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위상과 기업인의 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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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회 전국경영자 연찬회 기조연설
(주최 : 한국경영자총연합회) 1992년 2월 12일
  


 

"총체적 난국"의 실체

오늘의 상황을 흔히 '총체적 난국'이라고 한다. 작년과 재작년의 경제성장률이 각각 9%와 8.7%를 기록하였는데 그게 무슨 소리냐고 반문하는 외국인들이 있는데 그러면 그러한 위기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잠시 오늘의 한국의 위상과 난국의 실체를 간략히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정치면에서는 민주정치의 막은 올랐으나 대의정치의 경험이 부족하고 전통적인 정치 문화가 별로 변하지 않은 가운데 의회정치가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정당과 의회는 국가의 당면 문제를 논의하고 해결방안을 창출하기보다는 자기 자신들의 문제 - 내각책임제, 선거, 정치자금, 계파갈등 등등 - 을 놓고 당리당략에 여념이 없다. 거기에서 난국 극복에 도움이 될 만한 정치적 지도력은 기대하기 어렵고 오히려 정치가 경제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소리가 높다. 이러한 와중에서 국민들은 정치에 대하여 환멸을 느끼고 있고 이대로 가면 나라의 장래가 위태롭지 않느냐 하는 위기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사회면 또한 어지럽기 짝이 없다. 날로 극심해지는 교통 체증에 짜증을 내는 것이 우리의 일과가 되어 버렸고 교통사고, 강력범죄, 환경오염, 저질 간행물, 졸부들의 꼴사나운 사치풍조 등등을 고발하는 매스컴의 소리는 요란하기만 하다. 이 모두가 정부의 탓이다, 지도층의 탓이다, 기업인의 탓이다, 근로자의 탓이다, 남의 탓이다, 내 탓이다 라며 서로 그 원인과 책임을 묻는 데 바쁘지만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것들은 파산상태에 빠진 이 사회의 권위와 질서와 가치의 무정부상태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어쨌든 이대로 가면 우리도 과거의 남미 나라들처럼 정치, 사회적 불안과 경제적 침체 사이의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소리가 있다.

이러한 정치적, 사회적 환경속에서 경제 자체도 힘겨운 전환기의 문제를 안고 있다. 즉 경제운영면에서 정부주도에서 민간주도형으로, 통제에서 자율화로, 보호에서 개방으로 그리고 노동집약형 산업에서 기술집약형 산업으로의 전환이 불가피한데 그러한 전환을 실천하는 일이 쉬울리 없고 거기에서 인식상의 간격과 마찰, 좌절감, 무력감, 불안감이 생겨난다. 이에 더하여 지난 수년 간 정부의 경제운용에도 문제가 없지 않았다. 86년 이후 모처럼 무역흑자 시대가 도래했을 때 정부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것이 통화증발, 증권투기, 토지투기로 연결되지 않도록 관리했어야 했고 한편 기업들은 앞날에 대비하여 여유자금을 투기 대신에 기술혁신에 투입했어야 했다. 그러나 정부와 기업은 사회적 혼란, 노사분규, 임금공세, 외압 등에 밀려서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고 그 결과 모처럼의 국제수지 흑자는 일장춘몽으로 끝났을 뿐 아니라, 불행하게도 우리 경제는 다시 옛날의 고압형 체질로 돌아가게 되었다. 즉 통화량, 임금, 금리, 물가가 너무 높고 환율의 대외가치(원화의 달러가격) 또한 과대평가된 거시적 변수체계, 다시 말해서 안정적 성장과 산업의 대외경쟁력 유지에 매우 불리한 체계로 되돌아가고 만 것이다.

부언하거니와 우리 경제는 건국 이후 줄곧 이러한 고압형 매크로 시스템에서 탈피하지 못해 오다가 1983∼1986년경에 국제여건의 호전과 정부의 강력한 안정화 시책에 힘입어 어느 정도 안정적 테두리를 실현할 수 있었다. 참고로 그 당시의 몇 가지 통계를 보면 화폐 발행고 증가율은 5.7%∼15.5%, 전산업 명목임금 상승률은 8.2%∼11%, 전국 소매물가지수는 2.3%∼3.4%의 범역에서 변화하였고, 환율은 795원∼890원선에서 비교적 실세를 반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물가고 임금고 이자고에 인력난 자금난이 겹쳐서 제조업은 그야말로 총체적으로 국제경쟁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돌이켜 보면 우리 경제가 일본이나 대만과 달리 고압형 체제에서 영구히 벗어나지 못하는 최대 이유는 예나 지금이나 경제정책이 지나치게 정치적 편의에 종속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선거시기의 통화증발, 정치공세에 영합하는 소비성 재정지출의 팽창, 양특적자의 확대누증, 통화증발에 의한 증시부양, 광범한 가격통제 등등이 그것인데 바로 지금에도 우리는 몇 차례의 선거를 앞두고 그것이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크게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사회적 난국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상에서 오늘의 일반적 위기감의 배경이 되는 암울한 실상을 그려 보았는데 그것은 한마디로 전환기의 진통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정치, 사회, 경제가 서로 맞물려서 빚어내는 난국인 만큼 '총체적' 난국이라는 말에도 수긍이 간다. 그러면 이 난국을 어떻게 수습해 나갈 것인가?

먼저 정치·사회면의 문제를 단시일 내에 해결할 수 있는 방도는 없다. 그것은 경험을 통한 자각에서 점차로 개선이 이루어지는 것이고 다만 교육에 의하여 개선의 속도를 빠르게 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학교교육 내지 사회교육, 매스컴의 역할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오늘의 정치 시회현상을 지나치게 비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원래 민주적 과정이란 지루한 과정이고 선진국들도 수백 년의 경험을 통하여 오늘의 경지에 도달하였다고 하지 않는가. 체험을 통한 각성과 자율적 시정노력이 민주화 과정이라면 우리 사회에도 그러한 자율의 기능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서서히 진행되고 있다는 것은 요즘 노조의 태도변화라든가 또는 공영방송의 태도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공영방송들은 가지가지의 사회 문제, 경제 문제들을 고발할 뿐만 아니라 그들에 관하여 여론지도와 수렴에 앞장서고 있고, 그 시정노력 - 예컨대 교통규칙 준수, 소비절약, 일 더하기 등 - 을 유도하는 사회교육에 앞장서고 있다. 옛날 같으면 정부가 시켜야 마지 못해 하던 일들을 이제는 사회 구석구석에서 자발적으로 나서서 실천하는 사례가 많아지는 것을 보면, 저으기 민주사회의 자율기능을 실감케 한다. 하도 세상이 어지러우니까 더러는 옛날의 통제사회에 향수를 느끼는 사람도 없지 않으나, 지루하고 참기 힘들더라도 민주적 해결만이 궁극의 해결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고 각자가 자기부터 생각과 태도를 고쳐 나가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정치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려면

오늘의 정치·사회현상을 단시일에 고칠 수 없는 것이라면 그러한 가운데에 경제만이라도 제대로 굴러가게 할 수는 없는 것인가. "정치야 어떻든 경제만 잘 돌아가면 된다," 사람들은 곧잘 이렇게 말해 왔다. 과거의 경험에서 나온 말인데 그러자면 정치가 경제에 주는 악영향을 가급적 적게 하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정치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체로 두가지 방안이 있을 수 있다. 첫째는 정치적 영향 때문에 행정의 안정과 능률이 파괴되는 일을 막아야 한다. 해외의 논자들은 1960∼1970년대의 한국이 끊임없는 정치적 갈등과 불안에도 불구하고 고도성장이 가능했던 것은 개발행정의 안정과 일관성을 유지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과거의 정치체제를 정당화 할 생각은 없으나 경제성장을 위해 행정의 안정성과 능률이 필수적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가 없다. 지금과 같이 총리와 장관은 물론 그 밑의 고위 관리자들이 그 자리에서 1년을 넘기기가 어려운 사정 하에서는 공직자들이 국가경영의 전문적 지식과 경험을 축적하고 정책수립과 집행의 일관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 아니겠는가.

민주정치체제하에서도 행정의 안정과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대통령책임제하에서는 대통령이 바뀌면 차관보급 이상은 교체되는 것이 관례이지만 일단 바뀌고 나면 대통령 임기중에는 큰 변동이 없다. 그리고 미국의회의 권한이 강대하다 하지만 일상적 업무에 관하여 행정부에 간섭하는 범위는 극히 제한되어 있다.

일본의 내각책임제 하에서는 장관은 정치적 형편에 따라 빈번히 바뀌지만 그것이 국가 행정에 미치는 악영향을 줄이기 위하여 사무차관 제도를 두고 있고 사무차관이 이끄는 일본의 탄탄한 직업공무원제가 사실상 일본의 국가경영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행정의 안정과 능률을 확보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우선 대통령이 인사에 신중을 기해야 하고 부득이 장관을 바꿀 때에는 해당부처의 직무의 안정과 능률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고 특히 고급공무원의 자질향상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한편 차관의 위치와 역할을 재검토하여 사무차관의 성격을 닮아가도록 하는 한편 직업공무원제도를 더욱 튼튼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둘째의 문제는 정책수립과 예산편성에 있어서 이른바 인기주의(populism)를 배제하는 것이다. 이 점에 관해 작년 11월 OECD가 주최한 후진국 경제개발에 관한 회의에 참석했던 일이 생각난다. 브라질의 개발경험을 보고한 재규어 리베 씨는 많은 후진국이 경제개발에 성공하지 못하는 궁극의 이유는 개발전략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 전략을 실행하는 데에 필요한 사회적 이성(public rationality)의 결여에 있다고 역설하였다. 그에 의하면 대중들은 노동생산성을 훨씬 초과하는 임금 상승을 요구하고, 정치인들은 국가 재정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복지정책을 요구하는데 그를 수용한 인기주의정책은 결국 브라질 경제를 고율 인플레, 경제침체, 자본과 경영인의 해외도피로 몰아갔고, 거기에서 유래한 경제파탄, 정치불안은 다시 인기주의의 온상이 되곤 하였다는 것이다. 때문에 개도국 경제개발을 위한 "우리 세대의 최대 과제는 민주주의와 사회적 합리주의를 양립시키는 일이다." 라고 말한 그의 결론은 몹시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물론 우리나라 사정은 남미와는 다르지만 불합리한 정치적 간섭때문에 경제정책과 운영이 왜곡되고 있다는 것은 위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고 우리나라에서도 올바른 정책을 몰라서가 아니라 사회적 합리주의가 통하지 않기 때문에 경제운용이 왜곡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자면 무엇보다도 정부 지도자의 확고한 경륜과 리더십이 중요하다. 한편 지식인과 매스컴의 사회교육 활동이 절실히 요청된다.

경제활력은 어디에서 오는가?1)

정치적 사회적 역경 속에서 그리고 급변하는 국제 환경 속에서 지금 우리기업들은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도전을 받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업들은 이 시련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안간힘을 다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들의 자구노력은 계속 될 것이다. 바로 이 점이 변화에 적응력을 발휘하는 시장경제체제의 원동력이자 강점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러한 적응노력을 지원하는 기업환경 정비가 병행하고 있냐 하는 것이다. 정부는 전환기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경제의 활력을 회복하기 위하여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또 수많은 정책제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면 경제활력은 필경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한마디로 기업이 열심히 뛸 수 있는 기업환경에서 온다고 할 수 있다. 기업의 활력이 곧 경제의 활력이고 보면 이것은 너무나 자명한 이치이지만 풀어야 할 문제가 너무 많다 보면 당면과제의 초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을 잊어 버리기 쉽다.

그런데 "한국과 같이 사업하기 힘든 나라는 없다"라는 탄식의 소리가 국내외에서 들려온다. 물론 일본, 홍콩, 싱가포르, 대만과 비교해서 하는 말이다. 왜 그럴까? 기업들이 바라는 환경이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 단적으로 말하면 사업하기 쉬운 환경이라 하겠는데 좀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몇 가지 조건을 들 수 있다.

첫째로 기업은 가급적 자유로운 환경을 요구한다. 정부의 과도한 간섭과 규제와 불합리한 정책이 지배하는 곳에서는 지하경제가 발달하든가 아니면 기업가의 기능인 '창조적 혁신'의 노력이 위축된다. 대만의 인구는 우리의 반밖에 되지 않으나 무역에 참가하는 기업수는 우리의 2배 이상이 된다. 이 차이는 여러 가지로 설명될 수 있겠는데 그 중의 하나로 대만에서는 기업하기가 보다 용이하고 자유롭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하면 틀림이 없다. 수많은 기업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일어서기도 하고 쓰러지기도 하는 가운데 20여 개의 가전제품과 잡화 등에서 세계 제일의 수출국이 된 것이 아니겠는가. 현대국가에 있어서 환경, 위생, 안전 등에 관한 정부의 규제가 많아지는 경향이 있는 것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시장경제의 기능과 능률을 가로막는 불필요한 규제가 많은 것이 문제이다.

둘째로 기업은 믿는 곳이 있어야 한다. 정부를 믿을 수 있어야 하고 특히 법을 믿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정치적 편의 때문에 법이 사문화(선거법, 정치자금법 등등)되고 있는가 하면 합법적인 것도 여론재판에 밀려 행정적 응징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법의 기강이 서지 않으면 기업은 행동의 기준을 잡기 어렵고 정부와 장래를 믿을 수 없게 된다. 예컨대 탈세방지를 위한 세무사찰을 행정적 상벌의 수단으로 남용하면 정부에게 잘 보이면 탈세도 용인되고, 잘못 보이면 합법도 안전하지 못하다는 인상을 기업에게 주게 된다. 시정해야 할 일이 있으면 법을 고쳐서 바로잡도록 할것이지 법에 저촉되지 않는 일을 행정력으로 탄압하면 기업은 믿을 곳이 없어진다. 그래서 법치주의는 자유경제체제의 근간이 되는 것이다.

셋째로 기업은 정책의 일관성과 안정성을 원한다. 기업의 세계에는 거미줄 같은 거래질서가 있다. 어느날 갑자기 은행이 고객들의 돈줄을 끊어버리면 기업들의 낭패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 영향은 거미줄 전체에 파급된다. 당국자들은 이 사실을 유의치 않고 붓끝 하나로 쉽게 정책을 선회하지만, 그것은 기업경영 최대의 적인 '불확실성'의 원인이 된다. 정부가 사태변화에 따라 정책을 변경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정부 스스로가 문제를 만들어 놓고 정치적, 행정적 편의 때문에 정책을 급선회하는 일은 힘써 피해야 한다. 지나간 경험에서 얻는 교훈은 급격한 정책선회를 필요로 하지 않도록 평소에 건전한 거시정책의 테두리를 세워 놓고 그것이 무너지지 않도록 굳건히 지켜 나가는 것이 최상의 정책이라는 것이다.

만약 우리 당국자들이 이 세 가지 점을 염두에 두고 자기 소관업무의 내용을 면밀히 살펴본다면 이 나라에서 기업하기 힘드는 이유를 찾아내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교통난과 수송난은 말할 것도 없고 현실에 맞지 않는 법령과 규제, 무리한 가격통제, 불필요한 행정절차, 고위관리자의 빈번한 교체, 과도한 경제력 집중 등은 몇 가지 예에 불과하다. 정부에 비교적 오랫동안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자기도 못한 일들을 후진들에게 강요하는 일이 부끄럽기 짝이 없다. 그러나 공직자들이 기업이 힘들어 하는 사정들을 적극적으로 찾아내서 그것들을 조속히 풀어 주는 일들을 계속한다면 우리 경제는 틀림없이 활력을 회복하고 또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에는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하물며 지금과 같은 전환의 시기에는 기업의 자기조정과 적응을 쉽게 하기 위한 환경정비가 모든 문제 해결의 초점이 된다.

제조업이 설 땅은 어디인가?

우리의 제조업은 일반적으로 국제경쟁력을 잃고 있다. 국제경쟁력은 환율을 매개로 하여 측정되는 것이니 만큼 환율의 적정여부부터 따져 보아야 할 일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우리 제조업이 국제비교우위와 국제분업에서 설 땅을 잃어가고 있다는 데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우리의 수출 주종상품인 섬유, 신발, 전자제품 등 노동집약적 산업들은 이미 동남아제국과 중국에게 시장을 잃어가고 있는 반면에 우리의 현재의 기술, 자본, 경영능력으로 고화질 TV, 자동차, 컴퓨터와 같은 첨단기술제품 분야에서 선진국과 경쟁할 수 있으리라는 전망은 그다지 밝지 않다. 그러면 우리의 설 땅은 어디인가?

하기야 우리가 부단히 기술혁신을 계속하여 전통적인 수출상품을 고급화하면 선진국 시장에서 우리의 몫을 차지할 여지는 있다. 한동안 신발, 완구, 의류 등의 바이어들이 동남아시아로 몰려갔다가 한국제품의 비교적 우월성을 재인식하고 한국으로 되돌아온 일도 있었지만 우리가 소량 다품종주의로 품질을 고급화하면 선진국의 시장을 유지할 수 있는 여지는 아직도 있다.

특히 다행인 것은 우리 재래제품의 신시장이 눈앞에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중국, 동구, 유러시아, 베트남 등은 물론 북한도 우리 상품의 잠재적 시장으로 부상되고 있는 만큼 이러한 후진지역에 우리의 재래상품, 특히 발전설비, 수송장비, 건설장비 등 중공업 제품을 수출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부단한 기술개량과 품질개선을 하고 말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전망만으로 우리 제조업의 설 땅이 확실해진다고 할 수는 없다. 필자가 보기에는 아무래도 부품 제조업에서 우리의 돌파구와 설 땅을 찾아야 할 것 같다. 먼저 우리가 지향하는 선진국의 첨단기술제품의 특징이 무엇인지부터 생각해 보자. 그것은 한마디로 사용하는 부품의 수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얼마나 많은 부품을 사용하는 물건을 만들어 내느냐 하는 것이 한 나라의 공업수준을 평가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현재 2∼3만 개의 부품을 조립하여 선박, 자동차, 컬러 TV 등을 생산하고 있지만, 일본은 약 10여 만 개의 부품을 조립하는 제품(중·대형 컴퓨터 등)을 생산하고 있고, 미국의 경우에는 아폴로 계획에 무려 30만 개 이상의 부품이 동원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만약 우리가 당초부터 첨단적인 완제품 생산에 뛰어들면, 그 엄청난 부품들을 어떻게 조달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적어도 초기에는 대부분을 외국에서 수입할 수밖에 없을 터인데, 그렇게 되면 현재의 우리 공업구조의 최대 취약점인 중간재의 수입의존을 더욱 심각하게 만들 것이다. 표면으로는 국산같이 보이지만 그 속에는 일제 부품이 만재되어 있는 전자제품이나 카메라의 경우처럼 대일의존의 전철을 밟게 되지 않을까 우려되는 것이다. 먼저 부품부터 개발하여 그것을 선진국의 각종 첨단제품 생산에 공급하고, 부품생산이 어느 정도 성숙했을 때 완제품 생산으로 넘어가는 것이 순서가 아닌가 한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수입이 완전히 개방된 상태 하에서 완제품이 쏟아져 들어오면 수입액 전액이 외화유출로 귀착되지만, 국내에서 부품을 수입하여 완제품을 생산하면 외화유출의 일부라도 건질 수 있고 또 개도국에 수출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완제품 수입보다 가령 국신화율 10%의 국내조립이 보다 바람직한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인데, 같은 10%의 국산화율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완제품으로 만들어 파는 것과 부품으로 만들어 파는 것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첫째로 완제품 생산의 경우에는 어셈블리 시설을 위해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지만, 부품의 경우에는 중소기업형의 비교적 적은 투자로도 생산이 가능한 분야가 많다. 조립시설에 들어가는 막대한 자금을 수많은 중소기업에게 나누어 주면 전체적 국산화율은 오히려 더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가령 100달러에 팔리는 완성재의 10달러를 국산화로 건지는 것보다 100달러의 완성재를 수입하고 20달러의 부품을 만들어 수출하면 외화 가득면에서 후자가 더 유리하다.

둘째로 완제품 생산으로 출발하면 부품개발과 국산화가 늦어지리라고 믿을 만한 이유가 있다. 가격보다 질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첨단기술제품의 경우에는 설사 부품의 거의 전부를 외산으로 채웠다 하더라도 'Made in Korea'는 아무래도 국내외에서 차별대우를 받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국내 생산자가 이 약점을 극복하려고 하면 할수록 품질유지를 위해 국산 부품의 사용을 꺼려하고 외국 부품을 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또 요행히 국내에서 완제품에서 재미를 보게 되면 부품 국산화에 의한 원가절감의 필요성은 그만큼 적어지고 따라서 부품개발의 열의는 적어질 것이다.

반면에 중소기업을 주축으로 하는 부품생산과 수출에 주력하면 몇 가지 이점이 있다. 첫째로 표준적인 양질의 부품을 생산한다면 그것은 세계 어디서나 팔 수 있고 수입규제나 통상마찰을 일으킬 소지가 비교적 적다. 부품시장을 뚫고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하지만 그것은 어느 상품의 경우에나 마찬가지고, 또 그럴수록 중소기업에 의한 소단위의 침투노력이 위험부담을 적게 한다. 우리 인력의 우수성을 활용하여 세계에서 제일가는 부품 몇 가지만 만들어내도 우리 국제수지는 크게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가격과 품질면의 경쟁력만 갖추면 일본이나 EC가 제아무리 수입벽을 두텁게 쌓는다 하더라도 그들 역시 완제품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만큼 우리의 값싸고 우수한 부품을 끝까지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둘째로 그것은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기술·자본면에서 부담이 훨씬 적다. 만약 재벌기업들이 너도나도 경쟁적으로 대형 완제품생산에 뛰어든다면 기술 문제는 고사하고 그 막대한 자금부담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그럴 바에야 차라리 외국의 기업을 불러들여 완제품을 생산케 하고 국내기업들이 그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아 부품을 생산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자금, 기술개발, 시장개척의 부담을 적게 하는 길이 될 것이다. 어쨌든 국제수지 개선을 위해 부품 국산화가 시급한 이 마당에서 또다시 부품의 해외의존을 심화하는 일은 피해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도 부품공업은 우리 제조업이 갈 길이다.

제조업 설 땅을 확보하기 위하여 부품공업의 진흥이 절대요건이라면 정부는 파격적인 진흥책을 강구할 만도 하다. 출보조라는 외국의 지탄을 피해 가면서 부품생산의 창업과 투자를 촉진하는 세제, 금융상의 조치, 체계적인 기술지도, 직접투자의 유치, 부품에 관한 기술 및 판로 등에 관한 정보수집과 전달, 유망한 부품종류의 선정, 각종 부품 전시회의 개최 등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된다. 우선은 활기를 잃어가는 제조업의 설 땅이 바로 여기에 있다는 공동의 인식이 필요하다.

기업에 대한 시대적 요청은 무엇인가?

기업환경이 열악하여 기업들이 고난에 빠져 있는 이때에 기업에 대한 사회의 평가는 가혹하다. 이 사회 이 시대가 기업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기업인이 자본가 또는 경영자인 동시에 사회의 지도자가 되어 달라는 요청인것 같다. 기업은 고용, 생산을 통하여 소득을 창출하는 주체로서 그 사회적 기능과 책임이 막중한데 비하여 기업가에 대한 인식과 평가가 너그럽지 못한 것은 기업가를 사회의 지도자라고 보는 시각에서 오는 것 같다. 사람이 남을 지도자라고 볼때 지도자는 자기가 못하는 일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자기보다 훌륭한 사람이어야 하고, 자기를 구해 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자기에게 없는 것을 지도자에게 구하다 보니 구하지 못하면 그것은 내탓이 아니라 지도자의 탓이라는 불만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보통사람보다 더 엄격하고 불리한(?) 기준으로 평가되는 것이 지도자의 운명이다.

지금 지도자로서의 기업인들은 매우 어려운 시련에 직면해 있다. 기업의 외부환경이 열악하다는 것은 전술한 바와 같거니와 기업 내부의 환경 또한 쉽지가 않다. 그 중에서도 작금의 노동공세는 갑작이 당하는 경험이니 만큼 대처하기에 어려움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도기의 시련은 기업인들의 리더십으로 돌파하는 외에 별다른 방법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기업의 외부 환경을 개선하는 데에는 정부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기업인 자체의 노력 또한 중요하다. 정부정책이나 행정관습을 고쳐 나가자면 기업단체들이 활발하게 여론을 일으키고 관계법령을 세밀하게 연구검토하여 법령의 개폐는 물론 행정개혁까지도 구체적으로 정부와 국회에 건의할 수 있어야 한다.

한편 기업에 대한 사회적인식을 바로잡자면 먼저 기업 스스로가 기업의 위상을 가다듬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솔선수범하는 지도력을 보여야 한다. 이 점에 관련하여 세계 최대의 가전기업 집단임을 자랑하는 일본의 마쯔시다 전기의 전 회장인 고 宋本幸之助 경영관은 일본뿐만 아니라 서구사회에서도 종종 화제가 된다. 지난달 일본의 유명한 잡지 문예춘추가 선정한 전후 일본의 10대 경제인의 한사람으로 뽑혔던 그는 생존시 그의 경영철학이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고 한다. 즉 철학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 나에게는 세 가지 신조가 있다. 기업인의 사명은 사람들에게 좋은 물건을 값싸게 공급하는 일인데 그를 위하여는 첫째로 한 가지 사업에 전념할 것, 둘째는 탈세를 하지 말 것, 셋째는 부동산 투기에 손대지 말 것 등이 그것이다 라고. 과연 우리 모두가 깊이 음미해야 할 말이 아니겠는가.

기업의 내부환경 개선에 있어서는 사람을 어떻게 다루느냐 하는 것이 문제의 초점인데, 요즘 근로자들의 사고와 태도가 크게 달라진 것을 개탄하는 소리가 높다. 필자는 재작년 노사분규가 극에 달했던 무렵 하도 침울하고 답답하여 전후 일본 노사관계의 변천을 조사해 본 일이 있는데, 당시 고뇌에 빠진 경영자들에게 다소라도 참고가 되고 위안이 될까 하여 어느 최고경영자 연수회에서 이를 보고한 일이 있다. 그때 필자가 결론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1)전후 일본의 노사관계는 우리의 경우보다 더 험악하였고 그것은 좌익의 사회주의 정치운동에 의하여 주도되었다. (2)과격한 노조운동은 60년대 초까지 계속되었고 시회적인 비판과 노조 자체의 반성으로 오늘과 같은 민주적 노조로 통합되는 데에는 40년이 걸렸다. (3)그러나 그토록 진통을 겪는 동안 노조도 자각하여 크게 달라졌고 사용자도 반성하여 크게 달라졌다. 양자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알아보면 시대의 흐름을 읽을 수 있고 우리의 갈 길을 짐작할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었다.

이제는 근로자를 단순한 고용인으로 생각하여 일을 시키고 돈만 주면 된다는 생각은 통용되지 않는다. 근로자는 개인, 가정인, 사회인으로서 인격의 주체이다. 그들의 직장은 한 인격이 살아가는 현장이고 거기에서 그들은 남들과 희노애락을 나누면서 생활의 밑천을 버는 동시에 자신의 자질과 능력을 발휘하여 남에게 인정받는 보람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격의 소망을 개발하고 지원하는 시야에서 인사관리와 노사관계를 정립하지 않으면 원만한 노사관계를 유지하기 어렵고 시장경쟁에서 기업이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가 온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노사관은 한마디로 인본주의 또는 공생주의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현실이 말과 같이 쉽지는 않다. 경영자는 양과 같은 근로자들만 상대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현실인 즉 일부 근로자들은 너무 이기적이고, 사리가 통하지 않고, 무례하고, 설득이 듣지 않는 경우가 많아 진보적인 경영자도 절망에 빠지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경영자에게 위로와 격려가 될 만 한 사실이 있다. 즉 그토록 다루기 힘드는 근로자들에게는 또 다른 면이 있는 법이고 그에게 내재하는 어떠한 잠재력이 분출의 기회를 얻지 못해 잠자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무릇 인간은 위대한 잠재력의 소유자이고 평균적으로 그 잠재력의 10%밖에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일이 바로 지도자의 역할이 아니겠는가.

맺음말

우리의 난국은 총체적이라 하고 풀어야 할 문제는 너무나 많다. 문제가 하도 많고 어지럽기에 각 분야의 문제의 초점이 어디에 있고 근본적 해결책이 무엇인지일단 나의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별로 심통한 결론은 아니지만 위에서 말한 바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정치·사회문제를 단시일 내에 해결할 수 없는 것이라면 정치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는 길을 찾아야 한다. 국정의 최고책임자가 행정의 안정과 능률을 확보하고, 인민주의(populism)을 물리치는 확고한 경륜과 지도력을 발휘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데 여기에는 지식계급과 매스컴의 계도 활동이 따라야 한다. 오늘의 경제문제의 기본과제는 경제의 활력을 회복하기 위하여 기업환경을 정비하는 일이다. 이것 또한 정부의 결단, 특히 공무원들의 분발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그러나 기업계의 자구적인 노력도 중요하다. 산업정책의 기본과제는 경쟁력을 상실한 제조업의 국제적 비교우위를 부품공업에서 찾아야 하고 그를 위하여 적극적인 진흥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끝으로 기업인에 대한 시대적 요청은 사회적 책임과 리더십에 관한 것이다. 우리 기업인들은 지난 40년 동안 이 나라 경제를 건설한 주역들이다. 앞으로도 기업가정신과 리더십을 발휘하여 오늘의 고난을 이겨 나갈 것으로 우리는 믿는 것이다.


1) 본 항은 『나라경제』1992년 2월호에 전재되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