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의 역학(力學)과 우리의 대응

lkhy1.gif


1995년 3월 25일 계간 사상 여름호 (사회과학연구원)  


 

머리말

세계화가 우리나라의 국정지표가 되고 오늘의 일상용어가 되고 있지만, 세계화의 정의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학자들은 선뜻 대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작년 여름 하와이의 동서양센터(East-West Center)에서 미국과 한국의 학자들이 모여서 세계화의 문제를 토의한 일이 있는데 거기에 참석한 캘리포니아대학의 존 시즈만 교수는 "정부와 기업들이 자기들도 잘 모르는 다양한 변화와 구체적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새로운 경제세계에 직면하여 그들이 모색하는 전략에 붙일 이름을 찾다보니 갑자기 세계주의라는 관념이 생겨났다" 라고 쓰고 있다. 또 그가 인용한 스티븐 S. 코헨 교수는 "세계화가 갑자기 피할 수 없는 것이 되었지만 그 의미는 모호하고…… 일관된 정의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1)

사정이 이러하니 우리 나라에서 세계화에 관하여 개념상의 혼란이 생기고 있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국제화와 세계화가 어떻게 다르냐 하는 질문이 빈발하고, 세계화의 영문표시를 Globalization이 아니라 Segyewha로 한다는 공보처의 발표 등이 그러한 혼란을 단적으로 말해 준다. 하여튼 우리는 세계화의 의미를 좀더 냉철한 입장에서 음미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필자는 이러한 동기에서 세계화라고 일컬어지는 세계경제의 주요 변화방향을 짚어보고 그러한 변화를 연출하는 국제적 역학관계를 분석한 다음 거기에서 몇가지 정책적 시사점을 도출해 보고자 한다.

세계경제의 변화방향

세계화의 개념규정은 어차피 학자들의 몫이지만, 세계경제가 어떤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지는 거의 명백하다. 몇 가지 중요한 변화방향을 간추려 보자. 첫째로 선진국을 중심으로 다국적기업이 확산되고 기업경영방식도 크게 달라져 가고 있다. 한국에는 이미 외국의 다국적기업들이 많이 들어와 있고 우리 나라 기업들도 세계각국에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다국적기업들은 세계적인 생산, 판매망을 조직하고 모든 경영자원을 국제적으로 배치한다. UNCTAD의 자료 2) 에 의하면 1990년대 초 다국적 생산을 하고 있는 기업의 수는 3만 7,000개사에 달하며 그들이 설립한 해외 자회사수는 20만 개에 이른다 한다. 이와 병행하여 세계의 해외투자는 80년대 전반기의 연평균 500억 달러 수준에서 1990년에는 2,320억 달러로 급증하였고, 기업간 제휴건수도 동기간에 연평균 120건에서 220건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둘째로 위에서 본 것과 관련하여 무역 패턴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서로 다른 나라의 독립된 기업 사이에 일어나는 무역을 생각해 왔지만 최근에는 모기업과 자회사 사이의 '기업내 무역'이 늘어나고 있다. 미국의 경우 1988년 현재 기업내 무역이 총수출의 34%, 총수입의 42%를 차지하고 있고, 일본의 경우에도 수출의 33%, 수입의 29%를 기록하고 있다. 3)

이러한 새로운 경향들을 요약하면 국제 분업이 '제품분업'에서 '공정간 분업'으로, '산업간 분업'에서 '산업내 분업'으로, 그리고 '기업간 분업'에서 '기업내 분업'으로 세분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4)

셋째로 이미 EC - 지금은 EU - 에서 볼 수 있듯이 날이 갈수록 국경, 국적, 국명의 의미가 희미해지고 나중에는 국가관념마저 희박해질 것이다. 앞으로 20년내에 서울에서 뉴욕까지의 항공시간이 3시간 이내로 단축될 것이라고 한다. 이미 위성통신망을 통하여 세계 방방곡곡이 전화와 팩스와 컴퓨터로 연결되어 있어 때는 바야흐로 정보화 시대이다. 사람, 발상, 기술, 자본 등의 경제자원이 국경을 넘어 자유로이 이동할 수 있고, 큰 기업들은 생산과 수송 및 판매 조직망을 전 세계로 확대해 나갈 것이다. 한국에서 생산된 컴퓨터 칩을 중국에서 조립하여 미국상표로 팔게 될 때, 그 상품이 한국제인지 중국제인지 아니면 미국제인지 국적을 가리기 어렵게 된다. 피에르 가르뎅의 일부 제품은 한국에서 만들고 있고 우리 아낙네들이 그토록 외제를 선호한다면, 한국의 기업은 파리의 기업과 합작하여 한국에서 만든 반제품을 파리에 보내 약간의 가공을 거쳐 Made in France의 상표를 붙여 한국으로 역수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앞으로 유명 상표의 국적도 껍데기만 남게 될 것이다.

미국 디트로이트의 GM의 수익이 증가하면 미국의 주주들이 좋아하겠지만 전 세계에 펼쳐진 GM 현지법인의 외국인 주주들도 좋아할 것이다. 그런가 하면 해외 공장 때문에 점점 조업률을 줄여야 하는 GM의 미국 노동자들은 실업의 위협을 느낄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국익이라는 개념도 모호해진다. 즉 GM이 미국인을 위한 미국의 회사인지 외국인을 위한 외국의 회사인지 분간하기 어렵게 된다. 그렇다면 미국정부가 구태여 GM에게 조세나 금융상의 특혜를 줄 필요가 있는지도 의문시되고 산업정책의 존재이유마저 희미해진다. 지금은 미국에서 이러한 경향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지만 다른 산업국가들도 그 뒤를 따르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 정부도 해외투자를 장려하고 있지만 그 해외투자가 예외 없이 우리 국익에 보탬이 되는지도 분명치 않다.

넷째로 국가간의 경제경쟁이 치열해진다. 앞으로 세계의 웬만한 기업들은 모두 컴퓨터 통신망으로 연결될 것이다. 어떤 기업이 외국으로부터 어떤 원료를 구입하고자 할 때 컴퓨터로 전 세계의 원료공급원을 알아내고 그들에게 오퍼를 내라는 메시지를 동시에 보낼 수 있다. 그리고 전 세계에서 들어오는 오퍼 중에서 가장 유리한 공급자를 택할 수 있게 된다. 지금은 꿈같은 이야기이지만 컴퓨터의 마력이 그것을 점점 현실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5)

시장과 정보가 개방된 상태하에서는 기업이 세계시장을 겨냥하지 않으면 국내시장에서도 살아남기 어렵게 된다. 만약 국내에서 국제가격보다 비싸게 팔면 금방 수입품이 들어와서 국산품을 구축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대신 세계시장에서 히트하는 상품을 만들어 내면 그 기업은 일약 거부(巨富)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경쟁은 도전이자 기회이기도 하다. 앞으로는 중소기업들도 국제적 안목이 없이 기업을 경영하기 어렵게 된다. 이러한 상황하에서는 경쟁력이 사는 길인데 경쟁력은 금리, 임금, 물류비용등의 국제비교에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 경영, 행정, 교육 등 국가기능 전반의 능률에 의존한다. 그런 의미에서 국제경쟁은 총력전이 될 것이다.

다섯째로 정보와 지식이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는 시대가 되어 가고 있다. 정보와 지식을 활용하여 현재를 관리하고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면 국제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게 된다. 지나간 역사를 보더라도 기차 대신에 자동차의 시대가 오고, 레코드가 CD로 변화하고, 바이어스 타이어가 래디얼 타이어로 바뀌며, 시계의 기계식이 전자식으로 바뀐다는 것을 예측했던 기업들은 성공했고 반면 예측하지 못했던 기업들은 실패하였다. 정보의 중요성에 따라 정보관련 산업이 때를 만나게 된다. 이미 미국에서는 정보와 지식에 관련된 산업이 GDP의 70%를 차지한다고 한다. 앞으로 지식산업에 종사하는 고소득층과 전통산업에 종사하는 저소득층 사이의 소득격차는 점점 확대될 것이다.

여섯째로 앞으로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 과잉인구와 일부 지역의 절대빈곤, 국지적 분쟁, 원자력의 평화적 사용, 다국적기업의 행태 등 UN 차원에서 다루어야 할 문제가 점점 많아지고, 지구촌의 생존과 건강을 위하여 다국간의 협의와 협조가 불가결하다는 인식이 높아져 갈 것이다.

일곱째로 국제간의 상호의존의 관계가 더욱 심화 될 것이다. 우리가 미국에 수출하지 않으면 살 수 없듯이 미국도 우리에게 수출하지 않으면 살기 어렵게 된다. 최근에 멕시코 사태에서 본 바와 같이 한 나라의 경제정책 변화가 세계 증권시장과 환율체계에 막대한 영향을 주게 된다. 이와 같은 상호의존의 상태하에서는 국가간의 긴밀한 정책협의와 조율이 필요한데, 현재로서는 그를 조정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매우 미약한 상태에 있다. 선진국간의 협의기구인 G7이 있다 하지만 그것을 효과적으로 기능케 할 만한 리더가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국제사회의 리더가 되려면 첫째로 힘(군사력, 경제력)이 있어야 하고, 둘째로 약자를 돌보는 아량이 있어야 하고, 셋째로 남을 이끌고 가는 지적능력과 정치력이 있어야 하는데 왕년의 미국은 그러한 조건들을 구비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경제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돼 리더의 역할을 하는 데 제약이 많은 것 같다. 이것은 앞으로 국제질서가 불안정하고 이에 대처하는 정부와 민간의 외교활동이 점점 복잡하고 어렵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끝으로 우리의 문화와 가치관이 커다란 영향을 받게 된다. 세계 어느 구석을 가 보아도 아가씨들의 치맛자락은 짧기만 하다. 유행처럼 세계화의 속도가 빠른 분야도 없을 것 같다. 거리의 간판에는 외국상표의 홍수이고 외래어가 아니면 문화의 첨단이 아닌 것처럼, 서구문화에 대한 동경(憧憬)을 드러내고 있다. 사실상 세계화는 서구화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이제 외국에 가지 않더라도 세계의 유명한 악단과 극단의 공연을 비롯 전시회를 국내에서 볼 수 있게 되었고, 우리의 사물놀이가 세계무대에서 열광적 박수를 받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서 우리의 의식도 크게 달라져 간다. 민주, 자유, 사랑과 같은 보편적 가치에 대한 각성이 높아지는 반면에, 민족주의, 애국주의, 혹은 공산주의 등 이데올로기의 세례를 받아온 사람들은 내면적으로 가치관의 갈등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변화의 역학(力學)

그러면 이상과 같은 변화를 일으키는 동인(動因)은 무엇일까? 세계 역사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면 부족, 민족, 국가, 지역 등 서로 분할된 생활단위 사이에는 인간, 사상, 물자, 문화의 교류를 가로막는 허다한 장벽들이 가로놓여 있었다. 그러나 인류는 부단히 그러한 장벽들을 제거하거나 뛰어넘어 인간활동의 범위와 지평을 넓혀 왔다. 장벽은 대별하여 물리적 장벽과 인위적 장벽으로 분류되는데, 물리적 장벽의 으뜸가는 것은 지리적 장애와 거리, 혹은 교통·통신상의 장벽이고, 인위적 장벽의 으뜸가는 것은 정치적·경제적 장벽이다. 물리적 장벽은 교통·통신의 기술적 발달에 의하여 크게 낮아졌고, 인위적 장벽은 전쟁, 합병, 조약을 통한 정치적 통합과 무역 및 투자를 통한 경제적 교류에 의하여 점차로 제거 또는 완화되어 왔다. 세계 동서간의 교류를 가로막던 최대의 정치적 장벽은 냉전체제였는데 이제는 공산체제의 붕괴와 함께 그러한 장벽도 사라졌고 세계는 단일시장 경제체제로 통합되어 가고 있다. WTO가 표방하듯 국가간의 경제적 장벽도 현저히 낮아지는 추세에 있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세계적 변화는 이러한 세계사의 흐름을 타고 있는 것이고 따라서 그 흐름에 거역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시야를 좁혀 1960년대 이후 오늘의 변화를 연출하고 있는 내면적 역학관계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오늘의 세계적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것은 기업 - 특히 다국적 기업 - 과 그들에게 봉사하고 그들을 다스리는 주요국의 정부라고 할 수 있다. 시장경제하에서는 기업의 경영전략과 정부정책이 다른 요인과 함께 경제상태를 변화케 한다. 그런데 경제상태가 변화하면 기업과 정부는 그에 적응하기 위하여 새로운 경영전락과 정책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정책과 변화 사이의 상호작용은 크게 보면 시장경제 논리의 전개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6)
금세기 후반기에 있어서 세계경제에 나타난 가장 두드러진 변화의 하나는 서방(서구와 북미주) 경제권과 동아시아 경제권 사이의 세력균형의 변화라 할 수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미국경제는 1975년 이후 만성적인 재정적자와 무역수지적자가 누적되는 가운데 노동생산성은 경향적으로 낮아졌다. 그런데 미국의 이러한 경제상태는 방대하고 지속적인 외국상품의 수입수요를 유발했고, 미국은 아세아 국가(특히 일본과 NIEs )들의 수출을 받아들이는 황금어장이 되어 왔다. 한편 고임금과 노동자들의 직업윤리의 타락으로 생산성이 낮아진 미국의 산업들은 수입품과 경쟁하기 어렵게 되었고 기업들은 잇따라 문을 닫거나 생산시설을 해외로 옮겨야 했다. 제조업의 "공동화"를 우려하는 소리가 높아지고 기업들이 경영위기에서 탈출하는 수단으로 이른바 M&A, 즉 기업매수와 합병을 일삼았던 때가 바로 이 무렵이다. 한편 서구의 선진국들도 독일을 제외하고는 70년대 이래 줄곧 경제적 침체에서 헤어나지 못했고 만성적 대량 실업은 오늘에도 심각한 사회 문제로 남아 있다.

반면에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세계 일류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하였고 그 뒤를 이어 아시아의 네 마리 용(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이 급속한 경제성장과 수출증대를 기록하여 서방인들을 놀라게 했다. 뒤이어 경제발전의 불길은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파급되었고, 중국이 1978년부터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을 단행하자 이 나라 경제는 폭발적으로 성장하였다. 중국은 이미 세계 제15위 내의 무역대국으로 부상하였고 앞으로 중국의 경제발전이 세계경제에 얼마나 큰 충격을 줄지는 좀처럼 헤아리기 힘든 일이다. 그런데 위에서 암시한 바와 같이 아시아 지역의 급속한 경제성장이 미국과 유럽에 크게 힘입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만약 미국의 황금시장이 없었더라면 아시아 국가들의 수출주도형 개발전략이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고, 미국과 유럽의 기술과 자본 및 경영기법을 활용할 수 없었다면 일본이나 한국의 발전속도는 실제보다 크게 늦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미국과 유럽의 개방된 시장을 비롯 자본과 기술의 자유로운 이동을 표방하는 세계차원의 제도적 장치(GATT, IMF, World Bank 등)가 없었다면, 이상과 같은 호조건은 실현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아시아의 경제적 도약은 미국과 서구제국의 반작용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었다. 먼저 기업계의 반응은 다국적기업의 확산으로 나타났다. 원래 유럽과 북미주 사이에는 역사적 문화적 친근성 때문에 투자의 교류와 기업합작은 일상적인 것에 불과했지만 아시아에 있어서는 아직도 낯선 경험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서방의 다국적기업들은 급속히 성장하는 아시아의 시장을 선점하기 위하여, 그리고 값싼 노동력을 이용할 수 있는 생산거점을 확보하기 위하여 아시아로 진출을 서둘렀다. 특히 미국기업들은 막강한 경쟁력을 자랑하는 금융, 보험 등의 써비스 산업, 정보산업을 비롯한 각종 첨단산업과 농업분야에서 아시아 시장을 공략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최대의 장애가 된 것은 일본과 한국 등의 높은 보호장벽이었다. 특히 한국의 경우 국내 이자율이 매우 높아서 미국에서 저금리로 자금을 조달하여 한국에 가져와서 원화로 바꾼 다음 한국기업에게 고금리로 대출하면 큰 이득을 볼 수 있겠는데7)
한국정부가 그것을 허가하지 아니하니 한국에 와있는 미국은행 지점들은 안타깝기만 했고, 한편 다른 미국인들은 농산물 수출의 길이 막혀 있고, 미국회사들의 지적소유권을 도용하는 사례가 많은데 대하여 분개하기도 했다. 마침내 그들은 일본, 한국 등의 보호장벽과 불공정 무역관행을 정부와 의회에 제소하고 대응조치를 촉구하게 된다.

미국 정부와 의회는 자국의 만성적 무역적자와 일부 제조업의 쇠잔을 외국의 보호주의 탓으로 돌리게 된다. 즉 재정적자에 나타난 국내저축 부족과 생산성의 하락보다는 미국시장이 개방되어 있는 반면에 아시아 국가들은 수입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무역역조가 계속된다는 인식이 높아져 갔다. 마침내 미국정부와 의회는 이러한 상태를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 하여 '자유무역체제 수호를 위한 보호주의정책'으로 선회한다. 정부는 다국적기업들의 시장침투를 지원할 뿐만 아니라 어차피 비교우위와 국제분업의 논리에 따라 도태되어야 할 국내산업까지도 보호하고 나섰다. 그래서 각종의 물량규제, 자율규제, 반덤핑 보복조치, 통상법 301조의 발동 등 다양한 보호주의 조치와 외교적 압력수단을 동원하였는데 그 대부분이 아시아국가, 특히 일본과 한국에 대한 것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고 그들이 일본이나 한국에게 "귀국의 기업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자유롭게 팔고 활동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 기업들도 귀국에서 자유롭게 팔고 활동할 수 있도록 해 주시오" 라는 상호주의 논리를 내세울 때 일본과 한국은 별로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GATT 제1조에 선언된 "무차별의 원칙" 8) 은 사문화되고 이제는 '상호주의'가 세계 통상교섭의 기본지침이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미국의 보복조치를 유발한 주역은 일본이고, 한국이나 대만은 조역을 한 데에 불과했지만 보복에는 별로 차이가 없었으니 이것도 3국간의 역학관계와 무관하지 않았던 것 같다. 미국은 보호주의 정책으로 선회하면서도 개방적 무역체제를 표방하는 GATT를 유지, 보완하기 위한 우루과이 라운드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여기에는 모든 나라가 다같이 시장개방의 규칙을 지키면 자국의 이익이 된다는 계산도 있었지만, 보다 직접적인 동기는 미국의 비교우위 산업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었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미국이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비교우위산업은 서비스산업, 첨단기술 산업 그리고 농업인데, 기왕의 GATT 협정에는 서비스산업과 지적소유권에 관한 규정이 거의 없었고, 농업에 관하여는 전통적 보호정책이 폭넓게 용인되고 있었다. 미국은 UR에서 이 허점을 보완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고, 이 목적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협상과정에서 개도국의 몇 가지 요구를 들어 주기도 했다 (MFA의 단계적 폐지, 일방적 반덤핑 규제의 제한, 농업개방의 유예기간 등). 한편 일본과 중진국들은 개방된 해외시장을 필요로 할 뿐 아니라 양국간 통상마찰에 시달리는 것보다 차라리 다자간협정체제의 구속을 받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하에 농업개방의 고배를 마시면서도 협상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이렇게 하여 6년 간의 난항 끝에 1995년에 WTO의 출범을 보게 되었지만, 그것은 필연적으로 개도국보다 선진국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것이었고, 그로 인하여 통상마찰이 줄어들거나 자유무역질서가 크게 강화될는지는 의문이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들 역시 협상결과에 만족치 않고 앞으로도 그들의 미완의 목적을 관철하기 위하여 새로운 라운드를 제의하게 될 것이다.

한편 EC 12개국의 경제통합은 1957년의 로마조약에서 출발했지만 1960년대 이후의 활동에 있어서는 동아시아의 경제적 진출을 크게 의식하고 있었다. EC의 문헌을 보면 일본과 NIEs에 대한 경각심이 도처에 표출되어 있고 이대로 가면 세계경제의 주도권이 구라파에서 동아시아로 옮겨간다는 경고가 되풀이되고 있다. 아시아 제국에는 무역장벽과 투자장벽이 많은 나라들이니 부단히 개방압력을 가해야 하고, EC 회원국가들은 공동전선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기본적인 시각이었다. EC는 도쿄 라운드 이후에도 역외 국가에 대하여 보호주의정책을 강화하였고 GATT를 약화하는 방향으로 통상정책을 펴나갔다. 대체로 미국과 유사한 시각에서 우루과이 라운드를 추진했는데 농업개방에 있어서는 미국과 첨예하게 대립하여 한때 UR 협상을 위기에 몰아넣기도 했다. WTO의 출범으로 역외 국가에 대한 차별대우가 얼마나 줄어들지는 앞으로 두고 보아야 할 일이다.

UR 협상이 지지부진한 사이 미국은 캐나다와 멕시코를 끌어들여 1992년에 '북미주자유무역지대(NAFTA)를 결성하였다. 미국과 캐나다는 EC의 경제통합에 자극된 바도 있지만 다른 한편 멕시코 경제를 미국과 캐나다의 개방체제에 편입시켜 이 나라의 경제개발을 촉진하고, 마침내 Mexico가 북미주에서 아시아의 용들과 개도국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게 된다면 북미주 전체의 안정과 번영에 도움이 된다는 기대를 갖고 있었다.9) 미국은 아직 이러한 목적 달성에 성공하였다고는 볼 수 없으나, 어쨌든 미국으로서는 근접한 멕시코의 경제적 침체와 정치적 혼란이 큰 부담이 되어 왔던 만큼, NAFTA와 사리나 멕시코 대통령의 개혁조치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NAFTA의 출현에 앞서 1980년에는 호주와 일본의 주도하에 PECC(Pacific Economic Cooperation Council)10) 라는 민간기구가 결성되었고, 마침내 1989년에는 정부간 협력기구인 APEC(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의 발족을 보게 되었다. 다른 한편 ASEAN 회원국들은 1992년 1월에 AFTA (ASEAN Free Trade Area)의 결성을 선언하였으니 과연 지역주의(regionalism)의 시대가 도래하였다고 할 만도 하다. 미국은 당초에 APEC 결성에 미온적이었으나 아시아 국가들의 결속의 동태를 보고 적극적 자세로 전환하였다. 부시 대통령은 미국이 아시아·태평양지역에 속하는 국가임을 강조하면서 급속히 발전하는 이 지역이 세계경제의 중심축이 될 것이라고 표명하였다. 한편 PECC나 APEC에 참석한 미국대표들은 개방적 지역주의(Open Regionalism)라는 색다른 구호를 내걸고 동 협의체가 타지역에 대하여 배타적이거나 UR 협상을 방해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였다. 어쨌든 APEC은 미국 주도하에 아시아국가들의 UR 지지입장을 통일하는 역할을 한 셈이다. 미국으로서는 GATT의 개편을 통하여 자국의 비교우위 산업의 이익을 보호하는 일도 중요했고 다른 한편 약진하는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역할을 확대하는 일도 중요했다. 이 두 가지 요구를 한데 묶은 것이 '개방적 지역주의'의 논리였다고 생각된다.

이상을 요약하건대 일본,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이 미국과 유럽의 시장과 자본 및 기술을 지렛대로 하여 60년대이래 비약적 경제발전을 이룩한 결과, 북미주와 서구의 경제력은 상대적으로 후퇴하였다. 북미주와 서구는 이에 대한 반응으로 자신들은 보호주의정책으로 선회하는 한편 아시아 국가들에 대하여는 보호주의정책의 철폐를 요구하고 나섰다. 한편 그들은 자국의 비교우위 산업인 서비스, 천단기술, 농업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UR을 통해 WTO 체제를 만들어 냈다. 그들은 WTO의 성립을 위하여 세계적 차원의 다변적 무역체제의 중요성을 설교하면서도 다른 한편 지역적 불럭인 EC, NAFTA를 결성하여 GATT의 무차별 원칙을 상호주의 원칙으로 대치하였다. 그리고 다변주의와 지역주의의 상반된 입장을 호도하기 위하여 '개방적 지역주의'라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결국 우리는 세계질서는 강대국의 이해관계와 역학관계에 좌우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재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대응

위에서 본 바와 같은 변화의 역학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이것이 80년대 후반부터 식자들이 고민해 온 문제의식이다. 그러면 위의 분석이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첫째로 서방국가들과 아시아 국가 사이의 무역불균형이 지속되는 한 그리고 아시아 경제권의 비중이 커져 갈수록 서방의 아시아에 대한 경계와 반응은 계속될 것이고 그들의 보호주의적 정책성향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WTO체제가 출범한 이후에도 반덤핑 규제는 계속되고 있고, WTO의 비호하에 심지어 장미꽃 품종에까지 지적소유권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강대국의 움직임을 감정적으로 대할 일은 아니다. 그들과 같은 입장에 놓이게 되면 우리도 같은 행태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무릇 나라마다 그 자신의 논리와 입장이 있는 법이고 그것들은 서로 중첩하기도 하고 층돌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다양한 논리와 입장을 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세계사의 논리도 있다. 우리는 세계사의 논리를 인식하면서 우리의 논리와 우리의 입장을 주장하되 다른 한편 다른 나라와 이해관계의 합치점을 찾아내서 상호이익(mutual interests)을 추구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국가간의 상호의존도가 높아지고 국제분업이 세분화되고, 기업제휴가 확산되는 지금에 있어서는 '상호이익의 추구'야말로 세계화의 기본논리가 되는 것이다.

둘째로 앞으로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 사이의 경제적 마찰이 빈발 할 것이고, 일반적으로 동서간의 경제적 긴장이 고조되고, 그럴수록 동아시아 국가들의 동류의식과 단합을 강조하는 소리가 높아질 것이다. 말레이시아 마하티 수상이 제창하는 동아시아경제협력회의(East Asia Economic Cocus)의 구상이 미국의 냉대를 받아왔지만, 서방의 보호주의가 노골화되면 될수록 아시아 국가들은 그 제의에 공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어쨌든 동아시아, 특히 동북아시아 국가들은 서방국가들에 대한 경제적 의존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역내 경제개발을 위해 적극적으로 상호협력해야 한다. 그러나 동서간의 '경제전쟁'은 정치적 긴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가급적 피해 나가야 한다. 그러자면 지역협력과 동서관계를 조절하는 리더의 역할이 필요한데 일본은 경제대국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역할을 맡으려 하지도 않고 맡을 수도 없는 것 같다. 위에서 말한 리더의 세 가지 요건을 고루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환경 하에서 동아시아에 있어서 한국의 역할을 어떻게 정의해 나가느냐 하는 것은 매우 까다로운 문제이다. 한반도는 그 자체가 동북아시아 안보문제의 초점이 되고 있는 만큼 한.미간의 유대관계는 불가결하다. 그러한 한·미간의 특수한 관계를 고려하여 한국은 동서간의 정치적, 경제적 긴장을 예방하고 완화하는 조정자적 혹은 완충적 역할을 해야 할 것 같다.

셋째로 중국, 동남아시아를 포함한 동아시아의 급속한 경제성장이 우리 경제에 주는 영향은 막중하다. 노동집약적 경공업 부문은 중국과 동남아국가들의 몫이 되어가고 있고, 경쟁력을 잃은 국내의 많은 기업들이 생산시설을 이곳으로 옮기고 있다. 반면에 이 지역은 우리의 중화학 제품을 흡수하는 광대한 시장이 될 것이고, 이 지역에 대한 수출증가를 통하여 구미제국에 대한 수출의존도를 줄여 나갈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이들 국가들은 한국의 경쟁자가 될 것이고 우리의 전진이 늦어지면 우리를 추월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 지역에 대한 직접투자도 늘고 있기는 하나 대체로 소액투자가 대부분이고 앞으로 일본, 미국, EC의 다국적기업들이 침투할 때 우리의 입지가 크게 약화될 소지가 있다. 하지만 한국과 중국은 지리적으로 근접해 있고 문화적 배경이 친근하므로 미국과 EC 기업들이 한국기업들과 손잡고 중국으로 진출하면 여러모로 유리한 점이 있을 것이다. 이점을 널리 홍보하여 서방의 기업들과 제휴하는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북한에 대한 진출에 있어서도 다국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필자는 말해 왔다. 북한의 개방을 유도하는데에는 우리만의 접근은 정치적 오해와 반발을 불러일으키게 될 것이므로 차라리 제3국들의 진출과 영향력을 통하여 개방을 유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3국들의 북한 진출은 핵문제만 해결된다면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넷째로 미국과 EU 시장을 어떻게 유지해 나갈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인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난관이 있다. 국내 임금수준이 이미 대만이나 멕시코를 능가하고 있으니, 근로자 1인당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을 만들지 않고서는 구미시장에서 경쟁할 수가 없다. 수출품의 부가가치를 높이자면 생산의 성력화를 도모하던가, 부품을 개발하여 수입비용을 절감하던가, 같은 물건이라도 모양과 질을 다르게 만들어서 보다 높은 값을 받든가(이른바 product differentiations), 품질을 고급화하든가, 새로운 상품개발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든가, 지식집약적인 첨단산업으로 진입하든가 하는 일련의 이노베이션(innovation)이 불가결하다. 그런데 이러한 혁신에는 발상과 기술이 필요한데 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기술적 애로이다. 기술적 제약을 돌파하는 방법은 현재로서는 선진국 기업들과 적극적으로 제휴하는 도리밖에는 없다. 기술도입도 좋고 기술에 관련된 합작투자도 좋다. 그리고 더욱 필요한 것은 우리 중소기업들이 선진국의 첨단산업에 대한 부품공급에 참여하는 것이다. 첨단산업일수록 부품을 많이 사용한다.

미국의 대형 컴퓨터와 우주선 제작의 경우 50만 개 이상의 부품이 필요한데 그것을 미국 내에서만 조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대만의 중소기업은 일찍부터 NASA에 부품을 공급해 왔다. 우리 중소기업들도 밖으로 나가 선진국 첨단산업의 문을 두드려 보아야 하고 정부도 이를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지금은 국경을 초월한 기업제휴의 시대이다. 우리 기업들이 발상과 기술, 투자상대를 찾아 밖으로 뛰고 안으로 끌 때라고 필자는 역설해 왔다. 불행히도 80년대에 정부는 투자유치를 외면했고 국내투자 환경이 날로 악화하여 이 나라를 떠나는 외국기업들이 잇따랐다. 이제서야 정부가 투자유치정책으로 돌아선 것은 다행인데, 교통, 운수, 환경, 제도, 외국인에 대한 국민의 태도 등 투자환경을 개선하지 않고서는 그 목적을 달성하기 힘들 것이다.

다섯째로 위에서 필자는 기술애로를 타개하기 위하여 우선 선진국기업들과 제휴해야 한다고 하였는데 그러나 여기에는 한계가 있다. 거기서 얻을 수 있는 기술은 고작해야 이미 표준화되었거나 부차적인 기술이고, 우리가 정작 필요로 하는 첨단 핵심기술은 좀처럼 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은 소재와 부품 수입의 70%를 일본에 의존하고 있고 그것이 만성적 대일 무역역조의 주요 요인이 되고 있지만, 일본기업들은 경쟁과 시장지배를 고려하여 우리가 필요로 하는 기술은 주지 않는다. 정부간 교섭에서 제아무리 기술협력을 강조해도, 민간기업이 하는 일에 정부가 간섭할 수 없다는 것이 일본정부의 일관된 반응이었고 또 사실이 그러하기도 하다. 미국에게 '기술동맹'을 제의해 보았지만 그들은 한국의 지적소유권 침해를 거론할 뿐이었다. 이러한 '기술 함정(technology trap)' 때문에 중진국은 영원히 중진국 위치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는 비관론이 있는데 그러나 우리는 비관할 필요는 없다. 일본이 과거에 그러했듯이 우리도 자력으로 기술을 개발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 우리는 그에 필요한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는가? 그렇지 못하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는 이유중의 하나는 이 나라의 대학이 과학·기술개발에 있어서 응분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수도 부족하고 시설도 부족하여 교육과 연구의 부실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11) 대학의 재정난 때문에 그러한데, 그렇다고 이러한 현상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보다 근본적인 과학·기술진흥책이 나와야 한다. 흔히 사람들은 우리는 머지 않아 선진국 대열에 낄 수 있다고 장담하는데 우리가 기술함정에 빠져 있는 한 그것은 망상에 불과하다.

끝으로 세계화 시대에서 문화와 가치관의 갈등을 어떻게 소화하느냐 하는 문제가 있다. 일례로 국경, 국명, 국적의 의미가 희미해져 가는 판에 민족주의 내지 애국주의는 앞으로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일까? 생각해 보면 우리의 민족주의는 일제시대의 항일 독립투쟁의 이념적 지침이 되어 왔고 아직도 남북통일이라는 민족적 과업이 남아 있는 한민족적 관념을 버릴 수 없다. 하물며 세계에서 보기드문 민족적 단일성과 빛나는 문화적 전통을 이어받은 우리로서 어찌 민족적 긍지를 버릴 수 있겠는가. 그러나 세계화 시대의 민족주의는 제국주의 내지 식민주의 시대의 그것과 달라야 한다. 민족주의의 이름으로 부질없는 배타주의나 허세주의를 일삼는다면 국제사회에서 빈축을 사는 외에 아무런 소득이 없다. 오늘의 민족주의는 지구촌의 보편적 가치의 한국적 특징을 살려 나가는 개념이 되어야 한다. 가령 미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이지만 한국적 미는 고유의 독자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물론 외국사람까지도 그것을 소중히 여기고 있는 것이다. 다른 예로 개인의 자유가 보편적인 가치이지만 그 내용은 민족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일례로 미국식 자유의 한 단면을 보기로 하자. UN 통계에 의하면 1960년 이래 미국의 인구는 41%가 증가하였다. 이에 대하여 폭력범죄는 560%, 독신여성의 출산은 419%, 이혼율은 300%, 편부모 가정의 수는 300%나 늘었다고 한다. 이것이 과연 미국이 자랑하는 자유의 미덕인가. 대부분의 한국사람은 이러한 내용의 자유는 원치 않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전통 위에 우리자신의 자유를 정의해 나가야 한다. 물론 국제화, 세계화를 추구하면서 우리의 전통과 독자성을 유지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민족적 독자성은 다원주의 세계의 필요조건이고 다원적인 세계가 보다 빠른 속도로 발전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새로운 의미의 민족주의가 세계화의 조건과 층돌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결론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은 국제정세 변화에 대한 우리의 대응논리로서 국제화 또는 세계화의 개념과 구호가 등장하게 되었고 정부는 다각적으로 세계화를 위한 개혁을 추진하고 있으며 각계에서도 자율적 혹은 타율적으로 개혁의 몸부림을 치고 있다.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한 가지 유의할 점이 있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우리가 직면한 세계화의 압력은 국제적 역학관계를 배경으로 하여 외부에서 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그에 대응하여 우리는 다양한 내부조정을 수행해야 할 입장에 놓여 있다. 그러나 내부조정은 쉬운 일이 아니고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가 밖으로 세계화를 너무 떠들어대면 세계화를 개방으로 해석하는 서방인들은 우리에게 지나친 기대를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우리의 내부조정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그들의 기대와 실제 사이의 간격이 벌어지고 결국에는 국제사회에서 불신을 살 우려가 있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은 통상외교에 있어서 말만 하고 실행하지 않는다는 평을 들어왔지 않는가. 지금에 와서 이러한 말을 해보았자 소용이 없는 일이지만 우리의 내부조정을 서둘러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우리의 내부조정 과제는 너무나 많다. 교통난, 수송난, 환경오염을 해결하기 위한 사회시설의 확충, 산업의 구조개선, 과학기술의 개발, 행정조직의 개편, 공무원의 처우개선, 교육개혁, 개방에 따르는 경제운영 방식의 전환 등등 한마디로 말해서 모두가 선진국의 문턱을 넘기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다. 이 난관들을 돌파해야 우리는 비로소 명실상부한 선진국이 될 수 있는 것인데 그러기도 전에 우리 자신이 선진국이 된다고 떠들어대면 국제사회의 불필요한 경계심이나 빈축을 살 뿐이다. 이제는 허세와 겉치레와 '위상'보다는 겸손과 실질과 실속을 숭상하고 말보다 실행으로서 우리의 적응능력을 세계에 보여 주어야 할 때이다.

  


1) John Syzman, "National Roots of a 'Global' Economy", presented at the Conference on Globalization and rationalization: Implications and Options for the Asian NIEs, held at the East-West Center, Honolulu, August 15∼17. p.1.

2) UNCTAD, World Investment Report, 1994.

3) OECD, Globalization of Industrial Activities Background Report, 1993.

4) OECD, Globalization of Industrial Activities Background Report, 1993.

5) 세계무역센터연합회(World Trade Center Association, WTCA)가 이미 그러한 통신망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6)논자에 따라서는 이것을 '자본주의경제의 운동법칙'이라고 할지 모른다. 필자는 그러한 과장된 표현을 피하고자 한다.

7) 물론 이것은 단기적인 분석이고 장기적으로는 외국자본 유입에 따르는 환율변동(평가 절상)으로 수익의 달러가치는 저하하는 일면이 있다. 그러나 외국은행은 자금을 단기적으로 회전시켜 환차손을 최대한 회피하려 할 것이다.

8) GATT 제1조에는 어느 나라가 다른 한 나라에 대하여 통상상의 조치를 취할 때에는 다른 모든 나라에 대하여도 동일한 조치를 적용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고 이것을 '최혜국 약관' 혹은 '무차별의 원칙'이라고 한다. 우르과이 라운드 최종합의서 전문에는 무차별의 원칙 대신 "reciprocal and mutually advantageous arrangements", 즉 상호주의와 공동이익이 강조되고 있다.

9) "For America, the benefit of NAFATA lies not in economic opportunity(both the potential costs and gains are unclear) but in the stability it may bring to Mexico and therefore the region." John Syzman op cit., p.6.

10) 필자는 PECC 상임위원회의 한국대표로 10여 년 간(1981∼1992) 이 기구에 관여했다.

11) 일례로 서울대학 교수를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89%가 연구시설에 불만을 표시하고 있고 강의부담을 주당 3시간 정도는 줄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공계 만을 대상으로 하면 불만도는 더욱 커질 것이다. 중알일보 1995년 2월 22일, 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