가 제각기 새로운 정책과 사업계획을 난발하지만 그것이 관계부처간의 조정과 공동결정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공수표로 끝나고, 결과적으로 정부가 하겠다는 일은 많은데 되는 일은 적다는 인상을 주게 된다. 이것은 정부의 공신력과 관련되는 문제이다. 이 폐단은 결코 새로운 문제는 아니지만, 요즈음 새로운 행정환경하에서 더욱 심 각해지고 있는 만큼 정부의 관리능력과 정책 추진능력을 제고할 수 있는 어떠한 제도적 장치가 강구되어야 할 것 같다.

요컨대 오늘의 '위기'는 우리들 자신이 만들어 낸 것이고 필연적인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다른나라 경제는 잘 가고 있는데 우리만이 뒤지고 있다는 사실도 그것을 말해 준다. 그리고 그 위기의 근원은 경제의 실체에 있기보다는 우리의 그릇된 인식에 내제해 있다고 생각된다. 이제 '이코노미스트'가 위기의 근원을 성찰하고 우리의 당면문제를 재정리하여 우리가 나아갈 바를 밝혀주었으면 하는 생각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