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경제교류의 전망과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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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0월 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강연  


 

머리말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하기 위한 한국과 미국 그리고 UN의 끈질긴 노력 끝에 지난 10월 21일(1994년), 제네바에서 조·미간 합의서에 서명하는 결과를 가져 왔다. 이 합의서가 과연 앞으로 북한의 핵개발 의지를 완전히 포기시키고 또 과거의 핵개발 실태를 투명화할 수 있겠느냐에 대하여 찬부 양론이 있다. 그러나 어쨌던 이 협정에 의하여 북한은 대외관계에 있어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되었고 남한은 북한의 경수로 건설비용의 대부분을 떠맡게 된 것 만은 사실이다. 2003년까지 1000MW용량의 경수로를 건설하는 데에 7년 이상이 걸릴 터인데 이 사업을 추진 하자면 남한의 자금, 기술, 인력, 관리자원이 북쪽으로 이동해야 할 것이고, 이를 계기로 하여 남북간의 경제교류의 물꼬가 트일 것이다. 이러한 상황변화에 즈음하여 경제교류의 과거를 되돌아보고 미래를 전망해 보고자 한다.

북한의 대외정책의 변화

사회주의 주체사과 자력갱생을 경제운용의 기본이념으로 삼아온 북한 당국은, 일찍부터 서방과의 경제교류를 중요시하지 않았다. 무역만 하더라도 "사회주의국가의 무역은 부둥가교환에 의한 착취와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자본주의국가의 무역과는 달리…… 이윤추구가 목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상품의 사용가치의 교환이 위주가 된다"고 규정하여 사회주의 국가와의 무역에 치중하였고, 남한에서의 '수출 제일주의'는 자본주의 강대국가에 예속화하는 과정에 불과하다고 비웃었다.

그러나 북한의 이러한 대외정책은 사회주의 국내정책과 더불어 경제의 장기적 침체를 가져왔다. 즉 사회주의 계획경제체제의 내재적인 비능률을 논외로 하더라도 생산재와 군수산업에 편중한 내향적 공업화정책은 막대한 군사비 지출과 체제유지를 위한 전시사업과 맞물려서 경제성장을 구조적으로 저해 하였고, 거기에다 소련 및 동구 사회주의의 몰락, 소련과 중국으로부터의 원조 중단, 대외지불 불능, 농업생산의 침체와 식량난 등의 경제난이 겹쳐서 오늘과 같은 경제적 참상을 빚어 냈다. 도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남북간의 경제적 격차는 놀라울 정도이다.

<표 1>   1993년 남북한의 주요 경제지표 비교

 

단위

북 한(A)

한 국 (B)

배 율 (B/A)

1. 인구

천명

22,645

44,056

1.9

2. 경상 GNP

억 $

205(211)

3,287(3,057)

16.0(14.5)

3. 1인당 GNP

904(943)

7,466(7,007)

8.3(7.4)

4. 경제 성장률

- 4.3(-7.6)

5.6(5.0)

-

5. 대외 경제무역총액

억 $

26.4

1,660.4

62.9

     (수출)

10.2

822.4

80.6

     (수입)

16.2

838.0

51.7

 (무역총액/경상GNP)

12.9

50.5

-

    대미 환율

원 $

2.15

802.73

-

    외채

억 $

103.2

440.8

4.3

    (손외채)

(〃)

(〃)

(78.7)

(-)

    (외채/경상GNP)

50.3

13.4

-

6. 예산규모

억 $

187.2

474.0**

2.5

    군사비

억 $

56.2

119.2**

2.1

주 : ( )안은 1992년 계수임.

* 북한의 원화표시 예산금액을 북한 당국이 정한 상업환율(2.15/$)로 환가한 것임.

** 한국의 예산규모는 중앙정부 일반회계 기준임.

한편 중국은 1978년부터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경제개혁을 추진한 후 고도성장을 계속하는가 하면, 소련과 동구사회주의 국가들 또한 시장경제체제로의 '역혁명'을 일으키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러한 정세 변화와 함께 남한 경제의 약진상에 충격을 받은 북한은, 구 공산진영의 체제선회를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경제개혁이 체제유지에 미치는 영향을 염려한 북한정권은 당초에는 '우리 식의 사회주의'를 강조하며 개혁에 나서기를 주저하였지만 만성적 경제적 후퇴 앞에 어쩔 수 없이 외국투자와 경제특구라는 개혁요소를 받아들이게 된다.

드디어 1983∼1984년에 정무원총리, 경제각료를 비롯한 고위관리들로 구성된 대표단을 중국에 파견하여 경제특구를 돌아보게 한 다음 84년 9월에는 '합영법'을 공포하기에 이르렀다. 이 법은 중국의 '중외합자경영기업법'을 모방한 것인데 후자에 비하여 너무나 개괄적이고 해석상의 불투명한 점이 많았다. 이 법이 제정된 후 1985∼1990년 간, 88개 내외 합작기업이 탄생하였다고 하는데 업종은 주로 식당, 관광, 금융, 유통, 정비 등 서비스 분야에 집중되었고, 공업부문에는 별로 볼만 한 것이 없었다. 출자비율은 50대 50이고 100% 외국지분은 허용되지 않았다. 대부분 조총련 기업들이 참여하였고 100만 달러 내외의 소규모 투자였다. 특이한 예외로 프랑스의 꽁베뇽비르날 회사가 평양시의 105층 '유경호텔' 건설에 참여하였다가 철수하였고 그 후 홍콩의 화재(華材)회사가 내부 시설을 맡았으나 오늘까지 공사는 중단상태에 있는 것 같다. 동년 3월에 공포한 합영법 시행세측은 이사회 결정을 만장일치제로 규정하고 있어 실질적으로 정부의 동의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러다가 근년에 와서 북한은 외국투자 유치에 한층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1992년 10월 북한 당국은 외국인 투자법, 합작법, 외국인 기업법을 공포하였고, 1993년 초에는 자유경제무역지대법을 제정하는 한편 외환관리법, 조세법, 은행법 등 외국투자와 관련된 법들을 개정하였다. 자유무역지대법의 내용을 보면 의외로 파격적인 조치가 눈에 띈다. 동 법에 의하면 자유지역 내에서는 외국인의 100% 지분이 인정되고, 가격을 자유로이 결정할 수 있고, 개인·합영·합작 등의 기업형태 중 어느 것이라도 택할 수 있고, 50년의 토지사용권이 인정되며, 토지사용권은 양도 매매가 가능하며, 국유화 조치를 배제하며, 이윤활동을 보장하며, 외국인 출입에는 사증도 필요 없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 법은 지난 수년간 UNDP가 추진해 오고 있는 두만강유역 다국적 자유무역지대(중국, 러시아, 북한의 접경지역으로 북한의 나진과 선봉이 포함된다). 창설계획에 호응한 것으로 보여 지는데, 그 내용은 상당히 진취적이다. 그 시행사항은 앞으로 두고 보아야 할 일이지만, 어쨌든 이것은 북한이 그 나름의 '국제화'의 발걸음을 시작하였다는 증좌이고 이러한 배경이 남북경제교류의 진전과도 관련을 갖게 된다.

남.북 경제교류의 전개과정

남북간의 특기할 만한 경제적 접촉은 1984년에 시작되었다. 동년 8월 남한이 수재를 만났을 때 북에서 수재 구호물자를 보내겠다는 제의가 온 것이다. 북측은 안 받을 줄 알았던 모양이나 남한은 남북간의 해빙에 일조가 될까 하여 기꺼이 받겠다고 응답하였다. 북은 자체 내의 공급부족에도 불구하고 쌀 5 만석(7,300톤), 옷감 50만미터, 시멘트 10만 톤, 의약품 14종을 보내왔고, 우리는 그에 대한 보답으로 일용 공업제품을 실어 보냈다.

그 후 3개월이 지나 1984년 11월에 사상 최초로 남북경제회담이 서울에서 개최되었고 교역, 투자, 기타 경제협력에 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었다. 교역에 관하여는 남측이 모든 물자의 교류를 주장한데 반하여 북측은 원자재는 원자재, 완제품은 완제품, 농산물은 농산물로 교환하자고 맞섰다. 절충한 결과 연, 아연, 무연탄, 철광석, 명태, 옥수수 등이 양방이 모두가 희망하는 교류품목으로 선정되었다. 한편 경의선 철도의 연결, 남한의 인천·포항과 북한의 남포·원산의 상호 개방도 합의되었다. 그 후 1년 동안에 5차례의 회합이 있었으나 북한은 1985년 11월 판문점을 통한 소련인 망명사건과 팀스피리트 훈련을 트집잡아 일방적으로 대화를 중단시켰다.

그 후 4년이 지나 1988년 7월에 남한에서 이른바 7·7 특별성명에 이어 동년 10월에 '남북한 물자교류에 관한 기본지침'이 발표되었다. 그 내용은 남북한산 물자를 반출, 반입하는 직간접 교역은 국내거래로 간주,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는데 이에 대한 북한 측의 반응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이것을 계기로 하여 남북간의 간접교역이 자극되었고 교역량은 점차로 증가추세를 보여왔다. 참고로 1988년의 교역량은 4건에 약 100만 달러에 불과하였으나 1993년에는 2억 달러에 달하고 있다

<표2-A> 북한의 주요 무역대상국과 교역액                (단위 : 백만달러)

 

1986년

1987년

1988년

1989년

1990년

1991년

독립국연합

 

     수출

642

683

887

891

1,047

563

     수입

1,186

1,391

1,922

1,641

1,668

858

중국

 

     수출

255

215

212

167

142

85

     수입

280

305

380

399

403

524

일본

 

    수출

154

218

293

268

271

284

    수입

204

238

263

216

194

223

출처 : 국토통일원.

<표 2-B> 남한의 북한과의 교역(승인 기준)

연 도

반 출

반 입

총 액

건수

금액(100$)

건수

금액(100$)

건수

금액(100$)

1988년

 

 

4

1,037

4

1,037

1989년

1

69

57

22,235

 

22,304

1990년

4

4,731

75

20,354

79

25,085

1991년

40

26,176

328

165,996

368

192,172

1992년

42

12,818

365

200,685

407

213,503

1993년

74

10,228

469

190,419

543

200,647

총계

161

54,022

1,298

600,726

1,459

654,748

출처 : 국토통일원(1993년)

물론 아직까지는 홍콩, 일본 등을 경유한 간접무역이다. 교역물자의 내용은 당연히 양측의 산업구조를 반영하여 남한이 아연, 금괴, 무연탄, 철강재, 수산물 등을 반입하고 설탕, 합성직물, 합성수지, 컬러 TV 등의 소비품을 반출하는 형편이다. 이처럼 남북 무역은 상호보완적 성격의 것인데 특히 북한의 광산물은 우리의 관심의 대상이 된다. 북한에는 220여 종의 광물이 분포되어 있고, 매장량이 세계 10위권 안에 드는 광물이 중석, 몰리부덴, 흑연, 중정석, 형석 등 7종이나 있고 마그네사이트(남한에는 없다)는 세계 최대 생산량을 자랑하고 있다고 한다. 그 밖에 금, 철, 니켈, 망간, 흑연, 석회석, 무연탄 등의 광물 매장량도 적지 않다. 남한이 반입할 수 있는 물건들인데, 그러나 북한은 구상무역에 의하여 제3국과 장기공급 계약을 체결하고 있어서 남한 공급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합작투자 분야에 있어서는 언론보도(주간한국 94년 11월 3호 p.22)에 의하면 50여 업체가 100개의 투자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고 하나 아직 성사된 것은 거의 없다. 지역개발사업으로는 나진·선봉의 자유무역지대 건설사업, 현대그룹의 금강산 관광지역 개발사업, 대우의 남포공단 건설사업 등이 거론된 바 있으나 아직은 탁상론에 그치고 있다. 그러나 우리 기업들의 북한투자에 대한 관심은 지대하고 남북간의 경제협력의 통로가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남북간의 경제교류에 관한 본격적인 논의는 1992년 2월, 고위급회담에서 이루어졌고 거기에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가 서명되었다. '남과 북은 민족경제의 통일적이며 균형적인 발전과 민족경제의 복리향상을 위하여 자원의 공동개발, 민족 내부교류로서의 물자교류, 합자투자 등 경제교류와 협력을 실시한다' (15조)고 선언한 이 합의서의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남과 북이 끊어진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고, 해로·항로를 개설하며(19조),

(2) 우편과 전기통신교류에 필요한 시설을 설치 연결하고, 우편·전기통신의 비밀을 보장하며(20조),

(3) 국제무대에서 경제와 문화 등 여러분야에서 서로 협력하고 공동으로 진출하 며(21조),

(4) 합의서 발효 후 3개월 안에 남북경제교류·협력 공동위원회를 비롯한 부문 별 공동위원회를 구성, 운용한다(제22조)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후 북한의 원자핵 문제와 NPT 탈퇴로 말미암아 남북간의 대화는 또다시 단절되고 말았다.

김일성 사후 북한의 정치체제에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그리고 남북관계에 어떠한 진전이 있을 것인지 현재로서는 가늠할 수가 없다. 다만 지난 7월의 신문보도에 의하면, 북한 당국이 북한 선봉지역에 한국공단을 설립, 남한의 200개 기업으로부터 20억 달러를 유치하는 계획을 진행중이라는 발표가 있었다 한다. 이것은 당시 예정되었던 남북 정상회담을 겨냥한 준비작업의 한 가닥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도 있다(경향신문 1994년 7월 12일). 그 진부는 앞으로 확인해 보아야 할 일이지만, 어쨌든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북한은 지금 부분적인 대외개방이 불가피함을 인식하고 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였고, 남한에 대하여도 본격적인 경제교류의 통로를 모색하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남북교류에 대한 평양의 전략

평양은 남한과의 경제교류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흔히 남한정부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남한의 사기업들에 대하여 경제협력을 요구해 왔다. 마치 남한 정부는 그들의 적이지만 남한의 인민이나 사기업들은 인민공화국의 동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기야 평양의 이러한 태도는 경제교류에만 국한되는 일은 아니다. 그들은 정치·외교면에서, 한반도에 평화를 유지해야 할 당사자는 남과 북일 수 밖에 없음을 알면서도 한국을 배제하고 미국과 단독으로 평화협정을 맺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과 평화협정을 맺고 나면 주한 미군철수를 주장할 구실이 된다는 속셈이지만, 그에 앞서 남북 당사자간의 평화체제가 획립되지 않으면 한반도의 평화가 위협을 받게 된다는 것은 남한과 미국의 공통된 시각이다. 어쨌든 북한이 이러한 비현실적인 태도를 버리지 않는 한 남북간의 경제교류에도 적지 않은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평양은 미국,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통하여 외교적 고립을 면하고 서방으로부터 경제원조를 얻고자 한다. 특히 일본과 외교관계를 정상화하고 청구권 자금을 받아들이는 일은 현재의 경제적 고난을 극복하기 위하여 초미의 급무가 아닐수 없다. 북한의 이러한 사정이 핵 문제에 관한 북미간의 협상을 타결로 이끈 중요 요인 중의 하나였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합의서에 서명하였다 하여 북한의 핵놀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북미간의 합의서에 의하면 앞으로의 핵개발은 일단 저지되었다 하나, 그 실효는 5년 후에나 확인될 수 있고, 특히 우리가 중요시하는 과거 핵개발에 대한 특별사찰에 관하여는 경수로 사업의 상당 부분이 완료될 때 - 단 핵심부분 인도 이전에 - IAEA가 평양과의 협의를 거쳐 검증할 수 있게 되어 있어, 그 동안에 평양이 무슨 짓을 할지는 장담 할 수 없다(부록 참조). 북한은 과거의 핵개발에 관한 애매모호한 연막전술을 지속하여 우리로 하여금 부단히 신경을 쓰게 할지 모른다. 북한의 남한정부에 대한 거만과 경시태도는 이러한 맥락에서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다음에 평양은 경제를 개방할수록 체제유지가 어렵게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개방은 부분적이고 점진적으로 그리고 고도로 통제된 상태 하에서 추진하려 할 것이다. 그들이 나진·선봉의 자유무역지대를 건설하고자 하는 이유 중에는 투자유치 뿐만 아니라 개방의 효과를 특정지역내에 가두어 두고자 하는 의도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북한의 이러한 고충은 우리로서도 이해할 만한 일이지만 그러나 경제특구 외의 개방범위와 제한이 심하면 심할수록 자유무역지대의 특수효과가 상쇠되게 마련인 것은 중국이나 우리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보더라도 명백하다. 그러므로 북한의 경제특구나 문호개방에 지나친 기대를 거는 것은 성급하다할 것이다.

끝으로 평양과 중국과의 관계 또한 남북교류에 있어서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중국은 북한의 사회주의체제가 그 경직성 때문에 무너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평양에 대하여 경제개혁을 종용해 왔다. 만약 북한이 남한에게 '흡수통일' 된다면 미국의 세력이 발해만 내지 압록강까지 미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중국은 남북통일보다는 남북간의 불통불란(不統不亂)과 세력균형을 원한다는 분석이 있다. 어쨌든 중국은 남한과는 우호관계를 유지하여 경제적 실리를 추구하는 동시에 북한과의 유대관계를 유지하려 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결국 북한이나 중국이나 다같이 사회주의체제 유지와 경제개발의 필요에서 남한에 대하여 정경분리를 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인데, 그렇다면 우리는 정경일체를 주장하고 나설 것인가? 그것은 매우 비현실적인 접근이다. 우리는 우선 경제교류를 시작하고 심화하면서 그 촉매작용으로 정치면의 변화가 있기를 바랄 수 밖에 없다. 중국과 북한에 시장경제 요소가 확대되면 두 사회가 세계의 보편적 체제와 가치에 한층 더 접근하게 되는 것인 만큼 우리는 인내를 가지고 기다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 중국, 북한간의 삼각 경제협력도 시도해 볼 만하다.

우리의 대응

남.북경제협력에 관하여 여러가지 의견들이 제시되고 있는데 무엇보다 중요 한 것은 남·북경제교류의 근본목표를 확실히 정립하는 것이다. 필자의 소견으로는 남북경제협력의 기본목표는 조국의 통일을 바라보며 (1)남북간의 상호신뢰를 구축하여 평화를 유지하고, (2)북한의 민생을 구호하며, (3)북한을 세계경제질서로 끌어들여 북한 경제개발을 촉진시키고, (4)북한의 체제개혁을 통한 개방화, 민주화를 촉진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목표를 염두에 두고 지금 논의되고 있는 몇 가지 문제들에 대하여 사견을 말해 볼까 한다. 첫째로 핵문제가 일단 해결되었고 북한과 미국 및 일본과의 관계개선이 전망되는 만큼 다른 나라들이 북한에서 경제기회를 선점 하기 전에 우리 기업이 먼저 진출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나 성급한 판단이다. 북한의 대외채무 불이행, 열악한 투자환경 등은 널리 알려진 사실인데 그를 무릅쓰고 장기적 포석으로 진입할 서방의 기업들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또 북한에 상업적 기회가 있다 하더라도 무역액이 불과 30억 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판에 기회가 있다면 얼마나 있겠는가. 잘 해야 중소기업들의 관심대상이 될 수 있는 것 들이다. 그 밖에 대기업이 할 수 있는 대형 프로젝트는 현재의 투자환경 하에서는 추진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에 앞서 무역, 투자, 과세, 결재 등에 관한 남북간의 협약과 제도정비와 같은 정지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서두르지 말고 착실하게 나가야 한다.

설사 서방의 기업들이 대거 진출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오로지 우리에게 불리한 일이라고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목표는 북한의 개방과 민주화를 촉진하는 것인데 그것은 우리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오히려 제3국의 영향력이 들어가서 그들의 개혁을 자극하는 편이 우리와의 불필요한 마찰을 회피하는 수단이 될 것이다. 어차피 시대는 바야흐로 국제화 시대인 만큼 우리도 문을 열고 북한도 문을 열어야 21세기를 같이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정부에 관한 일인데, 정부도 결코 서둘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 평양이 우리 정부를 우습게 여기는 마당에 요구도 있기 전에 무엇을 주겠다고 나서는 일은 보기에도 좋지가 않다. 그것은 평양의 남한 정부 경시태도를 조장할 따름이다. 북한 지도자들은 자유경제체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만큼, 경제적인 문제를 정치적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한가지 예로 북한의 어느 고위 당국자는 우리의 어느 기업에게 김일성 수령의 탄생일을 축하하는 뜻으로 자전거 10만 대를 기증할 수 없느냐고 물었다는 웃지 못할 일화가 있다. 그들을 계몽하는 의미에서도 모든 거래에 있어서 상업적 원칙을 관철하고, 줄 것과 받을 것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그러자면 대북거래는 가급적 민간에게 맡기도록 함이 좋을 것이다. 북한이 국제경제질서에 적응해 나가자면 많은 것을 배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정부차원의 경제원조는 긴급한 민생구호와 사회간접시설에 국한해야 할 것이다.

다음에 경제교류에 있어서 정부의 조정, 감독기능에 관한 문제가 있다. 어떤 논자들은 어차피 우리 경제는 개방체제인 만큼 북한과의 거래에 있어서도 가급적 불간섭주의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점은 심중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 북한에서는 통제하의 개방이 불가피한데 우리는 불간섭주의로 나간다면 큰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북한의 수용태세를 보아가며 우리측의 진출을 조정하지 않으면 북측의 사정을 모르고 준비 없이 진출한 기업들이 낭패를 볼 수 있고 그것을 둘러싸고 정부간의 마찰도 생길 수 있다. 우리측 업자간의 과당경쟁도 문제가 된다. 그러므로 기업들에게 번거로움이 있다 하더라도 적어도 어느 시기까지는 정부의 교통정리가 불가피할 것이다. 여기에는 통일 이전의 서독의 경험이 참고가 될 것이다.

정부의 통제가 미약하면 경제분야는 고사하고 비경제 분야에서 일대 혼란이 일어나지 않을까 염려하는 사람도 있다. 각종 정치단체, 종교단체, 사회단체, 운동권 학생들이 저마다 통일의 구호를 외치며 북과의 접촉을 시도할 때, 이를 수습하기 어렵게 되고, 평양이 이를 대남 전략에 악용할 위험도 있다. 그러므로 민간인들의 대북 활동은 지금과 같이 정부의 통제하에 질서있게 전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정부는 관련부처간의 역할분담을 명확히 하고 불필요한 관료주의적 통제를 배제하는 동시에 실정에 맞는 통제방법을 강구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정부와 민간은 북한이 국제사회에 진출하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정부가 이미 그러한 방향을 제시한 바 있거니와 북한이 국제경제질서에 편입되지 않는 한 북한의 경제개발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런 견지에서 경수로 지원에 있어서도 다국적 참가가 바람직하고 특히 세계은행(World Bank), ADB 등의 국제금융기관의 참가가 필수적이다. 그리고 북한을 포함한 동북아지역의 경제개발을 촉진하기 위하여 필자가 주장해 온 '동북아 개발은행'을 설립할 필요가 있다는 것도 첨언해 둔다.

맺음말

남북통일의 길은 멀 수도 있고 가까울 수도 있다. 어느 경우에나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역량이다. 지금 우리는 경제적으로 북한보다 앞섰다고 자랑하지만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너무나 많다. 감상적으로 통일을 노래하기 전에 우리 자신의 대열을 가다듬고 묵묵히 우리의 내실을 다져 나가는 것이 통일에 대비하는 최선의 길이라 여겨진다.

부록 : 북한과 미국 간의 제네바 합의서 내용 요약

(1)미국은 2003년까지 약 2,000MW의 경수로를 북한에 제공하기 위한 조치를 주선

(2)미국은 앞으로 합의하는 일정에 따라 년간 50만톤 한도 내에서 중유를 북한에 공급

(3)북은 흑연감속 원자로 및 관련 시설 동결

(4)IAEA가 이러한 동결상태를 감시하고, 북은 전적인 협력을 제공

(5)흑연감속로의 해체는 경수로 사업이 완료 될 때 완료됨

(6)미국과 북한은 5MW 실험용 원자로의 연료봉을 경수로 건설기간 동안 보관하고, 북한내에서 재처리 하지 않고 안전하게 처리될 수 있는 방안을 상호 협의

(7)미국은 북한에 대한 핵무기 불위험 또는 불사용에 관한 공식 보장제공

(8)북한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이행하기 위한 조치를 일관성 있게 취함

(9)북한은 NPT 당사국으로 잔류함

(10)경수로 제공을 위한 공급계약 체결 즉시 동결대상이 아닌 시설에 대하여 북한과 IAEA간 안전협정에 따라 임시 및 일반사찰 재개. 경수로 공급계약 체결시까지 안전조치의 연속성을 위해 IAEA가 요청하는 사찰은 동결대상이 아닌 시설에서 계속됨

(11)경수로 사업의 상당부분이 완료될 때, 그러나 주요 핵심부분의 인도 이전에 북한 내 모든 핵물질에 관한 최초 보고서의 정확성과 안정성을 검증하는 것과 관련하여, 북한은 IAEA와의 협의를 거쳐 후자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모든 조치를 취함과 동시에 IAEA 안전조치협정을 완전히 이행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