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의 전망과 우리의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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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6월15일 제3회 민관대외경제담당자 합동연수 강연등1)


 머리말

필자는 비교적 자주 해외를 돌아다니고 여러 국제회의에 참가하다 보니 세계경제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고 국제적으로 당면문제가 무엇인가에 대해 다른나라 사람들과 대화할 기회가 많았다. 오늘은 그 동안 이들로부터 듣고 토론했던 내용들을 중심으로 말하고자 한다.

최근 본인은 개발도상국에 대한 국제금융을 논의하는 'Independent Group on Financial Flows to Developing Countries' 혹은 속칭 '슈미트 커미션' 이라는 회의에 참가한 일이 있다. 서독의 전 수상 슈미트 씨를 의장으로 하여 캐나다의 전 수상 트뤼도 씨, 미연방 준비은행의 총재였던 폴 볼커 씨, 세계은행 총재였던 맥나마라 씨 등을 비롯하여 각국의 전직 수상, 재무장관, 중앙은행총재, 국제금융기관장 등 16인이 모인 이 회의의 목적은 세계경제의 추이를 전망하면서 특히 개도국의 부채 문제, 절대빈곤의 문제 그리고 남북격차 확대와 관련 금융적 측면을 논의하고 각국 정부 지도자들에 대한 건의안을 도출하는 것이다.

이 회의는 지난 4월 동경에서 그리고 제2차 회의를 5월 워싱턴에서 다시 모여 각국 정부에 대한 건의안을 성안하게 되었다. 오늘 이 자리에서는 이 회의에서 토의되었던 것들을 토대로 하여 세계경제의 장기 전망과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을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한다. 먼저 세계경제의 앞날을 생각함에 있어서는 다음의 열 가지 전망이 중요하다 하겠다.

I. 세계경제의 장기적 전망

동서관계가 대립관계에서 교섭관계로 이행

최근 세계정세를 보면 국제적으로 냉전분위기가 완화되고 새로운 의미의 데탕트가 진전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핵무기를 사용하는 대규모 전쟁의 위협이 감소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몇 가지 구체적인 사항을 말한다면 먼저 소련의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UN 연설에서 일방적으로 50만 소련군을 감축하겠다고 제의한 것을 들 수 있다. 바로 그 직접적인 동기는 소련의 경제형편이 악화되어 방대한 군대유지가 곤란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기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미.소의 핵무기 감축을 위한 군축협상도 계속 진행되고 있으며 대체로 그 결과를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

이 밖에 소련이 아프카니스탄에서 완전 철수했다든가 최근에 중국과 소련의 외교가 정상화된 점, 또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NATO 총회에서 미국의 나토 주둔군 20% 감축을 발표한 사실 등도 데탕트의 진전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상황으로 보아 오늘날 동서관계는 냉전체제에서 대화를 통해 뭔가 해결해 보고자 하는 교섭관계로 바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사회주의 국가의 개방화 물결

잘 알다시피 현재 많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개방화 물결이 일고 있다. 특히 소련의 경우 소위 '페레스트로이카'라는 개혁정책을 표방하고 있다. 이러한 개방정책의 배후에는 소련 'Academy of Science'의 학자 및 지식인들의 역할이 작용하고 있다고 보여지는데, 국제회의에서 만나본 몇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지금까지 소련의 대외정책이 지나치게 미국 중심이었기 때문에 언제나 미국을 겨냥한 대외정책과 군사정책만을 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소련과 미국의 인구가 세계인구의 10분의 1에 지나지 않으므로 대미 일변도의 안보 및 외교정책은 더 이상 도움이 안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소련은 대미관계에서 국방과 안보, 특히 군사력 강화에 치중해 왔으나 따지고 보면 군사력만이 안보수단이 될 수는 없고 경제력 및 외교, 특히 외교가 중요하다. 그 동안 소련은 자급자족 경제체제유지 및 안보정책의 일환으로 군비강화에만 치중한 결과, 이에 대한 대가가 너무나 컸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제는 소련도 적극적으로 세계경제에 참가해서 세계경제 발전의 일환으로서 국제분업에 일익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 페레스트로이카의 기본이념이고, 이러한 배경하에서 소련은 경제발전에 치중하고 있으며 특히 동방정책으로서 시베리아 개발을 서두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는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의 성공여부에 대해 아직은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 같다.

한편 다 아는 바와 같이, 최근 많은 동구권 국가에서 개방의 물결이 일고 있다. 중국의 개방물결은 정치적 반작용 때문에 혼란을 불러와 지금은 상당히 걱정스럽다. 그러나 결국 중국도 계속 경제개방정책을 추진하게 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인 것이다. 하여튼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이 서서히 세계경제체제에 참여하여 거기서 응분의 역할을 맡고자 하는 만큼 서방세계로서는 이를 환영할 만한 일이다 앞에서 언급한 '슈미트 위원회'에서도 이에 주목하여 사회주의 국가들이 국제통화기금 (IMF), 세계은행(World Bank), 무역 및 관세에 관한 일반협정(GATT) 등에 적극적으로 참가하여 동서간의 경제교류를 확대하고 세계경제의 성장·발전에 기여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미국 리더십의 상대적 후퇴

최근 미국의 국제적 지위가 상당히 약화되고 있다. 그 단적인 예로서 미국의 순부채는 이미 4,000억 달러에 달하였고 몇 년 내에 1조 달러에 달할 전망이어서 최대의 채무국으로 전락하였다. 1985년까지의 레이건 행정부의 달러가치유지정책 (Strong Dollar Policy) 정책은 미국의 제조업의 이른바 공동화 현상을 초래하게 되었다. 국내저축의 부족 또는 과잉소비로 막대한 재정적자를 해외차입으로 메꾸어 나가야 하는 형편에서 이러한 쌍둥이 적자(재정적자와 국제수지적자)는 세계경제 전반의 안정과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러면 미국을 대신할 만한 새로운 리더십을 갖춘 국가가 출현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우선 생각할 수 있는 나라는 일본과 독일이다. 그러나 일본은 경제적으로 막강한 힘을 가졌지만 문화적, 국제정치적 경험이 부족하여 세계를 영도할 만한 능력을 갖추었다고 볼 수 없다. 설사 일본이 독일과 합세한다 해도 그런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런지 의문이다. 어쨌든 독일과 일본은 그들 스스로가 세계의 리더 역할을 맡길 꺼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21세기는 결국 리더십의 다극화 현상을 경험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여겨진다. 하지만 아무리 다극화 된다 하더라도 거기에는 여전히 분권과 대립을 통합하는 리더의 기능이 필요하고 또 있게 마련인데, 그럴 경우 그 약화된 리더십이나마 미국이 맡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되고 만다.

생각컨대 미국은 이러니 저러니 해도 세계 최대의 시장규모를 가진 나라이고 경제체제상 기술혁신과 첨단기술에 있어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또 자유진영에서 핵무장한 초강대국은 미국밖에 없다. 또한 문화적, 지적 리더십의 견지에서 보더라도 미국의 역할은 필요하다. 우리가 국제회의에 참석할 때 늘 보는 일이지만 비교적 조리있고 당당하게 주장을 펴고, 리더의 관용을 보이면서 회의를 마무리 짓는데 주요역할을 하는 것은 미국인일 경우가 많다. 이러한 문화적, 지적 리더십 면에서 한국·일본을 포함한 동양사람들은 아직도 배울 점이 많은 것 같다.

이런 점에서 결국, 비록 상대적으로 약화되기는 하겠지만 미국의 리더십은 계속 유지될 것으로 예견되고 있다. 우리는 대미관계에서 특히 이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으로 본다.

국제관계에 있어 경제, 기술의 상대적 우위

이제 바야흐로 경제경쟁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현재 이러한 경제경쟁은 다각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기술면에서 유럽과 일본 그리고 미국의 3파전이 전개되고 있고 여기에 신흥공업국들이 이들을 따라잡기 위해 또한 서로 경쟁하고 있다. 이처럼 기술경쟁이 중요하다 보니 미국은 지적소유권 문제를 들고 나오게 되었고 기술의 타국 이전을 더욱 어렵게 하고 또 기술을 시장보호의 장벽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EC는 고품위 TV의 규격을 특수화하여 타국제품과의 호환성을 배제하려고 하고 있음). 앞으로는 기술·경제가 국제 문제의 중심을 차지하게 되고 따라서 정부의 외교활동도 경제분야의 비중이 높아갈 것으로 예견된다.

지역주의의 진전

여러분도 잘 아는 바와 같이 EC 12개국은 소위 '유럽단일화법안(Single European Act)'을 수년전 통과시켜 1992년을 목표로 EC 역내 모든 관세 및 비관세장벽의 철폐, 물품의 규격 및 표준의 통일, 법령과 규정의 통일은 물론 국가간의 법령도 같게 하고 통화마저 단일화하는 웅대한 지역통합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사람, 물자, 용역, 기술, 지식 등의 자유로운 이동을 방해하는 일체의 장벽을 철폐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EC는 결국 일종의 단일 경제권 형성을 목표로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유럽 통합은 말과 같이 쉽지는 않다. 가령 영국은 금융의 중심지가 런던으로 부터 브뤼셀로 옮겨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는가 하면, 농업정책을 둘러싸고 프랑스와 다른 나라사이에 날카로운 대립이 있다. 제일 어려운 문제는 재정 및 금융통합이라 하는데 그러나 EC는 험로를 헤쳐가며 지역통합을 이루어 갈 것이다

또한 미국과 캐나다도 작년에 자유무역협정을 맺었는데 협정체결 이전에도 미국과 캐나다 사이에는 무역의 70%가 이미 자유화되어 있었다고 한다. 아직도 양국간의 자유무역협정에는 적지 않은 문제들이 미해결로 남아 있지만 자유무역을 향해 지역통합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으나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사이에도 자유무역협정이 있어 사람과 물자의 왕래를 비롯 교류상의 장벽이 철폐되고 있다고 한다.

지금 태평양지역에서도 지역협력의 문제가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이 점에 관하여는 항을 바꾸어 따로 말하겠지만 하여튼 앞으로의 세계는 각각 인구 3억을 포용하는 3대 경제권이 중심이 되어 돌아갈 것이라는 전망을 할 수 있다. 첫째는 미국과 캐나다의 북미경제권, 둘째는 EC 경제권, 셋째는 아시아·태평양지역권, 더 정확히 말하면 동아시아 경제권으로 분류할 수 있다. 동아시아 경제권은 일본, 한국, 홍콩, 대만, 싱가포르, 중국으로 구성되며 중국의 경우는 동해안의 상해에서 광주에 이르는 소위 경제특구에 해당하는 해안선일대에 국한된다.

아시아. 태평양지역의 상대적 우위

앞으로 아시아·태평양지역은 세계경제에서 가장 다이나믹한 발전의 중심지가 될 것으로 보여진다. 일본의 어느 한 연구보고서는 이 지역 중에서 홍콩과 싱가포르는 1990년대 말까지 현재 일본의 소득수준에 도달할 것이며 한국과 대만은 2,000년대 초기에 현재 일본의 소득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 지역의 협력체로서는 민간단체나 기업인으로 구성된 '태평양경제 협의회(PBEC : Pacific Basin Economic Council)'와 '태평양경제협력회의(PECC : Pacific Economic Cooperation Conference)'가 있는데 필자는 후자의 이사회 일원으로 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PECC는 그 기능이 활발해지고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기구의 특징은 정부, 비즈니스, 아카데미아의 삼위일체로 구성되어, 1980년 오스트레일리아의 캔버라에서 첫 모임을 가졌다. 이 회의는 그 후 제4차 회의를 서울에서 개최했고 금년 11월 제7차 회의가 뉴질랜드의 오클랜드에서 열릴 예정이다.

또한 이 단체는 6개의 'Task Force' 또는 'Forum'을 운용하여 무역, 투자, 에너지, 농업, 축산, 전기통신, 기술 등의 분야에서 지역 내의 현황과 문제들을 토의하고 그 결과를 매년 연차총회에 보고 하기로 되어 있다. 우리 나라도 이 기구에 적극적으로 참가하여 아시아 태평양지역에서의 우리의 위상과 역할을 정립해 나아가야겠다.
그러나 태평양지역 협력운동은 아직 일천한 단계에 있기 때문에 이것이 금세기내에 자유무역지대로 발전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지역통합을 어렵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은 각 멤버들이 정치적, 문화적으로 너무 이질적이라는 사실이다. 일례로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인가 하면, ASEAN의 멤버들은 자기들의 협의체인 'ASEAN'이 약화될까 우려하여 그를 포함한 보다 광범위한 협력체의 탄생을 꺼려 하는 태도를 보여왔고, 또 이들은 미국이나 일본의 일방적인 지배를 두려워하고 있다.

그러나 동아시아 지역에서 급속도로 경제성장이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우리는 이 지역 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국제분업 재편성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우리의 분업구조는 일본에서 수입한 부품을 이용하여 저렴한 노동력으로 이를 가공, 미국에 수출하는 기본 패턴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NICs의 공업화가 급격히 진전되고 아세안 국가를 비롯한 후진국들의 공업화가 진행되고 있는 과정에서 이러한 분업체제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미국과 일본도 NICs 국가들의 추격에 따라 시장 쉐어의 위협을 받고 있으므로 최근 세계시장 관리전략에 의거, NICs나 동남아 국가에서 수출거점을 확보하는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본의 경우가 특히 그러하다. 일본은 자본합작, 기술제공 및 OEM 수출 등에 노력하고 있으며 미국도 자국의 사양산업 해외이전을 꾀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에는 수출거점이라기보다 생산거점을 확보하기 위한 일환으로 보여진다. 이에 따라 현재 일본업계의 경우 해외생산 의존도는 오디오 제품이 37%에 달하고 있고 컬러 TV가 55%, 그리고 VTR은 7%에 달하고 있다. 이렇듯 생산 및 수출거점의 확보라는 측면에서 미국과 일본은 서로 경쟁적으로 동아시아 지역에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또 최근 일본은 무역흑자가 문제시되고 시장개방이 불가피함에 따라 외국에서 부품을 생산하고 이를 반입하여 완제품을 싸게 만들어 수출하는 체제에서 벗어나 이제는 아예 완제품 또는 부품을 해외에서 조달하기 시작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요즈음 우리나라의 대일수출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으며 작년도 무려 50% 가까이 증가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특징적인 것은 지금까지는 산업단위로 분업을 생각해 왔으나 지금은 일종의 'Intra-Industry Specialization', 즉 산업 내 분업의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령 오디오 제품의 경우 부품은 한국에서 생산하고 조립은 타국에서 하는 등 동종업종간의 분업체제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분업의 형태가 종전의 수직적 관계로부터 수평적 관계의 분업으로 이행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선진국에서 신흥공업국(NICs)으로 넘어가고 있는 생산도 있고 신흥공업국에서 후발개발도상국(LDCs)으로 넘어가는 생산 혹은 산업도 있게 되었다.

이렇게 볼 때 지금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국제분업의 재편과정에서 우리가 후진국에게 내 주어야 할 업종과 또 선진국으로부터 받아들여야 할 업종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여 산업 전략을 세워야 할 때이다. 또 투자환경의 악화 또는 정책상의 소홀등으로 당연히 물려 받아야 할 선진국의 업종을 경쟁국에게 빼앗긴다든가, 첨단기술 도입의 기회를 놓친다든가 하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유의할 때라고 생각한다.

범세계주의의 대두

이상과 같이 지역주의가 급속히 진전되고 있지만 특정 현상이 진전되면 다른 한쪽에서는 반드시 그 반작용이 생기는 법이다. 다시 말해 최근 지역주의에 대항하여 'Globalism'이 강조되고 있다. 슈미트 위원회에서도 이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 왜 범세계주의가 현실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가 하는 것인데, 실제적으로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범세계주의적 대응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로 정보화 시대의 진전에 따라 금융 및 증권거래에 국경이 없어지게 되고 각지의 시장이 동시에 즉각적으로 연결되고 있어 세계 전체가 하나의 시장이 되었다. 금리 및 환율이 세계시장에 민감한 반응을 일으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증권업도 세계시장의 변동에 상당히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하에서는 수년 전 뉴욕의 증권파동(Black Monday)이 보여 주었던 것과 같이 어떠한 돌발사태를 계기로 하여 증권파동이 일어날 위험성은 언제나 내재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한편 구제통화체제 내지 환율제도가 흔들리고 있다.

경제이론에 의하면, 변동환율제는 국제수지의 자동조절기능을 갖는다고 하였다. 이를 풀이하면 국제수지가 악화되면 그 나라 통화의 대외가치(환율)가 하락하는 방향으로 변동하고, 그에 따라 수출이 촉진되고 수입이 둔화하여 국지수지의 균형을 회복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반드시 그렇지가 않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금융·증권시장이 세계화한 오늘에 있어서는 환율을 결정하는 것은 국제수지상의 재화와 용역의 흐름보다는 세계 각지에서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단기성 자금거래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게 되었다. 따라서 세계적 차원에서 하루 24시간 일어나는 금융거래를 세계적차원에서 관리하지 못하면 오늘과 같은 환율의 불안정을 면할 수 없다는 인식이 드높아가고 있는 것이다.

다음에 정치적으로도 요즈음은 교통통신이 발달한 정보화 시대와 함께 폐쇄적인 국가체제유지가 곤란하게 되었다. 이미 개방된 나라는 국제화 또는 범세계주의를 더 한층 추구하게 되고 비록 북한이나 버마 그리고 베트남과 같은 폐쇄된 국가조차도 어차피 개방해야 할 운명에 놓여 있다. 앞으로 국경이라는 장벽이 점점 무의미해지고 이런 장벽을 유지하고 있으면 국제사회에서 고립화되어 세계경제의 진운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필경은 모든 나라가 하나의 세계(One World)라는 개념에 익숙해질 것이다.

환경 문제도 '글로벌리즘'을 촉진시키는 문제의 하나이다. 대기오염 등은 국경이 없기 때문에 몇 나라의 노력만으로는 그 방지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일부 국가, 특히 후진국의 경우 환경오염은 위험으로 생각하지 않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기중의 탄산가스가 증가하여 대기의 온도가 올라가는 이른바 온실효과가 결국 북극의 빙하까지 녹여 샌프란시스코, 나아가 방콕까지도 물에 잠기게 할 우려가 있으며 프로판가스의 이온층 파괴와 아프리카 및 아시아 일부지역의 사막화, 열대림의 급속한 소멸, 산성비의 지역적 전파, 식물 종자의 감소, 아프리카의 급속한 인구증가 등도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경제학에서는 경제적으로 가난할수록 인구증가율이 높다고 말하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 미국의 어느 경제학자는 출생해서 살아남을 확률이 낮은 동물일수록 출생률이 높다는 것으로 설명한다. 그래서 형편이 조금 나아지면 사망율도 점점 떨어지고 반면에 출생률은 그대로 유지되므로 여기서 불균형이 일어나게 되고 결국 급속히 인구가 증가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여튼 아프리카의 무서운 인구증가율, 그에 따른 절대빈곤이 큰 문제이며 여기에 대한 글로벌한 차원의 대응 없이는 인류의 비극을 면할 수 없으며 이러한 견지에서 세계는 보다 큰 관심을 보여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개도국 부채 및 남북간 격차 확대의 위기

1982년부터 1988년 사이의 개도국 부채는 8,500억 달러에서 1조 2,400억 달러로 증가하였다. 1982년을 기준으로 삼은 것은 그해에 멕시코 재무장관이 미국 재무성 및 IMF에 전화를 걸어 채무이행의 불가능을 통고한 것이 국제적 부채위기를 촉발하였기 때문이다. 바로 그 재무장관(지금은 전직)이 이번의 '슈미트 위원회'에 참가하여 우리와 함께 부채 문제를 논의하였지만 어떠한 묘책도 발견할 수 없었다. 다만 최근에 공표된 미국의 '브래디'안을 지지하고, 관계은행, 국제금융기관, 정부 사이의 보다 효과적 협조를 위하여 IMF와 세계은행 주선하에 특별창구(special facility)를 설치하라고 건의하였다. 각국의 상업은행(주로 미국의)이 짊어지고 있는 불량채권 3,000억 달러를 적절히 관리하지 못하면 은행도산, 나아가 세계 금융질서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는 것인데 이를 회피하기 위하여 채권국 정부가 어떠한 재정적 구제조치를 취할 경우, 민간은행의 불량대출 책임을 정부가 지는 것이 온당하냐 하는 것이 문제의 초점이다 마치 우리나라의 부실기업 정리에 관련된 시비와 같다.

미국의 '브래디 플랜'은 상업은행에 의한 채무국 부채의 일부 탕감이 불가피함을 인정하고 그에 대한 직·간접의 정부지원 요소를 가미하고 있어, 종전의 베이커 플랜보다 진일보한 면이 있기는 하나 과연 이 제안이 실효를 거둘지는 의문이다. 따지고 보면 남미국가들이 부채를 갚을 수 있으려면 그들이 국제수지상의 흑자를 내고 채권국가들이 적자를 내는 무역관계가 실현되어야 하는데 현재의 무역환경하에서는 어림도 없는 이야기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른바 이 '부채 폭탄'이 언제 터질지 세계 금융가는 전전긍긍하고 있을 뿐이다

부채 문제에 관한 토론이 있을 때마다 한국이 참석자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경우가 많다. 부채로 신음하는 오늘의 남미제국은 한국을 보라! 한국도 많은 외채를 들여왔지만 건실한 경제운용과 국민들의 왕성한 개발의욕으로 세계 유수의 무역국가로 발전했고 마침내 경상수지 흑자를 실현하여 외채를 미리 갚는 처지에 이르지 않았느냐? 하는 듣기 좋은 말이다. 사실상 남미제국이 살을 깎는 아픔을 참고 경제개혁을 단행하지 않는 한 부채 문제의 해결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무엇보다도 남미제국은 인플레의 고질을 퇴치하고 자본도피를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1982부터 1985년까지 멕시코가 부채상환을 위해 도입한 자금의 절반이 자본도피로 다시 해외로 빠져 나갔다고 한다. 자본도피를 막는 길은 그 나라 국민들의 정부정책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것인데 그러자면 무엇보다 인플레를 퇴치해야 한다. 브라질의 1,000%, 아르헨티나의 400%, 우루과이의 200%, 멕시코의 67%라는 터무니없는 하이퍼 인플레를 그대로 둔 채 부채 문제 해결을 위한 어떠한 처방을 내도 그것은 무의미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부채상환 능력을 길러 주기 위해서는 이들 국가의 수출을 증대시켜 경제성장을 촉진하고 투자환경을 조성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자금이 필요하다. 현실인 즉 1982에서 1988년 사이 부채국의 순자본 도입은 연간 1,450억 달러에서 260억 달러로 감소했다. 지난 수년 동안 자본이 선진국에서 개도국으로 흘러가지 않고 거꾸로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흘러가는 현상을 보였던 것이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이며 이 상태가 지속되면 개도국의 부채 문제가 더욱 악화될 뿐 아니라 개도국의 경제성장이 침체되어 남북격차는 더욱 확대될 것이다.

세계은행(World Bank)의 통계에 의하면 지난 20년간 1인당 GNP의 증가는 개도국에서 6달러였고 중진국이 25달러 그리고 선진국이 235달러였다. 결과적으로 1인당 GNP의 격차는 점점 확대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가난한 다수의 이웃을 구제하지 못하면 소수의 부자들도 구제할 수 없다"고 말한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연설 한 구절이 생각난다.

특히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국가의 절대빈곤 등의 문제가 심각한데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연하다. 전 세계은행총재 로버트 맥나마라 씨는 차라리 이들 나라의 지도자를 양성하는데서 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제안에 따라 슈미트 위원회에서는 선진국의 출연으로 10억 달러의 기금을 창설하고 그 돈으로 아프리카의 공무원 및 지도자를 양성하는 계획을 돕자는데 합의하였다. 이 제안을 선진국정부들이 받아들여 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국제무역질서의 변화와 관리무역의 경향

말로는 자유무역질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행동으로는 보호무역주의로 가고 있는 것이 오늘의 각국 실정인 것 같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자유무역지대가 생겨나지만 자기네 역내에서는 자유무역을 하고 역외에 대하여는 이른바 상호주의를 내세워 보호장벽을 만들지 않을까 걱정이다. EC 당국자는 GATT체제를 존중하고 오히려 세계무역의 자유화를 위해 한층 노력할 것이라고 선전하고 있고, 미국과 캐나다도 같은 말을 하고 있지만 과연 어떻게 될지 두고 보아야 할 일이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시장을 개방하지 않고 남의 보호주의를 거론해 보았자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개방적 자유무역체제의 수호를 위하여 응분의 책임과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한편 보호무역주의의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이 현재 진행중에 있는데 이 협상은 난항 끝에 타결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이 타결된다고 하더라도 서비스, 무역자유화, 지적소유권 보호강화 등 선진국의 요구가 관철될 것이기 때문에 이 분야에 있어서 개도국들은 상당한 시련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에 충분히 대비해야 할 것이며 지적소유권에 관한 한 남의 나라의 것을 도용한다는 것이 더 이상 국제사회에서 용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하루 빨리 적응하는 자세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정부관리능력의 한계

앞서 말했지만 남미의 부채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경제개혁이 필요하다. 그러나 왜 경제개혁이 안되고 있느냐 하면 정치적 제약 때문이다. 인플레를 수습하려면 일종의 안전공황 정도는 각오해야 되는데 정치적으로 도저히 용납되지 않고 있다. 멕시코의 경우 1970년부터 1976년까지 '루이스 세베리아'가 통치하였고 이어 '로뻬 보르틸러'가 그 뒤를 이어 1982년까지 통치하였다. 이 들은 당시 석유가 쏟아지고 가격이 오르게 되자 절대빈곤과 소득불균형을 일거에 해결한다는 정책하에 재정지출을 마구 팽창시키고 환율과 가격을 통제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공기업을 많이 만들고 노동자들을 위해 다양한 복지제도를 도입하였다. 그 후 원유가격이 내려가자 이러한 일련의 복지정책의 부담을 감당할 수 없게 되고 오늘과 같은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목적이 좋아도 수단을 그르치면 화를 가져오는 실례를 여기에서 똑똑히 볼 수가 있다. 불행한 것은 현재의 채무국 정부들은 이 과오를 시정할, 정치력 또는 관리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비단 멕시코의 경우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나라가 정치적 장해 때문에 처방이 명백한 경제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21세기에 있어서 어떤 나라가 부상하고 어떤 나라가 침몰하느냐 하는 것은 그 나라의 정치적 지도력 혹은 경제관리능력에 크게 좌우될 것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II.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및 대응방향

이상에서 세계경제의 대세에 대해서 전망해 보았다. 그러면 이것이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해 주고 있느냐 하는 것에 대해 말해 보겠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는 삼가하고 몇 가지 중요한 점만 말해 보고자 한다.

새로운 경제기회를 포착하고 활용하자

언제나 변화가 있는 곳에는 새로운 기회가 있기 마련이므로 이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 새로운 기회는 동서관계가 진전되고 사회주의 국가가 개방의 방향으로 가고 있는 데에도 분명히 있다. 우리는 동구권 및 소련, 그리고 중국진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이들 나라에 진출함에 있어서는 서두름 없이 착실히 추진해야 할 것이며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신용을 얻는 것이다. 말만을 앞세울 것이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보여줄 때 상대방은 우리를 믿을 것이다.

특히 동아시아 지역에서 국제분업 구조의 재편이 이루어지고 있는 이때에 우리의 몫을 차지해야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는 정치적·사회적 문제 때문에 이 기회를 충분히 포착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이 기회에 일본, 미국, 유럽 등으로부터 장래가 유망한 기술과 업종을 도입하도록 노력해야 하겠다. 우리도 적극적으로 외국에 문호를 개방하고 국제적 시야에서 앞날을 개척하는 발상과 노력이 필요하다.

기술능력 배양이 우리의 살길이다

다음에 국제경쟁에 있어서 기술의 상대적 우위를 확보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우리나라의 지식인, 공무원들이 21세기에 있어서 기술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 선진국 산업을 조속히 이양받고 우리나라에서 사양화되고 있는 산업은 후진국에 넘겨 줌으로써 계속해서 기술의 사다리를 올라가야 한다.

기술개발에 관하여 두 가지를 강조하고 싶다. 첫째는 대학의 기술연구와 개발능력을 향상시키는 일이다. 우리는 재원, 특히 외환의 제약 때문에 KIST, 과학원, 대덕연구단지 등 거점구축에 주력해 왔는데 이제부터는 공사립의 대학 연구실을 활성화할 단계에 왔다. 필요한 시설을 과감히 마련해 주고 기초과학 분야의 연구를 장려한다면, 내외에서 양성된 고급 두뇌집단이 큰 일을 해 낼 것이다. 둘째는 중소기업의 기술저변을 확대 강화하는 일이다. 일부 첨단기술 분야 예를 들면 반도체에서 대기업이 큰 업적을 이룩한 것은 매우 좋은 일이나 첨단기술이 산업 전체의 생산성 향상과 비용절감으로 연결되려면 중소기업 전반의 기술수준이 향상되어야 가능하다.
우리나라의 대기업들이 반도체 기술을 개발하여 세계 제3위 반도체 생산국가의 지위를 확보하게 된 것은 자랑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앞으로의 경쟁은 상당히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지금 우리의 반도체 생산은 256KD의 양산체제에 도달해 있고 1MD 개발 생산이 추진되고 있으나 미국과 일본은 이미 1MD 램의 양산체제에 돌입했다. 따라서 우리도 1MD 램이 양산체제 단계까지 조속히 진입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싱가포르도 256KD를 매월 약 300만 개 정도 조립하는 수준에서 우리를 추격해 오고 있고 대만도 반도체 개발에 역점을 두고 있다.

우리가 일본보다 27년이나 늦게 개발에 착수했는데도 불구하고 몇 년 내에 따라잡은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최근 일본은 4MD를 개발하고 있는데 이것은 신문지 16면에 들어가는 정보의 양을 단 0.1초 내에 처리하는 능력을 가졌다고 한다. 미국에서도 텍사스에 세미텍(Semi Conductor Manufacturing Institute)이 있어 정부와 13개 기업이 합작하여 반도체를 개발하고 있는데 4MD는 물론, 다음 목표로서 16MD, 64MD의 개발까지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여러분께서도 잘 아다시피 현재 우리가 맞고 있는 정보화 시대에는 컴퓨터가 매우 중요하다. 이 컴퓨터의 기본소재가 바로 반도체이고, 모든 기계산업에 컴퓨터와 IC 회로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반도체 기술개발에 뒤져서는 안된다. 그밖에 유전공학 등 여러가지 첨단기술 발전에도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중소기업의 저변이 약하면 경제전체의 기술수준은 성숙되지 않기 때문에 중소기업의 기술개발이 매우 중요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경제를 적극적으로 자유화하고 국제화하자

앞으로 우리 경제는 개방된 상태에서 경쟁해야지 보호의 울타리 속에 안주할 시대는 지났다. 어차피 개방과 자유화는 시대의 흐름이라는 것을 이해하리라 믿는다 하지만 자유화는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에 이익이 될 뿐 아니라 지금의 정치적 과도기를 슬기롭게 넘기는 지혜라고도 여겨진다. 정부규제가 많다는 것은 기업들의 의사결정이 정부결정에 의존하는 바가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오늘과 같은 정치적 혼란기에는 정부의 정책결정이 점점 어려워지고 따라서 그에 의존하는 기업의 결정도 늦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치가 불안정하면 기업활동이나 투자계획을 세울 수 없다는 말이 여기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책은 민주정치하의 경제운영의 스타일을 생각해 보면 자명해진다. 민주정치하에서는 웬만한 일은 민간에게 맡겨 두고 정부가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을 표방하고 있다. 국민의 경제생활을 다스리는 법적 테두리만 만들어 놓고 - 이상적으로는 가급적 간결하게- 그 안에서의 민간활동을 자유화하면 일시적인 정치적 혼란과 관계없이 경제는 굴러가게 마련이다. '정경분리'라면 좀 과장된 말이 되겠지만 경제는 가급적 정치의 영향을 적게 받고 시장원리에 따라 돌아갈 수 있도록 제도적 배려를 해두는 것도 매우 값진 일이라고 생각된다. 지금 정치, 사회적 혼란 중에도 경제는 그런 대로 정상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은 역시 자유기업체제의 덕분이라는 것이 필자의 소견이다.

이와 관련하여 직업공무원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다. 일본의 경험이 참고가 되는데 일본에서도 1940∼1950년대에는 정치적, 사회적 혼란이 극심했다. 그러한 와중에서 한때 관공청 노조가 좌경적 노동운동을 선도한 일도 있었다. 그러나 중앙관서의 공무원 엘리트들은 패전 일본의 경제부흥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봉사하였고 정치권의 합리적인 요구는 수용하되 무분별한 요구는 단호히 물리쳤다. 다시 말해 정치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든 공무원들은 정부가 할 일을 하였다. 이것이 일본의 경제를 부흥시킨 원동력의 하나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이런 관점에서 정부는 가급적 규제·관리의 짐을 덜고 건실한 국가경영의 기본 테두리를 지키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국제사회에 있어서 응분의 책임을 다하자

최근 우리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던 미국 통상법 301조에 따른 미국과의 협상은 잘 끝났으나 필자는 이제부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약속한 것을 성실히 이행하여 국제사회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국제화가 점점 이루어지고 있는 이 때에 우리에게 주어진 국제적 책무를 다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응분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오늘날 보호주의 물결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다국주의 (multilatralism)를 앞세워 우리의 입장을 방어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GATT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을 추진해야 한다. 후발개도국에 대해 어느 정도의 원조도 감수해야 하고 또 국제기구 및 그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가해서 이를 통해 우리의 대응력을 길러야 한다.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되지 말자

우리는 '아이디얼리즘(Idealism)'을 흔히 이상주의라 번역하지만 이 말은 원래 관념주의라는 뜻을 가진 단어이다. 물론 사람의 관념과 현실은 상호작용하면서 우리의 행로를 결정하는 것이지만 관념과 현실이 너무 동떨어져 있으면 상호접촉이 불가능해지고, 따라서 현실의 타개가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우리나라에서는 지금 분배의 문제에 관한 논의가 한창이다. 분배상태가 고르지 않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관념이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것을 현실타개의 입장에서 논하는 사람은 적다. 자명한 원칙론은 그만하고, 우리의 분배상태의 객관적 분석과 현행시책의 총체적 파악을 근거로 하여 구체적 개선방안을 제시하는 사람들이 그다지 분석적 지식도 없이 분배정의론이나 노래하는 사람들보다 몇 갑절 분배개선에 공헌하는 시람들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여러분과 같이 정부에서 일하는 분들은 이 점을 기회있을 때마다 국민들에게 일깨워 주어야 한다. 정부가 분배의 개선을 위하여 하고 있는 일도 많고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일도 많고 그를 위하여 넘어야 할 산도 많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부질없는 관념론에 압도되어 정부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지고 연연세세 같은 말만 되풀이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정부에서 일하는 분들은 관념주의를 배격하고 국민들의 현실인식과 건설적 참여를 유도하는 데 한층 주력해야 할 때라고 느껴진다.
2)


질의 응답

【 질문 1 】

회장님께서 최근의 Up-Date된 경제흐름을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혼자서 오래 전부터 생각해 왔던 것인데 세계의 경제적 중심을 보면 옛날에 이태리 프로렌스에서 시작하여 유럽에 갔다가 영국, 미국, 일본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즉 그 동안 백인들이 세계의 부를 거의 장악하고 있는데 회장님께서는 이 흐름이 황인종에게도 올 가능성이 있는지 말씀해 주십시요. 제자신은 한국이나 일본이 되었으면 좋겠지만 일본과 한국의 힘으로는 약하고 역시 중국이 잘 되어야 동양국가들이 모두 덕을 볼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데 회장님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 답변1 】

첫번째 질문에 관해서는 이미 그런 현상이 오고 있습니다. 앞으로 세계경제의 중심무대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미 세계교역에서 80년대부터 태평양지역간의 교역이 구라파지역간 교역을 훨씬 앞지르고 있는 것을 볼 때 앞으로 반드시 세계경제의 중심은 아시아쪽으로 올 것이며, 지금 오고 있다고 봅니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아태지역은 어떻게 보면 유교권으로 볼 수 있는데 유교문화권에 속하는 일본과 아세안 NICs들이 경제발전에 크게 성공하였다는 것은 잘 아시는 바와 같습니다. 유교문화의 총본산은 중국인 만큼 중국이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하면 경제는 비약적으로 발전할 것으로 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중국이 리더십을 잡을 때가 올 것입니다. 특히 동북아시아, 즉 한국, 일본, 중국이 하나의 경제권을 형성하게 될 것인데, 중국이 우리를 쫓아올 때까지는 상당히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중국이 정말 자유경제체제로 돌아올 것이냐 하는 의문이 있는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중국은 절대로 공산화가 될 수 없는 나라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5천 년 전통의 문화적 유산과 서구에서 이식한 마르크스 - 레닌주의는 융합될 수 없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중국 오천 년의 역사를 통해 그들의 기본적인 민족적 과제는 방대한 영토의 국가적 통일이었는데 모택동은 공산화로 일단 통일에 성공하긴 했으나 공산주의로서는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등소평이 경제개방을 해오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기본적으로 정치는 공산주의 방식을 유지하고 경제는 자본주의 방식으로 바꾸어 보자는 것인데 이것은 어느 단계까지는 가능하나 경제가 어느 정도 발전되면 전체주의적 정치체제는 유지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어차피 정치적 민주화가 불가피하게 되겠죠. 민주화가 국가통일을 어렵게 만들지 않겠느냐 하는 의문이 있을 수 있겠는데 그때에는 철저한 분권주의, 즉 지방 자치주의 - 인도와 같은 - 로 가능하리라고 느껴집니다. 중국이 이 단계에 이를 때 한국은 일본과 더불어 세계경제에서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 질문 2 】

지금 한국의 경제가 단기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만 장기적으로 볼 때 회장님 말씀대로 희망적이라고 보더라도 앞으로 2∼3년 내지 5년 이내의 경기전망을 상당히 걱정스런 눈으로 보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특히 노사분규가 연례행사처럼 매년 극성을 부리는 가운데 우리 경제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겠는지 회장님의 전망을 말씀해 주십시오.

【 답변 2】

저는 기본적으로 파탄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노사 문제가 어떠한 강도로 얼마 동안 지속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만 작년에 비해 금년의 양상은 건수에서 줄어들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대우조선의 경우처럼 노사가 서로 대립하다 보면 양방이 깨닫는 바가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제아무리 어렵다 해도 기본원칙에 대한 합의에 도달해야 합니다. 기본원칙이란 노사 공생공영의 원칙, 생산성 - 임금균형의 원칙, 대화와 타협의 원칙을 말합니다. 지금의 사태에 너무 비관할 필요는 없습니다. 일본의 경우에도 1946∼1953년까지 노사분규과 심각했고 1960년의 유명한 '三池'탄광 노사투쟁은 226일나 계속되었습니다. 쌍방이 서로 지쳐서 결국 중앙노동위원회의 중재에 응하게 되었습니다만 그 쓰라린 과정을 통해 노사 양측은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정부는 중립적 입장에서 폭력이나 업무집행 방해에 대하여는 엄격히 법대로 다스렸습니다. 역시 원칙대로 한 것이지요.

임금인상이 물가상승으로 연결된다는 것은 당연하고 불가피한다. 임금이 오르면 근로자들의 지출이 늘고 물건의 공급이 여의치 않으면 물가는 오르게 될 것입니다. 한편 임금의 상승은 기업측에서 보면 코스트의 상승이나 기회만 있으면 가격에 전가하려 들 것입니다. 즉 수요·공급 양면에서 물가를 상향으로 자극하게 되는데 다만 임금의 상승폭이 생산성 상승의 범위내 일 때에는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러한 물가상승 요인을 상쇄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습니다. 수요 인플레의 경우에는 통화긴축이 특효약인데 지금의 임금 인플레를 통화긴축으로 상쇄하자면 엄청난 기업도산과 불황을 각오해야 합니다. 차라리 지금은 통화정책은 보수적 운영을 유지하고, 장래에 대비하는 일에 주력할 때입니다. 즉 내년에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임금상승률을 한 자릿수로 정착시키도록 지금부터 여건을 조성하는 한편, 주택투자, 기술개발투자에 박차를 가할 때라고 생각됩니다.

【 질문 3 】

우리가 PFC 지정에서 제외된 지도 한달밖에 지나지 않았고 현재 PFP로 지정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민족은 속된 말로 쉽게 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사실상 PFC에서 제외되었다 해도 언제 다시 지정될지 모르는 상황에 있으므로 업계에서 가장 우려하는 것은 정부가 이제 우리나라는 PFC에서 제외됐다 하여 안일한 정책을 수립해서 시행할까 우려하고 있습니다. 회장님께서는 직접 사절단을 이끌고 다녀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저는 이에 대비하여 민·관이 협조체제를 구축하여 계속적으로 대응해 나가야 한다고 보는데 회장님의 의견은 어떠신지 말씀해 주십시오.

【 답변 3】

절대로 통상마찰은 끝난 것이 아니고 내년에도 다시 PFC로 지정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번에 우리가 약속한 것을 착실히 이행해야만 내년에 있게 될 협상이 쉬워질 것으로 봅니다. 그렇지 못할 경우 내년에 PFC로 다시 지정될 가능성이 있어 절대로 안심할 시기가 아니라고 보고 문제는 이제부터라고 생각됩니다.

이제부터 정부가 약속한 것을 확실히 이행하고 또 우리의 사정을 그들에게 이해시키고 10월에 있을 환율협상에도 대비해야 한다. 우리협회에서도 우리나라의 국제수지 현황이 이렇게 나빠지고 있어 환율 문제는 벌써 지나간 이야기라는 점을 계속 홍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덤핑 문제라고 봅니다. 덤핑은 GATT조항에서도 합법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 덤핑 제소가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GATT 규정이 명확하지 않아 각국의 자의적인 법운용이 자행되고 있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우리는 덤핑에 대해 조심하면서 반덤핑 제소가 어떠한 상황에서 일어나는가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 협회에서도 이에 관한 자료를 만들고 세미나를 개최하여 업계에 주지시키고 있는데 앞으로 주요 통상마찰의 형태는 덤핑 문제라는 사실을 알고 이에 적극 대비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1)1989년 7월 8일 제28회 한나라강좌 (조만식 선생 기념사업회)
  1989년 7월 14일 서울대학교 최고경영자과정 총동창회 조찬강연
  1989년 7월 20일 제14회 최고경영자대학(대한상공회의소)
  1989년 10월 6일 고려대학교 최고경영자과정 총동창회 조찬강연

2)1989년 6월 15일 민관대외경제담당자 합동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