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를 기피할 때가 아니다

 1998년 11월 21일, 한국경제신문 기고.


드디어 올 것이 왔다. 그런데 IMF를 피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우리는 외압이 없이 해야 할 일을 해본 경험이 없다. 주저하지 말고 빨리 IMF로 가라!


 

정부가 강도 높은 금융안정화대책을 발표하였다. 부실채권정리기금의 확대, 부실 종금사의 외화거래업무의 정지, 금융기관의 통폐합, 환율 변동폭의 확대, 은행 재무상태의 투명화, 정부, 한은 및 기업에 의한 중장기 채권 발행에 의한 외자조달의 극대화 등이 그 주요 골자이다. 때늦은 감이 있으나 필요한 정책 제시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정책의 성패 여부는 정책 집행 속도와 방법, 그리고 수반되는 부작용의 처리에 달려 있다고 할 것이다. 특히 신속한 외화 조달 능력이 성패의 관건을 쥐고 있다.

먼저 환율의 변동폭을 상하 10% 까지 확대한 것은 환율 결정을 거의 시장에 맡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환율을 안정시킬 수 있는 궁극의 방법이다. 그러나 외화조달의 속도가 늦어지면 환율은 상승세를 지속하고 환차손 확대, 주가하락, 물가상승의 압력이 커질 것이니 조속한 외화조달이 급선무이다. 외화 조달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한국은행의 외화 환매채 발행, 정부 외화 채권의 발행, 현금차관의 확대, 수입 연지급 범위의 확대 항공기 구입의 리스 전환등, 모든 방법을 동원하는 반면 IMF의 구제 금융은 최후까지 회피한다고 한다. 그러나 IMF의 구제금융과 기타 금융에는 일장일단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은 IMF 구제금융을 기피할 때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아마도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1960-1970년대에 IMF의 이른바 대기성 차관을 약정하기 위하여 해마다 재정안정계획을 협약하였고 우리는 그 협약의 구속을 받아 온 경험이 있다. 돌이켜 보면 그러한 재정안정계획의 구속이 있었기에 그나마도 우리 정부가 거시정책의 안정적 테두리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나는 믿는다. 1974년에 영국도 IMF의 구제금융을 받은 일이 있거니와, 원래 IMF는 일종의 세계 중앙은행으로서 회원국이 통화위기에 처했을 때 그를 지원하는 것을 주요 기능으로 하고 있다. 그런 만큼 우리는 회원국으로서 그를 활용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하물며 오늘의 사태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동남아 국가들의 통화위기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그 원인을 캐고 보면 국제 단기자본의 투기적 이동을 적절히 다스릴 수없는 현 국제통화체제의 결함에도 원인이 있는 만큼 우리는 IMF에게 당당히 할 말도 있다.

정부는 IMF의 구제 금융에는 여러 가지 구속 조건이 붙기 때문에 기피한다고 하나 그 조건이란 어차피 우리가 자신을 위하여 해야 할 구조개혁 과제들을 포함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정치적 리더십의 부재로 자력으로 그러한 구조개혁을 수행하지 못한 결과 오늘의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는데, IMF의 구속 때문에 구제 금융을 기피한다고 하면 국제사회는 우리가 필요한 구조개혁을 회피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고 그로 인하여 우리에 대한 신인도가 더욱 떨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결국, 이번 국회에서 금융개혁법안이 유산된 데에서 보았듯이 우리의 정치적 리더십의 부재가 문제인데, 차라리 IMF 협약에 구속되면 정치인들의 각성과 행동을 끌어내기가 좀 더 쉬워지지 않을까 한다. 물론 국제금융기관은 우리에게 비현실적이고 무리한 요구를 내놓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조정하고 협상하는 것이 정부의 임무이다. 2국간의 자본 협력에도 유형 무형의 대가가 따를수 있는 것이니 차라리 알려진 기준에 따라 국제금융기관과 거래하는 것이 보다 떳떳한 면도 있다.

정부당국자 가로되 우리는 구조조정을 해 왔고 또 하고 있으니 IMF의 구제금융을 받기 위하여 구속당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구조조정을 제대로 해 왔으면 왜 이번 사태가 발생했느냐고 반문한다면 무어라고 답변할 것인가. 정부의 언행 불일치가 국제사회에서 신용을 잃어 왔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또 한가지 생각할 문제가 있다. 앞으로 정부가 약속한 조치들을 실행하자면 통화팽창과 환차손으로 인한 물가 상승, 금융기관 통폐합에 따르는 금융 불안, 금융 수축, 노사 분규 등등 엄청난 동요가 있을 것인데 이렇게 되면 외국투자가들의 한국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되어 투자를 기피하고 오늘의 사태를 재연할 우려가 있다. 이 경우에 우리가 IMF와 연계되어 있으면 이 기관은 우리 조정 과정의 진통을 몸소 이해하게 되고, 필요한 정책 권고와 함께 대외적으로 한국의 구조 조정 실적과 경제 전반에 대한 개관적 평가를 대변해 줄 것이다. 국제금융계는 우리의 말은 믿지 않지만, IMF의 말을 믿으려 하고 투자가들이 IMF의 평가를 참조하는 것이 국제금융계의 관행이다. IMF로부터의 공적 차입은 금리면으로도 유리할 뿐 아니라 한국 경제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필자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다.

요컨대 IMF에 가지 않고 문제를 해결할 자신이 있으면 그것도 좋다. 필자도 그것이 보다 신속하다면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만일에 대비해서 제2선으로 IMF와 긴밀한 연락과 협력을 추진할 것을 권고한다.

이번 사태에서 얻는 교훈이 적어도 두 가지 있다. 첫째는 위기가 닥쳐오기 전에 사전 시정책을 신속히 시행해야 한다는 것, 둘째는 구조개혁에는 반드시 부분적 파탄이 있게 마련이니 그에 대비하여 비상대책을 강구해 두고 문제가 발생하면 속전속결로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기아 사태를 그렇게 오래 끌지 않았더라면 오늘의 위기를 모면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끝으로 부언할 것은 정부가 발표한 금융의 구조개혁은 시작에 불과하고 기업의 구조개혁이 병행될 대에 비로소 유종의 미를 걷을 수 있다. 과다한 차입 경영, 이윤을 무시한 외형주의, 분식결산, 경영 상태의 불투명, 과잉투자 등은 이제 국제사회에서 용납되지 않는다. 이번의 위기를 전화위복으로 돌리기 위하여 대기업들도 적극적으로 경영개혁에 힘써야 한다. 국민들도 구조개혁 없이 이 나라 경제가 재생할 길이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과도기의 진통을 나눌 각오를 해야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