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1년을 평가한다

 

본고는 지난 10월 3일 IMF-IBRD 년차 총회시의 세미나 (Strengthening Banking System) 에서 발표한 필자의 논문 "Some Observations on the IMF Reform Policies" 을 의역 보완 한 것이다. 원문 text는 www.worldbank.org 에서도 볼 수 있다.


이 논문은 1998년 10월 3일 IMF-IBRD 년차 총회내의 세미나에서 발표한 논문을 의역 보완 한 것이다. 외환위기에 대한 IMF의 접근방법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였다. 원문은 영어 홈페이지에 실려 있다.


 

위기의 원인

1997년 11월에 발생한 한국의 통화위기의 원인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어 왔다. 일반적으로 통화위기는 유동성 부족, 구조적 취약성, 기대 (expectation)의 변화와 신뢰의 상실이라는 세 가지 요인으로 설명될 수 있다. 한국에서 경험한 유동성 부족은 은행과 기업부문의 과도한 단기자금 차입과 정부가 그를 적절히 관리하지 못한 데에 기인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정부가 필요한 사전 준비없이 자본시장을 부분적으로 개방한 것도 또 하나의 원인이었다.

물론 일이 잘못된 배후에는 한국의 금융과 기업의 구조적 취약점이 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구조적 취약점에 관하여는 1980년 중반부터 정부 내에서 국제화의 견지에서 개혁의 필요성이 논의되었고 약간의 개혁 실적이 없지도 않았다. 그리고 국제 금융사회가 한국의 취약점을 모르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동남아의 통화위기가 발생하자 그들은 새삼 한국경제의 취약점을 의식하기 시작하였고 한국이 과연 아시아 통화위기에서 예외가 될 수 있느냐 하는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하였다. 즉 그들의 한국 경제에 대한 신뢰와 기대가 갑자기 흔들리게 된 것이다. 일단 한국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자 외국 투자가들은 필요이상의 불안감과 비관론에 사로잡혀 과잉반응을 일으키게 되었는데 그것은 국제 자본시장의 생리이자 병리이기도 하다.

사실상 한국경제의 기초조건(fundamentals)은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비하여 여러 면에서 양호하였다. 예를 들면 한국의 통화는 태국과는 달리 달러화에 고정적으로 연계(peg)되어 있지 않았고 그 나름대로 시장의 실세를 반영하여 변동하고 있었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마이클 둘리(Michael Dooly)와 멘지 친(Menzie Chin)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1997년 6월말 기준으로 태국 바트화는 16.1%나 과대 평가되고 있었으나 한국 원의 실질환율은 1.7% 밖에 과대 평가되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두 교수는 한국의 경우 "원화가치의 급속한 붕괴는 비정상적인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 태국은 붕괴 이전의 경상수지 적자가 GDP의 6.7%에 달했으나 한국의 경우에는 3.8%에 불과했고 이것은 결코 걱정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인플레율도 태국의 10.1%에 비해 한국의 그것은 8.7%였고 인도네시아의 52%와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1) 비록 민간부문의 해외 단기차입이 과도했다 하지만 총량은 인도네시아와 태국의 그것보다는 적은 편이었다. 재정적자에 관하여는 한국은 실질적으로 매년 균형을 유지하여 문제가 되지 않았고 국내 저축율은 해마다 35%의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었다. 이렇게 볼 때 한국 외환 위기의 특징은 외국 투자가들의 한국 금융에 대한 투기적 공격이었다고 할 수 있다.

IMF개입의 목표

작년 11월 외환위기가 발생한 직후, IMF가 구제금융을 공여하는 조건으로 한국 경제운영을 지도하게 되었는데 IMF 정책 처방의 근본 목적은 외환위기를 수습하고 금융시스템을 재건하고 기업의 경영 구조를 개선하여 한국경제의 지속적 성장의 새로운 기반을 구축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목적을 위해 IMF는 그들의 전통적 정책 처방인 무제한의 환율 변동과 고금리 정책, 그리고 긴축적 통화정책 및 재정정책을 견지해 왔다.

구조조정 측면에서는 그 동안 수많은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는데 이들은 금융부문의 자본-부채 비율을 높이고, 시장원리에 따라 경영을 투명화하고, 경영자료를 공시하고 책임경영체제를 확립하는 동시에 금융감독 기능을 강화 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고, 상품과 용역의 국제무역 뿐 아니라 자본시장의 자유화를 촉진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개혁조치의 효과

지난 1년 동안 추진된 상기의 개혁 정책들은 긍정적인 결과와 부정적인 결과를 함께 가져 왔다. 긍정적인 결과는 주로 외환위기를 수습하여 대외 지불에 차질이 없도록 한 데에서 볼 수 있다. 즉 환율과 금리가 외환위기 이전의 수준으로 회귀하였고, 경상수지 흑자는 주로 수입감소에 힘입어 올 상반기중 224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했으며, 그 결과로 10월말 현재 가용 외환보유고는 453억 달러로 증가하여 연말 목표치를 초과 달성하였다. 또한 전체 대외채무중 단기 외채가 차지하는 비중이 1997년 12월의 44%에서 현재에는 약 25%로 낮아졌다.

반면에 한국은 개혁정책의 충격으로, 전례 없는 경제적 후퇴를 경험하고 있다. 산업생산은 작년 동기 대비 10%이상 감소했고, 수출도 5월 이후 전년동기 대비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섰고, 10월에는 전년 동월 보다 12.1% 나 감소했다. 살아남은 기업들의 가동율은 70% 내외로 떨어졌고 실업자는 지난 9월까지 157만 명에 달해 7.3%의 실업율을 기록하였다. IMF와 정부는 당초에 GDP 성장률이 1998년에는 3%로 후퇴하겠지만, 1999년에는 잠재성장률을 회복하게 될 것이라고 공표 했었다. 그러나 실제 성장률은 1/4분기에 - 3.8%, 2/4분기에는 -6.6%로 급락하였다.

이상과 같은 긍정적 결과와 부정적 결과를 놓고 볼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이 평할 수 있을 것이다. 즉 한국은 IMF와 다른 국제금융기관 및 우방 국가들의 도움으로 대외 지급상의 차질은 면할 수는 있었으나 그 대가로 현재와 같은 심각한 경제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하기야 IMF 체제의 손익 계산은 앞으로 나타나는 구조개혁의 결과를 포함해서 판단할 문제이지만.

정책의 전환

어쨌든 경기 침체가 심각해지자 정부는 1998년 7월 24일 IMF에 제출된 정책 각서에서 "거시경제 정책의 초점을 국내 수요의 조기회복을 부양하는 방향으로 이동할 것과 "통제 가능한 수준까지 경기 후퇴를 제어하기 위해 강력한 조치를 취하는 것"에 우선 순위를 두기로 했다고 선언했다. 이러한 정책 방향에 따라 정부와 IMF는 재정적자를 당초 합의했던 GDP의 1%에서 5%까지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또 정부는 7월 10일부터 내구재 소비에 대한 특별소비세를 30% 인하하였다. 통화정책에 있어서는 한국은행이 신용경색을 완화하기 위해 통화공급을 늘리고, 환율 안정과 물가 안정을 유지하는 범위 내에서 이자율을 낮추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와 같은 정책 전환은 외환 부문의 상대적 안정화를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당국자들이 당초 예상했던 바와 개혁정책의 충격으로 빚어진 현실 사이의 엄청난 괴리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경제위기의 주인

경제침체의 대표적인 지표는 기업 도산과 금융기관의 부실 채권의 증가라고 할 수 있음으로 우리는 지난 1년 동안 이 두 가지 지표가 급격히 늘어난 사정을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적 표준에 따른 은행시스템의 부실여신은 1997년말 현재 전체 여신의 5.8%이던 것이 1998년 3월말에는 7.3%, 6월말에는 10.2%로 배가되었다. 금융감독원은 금년 7월에 부실채권의 정의를 미국과 같이 3개월 연체를 기점으로 하는 것으로 수정하였는데 이 새로운 정의에 따르면 올해 연말에 가서 부실채권은 118조원(약 8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것은 1997년 GDP의 약 25%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지나간 전망이고 지금의 전망으로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라는 것이 내외의 공통된 추정이다.

이러한 악성부채의 증가 중에 어디까지가 마땅히 도태되어야 할 기업의 도산을 반영하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그 중에는 수많은 무고한 기업들이 IMF 정책의 충격 때문에 쓰러진 경우가 많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기업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준 첫 번째의 요인은 IMF가 지난 1월에 이자율 24%를 최고 한도로 하는 [이식제한법]을 폐지케 하는 동시에 중앙은행 콜금리를 한때 40%까지 인상케 한 일이다. 이것은 고금리 시대를 개막하는 신호탄의 역할을 했고 이에 따라 전반적인 금리인상이 뒤따랐다. 일반적으로 부채비율이 높은 한국에 있어서는, 비록 단기간이라 할 지라도 연 20-30%의 금리를 부담하고 살아남을 기업은 많지 않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환율이 갑자기 2배 이상으로 뛰어 올랐으니 외채를 지고 있는 금융기관과 기업들의 막대한 환차손이 기업의 재무제표를 일시에 뒤집어 엎은 것도 사실이다. 이리하여 한국의 위환위기는 곧 바로 금융위기로 이어졌다. 일시적 외환위기를 수습하기 위하여 꼭 이래야만 했는가? 이것은 아마도 앞으로 학계의 연구과제가 될 것이다.

기업의 대량학살의 또 하나의 요인은 신용경색이었다. 신용경색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므로 이것이야말로 구조개혁의 최대의 난관이라 할 것이다. 재정경제부 발표에 따르면 금년 상반기에 은행의 순여신 규모는 전년 동기간의 23조억원에서 12조 수준으로 감소되었다 한다.2)

이러한 자금경색의 주요 원인의 하나가 소위 BIS 자본 적합 비율(capital adequacy ratio) 8%와 관련이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자본비율이 마이너스가 된 5개 일반은행과 16개 종합금융회사의 인가가 취소되었다. 또 자본비율이 취약한 은행들은 1999년 3월까지 6%, 2000년 3월까지 8% 수준으로 자본비율을 개선하라는 감독당국의 명령을 받고 있다. 그 밖의 양호한 은행들도 2000년 12월까지 10% 수준으로 자본비율을 개선하라는 "권고"를 받고 있다. 만약 이러한 목표수준을 달성하기 위한 자구노력 계획이 불충분하다고 판단될 경우, 감독기관은 문제의 은행들에 대하여 합병과 P&A방식 등으로 사업양도를 강요하거나 또는 조기시정절차(PCA: prompt corrective action)에 의해 퇴출 명령을 발할 수도 있다.

이러한 금융 감독 명령이 아니더라도 은행들은 그들의 자본비율을 개선하지 않으면 존립할 수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자본 비율이 낮으면 국제적으로 신용등급이 하락하여 국제금융시장에서 신규자금은 물론 기존부채의 기한 갱신(Rollover)이 불가능해 지기 때문이다. 결국 지금은 자본 비율이 은행의 생사를 좌우하는 명줄이 된 것이다.

금융기관이 자본 비율을 높이자면 국내에서 신주를 발행하여 증자를 하던가 외국인의 출자자를 발견하던가 아니면 자본비율의 분모가 되는 위험자산(융자금)을 감축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증권 시장의 형편으로는 신주를 소화시킨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고 외국자본 유치에는 시간이 걸린다. 결국 금융기관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융자를 최대한으로 감축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의 신용경색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금융기관의 이러한 전략은 자가당착에 빠지게 된다. 즉 여신회수와 신규여신의 축소는 고금리와 환차손에 허덕이는 기업들의 어음 부도와 기업 도산을 더욱 촉진하고 이에 따라 은행의 부실채권이 늘어나면 자본 비율은 더욱 악화할 수밖에 없다. 바로 이러한 악순환이 금융부문의 구조개혁을 더욱 힘들게 만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신용 경색의 원인이 BIS 자본 비율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구조개혁 과정에서 은행의 퇴출, 합병, 정리해고 등으로 금융질서가 일시 마비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고 그로 인한 금융불안이 계속되는 한 대출기피는 계속될 것이다. 이에 더하여 수출과 국내 수요감퇴로 기업들의 수지상태가 날로 악화하여 부실기업으로 전락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결국 신용수축과 경기 후퇴라는 양면의 협공을 받고 수많은 기업들이 쓰러져 가고 있는 것이다.

평가

한국이 지금 겪고 있는 경제적 고난은 외환위기를 수습하고 해묵은 숙제인 금융과 기업의 구조개혁을 위해 불가피한 대가(代價)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꼭 그렇게 했어야만 우리의 개혁 목적이 달성될 수 있었느냐 하는데 대하여는 앞으로 논쟁이 있을 것 같다. 헨리 키신저는 최근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 우리에게 이러한 말을 남기고 갔다. "한국이 과거의 그릇된 경제정책과 뿌리 깊은 구조적 취약점에 대해 대가를 치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대가에 더하여 프리미엄까지 지급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어떠한 의미에서 그런 것일까? 필자의 몇 가지 소견을 말해 보고자 한다.

첫째로 위에서 본 바와 같이 한국의 위기는 본질적으로 외환위기 혹은 유동성위기에서 출발했다. 이 점에 관련하여 우선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개념적으로 구별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일본처럼 금융위기를 겪고 있으되 외환위기와는 무관한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외채 상환이 장기적으로 불가능할 만큼 한국경제가 파탄한 것은 아니고, 다만 단기적으로 유동성부족이 핵심 문제였다면, 긴급히 국제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여 외환시장에 투입하는 것이 위기 극복의 선결 요건이 된다. 만약 이것이 가능했다면 급격한 환율의 평가절하와 터무니 없는 고금리 정책의 필요성은 반감되었을 것이며 외국 투자가들도 자기 채권의 안전성을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한국은 그러한 경로를 밟을 수가 없었다.

하기야 한국 위기에 대한 IMF의 대응은 신속하고 능률적인 것이었다. IMF는 기존 제도와 신설된 보충적 금융계정(Supplement Facility)에서 210억 달러를 염출하는 동시에 IBRD 및 ADB, 그리고 우리 우방국과 교섭하여 총액 580억 달러의 융자한도를 설정해 준 것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IMF는 210억 달러에 달하는 민간은행의 단기 부채의 상환기간을 재조정하는 채권단 회의를 주선해 주기도 했다. 이들 두 가지 금액을 합하면 당시의 한국의 단기부채 총액 650억 달러를 훨씬 초과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금액이 일시에 외환시장에 투입될 수 없었다는 데에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상기 융자 한도는 IMF가 융자조건으로 제시한 각종정책의 이행과정을 보아 가며 몇 번에 나누어 내주는 금액이었고 특히 그 중에서 우방국들이 지원하겠다는 230억 달러는 한국의 외환 시장이 위급할 때에만 끌어 쓸 수 있는 제2선 준비에 불과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한국이 1998년 5월말까지 차용한 금액은 580억 달러의 43%인 250억 달러에 불과하다.

필자는 이에 관련하여 이러한 생각을 해 보기도 한다. 만약 IMF를 비롯한 국제금융기관이 한국에 위기 징후가 보이자 마자 약 3백억 달러를 한국 외환시장에 집중적으로 투입했더라면 사정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고. 즉 외국 투자가들의 동요를 막는 동시에, 금융정책을 하루 아침에 급선회하는 일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한낮 공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필자는 잘 알고 있다. 설사 IMF가 그렇게 하고 싶어도(물론 하려고 하지도 않았겠지만) 할 수 있는 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IMF는 환율과 이자율의 급격한 인상으로 외환의 국외 유출을 줄이고 외국자본의 유입을 유인하는 데에 역점을 두었다. 그러나 이미 동남아의 금융위기 때문에 외국 투자가들의 비관과 군중심리가 시장을 압도하는 상태하에서는 금리가 본래의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는 것을 계산에 넣지 않은 것 같다. 그것은 마치 타이타닉호가 침몰할 때 선장이 제아무리 승객들에게 질서를 지켜야 살 수 있다고 외쳐도 승객들이 듣지 않는 현상과 같다. 이러한 상태 하에서는 20%의 금리보다 30%의 금리가 더 적절하다고 단언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실상 실제로 초고금리 정책이 얼마만큼 그 효과를 발휘하였는지는 분명치 않다. 한국은행 외환 부문의 [자본 및 금융]계정을 보면 파격적인 고금리에 불구하고 11월중에 순액(유입액-유출액)으로 44억달라, 12월에는 63억 달러가 빠져나갔고 그 후 금년 3월까지 계속 매월 2-4억 달러의 유출초과를 보여 왔다. 요컨대 필요한 금리수준이 20%냐 혹은 30%냐 하는 것은 탁상에서 일하는 당국자들에게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을 지도 모르나 기업들에게는 그야말로 사활을 좌우하는 문제였다.

이미 지나간 일이지만 IMF는 초기의 위기관리에 좀 더 신중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IMF 가 고금리, 고환율 등 긴축정책에 집착한 반면 세계 중앙은행으로서 "최종적 대여자-lender of last resort"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 이유는 현재의 IMF가 그러한 역할을 할 만한 재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데에 있다. 그래서 IMF 집행부가 IMF 쿼터 45% 증액을 실현시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것도 이해 할만 하다. 그러나 이미 지나간 일이지만 한때 미국정부는 의회 일부의 반대로 180억 달러의 출연을 끌어 왔고, 심지어 도의적 해이를 이유로 하여 IMF의 해체를 주장하는 인사까지 나타났다. 하지만 바야흐로 경제와 금융이 세계화하는 추세하에서 IMF가 중앙은행의 역할을 닮아 가는 것은 필연적 추세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가 [최종적 대여자]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재력을 마련해 주어야 하고 앞으로 회원국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즉각 대처할 수 있는 만반의 태세를 갖추도록 IMF를 개편해야 할 것이다.

한편 IMF 긴급 구조융자에 자구조건을 부과하는 것은 필요 불가피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조건 이행을 보장하는 방법은 다급한 외환위기 국면에서 자금공급을 보류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자금은 일시에 공급하되, 조건을 위반하면 벌칙 금리를 물리던가 아니면 그 밖의 다른 방법으로 제재를 가하는 것이 위기관리에 보다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IMF 헌장 제1조가 규정하는 IMF의 목적을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즉 제 1조의 요지는 회원국이 국제수지 불균형에 직면했을 때 그 회원국이 그를 극복하기 위하여 일시적으로 차용할 수 있는 기금을 설치함으로써 회원국 및 국제사회가 경제적 번영에 역행하는 파괴적인 조치를 회피할 수 있게 하는 것이 IMF의 설립 목적이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3) 이 규정은 명백히 IMF가 세계의 중앙은행으로서 최종 대여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IMF가 한국의 위기관리에 있어서 헌장 제1조가 규정한 역할을 다 함으로서 파괴적인 조치를 피할 수 있게 했는지 IMF는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둘째로, IMF가 금융기관에게 요구하는 BIS 자본비율 8%가 과연 적정한 것인지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자본비율 8%가 너무 높아서 하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금융관행의 건전성을 실현하자면 그 보다 높은 비율이 필요할 것이다. 다만 필자는. 한국에서 불과 1-2년 내에 자본비율 8%를 실현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그 부작용이 너무나 크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그것이 지금의 신용경색의 주인(主因)이 되어 왔다는 것을 위에서 지적하였거니와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다. 예컨대 KDI 등 연구기관 들의 보고를 종합해 보면 금융기관들이 정부가 정한 2000년 3월까지 BIS 자본 비율을 충족하자면 약 50조원의 자본 증자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 중에서 16조원은 정부가 지원한다 하니까 나머지 34조원은 금융기관 자체가 해결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34조원은 현재 한국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주식의 시가총액 64조원의 약 53%에 해당하는 액수이다.

이 문제에 관련된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정부가 재벌에 대하여 내년 말까지 부채/자본 비율을 현재의 평균 400%이상에서 200%로 낮추라고 요구하고 있는데 만약 이를 신주 발행으로 충족한다고 치면 54조원의 증자가 필요한데 이는 지금의 상장 주식 시가 총액의 83.5%에 해당한다는 연구 보고서가 있다.4) 금융기관과 대기업들이 동시에 신주발행을 추진한다고 할 때 지금의 증시의 형편으로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금융기관의 자본/융자자산 비율 혹은 기업의 부채/자본 비율을 개선하는 방법으로는 신주발행 이외에 국내외의 투자가의 자본 참가를 유치하던가 아니면 그들에게 자산을 매각하여 부채를 줄이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그러한 투자가를 구할 수 없고 외국의 투자가를 구하자니 시간이 걸리는 것도 사실이고 이것이 재벌기업의 구조개혁이 늦어지는 주요 이유의 하나이다. 그러나 금융기관은 기업과 달라 대출금을 회수하여 위험(융자)자산을 줄이면 자본 비율은 높일 수 있다. 그래서 은행들이 신용수축에 전념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위에서 말한 바와 같다.

이것도 이미 지나간 일이지만 상기한 현실을 놓고 볼 때 정부와 IMF는 금융기관의 자본/여신비율의 개선 목표를 2000년이후로 설정하여 극심한 신용수축을 완화했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이미 은행들이 8% 이상의 자본 부채비율을 달성하였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당국자들은 그를 위하여 은행들이 개혁목적에 역행하는 편법을 썼다는 것, 그리고 신용수축과 기업도산의 대가가 얼마나 컸는지를 반성해야 하고 또 앞으로 5대 재벌 기업의 구조조정을 제대로 집행한다면 부실채권이 엄청나게 늘어나서 금융기관 자본 비율이 다시 악화하리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하여튼 비현실적 BIS 기준이 강요한 신용수축 때문에 많은 기업들이 패망의 비운을 맞게 된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참고로 미국 연방 준비이사회의 통계를 보면 미국에서 은행들의 단순 자본-융자 비율(leverage ratio- BIS 비율과는 개념상으로 약간 다르다)의 평균치가 80년대 중반의 6%수준에서 90년 중반의 8%에 도달하는 데에 10년이 걸렸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5)

셋째로 지금 경제회생을 위해 금융시스템을 정상화하는 일보다 더 시급한 과제는 없을 것이다. 금융기관의 기능을 활성화하지 않고서는 재정과 통화 면의 확대정책도 효과를 거둘 수 없을 것이다. 한국은행 당국자의 말에 의하면 한국은행이 통화공급을 확대해도 그 돈이 한은(韓銀)으로 되돌아 온다고 한다. 그 이유는 은행들이 자금 여유가 생기면 그 자금을 기업에게 대출하기 보다는 BIS 자본 비율을 높이기 위해 한은이 보유하는 무위험 자산-예컨대 통화안정 증권, 양곡 증권 등-을 환매해 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금융기관을 정상화자면 조속히 부실채권과 부실기업을 처리해야 한다. 그런데 성업공사는 부실 채권을 매수해서 처분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으나 부실기업을 매수하여 처분하는 기능은 불충분하다. 지금 정부와 IBRD의 구상에 의하면 다수의 민간회사 ["Corporate Restructuring Vehicles-CRV"]를 설립하여 금융기관이 대출금을 출자로 전환하여 대주주가 되었을 경우 이 회사가 금융기관으로부터 그 기업을 매수하여 운영하던가 처분케 할 것이라고 한다. 순전히 민간 베이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착상은 좋으나 그러나 민간회사가 출현하여 제 기능을 발휘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고 그러는 동안 재벌 구조조정을 둘러싼 시비가 끊기지 않고, 금융기관은 미해결의 문제를 안고 정상업무로 되돌아가기 힘들지 않을까 걱정이다. 필자는 하나의 대안으로 기업갱생공사의 설립을 제안한 일이 있는데 그것은 이미 때를 놓친 것 같으니 설명을 생략하겠다. 하여튼 도덕적 해이 문제를 회피하고. 외부의 압력이나 간섭을 배제하고, 신속하고 투명한 절차에 따라 재벌 부실기업을 정리하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요는 하루라도 빨리 부실채권과 부실기업 문제에 매듭을 짓고 금융기관이 정상업무로 돌아가서 지금의 신용경색이 풀리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이다.

끝으로 총체적인 개혁과정에서 질서의 파괴와 혼란과 불확실성이 따르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위기 관리 방법과 정책 여하에 따라 불안정 요인들이 증폭 될 수도 있고 최소화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구조개혁에 관하여 "빅뱅"이냐 점진주의냐 하는 논쟁이 있음을 안다. 점진주의가 태만과 현상유지로 빠져들 위험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편 "빅뱅"이 앞.뒤를 가리지 않고 즉흥적, 단편적 조치를 남발하여 경제 질서를 마비시켜 경제 파탄을 가속화할 수도 있다. 개혁 프로그램은 중요한 문제를 빠뜨리지 않을 만큼 포괄적이어야 하나 그 집행에 있어서는 개별 정책간의 상호연관과 각 정책 집행에 따르는 사회비용을 감안하여 우선 순위에 따라 착실하게 추진함이 옳을 것이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현재의 최우선과제는 금융개혁을 조기에 마무리하는 것이다. 자금 순환은 시장경제의 혈맥과 같은 것이므로 이를 정상화 하지 않으면 경제의 회생은 불가능하다. 금융부문이 투명, 공시, 책임의 3대 원리를 바라보고 다시 태어나고 시장규율과 감독의 규율이 지배하는 새로운 금융질서가 확립되면, 기업들은 새로운 금융환경에 적응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고 그를 통하여 구래의 그릇된 경영관습에서 탈피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는 아직도 긴 여정이 남아 있다. 아직은 구각(舊殼)을 탈피하지 못한 정부, 금융, 기업부문의 관념과 관행이 상호 작용하는 가운데 혼란과 방황(彷徨)이 계속되고 있고, 그 와중에서 경제는 불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새로운 경제질서에 대한 뚜렷한 비전과 목적의식을 갖고 개혁을 밀고 나가는 정치적 의지와 리더십이라 할 것이다.

맺음 말

다행이 지금 외환부문은 상대적 안정을 회복하였고 약간의 경기회복의 기미가 보이고 있다. 미국의 금융기관 및 언론들은 한국은 이미 외환위기에서 벗어났다고 떠들고 있고 IMF는 한국은 자신의 위기관리정책이 성공한 케이스라고 크게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여론은 바람과 같은 것이다. 한때는 비관의 바람이 그렇게 거세더니 이제는 낙관의 바람이 불어 닥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때일수록 바람에 흔들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아직 우리 앞에는 미해결의 과제가 너무나 많다. 부실채권과 부실기업의 정리; 정부 및 정부기업의 구조개혁; 금융기관 자본 비율 개선과 공적자금 지원; 5대 재벌의 구조조정; 경영의 투명성, 공시성, 책임성을 지향하는 제도개혁; 엄정한 금융감독 방법과 기준의 정립; 자본주와 채무자간의 손익 분담과 귀속 절차 간소화; 구조개선을 촉진하고 지원하는 법적 조치; 구조조정과정에서 발생하는 실업 구제 및 사회적 안전망의 확충 등 모든 문제가 진행형이지 완료형은 아니다. 이미 취한 정책과 조치도 시행착오 때문에 다시 손질해야 할 부분이 허다하다. 정부와 국민은 약간의 성취에 자만하지 말고 계속 개혁완수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끝



1) Menzzie D. Chin and Micael P. Dooly, "Why Latin America 1995 and East Asia 1997 are Alike." A paper presented at the Seminar on Korea's Financial Crisis, held in the East-West Center, Honolulu, Hawaii, August 9-11, 1998.

2) 1998년 6월 15일 외신 보도 자료, "Korea's Response to the New Economic Reality"

3) 원문은 다음과 같다. "to give confidence to members by making the general resources of the Fund temporarily available to them under adequate safeguards thus providing them with opportunity to correct maladjustment in their balance of payments without resorting to measures destructive of national and international prosperity"

4) 삼성경제연구소 "한국경제 회생을 위한 정책 대안" 1998년 10월

5) 자료: 삼성경제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