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시대의 경제운영


민주화. 세계화, 정보화에 따라 정부의 역할이 여러모로 제한을 받고, 그 정책의 효능이 의문시되고, 각종 규제를 해제해야 한다면, 도대체 정부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할 일은 여전히 많고 하기는 더 어려워진다. 이제 정부는 경제에 대한 간섭이나 규제를 최대한 떨어버리고 거시정책의 건실한 테두리를 유지하면서 경제의 기본 문제의 해결을 가로막는 정치적, 사회적 장애를 돌파하는 데에 전력을 기려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지도자의 리더십이다.


정부의 역할

정보화, 세계화의 추세에 따라 정부의 역할이 달라진다. 특히 경제운영에 있어서 정부 기능은 여러 가지 제약을 받게 된다. 첫째로 정보화, 세계화에 민주화가 겹친 우리 나라에 있어서는 정부의 관리능력이 큰 도전을 받고 있다. 민주화된 다원사회에 있어서는 정부가 시도하는 정책마다 이익집단의 반대에 부딪치고 좀처럼 국민적 합의를 끌어내기 어렵게 된다. 최근의 노동법을 둘러싼 정치권, 노동계, 기업계, 정부 사이의 대립과 갈등을 보면 앞으로 정부가 경제를 어떻게 이끌어 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이번의 노동법 파동에서 얻는 교훈은, 정부가 정책적 결정을 내리기 전에 국회와 식자간의 충분한 토론을 거쳐 국민들이 문제점을 충분히 이해 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정부는 정책 변경의 당위성을 적극적으로 홍보하여 여론의 수렴을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지루하고 비능률적인 과정이지만 민주사회에서는 그밖에는 별 수가 없는 것이다.

정부 기능에 대한 제약은 밖으로부터 오기도 한다. 일례로 이제 경제정책의 입안자는 WTO의 규제를 무시할 수 없고 그밖에 여러 가지 국제적 협약이 정부의 정책적 자유를 구속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개방화시대에는 어떤 정책을 집행하면 그 효과가 외부로 누출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경기부양을 위하여 재정 금융 면의 확대 정책을 쓰는 것은 국내의 생산과 고용을 늘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인데 그러나 그것은 곧 바로 수입증가로 연결되어 국내생산에 미치는 확대효과가 그 만큼 상쇄된다. 옛날에도 그랬지만 개방화 시대에는 더욱 그렇게 된다.

한편 정부의 규제정책은 국민경제상의 손익계산에서 마이너스가 되는 경우가 많아진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경제 각 면에서 정부의 규제완화를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규제완화에 관하여 재계와 정부 사이에 시비가 많다. 정부는 시장기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규제가 필요하다고 하고, 재계는 무원칙한 규제 때문에 경제활동이 저해되고 경제의 효율이 떨어지고 있다고 비판(批判) 한다. 양쪽의 주장은 다같이 일리가 있다. 문제는 규제의 원칙과 기준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정부와 재계는 먼저 규제의 원칙과 기준을 설정하는 작업부터 해야 한다. 필자의 사견으로는 규제의 適否를 판단하는 데에는 적어도 다음의 다섯 가지 사항이 고려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규제내용과 방법이 (1) 시장의 메커니즘에 의한 자원 배분을 왜곡하고 경쟁을 제한하고 있지 않은가? (2) 이른바 "시장실패"로 사익과 공익이 충돌하고 있는가, 있다면 시장 친화적인 방법으로는 해결 할 수는 없는 것인가? (3) 부정부패를 유발할 소지가 있는가? (4) 소수의 잘못을 다스리기 위하여 대다수를 통제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5) 규제의 실효성이 있는가? 라는 것이다. 그밖에 위생, 안전, 공해, 환경 등에 관한 규제의 필요성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고 다만 규제의 방법과 투명성이 문제가 될 것이다.

정부의 역할이 여러모로 제한을 받고, 그 정책의 효능이 의문시되고, 각종 규제를 해제해야 한다면, 도대체 정부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할 일은 여전히 많고 하기는 더 어려워진다. 이제 정부는 경제에 대한 간섭이나 규제를 최대한 떨어버리고 거시정책의 건실한 테두리를 유지하면서 경제의 기본 문제의 해결을 가로막는 정치적, 사회적 장애를 돌파하는 데에 전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행정적인 일이 아니라 각종 이해집단과 접촉하고, 국민을 설득하고, 정당과 싸우고 협상하여, 국회의 입법으로 이끌어 가는 정치적 활동이라 할 것이다. 앞으로의 장관은 다만 행정가 임에 그치지 않고 항시 언론과 정당과 국회와 접촉하여 자기의 정책을 관철하는 정치가의 수완을 보여야 할 것이다.

거시정책의 개혁

정부가 해야 할 일의 하나가 거시정책의 안정적 테두리를 유지하는 것이라 하였는데 우리 나라 거시정책 운영 방식은 과거의 통치체제에서 오는 고유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즉 종합성과 일관성이 없는 대증요법 중심의 운영 방식이 그 특징이다. 가령 물가 상승이 매스컴에 부각되면 대통령은 수석비서관이나 관계장관을 불러 물가를 안정시키라고 지시하는가 하면 업계에서 불황과 자금난을 호소하면 지원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한다. 매스컴이 국제수지 적자를 크게 떠들면 대통령이 장관회의도 아닌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여 1) 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하는 광경이 으레 텔레비전에 비취게 된다. 대통령은 경제 전문가가 아니므로 전반적 경제운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파악하지 못한 채, 따라서 그의 지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모르는 채, 다만 대통령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국민에게 보이기 위해 지시를 하는 것이다.

관료의 세계에서는 문제가 있고 대통령의 지시가 있으면 무엇인가 해야지 안 할 도리는 없다. 장관들은 무엇인가 처방을 내놓아야 하기 때문에 궁리한 끝에 무엇을 "강화"하고 "척결"하고 "불허"하고 "동결"한다는 식의 강성 어법을 사용하는 단편적 대증요법(對症療法)을 내놓게 된다. 물가안정을 위해 공공요금의 인상을 일체 불허한다. 경기진작을 위해 특별자금을 방출한다. 수출증대를 위해 선수금을 늘린다. 국제수지 방어를 위해 여행자의 환전 한도를 감액한다는 등등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문제들은 거시정책의 안정적 테두리가 지켜지지 않는 데에서 발생하는 것인데 문제가 있을 때마다 단편적 대증요법을 쓰면 거시정책의 틀은 점점 더 왜곡되고 거기에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게 마련이다. 예컨대 통화량을 과다하게 늘리면 물가가 상승하고 국제수지가 악화한다는 것은 우리의 상식이다. 물가의 상승이 표면화하면 공공요금부터 통제하는 것이 우리의 관례인데 비현실적 공공요금이 장기화하면 택시 잡기가 어려워지고, 의료서비스가 개선되지 않고, 지하철의 확장이 늦어진다. 그리고 공공요금 동결로 공기업이 부실화하면 이제는 구제금융을 주선해야 하는 또 하나의 대증요법이 필요케 된다. 그러다가 어느날 대통령의 결단을 얻어 요금 현실화가 단행되면 물가에 집중적 충격을 주게 된다. 한편 그러는 동안 통화량은 억제 목표를 초과하게 되고 통화당국은 새삼 긴축을 들고 나오고... 결국 가격통제는 물가상승을 일시적으로 뒤로 미루는 것에 불과한데 그러는 동안 부작용의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가고, 기업은 항상 불확실성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지난 30년 동안 이 나라의 특수한 통치체제하에서 위와 같은 방식의 경제 운영이 계속되어 왔고 그에 대하여 필자 자신도 책임을 면할 수 없는 것인데 문민정부 하에서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매스컴이나 국민들도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까지 이러한 후진적 경제 운영방식을 계속할 것인가? 우리도 이제는 선진국과 같이 정부는 경제운영의 기본적 틀을 지키는 데에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는 가급적 시장기능과 자율에 맡기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대통령은 경제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에는 과감하게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러나 평상시에는 시장기능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 다시 말하면 경제발전을 가로막는 정치적, 사회적 장벽을 돌파하는 일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

중앙은행이 할일

그러면 대증요법 중심의 후진적 거시정책 운영에서 벗어 나는 길은 무엇인가? 그것은 선진국에서처럼, 누가 무어라 해도 거시정책의 건전한 틀을 고집하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두는 것이다. 그러면 기본적 틀이란 무엇인가? 국민경제의 운영에 있어서 해결해야 할 문제는 많다. 그러나 모든 문제해결에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기본 조건은 통화가치 즉 물가의 안정이다. 물론 물가에는 여러 가지 복잡한 요인들(임금, 에너지 가격, 간접세, 농사 작황 등을 포함한)이 작용한다. 그러나 그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요인은 통화량, 재정수지, 금리, 환율과 같은 화폐적 변수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므로 통치구조에서 오는 교란 요인을 최소화하는 길은 통화신용정책의 알려진 준칙을 고수하는 국가기관, 즉 독립적인 중앙은행을 두는 것이다. 독일 연방준비은행이 그 전형(典型)인데 전후 독일의 경제운영이 유달리 건실했던 이면에는 독립성을 자랑하는 연방준비은행의 역할이 있었다고 학자들은 말하고 있다.2)

이점을 떠나서라도 최근에 와서 중앙은행의 독립성의 강화가 세계적 조류를 이루고 있다. 1980년대이래 칠레, 멕시코, 베네수엘라, 뉴질랜드, 캐나다, 아일랜드 등이 중앙은행의 법적 독립성을 강화하였고, 1991년 12월에 체결된 마스트리히트 조약은 유럽 중앙은행 제도 (European System of Central Banks: ESCB)에 참여하는 모든 회원국의 중앙은행들은 동 조약이 정하는 독립성기준을 충족해야 한다고 규정하였고 그에 따라 이태리, 프랑스, 스페인 등은 이미 중앙은행법을 개정하였다.3)

이러한 추세에는 대략 다음과 같은 배경이 깔려 있다. 즉 1960년대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20여년 동안 세계에는 큰 전쟁이 없는 평화상태가 유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이 끊이지 않았다. 경제학자들은 확장적 통화정책과 인플레이션 사이에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지적하였고, 중앙은행이 정부의 압력을 거부할 수 있는 나라일수록 인플레 율이 낮다는 분석이 주목을 끌게 되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인플레율 사이의 상관관계를 통계적으로 분석한 바에 의하면 선진국에 관한 한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높을수록 인플레 율이 낮다고 한다.

이제 우리도 중앙은행의 역할을 다시 보아야 할 때가 왔다. 중앙은행은 정치와 행정부에 초연하여 통화가치의 안정을 고수하고 그를 위하여 금리와 환율, 통화량 등을 통합적으로 운영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그러나 한국은행의 현실이 어떠한지는 긴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단적인 예로 동 은행의 전 역사를 통하여 임기를 채우고 나간 총재는 네 사람밖에 없다. 21세기의 보다 건실한 경제운영을 위하여 한국은행을 대법원처럼 정치와 행정부에 초연한 명실상부한 통화정책기구로 재편할 때가 온 것이다.4)

정부사업의 관리

재경원을 제외한 각 부처의 경제사업도 경제운영의 중요한 일부분이다. 사업의 계획 수립과 집행 그리고 사업 관리 방식 여하에 따라 경제 발전 속도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것이다. 교통시설, 항만 등의 사회간접시설이 제때에 확충되지 못한 데에서 지금 우리 경제가 얼마나 큰 손실을 보고 있는가!

정부가 사업에 착수했으면 사업의 진행을 추적하는 심사분석 제도가 있어야 한다. 제3공 시대에는 국무총리실에 심사분석실이 있어서 주요 계획사업의 진도와 문제점을 검증하는 기능이 있었는데 매 분기에 열리는 심사분석회의에는 대통령이 참석하기 때문에 그 날이면 각 부처가 크게 긴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계획보다 진도가 늦어진 사업에 대하여는 그 이유와 문제점이 보고 되고 보완대책이 건의되었다. 보고된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으면 다음 심사분석회의에서 다시 보고되기 때문에 소관 부처는 문제해결에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이를 통하여 대통령은 정부사업 전체의 추진 상황을 조감(照鑑)하고 감독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심사분석기능을 구시대의 유물로 경시할지 모르나 민주화시대야 말로 그러한 기능이 더욱 필요한 이유가 있다. 심사분석회의를 개최하면 많은 사업이 지방정부의 비협조나 집단 이기주의 때문에 늦어지고 있는 사실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언론이나 국민들은 중앙정부의 "무능"을 탓하기도 하겠지만 지방정부나 집단이기주의를 비판하게 될 것이고 그를 통하여 문제해결이 촉진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여튼 국정의 책임자가 정책사항이나 정부사업에 관해 문제가 있다는 여론이 일면, 그에 대한 대응으로 하부에게 시정을 지시할 뿐 그 후에는 그 문제를 잊어버리는 상태 하에서는 경제운영이 제대로 될리가 없는 것이다. 확인행정(確認行政)이라는 말이 유행하던 때가 생각난다.

지도자의 리더십

경제운영이 어려울수록 지도자의 리더십이 중요하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민주화시대에는 정책 추진이 원활할 수가 없고 어떤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은 매우 어렵게 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민주정치에 회의를 갖기도 한다.

그러나 민주사회에서 큰 변화를 가져온 지도자가 없지는 않다. 이스라엘의 마이어수상,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 일본의 요시다 시게루(吉田 茂) 수상, 영국의 대처 수상 등을 비롯하여 그 밖에도 많이 있다. 특히 전후의 일본의 지도자들 중에는 공산세력과 당당히 맞서 싸우면서 전재(戰災)를 복구하고 경제대국을 건설하는 데에 크게 공헌한 지도자들을 볼 수 있다.

여담이지만 일본의 전후 지도자의 일면을 소개하기로 한다. 전후 일본이 경험한 정치 사회적 혼란(混亂)은 우리가 전후에 겪어온 혼란보다 더하면 더 했지 못하지는 않았다. 공산세력의 혁명운동, 노사분규와 좌익노조의 정치투쟁, 지식인들의 좌경화, 격렬한 학생소요 등등으로 점철된 일본의 전후사는 그야말로 파란만장의 드라마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혼란의 와중에서 요시다 수상은 네 번이나 그의 내각이 쓰러졌다 일어났다 하면서도 반대 세력과 싸우면서 한결같이 전재(戰災)복구와 민주적 대의정치의 확립을 이끌었다. 1947년, 163만의 전(全)일본 산별 노조가 "민주혁명의 해"의 기치를 들고 시위를 준비하고 있을 때 요시다는 방송에서 그들을 "불순 분자"라고 한 것이 말썽이 되어 공산당 주도의 총파업을 유발하였고 요시다는 결국 "오해를 초래한 것은 유감" 이라고 사과를 해야 했다. 1952년 학원 소요에 대하여는 국회에서 "학원은 치외법권이 아니며 공산주의자의 온상이 되면 경찰은 묵인할 수 없다"고 답변하여 물의를 일으켰지만 주모학생의 처벌을 관철하기도 했다. 1950년, 미국과의 단독 강화를 반대하고 소련을 포함한 전면강화를 주장하는 세력에 동조한 동경대학 총장 (南原 繁)등을 지칭하여 "곡학아세(曲學阿世)의 무리"라고 한것이 국회에서 말썽이 되기도 했고, 1953년에는 국회 예결위(豫決委)에서 사회당 의원의 질문에 격하여 "바가야로!" (이 바보야!) 라고 폭언한 것이 말썽이 되어 중의원에서 불신임안이 가결되자 요시다는 법에 따라 즉각 국회(중의원)를 해산하고 총선거를 실시하였는데 이것이 이른바 "바가야로 해산" 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요시다는 말썽 많은 정치가였지만 그러나 그는 오늘의 경제대국 일본의 기초를 닦은 인물이었고 그가 1967년 10월에 사망했을 때 일본 정부는 그를 국장(國葬)으로 모시었고 전국민은 크게 애도하였다. 최근의 일본의 여론조사에서도 그는 전후의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손꼽히고 있다.

요시다 이외에도 소신의 정치가는 또 있었다. 일례로 기시 노부스께 (岸 信介) 수상은 1960년 5월 대미 신안보조약 체결에 즈음하여 도합 560만 명에 달하는 좌익과 동조세력의 격렬한 시위에도 굴하지 않고 "나는 소리 없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지금은 소리 있는 소리뿐이다." 라고 외치며 신안보조약 비준서의 교환을 발표한 다음, 민심일신과 정국전환을 위하여 수상직에서 물러난다고 선언하고 미련 없이 수상직을 떠났다.

일본의 지도자의 위와 같은 행태에 대하여는 보는 이에 따라 평가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필자가 여기에서 그들을 예로 든 이유는 지도자는 자기의 경륜에 대한 굳은 신념과 열정(compassion)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전후에 그러한 지도자가 없지 않았다.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은 뚜렷한 경륜과 정열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는 지도자의 본보기라 할 수 있다.

지도자는 중요한 문제에 대하여 자신의 견해와 확신이 서 있어야 하고 그러한 확신으로 국민을 설득하고 이끌어야 반대하는 국민이 있는 반면에 따라가는 국민이 대다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대다수가 있을 때에 그 사회에 중심이 잡히고 사회가 안정될 수 있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지금 국민들은 정치적 지도력에 대하여 회의를 품고 있다. 아니 불신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우리의 여당과 야당은 어떠한 특정계층이나 세력을 대표한다기 보다 이념적으로 이질적인 세력들로 구성되어 있고 어떠한 정치 노선에 입각한 정책논쟁 보다는 세력다툼에 여념이 없어 국사를 돌 볼 겨를이 없다. 최근에 노동법 파동을 보더라도 문제에 대한 자기의 소신을 명백히 밝히는 지도자가 없고 다만 원칙 없는 타협으로 국면을 호도하려고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정책의 일관성이 없어지고 안보정책의 경우처럼 우왕좌왕(右往左往)하는 꼴이 된다.

금년에는 대선(大選)의 해인 만큼 차기의 대통령 후보로 어떠한 인물이 등장하고 누가 당선될 것이냐 하는 것이 국민들의 최대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지도자를 잘 만나야 지금의 경제적 고난을 극복하고 21세기의 미래를 열어 갈 수 있다는 인식에서 그럴 것이다.

지도자의 직능은 문제를 파악하고, 그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을 강구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이것은 말은 쉽지만 실제로는 허다한 난관에 부딪힌다. 새로운 정책에서 손해를 보는 이익집단의 반발, 야당의 정략적 반대, 언론의 양비론(兩非論)적 비판, 정부 부처간의 비협조 등이 그의 정책 의지를 좌절시키거나 왜곡할 수도 있다. 이러한 난관을 돌파하고 큰 일을 해내는 지도자는 그야말로 하늘이 낸 사람이라 할 것이다.

그러한 지도자를 만나기는 쉽지 않지만 동서고금(東西古今)의 사람들은 지도자에게 다음과 같은 자질을 요구하고 있는 것 같다.

첫째로 위에서 본 것처럼 지도자는 나라를 위하여 자신이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를 확실히 알고 그에 대하여 정열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둘째로 지도자는 식견이 있어야 한다. 전문적 지식은 아니더라도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그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에 대한 일반적 개념은 갖고 있어야 한다. 국내 문제를 전체적으로 파악하고 우선 순위(優先順位) 감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경륜이란 우선순위의 선택을 말함이다.

셋째로 지도자는 사람을 쓸 줄 알아야 한다. 야(野)에서 널리 인재를 구하고 적재를 적소에 배치하여 자기의 경륜을 펴 나가는 것이다.

넷째로 지도자는 통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조직을 통솔하지 못하는 지도자는 조직을 부릴 수 없고 거꾸로 조직이 그를 부리게 된다.

다섯째로 지도자는 국민을 설득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 매스컴의 시대에는 언변도 좋아야 하겠지만 그에 신념과 성실이 따르지 않으면 도리어 역효과를 낼 수 있다.

여섯째로 지도자는 결단력이 있어야 한다. 이해득실을 빨리 알아차리고 결단을 내리는 지도자가 승리한다는 것은 삼국지(三國志)의 교훈만은 아니다. 때로는 무엇을 한다는 결단보다 안 한다는 결단이 더 어려울 때가 있다.

끝으로 지도자는 청렴하고 덕이 있어야 한다. 자신은 높은 도덕수준을 지키지만 남을 설교하려 하지 않는다. 정치에 도덕론을 앞세우는 정치가는 그것으로 자기의 무능을 가리려 하고 자승자박(自繩自縛)에 빠지기 쉽다.

아마도 이러한 조건들을 고루 갖춘 지도자는 보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난국에 처한 국민들은 위와 같은 조건을 생각하면서 지도자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끝


 

1) 대통령이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는 광경이 TV에 공개된 것은 문민정부가 보여준 새로운 관례이다. 원래 대통령은 수석비서관 회의가 아니라 장관회의를 주재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2) 한국은행 조사 제1부, 독일의 금융제도 1993년 2월 참조

3) 한국은행, 조사자료, 중앙은행의 발달과정과 현대적 역할, 1994년 4월 참조

4) 최근에 정부가 조직한 금융개혁위원회가 이 문제를 다루지 않으면 가장 기본적인 개혁과제를 회피하는 결과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