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의 위기-올 것이 왔다

lkhy1.gif  


1995년 4월 10일 중앙일보  


문서 다운받기

제2차 세계대전이후 세계 화폐경제에 군림하던 달러가 그 위력을 잃고 국제통화의 권좌에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1985년부터 달러의 엔화가격이 연평균 13.8%의 속도로 하락하더니 금년 들어 불과 3개월만에 13%나 폭락하였고 앞으로 관계 정부의 응급조치가 있다 하더라도 하락세의 근본적 치유책은 되지 않을 것이다. 필자를 포함한 많은 경제학자들은 미국이 경제운영 스타일을 바꾸지 않는 한 달러 가치는 점점 하락하다가 어느 시점에 가서 파국 점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말해 왔다. 과연 올 것이 온 것이다.

미국이 누적되는 재정적자를 감축하지 않는 한 무역적자를 줄일 수 없다는 것은 경제학의 초보지식에 속하는 일이었다. 독일이나 일본의 경우처럼 높은 국내 저축률이 정부의 재정적자를 상쇄할 수 있다면 무역적자는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과소비의 나라인 미국에서는 개인 저축률이 매우 낮기 때문에 정부와 민간의 과다지출은 수출을 초과하는 수입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국 정부 당국자나 지식인들이 이 이치를 잘 알면서도 오늘까지 재정적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데 에는 대략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정치인들의 무책임이다. 재정적자를 해소하자면 세출을 삭감하던가 세금을 올려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인데 양쪽이 다같이 투표자들에게 인기 없는 정책들이다. 만약 1978년 오일 쇽크 당시에 휘발유세를 10%만 더 올렸더라도 미국의 재정적자는 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표를 의식한 정치인들은 오히려 각종 세율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 논리인즉, 세율을 내리면 투자가 촉진되고 경제가 활성화하여 세금의 자연증수가 있게 되고 따라서 재정적자를 줄일 수 있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한편 세출을 삭감해야 한다는 주장이 무성했지만 다양한 정치적 저항 때문에 그것도 여의치 가 않았다. 결국 적자재정은 오늘까지 계속되었고 작년에도 약 2000억불의 적자를 기록하였다. 최근에 일부 의원들이 예산균형화법안을 의회에 제출하였으나 상원에서 부결되고 말았고 이것이 달라 붕괴의 도화선이 되었다는 관측도 있다.

또 하나의 이유는 달러가 국제통화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과 관련된다. 달러는 세계화폐의 구실을 해 왔으므로 달러에 대한 국외의 수요와 選好가 지속되는 한 미국은 무역적자나 외채상환을 자국통화로 결제하면 그만이고 다만 이자를 무는 문제만이 남게 된다. 이러한 사정 하에서 해외에 6000억불 이상의 순채무를 지게 되었지만 미국 정치인들은 재정적자나 국내저축부족을 물 건너 불처럼 보아 왔고, 무역적자에 관하여는 주로 일본과 한국 등의 보호장벽이 主因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미국의 무절제가 무한정 시장의 법칙을 역행할 수는 없는 일이다. 외환시장에 대한 달러의 공급이 늘면 늘수록 달러의 가치는 떨어지게 마련이니까. 마침내 미국 경제운영에 대한 불신이 달러에 대한 불신으로 투영되어 달러를 기피하는 현상이 일어났다. 이것은 미국이 국제통화로서의 달러의 가치를 수호할 책임을 포기한데 대한 시장의 반발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이 지금에라도 이 위기를 넘길 생각이라면, 그린스판 미국 연방준비은행 총재의 말과 같이 "재정불균형에 대한 믿을 만한 대책을 제시" 해야 할 것이다.

일본에도 올 것이 왔다. 끈질기게 수입장벽을 고수하고 그토록 많은 나라들에 대하여 일방적으로 국제수지 흑자를 쌓아 올리고도 무사하기를 바랐다면 생각이 모자랐다 할 것이다. 일본의 흑자정책은 얻은 것도 있었지만 잃은 것도 적지 않았다. 미국과 끊임없는 통상마찰을 일으켰고 세계의 무역질서를 왜곡하는 데에 크게 기여하였다. 만약 일본이 미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제국에 대한 무역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하여 보다 과감한 시장개방과 함께 역내 투자와 기술이전을 꾀했더라면 아시아 역내무역이 더욱 신장되어 대미의존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고 그를 통하여 일.미관계에도 좋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아시아지역에 대한 개발투자 보다 미국 자산 취득에 열을 올렸고 그 결과로 큰 손실을 자초하였다. 外誌에 의하면 1985년부터 지난 10년 동안 미국내 자산취득에 투자한 일본 기업들은 엔 가치 상승 (부동산가격 하락의 효과는 논외로 하고)으로 무려 3250억불 이상의 손실을 보았다 한다. 앞으로 이러한 손실은 더욱 커질 것이다. 결국 무역흑자의 큰 부분을 미국에게 무상으로 되돌려 주는 셈이 된다. 급격한 엔화 절상으로 수출이 큰 타격을 받게 되었고, 앞으로 경기침체가 장기화할 전망이다. 기업은 잇따라 생산을 해외로 옮길 것이고 그로 인하여 산업의 공동화를 우려하는 소리가 높아 질 것이다. 결국 엔화의 가치상승은 일본의 영광이라기 보다 무거운 짐이 될 것이다.

미국과 일본의 경험이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은 무엇인가? 첫째는 미국과 같이 고도로 발달한 의회민주주의도 정책을 크게 그르칠 수 있다는 것, 둘째는 경제운영이 正道에서 벗어나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 셋째로 2차대전후 영국의 파운드가 국제통화의 권좌에서 물러 날 때 그러했듯이 앞으로 국제통화위기가 빈발할 소지가 있다는 것, 넷째로 타국과의 무역 불균형을 고착화하는 일본의 전철을 밟지 말 것 등이다. 끝으로 엔화 절상으로 우리 수출이 호조를 누려 온 것은 사실이나 이러한 상태가 오래 지속된다고 보아 서는 아니 된다. 우리는 이러한 때에 기술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하여 다음 국면에 대비해야 하고 경제운영을 더욱 건실화 하여 국제통화 체제의 불안정과 금융개방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끝)

(편집후기: 이 논문을 쓴지 수년 후에 미국의 재정정책 전환으로 재정적자문제는 해소되었으나 국제경상수지 적자는 개선되지 않았고 금년(1999년)에도 적자가 사상 최고 기록인 3200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외신은 전하고 있다. 금리 차에 유인된 흑자 국으로부터의 자본 이동으로 달러가치를 유지해 왔으나 여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장기적으로 필자의 논지는 유효하리라 본다.)1)


2)별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