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제 5개년계획, 정책추진력이 성공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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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가 출범한지 불과 4개월만에 "신 경제 5개년 계획,(1993-97)"을 확정 발표하였다. 그 동안 관계공무원들의 노고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으리라고 짐작된다. 신경제계획은 김영삼 대통령의 통치철학과 개혁의지를 반영하는 것이며, 그 내용도 상당히 구체적이다. 이 계획이 원활히 집행된다면 한국경제는 새로운 도약기를 맞이하게 된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신 경제 5개년 계획이 확정 발표됨에 따라 기존의 "제7차 경제. 사회 발전계획(1992-96)"은 폐기된 것으로 추측되는데 그에 관한 언급이 아직은 없다. 제7차 계획도 정부가 확정하여 내외에 발표한 공식 문서인 이상 그 폐기도 공식 절차를 거쳐 내외에 발표함이 옳을 것이다. 제7차 계획 이외에도 정부가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국내 석학들로 하여금 산출케 한 "21세기위원회" 보고서도 있을 터인데 신 경제 5개년 계획은 이것들과 어떠한 관계에 있는 것인지도 알 수가 없다. 7차에 걸친 5개년 계획은 우리 나라 경제발전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여 왔는데 이제는 계획의 주기 년도도 달라지고 차수(次數)도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한다.

신 경제 계획은 제도와 의식의 개혁을 강조하고 있는 점이 하나의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신 경제 5개년 계획에 함축된 문제의식이나 정책과제들은 제7차 계획의 그것들과 크게 다를 게 없다. 제7차 계획은 우리산업의 실추된 국제경쟁력을 회복하고 경제전반의 능률을 향상시키는 것을 기본 과제로 파악하였는데 이러한 문제의식은 지금에도 그대로 살아 있고 신경제 계획의 구도에도 그대로 깔려 있다. 우리가 특히 경쟁력을 강조하는 것은 단순히 수출 부진이나 국제수지적자의 재발을 놓고 하는 말이 아니라 실은 21세기 세계경제의 동향을 통찰하는 데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누구나 다 아는 바와 같이 동서냉전이 사라진 오늘에 있어서는 군사경쟁 대신에 경제경쟁이 세기적 특징이 되고 있다. 선진국들은 저마다 무역전쟁에서 승자의 위치를 유지하려고 국내적으로는 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밖으로는 시장의 방어와 공격 양면의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국제분업 구조는 급격히 변화하고 있고 이러한 국제분업 재편 과정에서 한자리를 잡지 못하면 21세기 세계경제 판도에서 낙오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군사경쟁이 국가 총력 태세를 필요로 하듯이, 경제경쟁도 비단 수출산업뿐만 아니라 경제전반의 능률을 거는 경쟁이 된다. 만약 이 경쟁에서 상위권에 들지 못하면 우리경제는 현상유지는 고사하고 후퇴의 길을 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래서 경쟁력의 회복은 우리경제의 사활이 걸린 문제가 된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지난 수년간 정부 내외에서 다각적인 정책과제가 논의되었고, 거기에서 집약된 주요대책으로 사회간접시설의 조속한 확충, 과학기술의 적극적 개발, 금융제도 정비와 자율화, 각종 정부규제의 완화, 안정적 노사관계의 정착, 공산품 및 서비스 시장의 개방 등이 건의되었다.

新경제 5개년 계획이 이러한 종래의 문제의식이나 정책과제들을 계승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렇다면 신 경제 5개년 계획의 개혁적 성격은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그것은 문제의식이나 정책과제의 선택보다는 그 계획을 구현하는 정책실천능력에서 찾아야 한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해마다 같은 문제를 놓고 같은 논의를 되풀이하여 왔지만 아직도 미해결로 남아 있는 문제가 많다. 그것은 민주화에 따라 행정환경이 어려워진 탓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정부의 정책추진능력이 약했다는 증거도 된다. 이러한 견지에서 新경제계획이 성공할 수 있는 첫째의 조건은 정부의 정책수행능력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점은 제도적 측면과 지도력의 측면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먼저 경제행정은 각부 처의 개별 정책을 통괄 조정하는 기능을 필요로 한다. 당연한 일이지만 신 경제 5개년 계획에는 계속해서 국민들의 이해와 부처간의 협의를 필요로 하는 사항이 많다. 계획 문서를 들여다보면 "단계적으로 추진한다." "점진적으로 추진한다." "방향으로 검토한다." "추가적으로 검토 추진한다."는 등의 어구가 많이 눈에 띄는데, 공무원 사회에서는 이런 것들은 부처간의 합의가 없었거나, 무엇을 하고 싶은데 다른 부처가 따라와 주지 않을 때에 사용하는 어구임을 우리는 안다. 시간의 부족 때문에 그런 면도 있겠으나 어쨌든 이러한 사정은 두 가지 문제를 제기한다. 첫째는 행정 停滯에 관한 문제이다. 부처간의 의견조정과 합의에는 상당한 씨름과 시간이 걸리므로 누군가가 뒤에서 이를 감시하고 독려하지 않으면 정책업무가 침체에 빠질 위험이 다. 각부처 마다 무엇을 하겠다는 정책 발표는 많은데 실제로 실현되는 일은 드물다는 항간의 평언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 난점을 개선하기 위하여 필자는 평가분석제도를 부활하라고 권한 일이 있다. 경제기획원에 유사한 기능이 부활되었다고 듣기는 하였지만 과연 실효를 거두고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이 제도하에서는 정기적으로 정부의 중점 투자사업(민간은 제외) 뿐만 아니라 주요 정책업무(제도, 조직개편, 법령의 개폐 등)의 추진 상황을 보고케 하여 부진 사업이 발견되면 그 원인을 규명하고 대책을 강구한다. 옛날처럼 대통령 자신이 이 회의를 주재하면 각부 처의 긴장 도는 극에 달할 수 있다. 이 제도는 국가 중점 시책의 추진 상황을 조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행정의 停滯를 예방할 수 있는 방편이 된다. 뿐만 아니라 부진 원인이 정부밖에 있을 때에는 스스로 여론이 환기되어 민간이나 국회의 협력을 촉구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둘째의 문제는 조정기능에 관한 것이다. 부처간의 의견을 조정하여 정부차원의 정책이 결정되려면 부처간의 협의가 필수적인데 자기에게 불리하다고 생각되는 결정은 서로 피하려는 것이 각부 처의 공통된 성향이다. 뿐만 아니라 정부가 직면한 문제 처 놓고 처음부터 흑백이 명백한 문제는 하나도 없다. 명백하다면 그것은 이미 결판이 났을 것이고 부처간의 협의조차 필요치 않을 것이다. 협의의 대상이 되는 문제는 대개가 관점에 따라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고, 관계국민들과 여론의 반응을 고려하면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문제들이다. 그래서 협의 과정에서 부처간의 입장이 맞서 결론이 나지 않는데 밖에서는 쓸데없는 추측과 잡음이 무성하는 경우가 있다. 원래 이 나라의 경제담당 부총리는 경제정책을 통괄 조정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법적으로는 각부 처에 대한 지휘권도 없고 인사권도 없다. 다만 그의 개인적 수완과 설득력에 의하여 부처간의 합의를 도출할 수밖에 없는 것인데 그러자니 시간이 걸리고 잡음이 나게 마련이다. 이 사태를 개선할 수 있는 길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대통령이 부총리를 적극 뒤에서 밀어 주고 부총리는 그를 배경으로 하여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던가 아니면 대통령이 직접 각부 처의 업무 추진 상황을 챙길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싶다. 하여튼 정책의 조정 절차와 권한을 분명히 하는 것이 원활한 정책추진의 출발점이 아닌가 한다.

다음에 정책 추진이 결정권자의 리더십에 크게 의존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우리가 보아 온 리더십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는 것 같다. 하나의 유형은 밑에서 무슨 문제를 들고 오면, 충분히 설명을 듣고 나서 건의 사항에 대하여 자기의 의견과 가부(可否)를 명백히 제시하는 타입이다. 가부 판단이 서지 않을 때에는 결론 없이 끝날 수도 있지만 그러나 그 문제를 결코 잊어버리는 일은 없다. 남에게 물어 보기도 하고 혼자서 골똘히 생각한 끝에 얼마 안 가서 결단을 내리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일단 결정을 내리고 나면 서론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의 결정을 뒤집지도 않으며, 비록 그 결과가 잘못 되었다 하더라도 밑의 사람을 책하지도 않는다. 자기가 결정한 일이니까 자기가 책임진다는 태도이다.

또 하나의 유형은 좀 답답한 경우이다. 하위자가 어떤 문제를 들고 와서 일련의 조치의 필요성--예컨대 물가안정 종합대책 같은--을 설명하고 아울러 그 조치에 수반되는 불가피한 부작용 내지 문제점들을 설명한다. 결정권자는 건의된 조치 내용에 대한 배석자 들의 의견을 묻거나 혹은 자기의 의견을 개진하는 대신에 이미 하위자가 누누이 보고한 정책적 당위성을 장황하게 훈시한다. 그러는 사이 결정권자가 정책건의 내용을 받아들인 것인지 아닌지 애매모호한 상태에서 보고는 끝나고 만다. 모처럼 곁정권자의 결심을 얻고자 보고 했던 사람들은 맥이 빠져 돌아서고, 어떤 부서는 최종결정이 나지 않았다 하여 종래의 고집을 다시 꺼내는가 하면 다른 부서는 보고가 끝났으니 시행해야 한다고 우겨댄다. 여기에서 정책의 혼선과 잡음이 빚어진다. 생각건대 결정권자가 전문가가 아닌 이상 결단에 주저하는 것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전문가의 보좌를 받아가면서 가급적 신속하고 명료한 결정을 내리던가 아니면 원칙만 제시하고 나머지의 결정권은 하부에 위임하던가, 어느 편이던 정책 결정의 권한과 절차를 투명하게 정립하지 않으면 행정의 정체와 정책의 표류가 따르게 된다.

인기 없고 집단간의 이해가 상반되는 정책일수록 정책결정이 늦어지는 경우가 많다. 한가가지 예를 들기로 하자. 우리경제의 당면 과제중 과학기술의 개발만큼 그 중요성이 강조 되여 온 과제도 드물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자연계 및 이공과 대학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며, 대학들로 하여금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하자면, 이들 대학의 교수의 수를 대폭 늘리고 실험 및 연구시설을 충분히 마련해 주어야 한다는데 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에 필요한 자원을 어떻게 조달하느냐 하는 것이다. 생각할 수 있는 방책으로는 학교 등록금을 올려주던가, 국가 재정으로 보조를 하던가, 아니면 두 가지 안을 혼합하던가, 세 가지 대안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제1안은 학생들의 반발이 두려워서 택할 수 없고, 제2안은 국가 예산의 제약 때문에 별수가 없고, 제3안은 제1안과 2안의 난점을 적게나마 고루 지니고 있기 때문에 곤란하다고 한다. 그래서 심야에 대학 연구실의 불이 꺼지지 않아야 우리의 과학기술의 장래가 열린다는 말은 무성했지만 오늘에 이르기까지 결정적인 대책이 실행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히 국가 재정형편이 허락지 않는다면, 등록금이라도 자율화하여 대학교육의 질을 높여야 한다. 그것은 안이한 형평론 보다 몇 갑절 학생들의 이익이 되고 국가의 힘이 될 것이다. 요는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니라 용단이 없는 것이다. 정부는 신경제계획 추진 과정에서 빈번히 이런 따위의 문제에 부디 치게 될 것인데 이때 만약 필요한 결단을 주저하고 안이한 정책으로 국면을 효도해 나간다면 신 계획은 구 계획과 별로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요컨대 신 경제 5개년 계획은 관민의 협력으로 반드시 성공 시켜야 한다. 성공의 조건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정부의 정책추진능력이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계획만 있고 실천이 따르지 않으면 그 계획은 과거처럼 발표만 하고 덮어두는 문서가 될 것이다. 정책추진력을 강화하기 위 하여는 첫째로 정부 각부 처의 정책업무를 추적 평가하는 제도가 있어야 하고, 둘째로 각부 처 업무의 조정 통합의 절차와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하며, 셋째로 결정권자는 어려운 결정을 회피하고 안이한 정책으로 국면을 호도 하는 태도를 취하지 말아야 한다. 어려운 결정을 내리고 국회와 언론과 국민을 설득하는 것, 그것이 리더십의 본령이라고 한다.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이후 부정부패 척결에서 비상한 과단성을 보여 국민들의 박수를 받고 있다. 경제문제에 있어서도 그와 같은 과단성이 기대되는 만큼 그를 둘러싼 참모들과 각료들의 보필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