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와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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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년 2월 25일 세계경제연구원 조찬강연


오늘의 상황을 '총체적 위기'라고 하는데 그 위기의 실체는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한마디로 민주화와 개방화의 진통이라고 말하고 싶다. 즉 지금의 현상은 민주화와 개방화의 이중적 도전에 우리가 대응하고 있는 실상이라 할 것이다.

우리는 민주화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그러면 먼저 민주화에 대하여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를 돌이켜 보기로 하자. 우선 정치적 측면을 바라보면 오늘의 정치지도자들은 지난날 군사정권에 반대하는 방편으로 민주주의를 외쳤을 뿐 그들 자신이 민주주의를 깊이 이해하거나 실천하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문민정부의 '힘의 통치'는 과거의 그것과 다를 것이 없다는 평을 듣고 있다.
국회에서 몸싸움과 날치기 통과가 감행되고 있고, 정당 내에는 1인 지배체제에 변함이 없고, 검찰과 실명제와 세무사찰이 그 본래의 목적 외에 정치 통제의 수단으로 사용되고 또 사용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 그것을 말해 준다.

여당과 야당은 사회의 특정 세력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각종 이질적 세력으로 구성되어 정책다툼이 아니라 세력다툼에 여념이 없다. 따라서 사회의 안전변인 보수·중산층은 정치적으로 무력화되어 이 나라는 중심이 없는 사회가 되어 버린 것 같다. 한국병의 하나인 정경유착의 비리가 계속 터져 나오는데, 비리를 공유하는 정치권은 그를 치유할 근원적 자기개혁보다는 그것을 당리당략에 이용하는 데 정력을 쏟고 있다.

국가의 기본은 안보이고 군의 생명은 사기인데 지도자들은 군에 대하여 목숨을 바쳐 싸워야 할 적이 누구이고 목숨을 바쳐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제시하지 않았고 그래서 사기와 사명감을 잃게 된 것 같다. 옛날에는 국방과 경제발전이라는 국가의 목표가 뚜렷했고 그를 위한 군의 역할에 대하여 긍지를 느끼기도 했지만 지금은 두 군인 출신 대통령의 잘못으로 군 전체가 오명을 뒤집어쓰게 되었다고 상심하는 군인들이 많은데 그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지도자도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군의 사기가 떨어지고 기강이 문란해지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일부 공무원들은 습관화된 부정비리를 청산하지 못한 채 사정 앞에 복지부동과 안일을 일삼고 있고, 민주화와 개방화에 적응하려는 노력도 부족하다. 빈번한 개각과 그에 따른 인사이동 하에서 공무원들은 자리가 안정되지 않고 어떤 정책업무에 집중할 겨를도 없고 의욕도 없다. 지난 4년 동안에 국무총리, 부총리가 각각 여섯 번이나 바뀌었는데 아마도 이와 같은 인사의 불안정은 다른 문명국에서는 유례가 없지 않은가 한다.
한편 국민들은 민주체제를 지탱할 수 있는 자율의 힘이 부족하고 무질서와 집단적 이기주의가 유행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정보화 시대의 물결을 타고 다양하고 무수한 정보매체들이 생겨났는데 그들은 언론의 자유를 만끽하면서 국가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아랑곳없이 흥미본위의 보도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고, 한편으로는 기성의 가치관을 파괴하는 영상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민주화 이후 신문과 공영방송의 질이 현저히 개선된 것도 사실이지만 위와 같은 일들이 세상을 한층 더 어지럽게 만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상에서 민주화의 도전에 대응하는 우리의 자화상 몇 가지 예를 들었는데 그 결과로 우리 사회는 중심도 없고, 구심점도 없고, 권위도 없고, 모두가 흩어져서 서로 남을 헐뜯고, 탓하고, 한탄하는 소리 뿐이다. 하기야 민주주의는 서양에서 수백년의 역사와 경험을 거쳐 오늘의 모습을 이룬 것이니, 민주사회는 일조일석에 실현될 수 없는 것이고 지금의 현상은 어차피 겪어야 할 과도기적 진통이라고 자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사태를 지속하면 지금의 격변하는 국제환경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데 오늘의 위기의식이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사태를 어디서부터 풀어 나가야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데 국민 각자의 각성과 행태의 변화가 필요한 것은 물론이지만 아무래도 정치적 리더십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우리는 개방화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그건 그렇고 개방화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어떠한가? 지금의 경제적 고난은 일찍부터 예견했던 일이다. 80년대 중반부터 개방화의 물결이 밀어닥치자, 우리는 먼저 국제수지를 걱정하였고 식자들은 그에 대비하기 위하여 신속한 구조조정을 촉구해 왔다. 그러나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오늘에 있어서도 4고(고임금, 고금리, 고지가, 고물류비용) 3저(저효율, 저기술, 저부가가치)의 구조적 취약점은 별로 개선되지 않았다. 당연한 결과로서 우리 경제는 지금 구조적 침체에 빠지게 된 것이다.

경제에는 튼튼한 바탕과 그 위에서 작용하는 혁신의 활력이 있어야 한다. 경제의 바탕을 형성하는 것이 앞에서 말한 4고 3저의 요인이고 그것이 바로 국제경쟁력을 결정한다. 이 경제의 바탕을 만드는 것은 주로 정부가 해야 할 일인데 일이 좀처럼 진척되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이제서야 노동법개정, 금융개혁 등에 손을 대고 있고 불급한 재정지출에 밀려 사회간접 시설의 확장이 늦어지고 교통난은 악화일로에 있다. 저기술, 저부가가치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시스템이 짜여져 있는 것 같지도 않다.

경제의 바탕이 주어지면 기업들은 그 위에서 경영활동을 하게 되는데 경영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혁신이 있으려면 기업의욕, 창의력, 기술, 선투자, 마케팅 능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경제의 바탕이 위와 같으니 다수의 중소기업들이 방향을 잃고 실의에 빠져 있는가 하면 대기업들은 정치와 맞물려서 사법적 시련을 겪고 있다. 이러한 환경하에서 경제에 활력이 솟아나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조속히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과거지사에 매듭을 지어 주는 한편 중소기업을 재건하는 데 정부와 민간이 총력을 기울여야 경제의 활력이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민주화와 개방화에 대응함에 있어서 우리가 가장 잘못한 것의 하나는 우리 경제실력에 맞지 않는 급여수준과 소비수준을 맹목적으로 추구하였다는 것이다. 우리의 생산능력에 비해 명목소득이 지나치게 증가하면 물가상승과 국제수지 악화를 가져오는데 수입이 개방된 오늘에 있어서는 전자보다 후자의 효과가 더 크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국제수지 적자의 위험수위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하기야 국제수지 악화에는 소비 뿐만 아니라 우리 생산구조에도 문제가 있다. 즉 소재와 부품 등의 수입의존도가 높다는 것은 우리 경제의 오래된 숙제인데 아직도 중화학 공업의 핵심부품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재래산업에서 경쟁력을 잃어가는 중소기업을 부품생산으로 재편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시급하고도 중요한 과제가 아직도 미해결의 문제로 남아 있다.

일조일석에 지금의 경제적 고난을 해결할 수 있는 비방(秘方)은 없다. 우선 단기적으로는 국제수지를 방어하기 위하여 저성장률을 감수해야 하고 우리 현실에 맞는 노동법이 성립되어야 하며, 일시적 편의를 위한 대중요법보다는 물가안정을 위한 마크로 정책의 틀을 굳건히 유지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동시에 위에서 말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는 한편 중소기업의 창·전업과 제품개발 등의 혁신노력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일례로 대만과 같이 중소기업의 어떠한 기술적 문제라도 해결해 줄 수 있는 기술정보 시스템을 만들어서 중소기업의 업종 전환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그리고 부언할 것은 한보(韓寶) 사태와 관련하여 앞으로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이 크게 문제될 것이니 그를 정리하는 제도적 장치를 강구해 두기 바란다.

지도자의 리더십

이상에서 민주화와 개방화의 도전에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를 그려 보았는데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아무래도 지도자의 리더십이 중요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불행히도 민주화 시대의 리더십은 그것대로 엄청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지도자의 직능은 문제를 파악하고 그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을 강구하여 그를 집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말은 쉽지만 실제로는 허다한 난관에 부딪친다. 새로운 정책에서 손해를 보는 이익집단의 반발, 야당의 정략적 반대, 언론의 양비(兩非)론적 비판, 정부부처간의 비협조 등이 그의 정책의지를 좌절시키거나 왜곡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민주화 시대에는 정책추진이 원활할 수가 없고 어떤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민주정치에 회의를 갖기도 한다.

그러나 민주사회에서 큰 변화를 가져온 지도자가 없지는 않다. 이스라엘의 골다 마이어 수상,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 일본의 요시다 시게루 수상, 영국의 대처 수상 등을 비롯하여 그 밖에도 많이 있다.

특히 전후 일본의 지도자들 중에는 공산세력과 당당히 맞서 싸우면서 전재(戰災)를 복구하고 경제대국을 건설하는 데 크게 공헌한 지도자들을 볼 수 있는데 그들의 리더십은 우리의 참고가 될 만하다. 전후에 일본이 경험한 정치·사회적 혼란은 우리가 과거와 현재에 겪고 있는 혼란보다 더 심각한 면이 있었다. 공산세력의 혁명운동, 노사분규와 좌익노조의 정치투쟁, 지식인들의 좌경화, 격렬한 학생소요 등등으로 점철된 일본의 전후사는 그야말로 파란만장의 파노라마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혼란의 와중에서 요시다 수상 같은 이는 네 번이나 그의 내각이 쓰러졌다 일어났다 하면서도 반대세력과 싸우면서 한결같이 전후복구와 경제부흥을 위하여 민주적 대의정치를 이끌었다.

1947년, 163만의 전 일본 산별노조가 '민주혁명의 해'라는 기치를 들고 시위를 준비하고 있을 때 요시다는 방송에서 그들을 '불순 분자'라고 한 것이 말썽이 되어 공산당 주도의 총파업을 유발하였고 요시다는 결국 '오해를 초래한 것은 유감' 이라고 사과해야 했다.
1952년 학원 소요가 있을 때 국회에서 "학원은 치외법권이 아니며 공산주의자의 온상이 되면 경찰은 묵인할 수 없다"고 답변하여 물의를 일으켰지만 주모 학생의 처벌을 관철하기도 했다. 1950년, 미국과의 단독강화를 반대하고 소련을 포함한 전면강화를 주장하는 세력에 동조한 동경대 총장(南原 繁) 등을 지층하여 '곡학아세(曲學阿世)의 무리'라고 한 것이 국회에서 말썽이 된 일도 있었고, 1953년에는 예결위에서 사회당의원의 질문에 격하여 "빠가야로(이 바보야)"라고 폭언한 것이 말썽이 되어 중위원에서 불신임 안이 가결되었다. 요시다는 즉각 국회(중위원)을 해산하고 총선거를 실시하였으니, 이것이 이른바 "빠가야로 해산"이라고 하는 것이다.

요시다는 말썽 많은 정치가였지만 오늘의 경제대국 일본의 기초를 닦은 인물이었고 그가 1967년 10월에 사망하자 그의 장의는 국장으로 치루어졌고 전 국민은 크게 애도하였다.1)최근의 일본의 여론조사2)에서도 그는 전후의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손꼽히고 있다.

요시다 이외에도 소신의 정치가는 또 있었다. 일례로 필자가 잘 아는 기시 노부스께(岸信介) 수상은 1960년 5월 대미 신안보조약 체결에 즈음하여 도합 560만 명에 달하는 좌익과 동조세력의 격렬한 시위에도 굴하지 않고 "나는 소리 없는 소리에 귀를 기울어야 한다. 지금은 소리 있는 소리 뿐이다"라고 외치며 신안보조약 비준서의 교환을 발표한 다음, 민심일신과 정국전환을 위하여 수상직에서 물러난다고 선언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3)

일본 지도자의 위와 같은 형태에 대하여는 보는 이에 따라 평가가 다를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여기에서 구태여 그들을 예로 드는 이유는 지도자는 자기의 경륜에 대한 굳은 신념과 열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전후에 그러한 지도자가 없지 않았다.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은 뚜렷한 경륜과 정열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는 지도자의 본보기라 할 수 있다.
지도자는 중요한 문제에 대하여 자신의 견해와 확신이 서 있어야 하고 그러한 확신으로 국민을 설득하고 이끌어야 반대하는 국민이 있는 반면에 지지하는 국민이 대다수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대대수가 있을 때 그 사회의 중심이 잡히고 사회가 안정될 수 있는 것이다.

불행히도 지금 국민들은 정치적 지도력에 대하여 회의를 느끼고 있다. 아니 불신하고 있다고 함이 옳을 것이다. 최근에 노동법 파동을 보더라도 문제에 대한 자기의 소신을 명백히 밝히는 지도자가 없고 다만 원칙 없는 타협으로 국면을 호도하려고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정책의 일관성이 없어지고 안보정책의 경우처럼 우왕좌왕하는 꼴이 된다.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기본적인 문제는 모래알과 같이 흩어진 민심을 규합하는 일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이 구심점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데 지금 그 구심점이 흔들리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이것은 대통령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전체가 책임을 나누어야 할 문제이다. 그러나 어쨌든 대통령은 구심점의 역할을 되찾아야 한다.

이러한 때이니 만큼 그리고 금년은 대선(大選)의 해이니 만큼 국민들은 차기의 대통령후보로 어떠한 후보가 등장하고 누가 당선될 것인지에 대하여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도자를 잘 만나야 지금의 경제적 고난을 극복하고 21세기의 미래를 열어갈 수 있다는 생각에서 그럴 것이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민주화 시대의 지도자는 보통사람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직책이고, 모든 난관을 돌파하고 나라를 위하여 큰 일을 하는 지도자는 있기는 하나 많지는 않다. 그래서 동서고금의 식자들은 그러한 지도자의 조건을 여러 가지로 정의하였는데 종합해 보면 대략 다음과 같은 것이 아닌가 한다.

첫째로 지도자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를 확실히 알고 그에 대하여 열의와 추진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 점은 위에서 몇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하였다.

둘째로 지도자는 식견이 있어야 한다. 전문적 지식은 아니더라도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그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에 대한 일반적 개념은 갖고 있어야 한다. 국내 문제를 전체적으로 파악하고 우선순위 감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경륜이란 우선순위의 선택을 말함이다.
셋째로 지도자는 사람을 쓸 줄 알아야 한다. 야에서 널리 인재를 구하고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자기의 경륜을 펴나가는 것이다.

넷째로 지도자는 국민을 설득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 매스컴의 시대에는 언변도 좋아야 하겠지만 신념과 성실이 따르지 않으면 도리어 역효과를 낼 수 있다.

다섯째로 지도자는 통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조직을 통솔하지 못하는 지도자는 조직을 부릴 수 없고 거꾸로 조직이 그를 부리게 된다.

여섯째로 지도자는 결단력이 있어야 한다. 이해득실을 빨리 알아차리고 결단을 내리는 지도자가 승리한다는 것은 삼국지의 교훈만은 아니다. 때로는 무엇을 한다는 결단보다 안 한다는 결단이 더 어려울 때가 있다.

끝으로 지도자는 청렴하고 덕이 있어야 한다. 자신은 높은 도덕수준을 지키지만 남을 설교하려 하지 않는다. 정치에 도덕론을 앞세우는 정치가는 그것으로 자기의 무능을 가리려 하고 자승자박에 빠지기 쉽다.

아마도 이러한 조건들을 고루 갖춘 지도자는 찾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나라가 난국에 처해 있는 이때에 우리는 위와 같은 조건을 생각하면서 차기 지도자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1) 每日新聞社, 昭和史全記錄 참조.

2) 文藝春秋, 1997년 2월호.

3) 각주 3)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