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개방화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지금은 민주화와 개방화를 경험하는 과도기인데 여기에서 우리가 대응에 실패하면 정말로 총체적 위기가 온다.


 

오늘의 상황을 "총체적 위기"라고 표현하는 사람이 많다. 그 위기의 실체는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한마디로 민주화와 개방화의 진통이라고 말하고 싶다. 즉 지금의 현상은 민주화와 개방화의 2중적 도전에 대하여 우리가 대응하고 있는 실상이라 할 것이다.

민주화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그러면 먼저 민주화에 대하여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를 돌이켜 보자. 우선 정치적 측면부터 일별 (一瞥)하건대 오늘의 정치지도자들은 지난날 군사정권에 반대하는 방편으로 민주주의를 외쳤을 뿐 그들 자신이 민주주의를 깊이 이해하거나 실천하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문민정부의 [힘의 통치]는 과거의 그것과 다를 것이 없다는 평을 듣는다. 국회에서 몸싸움과 날치기 통과가 감행되고 있고, 정당은 여전히 1인 지배하에 있고, 사정과 실명제와 세무사찰이 그 본래의 목적 외에 정치 통제의 수단으로 사용되고 또 사용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 그것을 말해 준다.

여당과 야당은 사회의 특정세력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각종이질 세력으로 구성되어 정책 다툼이 아니라 세력 다툼에 여념이 없다. 따라서 사회의 안전변인 보수 중산층이 정치적으로 무력화되어 이 나라는 정치적으로 중심이 없는 사회가 되어 버린 것 같다.

한국병의 하나인 정경유착의 비리가 계속 터져 나오는데, 비리를 공유하는 정치권은 그를 치유할 근원적 자기개혁 보다는 그것을 당리당략에 이용하는 데에 정력을 쏟고 있다.

국가의 기본은 안보이고 군의 생명은 사기(士氣)인데 지도자들은 군에 대하여 목숨을 받쳐 싸워야 할 적이 누구이고 목숨을 받쳐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제시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군은 사기와 사명감을 잃고 있는 것 같다. 옛날에는 국방과 경제발전이라는 국가의 목표가 뚜렷했고 그를 위한 군의 역할에 대하여 긍지를 느끼기도 했지만 지금은 군인 출신 두 대통령의 잘못으로 군 전체가 오명을 뒤집어쓰게 되었다고 상심(傷心)하는 군인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그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지도자도 없는 터이니 군의 사기가 떨어지고 기강이 문란해지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 할 것이다.

일부 공무원들은 습관화된 부정 비리를 청산하지 못한 채 사정(司正) 앞에 복지부동과 안일을 일삼고 있고, 민주화와 개방화에 적응하려는 노력도 부족하다. 빈번한 장관 교체와 그에 따른 인사이동 때문에 공무원들은 자리가 안정되지 않고 어떤 정책 문제에 몰두(沒頭)할래야 할 수도 없다. 지난 4년 동안에 국무총리, 경제부총리가 각각 여섯 번이나 바뀌었고 통일부총리는 일곱 번이나 바뀌었는데 아마도 이와 같은 인사의 불안정은 다른 나라에서는 그 유례가 없지 않은가 한다.

한편 국민들은 민주체제를 지탱할 수 있는 자율의 힘이 부족하고 무질서와 집단적 이기주의와 떼가 유행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정보화시대의 물결을 타고 다양하고 무수한 정보매체들이 생겨났는데 그들은 언론의 자유를 만끽하면서 국가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아랑곳없이 흥미본위의 보도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고, 한편으로는 전통적 가치관을 뒤흔드는 영상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민주화 이후 신문과 공영방송의 질이 현저히 개선된 것도 사실이지만 위와 같은 일들이 세상을 한층 더 어지럽게 만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상에서 민주화의 도전에 대응하는 우리의 실상을 보았는데 그 결과로 우리 사회는 중심도 없고, 구심점도 없고, 권위도 없고, 모두가 흩어져서 서로 남을 헐뜯고, 탓하고, 한탄하는 수라장이 된 것 같다.

하기야 구미의 민주주의는 수 백년의 경험을 거쳐 오늘의 상태에 이른 것이니 일조일석에 민주화가 실현되기를 바랄 수는 없는 것이고 지금의 현상은 어차피 겪어야 할 과도기적 진통이라고 자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사태를 오래 지속하면 할수록 격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살아 남기 어렵다는 데에 우리의 위기의식이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사태를 어디서부터 풀어 나가야 하느냐가 문제인데, 국민 각자의 각성과 행태의 변화가 필요한 것은 물론이지만 아무래도 정치적 리더십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개방화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

다음에 개방화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어떠한가? 지금의 경제적 고난은 일찍부터 예견했던 일이다. 80년대 중반부터 개방화의 물결이 밀어닥치자, 우리는 먼저 국제수지를 걱정하였고 그에 대비하기 위하여 신속한 구조조정을 촉구해 왔다. 그러나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오늘에 있어서도 4고(고임금, 고금리, 고지가, 고 물류비용) 3저(저효율, 저기술, 저부가가치)의 구조적 취약점은 별로 개선되지 않았다. 당연한 결과로서 우리경제는 지금 구조적 침체에 빠지게 된 것이다.

경제에는 튼튼한 바탕과 그 위에서 작용하는 혁신의 활력이 있어야 한다. 경제의 바탕을 형성하는 것이 앞에서 말한 4고 3저의 요인이고 그것이 바로 국제경쟁력을 결정한다. 이 거시적 바탕을 만드는 것은 주로 정부가 해야 할 일인데 문제해결의 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것이 문제이다. 이제서야 노동법개정, 금융개혁등에 손을 대고 있고 불급한 재정지출에 밀려 사회간접 시설의 확장이 늦어지고 교통난은 악화 일로(一路)에 있다. 저기술, 저부가가치를 극복하기 위한 시스템이 짜여져 있는지도 의문이다.

경제의 바탕이 주어지면 그 위에서 기업의 혁신적 활동이 이루어지고 거기에서 경제의 활력이 생겨난다. 혁신에는 기업의욕, 창발력, 시장개척, 선투자. 기술 등이 필요한데 오늘의 기업환경은 정치와 맞물려서 기업의 혁신의욕이 저조하고 따라서 경제가 활력을 잃고 있다. 조속히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과거지사(過去之事)에는 매듭을 짖는 것이 기업계의 활력을 회복하는 길이 될 것이다.

민주화와 개방화에 대응함에 있어서 우리가 크게 실수한 일 중의 하나는 노사(勞使)가 다같이 우리 경제의 실력에 맞지 않는 급여수준과 소비수준을 맹목적으로 추구하였다는 것이다. 우리의 생산능력에 비해 명목소득이 지나치게 증가하면 물가 상승과 국제수지 악화를 가져오는데 수입이 개방된 상태하에서는 물가보다 국제수지에 더 큰 영향을 준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국제수지 적자의 위험수위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하기야 국제수지 악화에는 소비뿐만 아니라 우리 생산구조에도 문제가 있다. 즉 소재와 부품 등의 수입의존도가 높다는 것은 우리경제의 오래 된 숙제인데 아직도 중화학 공업의 핵심부품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재래산업에서 경쟁력을 잃어가는 중소기업을 부품생산으로 재편하는 것인데, 이 가장 시급하고도 중요한 과제에 체계적, 효과적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하기 어렵다.

    일조일석에 지금의 경제적 고난을 해결할 수 있는 비방(秘方)은 없다. 우선 단기적으로는 국제수지를 방어하기 위하여 성장률을 낮출 수밖에 없고, 우리 현실에 맞는 노동법이 성립되어야 하며, 일시적 편의를 위한 대증요법 보다는 물가안정을 위한 마크로 정책의 틀을 굳건히 유지하는 것이다. 동시에 위에서 말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전력을 기울이는 한편 중소기업의 창. 전업과 제품 개발 등의 혁신노력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일례로 대만과 같이 중소기업의 어떠한 기술적 문제라도 해결해 줄 수 있는 기술정보 시스템을 만들어서 중소기업의 업종 전환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그리고 한보(韓寶) 사태에 관련하여 앞으로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이 크게 문제 될 것이니 그를 정리하는 제도적 장치를 강구할 필요가 있다.1)

지도자의 리더십

이상에서 민주화와 개방화의 도전에 대응하고 있는 우리의 실상을 그려보았는데 얼키고 설킨 문제를 풀어 나가는 데에는 지도자의 리더십에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지도자는 중요한 문제에 대하여 자신의 견해와 확신이 서 있어야 하고 그러한 확신으로 국민을 설득하고 이끌어야 반대하는 국민이 있는 반면에 따라가는 국민이 대다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대다수가 있을 때에 그 사회에 중심이 잡히고 사회가 안정될 수 있는 것이다.

불행히도 지금 국민들은 정치적 지도력에 대하여 회의를 느끼고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이 구심점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데 지금 그 구심점이 흔들리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이것은 대통령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전체가 책임을 나누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민주화시대의 지도자는 보통사람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직책이고, 모든 난관을 돌파하고 나라를 위하여 큰 일을 하는 지도자가 있기는 하나 많지는 않다 그러나 어쨌든 대통령은 구심점의 역할을 되찾아야 한다.

이러한 때이니 만큼, 그리고 금년은 대선(大選)의 해이니 만큼 국민들은 차기의 대통령후보로 어떠한 후보가 등장하고 누가 당선될 것인지에 대하여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나간 논문2)에서 지도자의 조건을 나열한바 있거니와 우리는 그와 같은 조건을 생각하면서 차기 지도자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끝


1) 일례로 전체 은행의 공동출자로 성업공사와 같은 법인을 창설하여 그 회사로 부실채권을 집중시키고 우선 각 은행의 재무구조를 깨끗이 한다. 그래야 앞으로 국내 은행들은 외국은행과 정상거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부실채권은 떠맡은 회사는 점차로 부실기업을 매각하여 채권을 회수할 수 있는데 까지 회수하고 거기에서 결과되는 손실은 해당 은행, 금융단, 한은, 정부(조세면에서)가 적정하게 분담하도록 한다.

2) "세계화시대의 경제운영"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