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발전과 교육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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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월 15일 전국 공.사립 중.고등교육협의회 강연


네마리 용

20세기 후반 세계사에 특기할 만한 일의 하나는 세계 경제 무대에 '네 마리의 용'이 출현하였다는 사실이다. 즉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과거 30년 간 눈부신 경제발전을 계속하여 신흥공업국(NICs) 혹은 신흥공업경제(NIEs)로 부상하였고, 그 발전의 '비밀'을 캐기 위하여 학계, 언론계에서 많은 연구와 논쟁이 벌어져 왔다. 최근에도 지난해 11월, 파리에 있는 OECD 발전연구센터에서 이 문제가 집중적으로 토의되었고 필자도 논문 발표와 토론에 참가한 일이 있다. 거기에서 거론된 주요 '비밀'은 나라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공통적으로 국민들의 교육수준과 정부의 지도력이 중요한 요인으로 지목되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문맹률이 근소할 뿐 아니라 중등교육이 보급되어 훈련되고 근면한 근로자들이 있었기에 고속성장이 가능했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물론 이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그러한 개발의 역군들을 길러낸 중·고교 교사들의 노고에 비하여 사회적 인식과 처우가 미흡하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할 뿐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아시아의 네 마리 용 중에서 점점 빛을 잃어가고 있고 심지어는 용이 아니라 지렁이라는 모욕적인 말마저 들려온다. 그러한 말을 듣게 된 이유는 우리 경제가 최근에 와서 수출부진, 수입급증, 국제수지 적자 재발, 물가상승, 계층간 갈등, 증권 및 부동산 투기 등의 약점을 드러낸 데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러한 외부의 악평에 현혹될 필요는 없다. 과거에도 외국인들은 곧잘 우리의 위상을 깎아 내리는 말들을 일삼았지만, 결국 우리는 기사회생(기사회생)의 실력을 발휘하여 그들의 얄팍한 관찰을 무색하게 만들지 않았던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조(自嘲)나 자만(自慢)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하여 다시 한번 기사회생의 길을 찾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는 너무나 많고 그 중에는 교육을 통해서만 풀 수 있는 근본문제들이 포함되어 있다. 본고의 목적은 그러한 교육적 과제들에 관하여 교육 전문가가 아닌 경제인의 입장에서 필자의 소박한 의견을 제시해 보는 것이다.

직능이 인생의 기본

먼저 과학기술을 개발하지 않고서는 우리 경제가 제2의 도약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오늘의 일반적 인식이다. 그 방법에 관하여 여러가지 의견들이 제시되었는데 거의 모든 논자들은 정부와 기업이 기술개발과 관련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의당한 주장이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가장 기본적인 해결책은 우리의 교육방식을 고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중등교육의 중점을 대학진학준비에 둘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이 각자의 적성과 취향에 따라 인생을 살아 가는 직업준비에 두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이 점에 관하여는 독일교육제도에서 배울 바가 많은 것 같다. 자세히 살펴보지는 않았지만 독일의 중등교육은 직업교육에 중점을 두고 그를 통하여 - 따라서 실생활을 통하여 - 자연스럽게 민주이념도 가르치고 시민정신도 가르치고 윤리와 도덕을 가르치게 되어 있고, 거꾸로가 아니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그리고 소위 도제제도(apprenticeship)의 전통을 이어받아 장인정신을 고취하는 교육을 하고 있다.

이에 비하여 우리는 직업교육보다 일반교육에 중점을 두어 왔고 또 실생활을 떠난 추상적 이념교육에 치중한 감이 있다. 그러다 보니 이념과 가치가 우리의 행동을 통제하는 생활의식 자체가 되기보다는 공적인 명분론에나 쓰이는 미사여구(美辭麗句)로 전락하고 만 것 같다. 그것은 이념이나 가치를 체험으로 배우지 않고 말로만 배운 탓일 것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는 교육전문가에게 물어보아야 할 일이지만, 경제인의 소박한 생각으로 우선해야 할 일은 현재의 일반고교를 대부분 실업고교로 재편하여 직능주의 교육을 실시하고 그를 통하여, 시민정신을 갖춘 산업 역군들을 배출하는 일이라 여겨진다. 달리 말하면 직업과 생활과 가치관이 삼위일체가 되는 중등교육체제를 창출해 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의 제반 수용태세가 따라 주어야 함은 물론이고, 비근한 예로 학력에 따른 임금격차도 지금보다 훨씬 축소되어야 한다.

고등교육에도 개선할 점이 적지 않다. 현재 대학의 실정을 보면 이공학과의 학습과 연구시설이 빈약하고 교수들은 과중한 강의부담을 안고 좀체로 연구에 종사할 시간적, 물질적 여유가 없다. 그런가 하면 외국에서 학위를 받고 돌아온 유망한 과학자들이 대학이나 연구소의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허송세월을 하는 현상을 보기도 한다. 요즈음 일본이나 독일은 소련과 동구의 배고픈 과학자, 기술자들을 유치하느라고 바쁜데 우리는 귀중한 자신의 고급인력마저 놀리고 있으니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하기야 대학이 연구시설을 장만하고 교수정원을 늘리면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겠는데 재정난에 허덕이는 대학들이 그렇게 할 만한 여유나 능력이 없고 보면 난제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같은 기본문제들을 외면한 채 첨단기술의 찬란한 미래도를 그리고 장기개발계획을 세워 보았자 그것이 어느 정도의 실효성을 거둘지 의문이다. 모름지기 이 나라의 기술개발정책은 우리 학교교육의 실태를 총체적으로 재검토하고 개혁된 교육기능에 보다 큰 역할을 맡기는 방향을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심야에도 대학의 연구실에 불이 꺼지지 않을 때 우리의 과학기술의 기초가 형성되고 우리 경제는 제2의 도약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한편 중·고교 출신의 산업인력이 부족하여 수출에 차질을 빚고 있는 반면에 훈련이 부실한 학사 출신들은 일자리가 없어서 거리를 방황하며 정부와 사회를 원망하고 있는 것도 문제이다. 이 현상도 따지고 보면 직능보다 간판을, 실력보다 학력을, 해머보다 붓대를 숭상하는 우리들의 잘못된 가치관에 뿌리를 박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그릇된 고정관념이 달라져야 발전의 벽을 뚫을 수 있을 터인데 이것 또한 교육에 기대할 수밖에 없다.

논리에 복종해야

다음에 경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각계가 계속 발전하려면 사회적 합리주의를 다 들고 나가야 한다. 앞에서 말한 OECD 회의에서도 남미에서 온 참석자들은 사회적 합리주의(public rationality)의 결여가 경제개발을 가로막는 궁극적 장애요인이라고 설파하였다. 사회적 합리주의가 통하지 않는 곳에서는 인기주의(populism)가 판을 치고 인기주의는 경제파탄과 정치불안, 나아가서 군사독재를 가져왔던 남미제국의 쓰라린 경험에서 그러한 견해가 나온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우리 사회는 남미와는 다르다. 그러나 지금 민주화의 과도기에서 개인적, 집단적 이기주의의 어거지와 떼씀에 눌려 사리가 통하지 않는 세태가 되었고, 그에 영합하는 인기주의가 판을 치고 있는가 하면, 정계와 정부는 물론 사회의 구석구석에 불합리가 성행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독재체제하에서는 명령에 복종하지만 민주체제하에서는 논리와 법률에 복종해야 한다는 진리이다. 물론 복종에 앞서 논리의 흑백을 가리는 일이 말과 같이 쉽지는 않다. 그래서 민주사회에서는 전문지식과 토론이 중요시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내와 관용이 강조된다. 그런데 우리네 교육에는 논리적 토론을 훈련하는 과정이 없다보니 서구인들 처럼 자기의 견해를 논리적 그리고 건설적으로 간결하게 표출하는 능력이 부족하고 따라서 토론을 통하여 어떠한 논리적 귀결이나 합의에 도달한다는 일이 무척 어렵다. 필자는 국제회의에 참석할 때 그리고 국회나 요즈음 유행하는 토론모임을 볼 때마다 이점을 통감한다. 분명히 우리는 민주교육의 일환으로 서구사회처럼 논리적 사고와 표현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다음에 인내와 관용이 중요한데 이 점과 관련하여 윈스턴 처칠의 말이 생각난다. 그는 말하기를 "이 세상의 모든 귀중한 것에는 대가가 있다(다이아몬드는 귀중하기 때문에 값이 비싸다). 자유는 귀중한 것이다. 고로 대가가 있다. 그 대가는 인내와 관용이다 - 라고 한 적이 있다. 즉 자유를 간직하려면 듣기 싫은 주장도 참고 들어야 하고 남의 입장을 관용할 줄 알아야 하며 또 자기 의사에 반하더라도 다수결이면 복종해야 한다는 말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념으로서의 민주주의의 당위성은 소리 높게 떠들어 왔지만 그를 위하여 치러야 할 대가나 책무에 관하여는 그다지 강조하려 하지 않았다. 이제는 전자보다 후자를 강조할 때가 왔다. 우리가 교육자들에게 간곡히 바라는 것은 이제는 민주주의의 아름다운 이상보다는 그에 접근하기 위한 자기노력과 책임에 관하여 청소년들에게 보다 철저한 교육과 훈련이 주어졌으면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사회적 합리주의가 통하는 세상이 되고 민주적 바탕 위에서 경제의 활력이 생겨난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래와 같다는데...

끝으로 우리가 기어이 초극(超克)해야 할 국민성의 약점에 관하여 말하고 싶다. 그것은 우리가 잘 사는 나라의 국민들에 비하여 협력에 뒤진다는 약점이다. 서울에 주재하는 어느 대사가 "한국인들은 모래와 같다(Koreans are sandy)"라고 한 말을 기억한다. 또 어느 일본의 저명인사가 "한국인과 일본인이 1대 1로 대결하면 한국인이 이기지만, 3대 3으로 대결하면 일본인이 이긴다"라고 한 말을 잊을 수 없다. 과연 한국사람의 개개인은 세계의 어느 국민과 비교해도 재능면에서는 뒤떨어지지 않는다. 미국의 저명고등학교나 대학의 우등생의 대부분이 한국사람이라는 것을 보더라도 이 점은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이 모여 팀워크를 이루게 되면 우리는 비협력의 약점을 드러내는 것이다. 일례로 정부 부처간의 횡적연락 및 협조부족은 어떠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반목과 마찰은 어떠하며, 그칠 줄 모르는 정파간의 아귀다툼은 어떠한가? 양보와 타협이 미덕이 아니라 항복같이 여기는 우리네 의식구조에 바로 그 화근이 있는 게 아닐까?

앞으로 세계경제가 발전할수록 기업 간의 협력도가 한 나라 경제의 성패를 좌우하게 된다고 믿을 만한 각별한 이유가 있다. 앞으로 정보화, 첨단기술의 시대가 전개되는데 거기에서는 기업과 기업, 기업과 근로자, 국민과 정부사이의 상호의존 관계가 더욱 심화되고 상호협력이 없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게 된다는 것이 불을 보듯 명료하다. 한 가지 예를 들자. 한 나라의 산업과 기술수준이 고도화하면 할수록 점점 부품의 수가 많아지는 제품의 생산으로 옮겨 가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첨단기술이 가장 발달한 미국에서는 무수한 중소기업과 대기업으로부터 30만 개 이상의 부품을 조달하여 항공기나 아폴로 위성을 만들어 낸다. 한 가지 물건을 만들어 내는 데 무수한 기업들이 참가할 때 그 많은 부품을 사용하는 기업 내부의 팀워크도 중요하지만 그 중의 몇 기업이 납기일을 못 마치면, 모기업은 물론 여타의 수많은 기업들도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수십만 개의 부품을 유기적으로 배합하여 한 가지 물건을 만들어 내는 일이 얼마나 복잡하고, 관련기업들 간의 상호협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지만, 선진국들은 이른바 시스템 매니지먼트라는 경영기법과 함께 기업간의 협조력으로 이 엄청난 일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 경제의 앞날을 위하여 이 점을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국제화의 물결 속에서 국제 문제에도 협조의 정신을 발휘하지 못하면 국제사회에서 고립을 면치 못한다는 것도 아울러 생각해야 한다. 우리 국민성의 약점을 고치는 일은 교육을 떠나서 생각할 수가 없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국민교육의 주안점을 의식적으로 협력정신에 두고 국민학교부터 중·고교 교육과정에 이르기까지 특별한 훈련계획을 마련하여 협력의 마음과 자세가 몸에 배도록 훈육하고 또 훈육하는 일이 필요하지 않은가 한다. 교육의 궁극의 목적이 개인의 천부의 능력을 계발하는 것이고 또 교육은 어머니의 무릎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또 오늘의 사회 문제의 책임이 교육에만 있다고 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그러나 학교의 사회교육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하면서 감히 교육자들에게 호소하는 것이다.

훈장의 승리

이 나라 경제가 당면한 문제들이 허다하지만, 그 근본적인 문제는 교육으로 풀 수밖에 없고 그것을 위하여는 무엇보다도 직능, 합리 그리고 협력에 중점을 두는 교육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 본고의 논점이다. 경제전문가의 편견인지 모르나 직능주의, 합리주의, 협력주의를 강조하는 교육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경제의 앞날을 개척하기 어려운 반면, 만약 이 힘이 주어진다면 우리가 어떠한 난관에 부딪친다 하더라도 능히 슬기롭게 돌파하여 아시아 네 마리 용 중의 가장 큰 용이 되어 선진국으로 승천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유럽에는 '프러시아의 승리는 훈장들(schoolmasters)의 승리'라는 속담이 있거니와 한국의 경제적 승리 또한 훈장들의 승리가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