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국제화 시대의 기업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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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2년 7월 17일 대한상공회의소주최  

17회 최고경영자대학 하계세미나에서 강연  


 

때는 바야흐로 정보화 시대, 민주화 시대, 국제화 시대라 한다. 이 말들이 의미하는 세계경제의 변화상은 널리 알려져 있으므로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겠으나 특히 기업경영에 몇 가지 관련된 사항들은 간략히 지적해 두고자 한다.

먼저 정보화 시대는 교통·통신상의 기술적 혁명의 결과인데 21세기 초에는 뉴욕과 서울을 3∼4시간에 날으는 항공기가 등장할 것이라고 한다. 통신에 있어서는 이제 세계 어느 구석에서도 한국으로 직통전화를 걸 수 있고, 전화선을 이용하여 지구상 어느 곳에나 FAX 문서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컴퓨터에 의한 네트워크에 의하여 가입자간에 순간적, 동시적인 통신이 가능해지고 있다. 통신위성의 출현으로 라디오, TV 등의 송수신이 점점 광역화하고 오디오, 카세트의 보급에 의하여 유선, 무선의 매체가 없더라도 정보전달이 크게 용이해졌다. 그래서 이란의 호메이니는 파리에 앉아서 오디오 카세트로 자기의 메시지를 이란의 혁명조직 및 국민들에게 전달하는데 별로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이러한 통신혁명은 독재정권의 정보독점과 국내에 대한 외부정보 차단을 점점 어렵게 만들고 있어, 높아지는 국민들의 민주적 각성 앞에서 독재정권을 유지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따라서 정보화 시대는 민주화 시대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교통통신의 발달과 정보화는 국가간의 경제교류를 확대하고 경제 각 방면에서 국제화를 촉진하게 된다. 국제화가 진전될수록 국경의 의미가 모호해지고 하나의 세계 혹은 글로벌 빌리지의 개념이 부각된다. 일례로 뉴욕, 런던, 동경, 싱가포르 증권시장은 이미 지리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독립된 시장이 아니라 시시각각으로 정보가 교환되고 주가가 거의 동시적으로 결정되는 하나의 시장권으로 통합되어 간다. 이러한 사정은 곡물, 석유, 금과 같은 상품거래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한편 정보화는 각국의 산업구조에 크나큰 변혁을 가져오고 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미 미국에서는 정보관련 산업의 산출액이 GNP의 70%를 차지하고 있고 일본의 경우에도 50%를 넘어서고 있다. 지나간 논문에서 지적한 첨단기술 10대 산업들은 생산, 유통, 소비 각 방면에서 다양한 새로운 니즈를 창출하고 그를 충족시키기 위한 새로운 상품과 업종들이 수없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일례로 정보관련 산업은 다음의 세 가지 분야로 대별되지만 각 분야에서 관련 업종의 가지들은 또 작은가지를 쳐서 상품과 기술과 기업들은 무한히 확산되어 나갈 것이다.

  1. 전기통신산업 - 회선 제공, 전화, 텔렉스, 온라인 정보처리 등,
  2. 정보 관련기기 산업 - 컴퓨터, 전화기, FAX, 교환기
  3. 정보 서비스산업 -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 시스템 매니지먼트, 머신 타임, 데이터 베이스, 컨설팅, 트레이닝, 네트워킹 등 이러한 첨단 업종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하여 지금 기업간·국가간에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국제분업의 양상도 크게 달라지고 있다. 국제적 비교우위면에서 중진국의 노동집약적인 경공업은 후진국으로, 선진국의 중, 장물 (철강, 조선 등)은 중진국으로 생산의 중심이 옮겨지고 있고 선진국은 고부가가치 첨단산업과 국제적 서비스 분야로 특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산업간 분업보다 낮은 차원에서 세분된 기업간 분업이 확대되고 있는 것도 우리의 주목을 끈다. 첫째의 분업형태는 '제품간분업'이라 할수 있는 것인데 예를 들면 일본의 가전 메이커들이 해외에서 라디오, 테이프 레코더 같은 저부가가치품을 생산하고 국내에서는 CD Player 같은 고부가가치품을 생산하는 따위이다. 둘째는 '공정간 분업'인데 예를 들어 전자산업 분야에서 선진국기업들이 고도의 기술제품을 생산하여 개도국으로 보내 거기에서 조립케 하는 분업형태이다. 셋째로 자동차의 경우와 같이 판매시장에 맞추어 현지생산을 하는 '시장간 분업'의 경우도 있다. 이러한 분업화는 기업경영전략의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고 교역이 확대됨에 따라 각국의 경제성장이 촉진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는 반면 국가간의 상호의존성이 높아짐에 따라 국가간에 이해 관계의 층돌과 마찰이 발생하는 부정적 측면도 있다. 여기에서 국제관계상의 두 가지 대립적인 시각이 생겨난다. 국제화 개방화의 견지에서는 자유무역주의와 글로벌리즘이 강조되는 반면에 국가 또는 지역의 이익을 수호하는 견지에서는 보호주의 또는 지역주의 (Regionalism)를 받아들인다. 전자의 대표적인 예는 GATT의 우루과이 라운드와 UN의 지구환경개선 운동에서 볼 수 있고, 후자의 예는 EC 통합 운동, 북미주 자유무역지대(NAFTA), 아세안 자유무역지대(AFTA) 등의 지역화 운동에서 볼 수 있다. 한편 국가단위로는 선진국들이 자유무역주의를 가장한 보호주의정책을 구사하면서 중진국에 대하여 시장개방과 자유화를 강요하고 있는 터이다.

세계주의이든 지역주의이든 그것들이 기업경영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지난 6월 리오에서 개최된 UN 환경개발정상회의에서는 이른바 '리오 선언'과 그것의 실천강령인 '아젠다 21'이 채택되었다. 우리나라도 두 개 협약에 서명하였는데 그 협약을 이행하자면 우리의 경제 각 방면에 적지 않은 영향이 있을 것 같다. 생산방식을 고쳐 나가고 철저한 환경보호 조치를 취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인류의 생존을 위해 부득이 한 일인만큼 그에 적응해 나가야 한다. 이러한 세계적 차원의 환경보호 조치가 다른 변화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니즈와 투자기회를 창출한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공해방지시설의 시장이 확대될 것이다.

지역적 자유무역지대의 등장 또한 우리 기업경영에 새로운 도전이 된다. 역내국가끼리는 자유무역의 이점을 누리되 역외 국가에 대하여는 '상대방이 우리를 대접하는 대로 우리도 상대방을 대접하겠다'는 이른바 상호주의의 원칙이 적용될 것이다. 역외의 기업들은 자유무역지대내에 현지기업을 세워 그를 역내 기업화하여 차별대우를 회피하려 하지만, 자국에서 원자재를 가져와 현지생산 원자재를 혼합하여 제품을 만들어 제3국에 수출할 경우 '역내 자재사용 비율'이 문제가 된다. 즉 역내 자재사용 비율이 일정 수준에 미달되면 역내 제품으로 간주하지 않고 역내 수입국에서 관세를 부과한다. 지금 미국, 캐나다, 멕시코 사이에 자유무역 협정안을 교섭중인데 미국의회는 70%의 높은 비율을 주장하고 있다. 하여튼 이러한 사정은 역내 보호주의의 일면인데 이에 대하여 역외국은 새로운 수출전략을 세울 수밖에 없다.

이상과 같은 국제정세하에서 선진국기업들은 여러 가지 경영전략을 추진중에 있는데, 특히 우리가 주목할 한 것이 두 가지 있다. 첫째는 경영의 국제화 경향이다. 즉 그들은 판매량을 극대화하고 비용을 극소화하는 견지에서 경영자원을 국제적으로 배분한다. 생산거점을 전 세계에 배치하는가 하면, OEM에 의한 구입, 판매, 조달 등 유통부문도 국제적으로 배치하고 해외에 연구개발기지를 설치하기도 한다. 그들의 경영지도에는 이미 국경이 없다.

둘째로 경영구조 개선(Corporate Restructuring)의 추세이다. 미국의 경우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전반까지는 비관련 산업의 기업을 다수 인수하여 기업집단(Conglomerate)을 형성하는 일이 유행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다각화는 효율성과 수익성에 역행하여 주력 업종의 자금압박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가져왔고 급격한 국제시장 변화에 신속히 대처해 나가는 데 큰 부담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1970년대 후반부터는 이른바 기업재편(Corporate Restructuring) 선풍이 불게 된다. 즉 자회사와 사업일부를 매각하고 모회사가 보유하는 자회사 주식을 모회사 주주에게 배분(Spin - Off)하여 자회사를 분리 독립시키고, 주식의 판매수입을 주력기업에 투입하는 재편작업이 진행되었다. Federal Trade Commission Report에 의하면 1975∼1989년 간의 흡수-통합(M&A)의 40% 이상이 합병이 (Conglomerate)아니라 분화(Deglomerate)를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한편 최근 일본 기업집단의 다각화 추세를 보더라도 관련산업으로의 다각화가 대종을 이루고 있고 본업과 관련 없는 다각화는 5.8%에 불과하다는 조사보고가 있다.

그러면 위에서 개관한 정보화·국제화의 물결이 우리 기업의 경영전략에 무엇을 시사하는 것일까 물론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개개 기업들의 사정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반적인 사항을 지적해 보기로 한다.

   1. 기업전략이 국내시장만을 겨냥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세계시장을 겨냥하는 상품을 생산하지 않으면 개방된 국내시장에 유입되는 외국제품과의 경쟁에서 견디기 힘들 것이다. 반면에 세계시장을 겨냥하는 기업전략에 성공하면 크나큰 기업성과를 올릴 수 있는 희망적 측면도 있다. 가령 세계에서 제일가는 부품 하나만 만들어 내도 세계시장에서 큰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 선진국 대기업의 세계적 경영전략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우리 기업들도 우리 나름의 세계경영전략이 필요한 때가 온 것이다.

   2. 사회·경제적 변화이건 기술적 변화이건, 변화에는 반드시 새로운 니즈가 따르게 된다는 것이 경영자의 기본적인 시각이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정보화시대의 도래는 그와 관련된 다양한 새로운 니즈와 상품수요를 창출한다. 정보혁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신상품의 개발과 시장확대의 파급은 거의 끝이 없을 것 같다. 기술개발이 새로운 니즈를 창출하고 새로운 니즈는 새로운 상품과 기술을 유발하는 상호작용이 끝없이 진행될 것이다. 위에서 지구환경 문제에 대해 언급했지만 거기에서도 여러 가지 새로운 기술과 설비를 필요로 하고 그것은 새로운 투자와 상품개발의 기회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더욱이 그러한 새로운 상품생산은 국제분업을 필요로 하고 따라서 우리 기업들이 거기에 끼어들 수 있는 자리는 반드시 있을 것이다. 요는 그러한 새로운 니즈를 발견하고 그것을 기업화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것은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필요로 한다. 정보화시대이니 만큼 광범위한 정보와 지식을 수집하여 기업의 새로운 활로를 찾아보는 것이다. 두들기면 반드시 문은 열릴 것이다.

   3. 정보화 시대에는 사람들의 기호와 취미가 빨리 변화하고 다양화된다. 이것은 고급의 상품일수록 그러하다. 이러한 현실에 적응하자면 소량 다품종주의의 생산이 불가피하게 될 것이다. 단순노동에 의한 대중품의 대량생산 방식은 이미 다른 후진국에 넘겨줄 수밖에 없는 단계에 와 있는 것이다. 한편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산업간의 분업뿐만 아니라 기업간 분업, 제품간 분업, 공정간 분업 등이 확대 추세에 있는 만큼 변화하는 국제비교우위를 감안하여 외국기업과의 분업생산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그 과정에서 기술을 익히고 미래의 시장을 개척할 수 있을 것이다.

   4. 분업화 추세와 관련하여 선진국의 첨단제품 생산에 부품공급의 길을 트는것이다. 첨단제품일수록 부품을 많이 사용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예컨대 자동차, 컬러 텔레비전 제조에는 2∼3만 개의 부품이 들어가고 중형 컴퓨터에는 약 10만개의 부품이 들어가며 미국의 대형 컴퓨터나 제트 엔진에는 30만 개의 부품이 필요하다고 한다. 우리는 과거에 완성재 조립에 치중한 나머지 부품의 수입 의존도를 크게 만든 약점을 지니고 있고 그것이 무역수지 적자의 가장 큰 요인이되고 있다. 첨단제품 완성재 생산을 위해 거액의 투자를 하느니 보다 같은 자금을 다수 부품생산에 분산 투자하면 기술흡수와 마켓팅에도 비교적 유리하지 않을까 한다. 여러 기회에 필자는 이점을 강조해 왔다.

   5. 선진국으로부터 기술을 이전받고 세계 첨단산업에서 한 자리를 잡으려면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는 부족한 만큼, 밖으로 나가 적극적으로 필요한 파트너를 찾아야 한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의 외국투자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평이 있는데 이것은 국제화, 개방화 시대에 역행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들은 상호이익과 신의의 원칙을 지켜, 선량한 외국투자가들을 실망시키지 말아야 하며, 정부는 투자분위기의 개선을 위해 적극적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6. 우리 기업들은 자체기술 능력을 배양해야 하겠는데 그러자면 기업내에 창조의 분위기가 충만해 있어야 한다. 창조적 혁신은 반드시 천재나 전문가에 의해 계획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른 곳에서도 말했거니와 20세기중에 이루어진 58건의 발명 - 페니실린에서 볼펜에 이르기 까지 - 을 조사해 보면, 그 중 43건이 엉뚱한 환경에서 엉뚱한 사람들에 의하여 발명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P170 참조) 요컨대 기업구성원들이 누구라도 창조적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하고 창조지향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를 위하여 분임토의, QC 활동, 제안포상제도 등이 바람직한데, 이와 동시에 변화와 혁신에 대한 조직 내의 저항요소를 과감히 제거하는 일도 중요하다. 특히 상층부의 무사안일과 현상유지 성향을 타파해야 한다.

   7. 정보화, 국제화 시대에 다각경영을 어떻게 볼 것이냐 하는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소위 '문어발 경영'이 문제시되어 왔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미국서는 EC 통합에 자극되어 한때 문어발식 비관련 다각경영을 위한 흡수.합병이 유행했지만 70년대 중반부터는 관련업종 중심의 다각화로 방향을 바꾼 것은 우리에게 교훈이 된다. 관련업종 중심의 다각화에는 이른바 범위의 경제성(Economies of Scope)이 따르는 이점이 있다. 다시 말하면 관련업종을 다각경영할 때에는 관련기업들이 경영자원을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는 범위가 확대한다. 예컨대 그룹 내의 기업들이 정보, 기술, 거래선 등을 공동으로 이용하면 그만큼 비용이 절감되고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관련업종으로의 다각화는 경영능률을 높이는한 배척할 이유가 없다. 반면에 그룹 내 한 기업의 손실을 다른 기업의 이익으로 채워줌으로써 그룹 전체의 존립을 유지하려는 따위의 다각화는 국민경제 전체의 견지에서 바람직하지가 않다. 그룹 내의 각 기업은 초창기 이후에는 독립적으로 채산을 맞추어야 하고 못 맞추면 그룹에서 제거하는 것이 경영합리화의 길이다.

   8. 국제화 시대는 전문경영인의 시대가 된다. 전문지식과 기량이 없으면 정보화 시대의 국제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대기업에 관한한 창업자 경영 혹은 소유자 경영에는 한계가 있다. 총수 개인의 신속한 결정이나 관리방식에 능률상의 이점이 없는 것은 아니나 기업환경이 복잡해지고 기술적.사회적 변화가 빨라지고 민주화의 요구가 더해지는 마당에서는 독재적 경영은 기업 구성원들의 창조의 정신과 능동적 대응자세를 말살하여 결국은 기업의 침체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소유주가 아니라 전문경영인이 지배하는 일본의 기업에서는 Top Down이 아니라 Down Up의 의사결정 방식이 기업 성공의 비결로 지목되고 있다는 점을 배울 필요가 있다.

   9. 민주화의 과정에서 경영자들이 노사관계에 노심하고 있는데 결국 여기에도 변화가 불가피하고 변화의 방향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제 노동자에게 일만 시키고 돈만 주면 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그들은 한 인격체로서 직장에서 자기의 능력을 발휘하여 남과 같이 인정받고, 풍요한 생활을 누리고자 함에 있어서 소유주나 경영자와 조금도 다를 바 없다. 경영자는 종업원들이 독립된 인격으로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을 도우는 시각에서 인사관리를 하지 않으면 그들의 근면과 창의를 끌어 낼 수가 없다. 하기야 이기적이고 사리가 통하지 않는 근로자들도 있지만 그것이 그들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이해해야 한다. 그들에게 어떠한 긍지와 동기를 부여하고 그를 뒷받침해 주면 의외로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은 수많은 경영사례에서 입증되고 있다. 예컨대 공생주의 혹은 인본주의의 노사관을 정립할 때가 왔다.

   10. 끝으로 노사일체의 유대감에서 말단근로자의 애사심과 상상력이 한 회사의 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하나의 실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일본전기(NEC)구마모도 공장에서는 컴퓨터 '칩'을 생산하는데 왜 그런지 이 공장에서는 다른 공장에 비하여 불량품률이 높은 것이 문제가 되었다. 사장 이하 전 종업원이 제아무리 노력을 해도 사태가 개선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그 공장의 공원인 18세 소녀가 출근길에 기차길 건널목에서 지나가는 기차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기다리고 있었다. 기차가 질주하니까 땅이 울린다. 그때 그 소녀의 머리 속에 번개처럼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아, 이 진동 때문인지 몰라!" 그는 공장에 도착하자마자 자기의 느낌을 윗사람에게 보고 했고, 드디어 그 보고는 사장에게까지 전달되었다. 결국 회사 간부는 이 진동을 차단하기 위하여 기차 건널목과 공장 사이에 큰 도랑을 파고 거기에 물을 채우기로 결정하였다. 과연 그 후부터 이 공장의 불량률은 표준율 이하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이야기를 『NO라고 할 수 있는 일본』이라는 조그마한 일본 책자에서 읽었다. 이 책은 미국의 일본에 대한 일방적 통상압력에 분개하여, 미국의 무역적자는 그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인데, 미국과 대조적으로 일본의 생산성 경쟁력이 높은 이유를 설명하기 위하여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은 근로자의 태도, 나아가 노사일체의 경영방식을 예로 든 것이다. 이 책자는 미국의회에서 번역 배포되어 한때 물의를 일으키기도 하였지만, 그 시비야 어떻든 우리 자신도 감동하지 않을 수 없는 미담이다. 우리도 그러한 노사관계, 아니 노사가족관계를 실현할 수 없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