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대책: 신뢰회복이 급선무이다

 1997년 12월 한국무역협회에서 강연  


예금 뢰취(雷取), 환율 급등, 연쇄부도 등의 파국 현상이 나타나는데 정치권에서는 IMF와의 재협상을 들고 나왔다. 정치권, 정부에 대한 외국인의 신뢰회복이 급선무이다.


 

불신의 위기

지금 우리는 세 가지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구조적 위기, 리더십의 위기, 불신의 위기가 그것인데 지금 가장 심각한 것이 불신의 위기이다. 사람들은 마치 IMF가 우리에게 일대 재난을 가져온 것처럼 말하고 있다. 그러나 재난을 불러온 것은 우리 자신이지 결코 IMF가 아니다. IMF는 궁지에 빠진 우리 경제를 구출하려 할뿐인데 증거도 없이 국제기관을 백안시하고 정부와의 합의사항이 무엇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재협상을 해야 한다고 떠들어댄다. 가뜩이나 국제사회의 신뢰가 없어 달라 값이 폭등하는 판에 불난 집에 기름을 뿌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외지들은 한결 같이 우리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사태를 악화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닥쳐오는 사태가 너무나 긴급하니, 우선 응급 대책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황급히 사견을 말해 본다.

예금 뢰취

대통령이 예금 지급보증을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문을 닫은 종금사에 예금자가 몰려오고 있다. 그러나 예금자들은 정부를 믿어야 한다. 한편 정부는 공약을 한 이상 한국은행 자금을 투입해서라도 무제한 예금을 내주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은행들은 종금사에서 인출된 예금의 유치경쟁을 하면 대부분의 예금은 금융기관으로 되돌아 올 것이고 은행은 자금경색을 덜게 된다. 한은 개입으로 발생한 통화증발 요인은 추후에 처리할 수 있는 문제다. 지금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정부의 공신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환율급등

환율 폭등도 불신에서 오는 것이다. IMF의 자금이 한꺼번에 들어오지 않고 우리 정부가 공약을 이행하는 상태를 보아 가며 조금씩 주겠다는 것이 IMF의 입장이고 외국정부나, 국제 금융기관 또한 IMF의 태도를 보고 대통령 선거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것 같다. 결국 우리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그러나 IMF가 충분한 자금을 일시에 투입하지 않고서는 지금의 투기적 환율 상승의 대세를 꺾을 수 없다. 그러나 일단 꺾고나면 환율은 내림새로 돌아설 것이니 IMF는 이 현실을 이해하고 조속한 자금조치를 취해야 한다. 사태를 악화하기 전에 신속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연쇄부도

은행들은 종금사와 정부를 믿지 못해 돈줄을 끊고 있고, BIS기준을 충족하기 위하여 자금 회수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무리하게 자금을 회수하면 부실채권만 늘어나고 자본비율은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IMF협정에도 연차 계획으로 개선하라고 권고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무리하게 위험채권을 축소할 필요는 없다. 대외 공신력 유지를 위해 부득이 하다면 정부와 IMF와 연차적 개선을 공식화할 필요가 있다.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는 연쇄부도 사태를 막는 일이다. 정부가 추가적으로 부실 종금사에 영업정지를 명하고 어음 할인 업무를 일반은행으로 확대한 것은 잘한 일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일정한 기준을 정해 은행이 종금사로 부터 매입한 40조원의 어음 결제를 금융단 협정으로 일시 유예하는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금융기관은 어차피 회수하기 어려운 채권이니 그 상환을 연기해 주면 우선 기업이 한숨을 돌릴 수 있고 그러는 동안 다음의 조치를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의 조치가 무엇이냐 하면 그것은 구조조정의 여파로 자금난에 봉착한 기업의 단기자금을 장기자금으로 대환해 주는 것이다. 한가지 방법으로 세계 은행이 주겠다는 100억불의 구조조정 차관을 활용할 수 있다. 세계은행은 과거에 멕시코 및 칠레에 이러한 차관을 제공한 일이 있는데 그 운영 방법을 예시하면(어디까지나 예시이다) 대략 다음과 같다.

먼저 금융기관은 여신 총액을 세 등급으로 분류한다. 예컨대 A는 정상채권, B는 정부가 12월 3일 발표한 28조의 부실채권에 포함되지 않았는데 그후 금융경색으로 자금난을 겪고 있거나 부도에 직면한 기업, C는 전기 28조에 포함된 부실채권 등이다. 분류하는 목적은 지원의 범위를 결정하기 위함인데 가용재원, 정책목적에 따라 결정할 문제이나 주로 B에 속하는 기업 특히 수출형 중소기업이 대상이 되어야 한다.

다음에 세계은행은 성업공사 혹은 유사한 기관에게 예컨대 100억불(약10조원)의 장기저리(10년 이상)의 구조조정 차관을 융자한다. 성업공사(또는 유사한 기관)는 이 돈으로 자금난에 빠진 기업에게 장기대부를 하여 그것으로 은행 또는 종금사의 단기 채무를 갚게 한다. 기업은 장기대부를 받아 매년 조금씩 적립해 나가거나 부불(賦拂)로 상환할 수 있게 한다. 상환시의 환차손은 기업이 부담해야 하나 금리를 낮게 하여 차손의 부담을 덜게 할 수 있다. 성업공사는 기업이 적립한 상환자금으로 세계은행에 대한 부채를 갚아 나간다. 이렇게 하면 외화가 들어오고 위험 채권이 정리되어 은행의 자본비율이 올라가고 기업은 경영 위기에서 탈출한다. 이 방법을 시행함에 있어서 주의할 점은 대상 기업의 선정에 부정이 개입할 소지가 없도록 하고 A급의 정상적 기업과의 형평을 고려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은행에서 이러한 차관을 얻자면 IMF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조건이 붙을 것이다. 그러나 어차피 우리에게 필요한 구조조정이라면 마다할 이유는 없다. 만약 정부가 세계은행과 타결을 보게 된다면 대환 절차가 끝날 때까지 해당 기업의 부채상환을 유예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물론 세계은행 자금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므로 정부는 채권을 발행하여 구제의 범위를 넓힐 수도 있고 필요하면 단독으로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금융의 근본문제는 단기자금으로 설비투자를 해 왔다는 점인데 구제 불능의 기업은 빨리 청산하되 살려야 할 기업은 적극적으로 살려 나가야 필요한 구조조정이 원활히 진행되고 경제 회생을 촉진하게 될 것이다.

정부. 정치권의 불신을 해소하자면

무엇보다도 시급한 일은 정부와 정권의 공신력을 회복하는 일이다. 한가지 방법이 있다.. 그것은 IMF의 요구 사항뿐만 아니라 우리가 주체적으로 해야 할 구조조정의 내용을 조목조목 열거하고 그 실행계획을 내외에 천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 당선자는 당선 즉시로 김영삼 대통령과 면담 후 이 계획을 원칙적으로 수용할 것임을 선언한다. 이 계획의 실천에는 수많은 입법이 필요한데 각 개별 법을 상위별로 따로 심의하면 시간이 너무 걸린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다. 차라리 정부는 관계 법률의 개정 사항을 가칭 [구조조정임시조치법]이라는 단일 법안에 망라하여 국회에 제출하고 국회는 각 상위를 대표하는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단시일 내에 이법을 심의 통과시키면 된다. 지금부터 그 작업에 들어갔으면 한다. 김영삼 대통령이 약속한 대로 대선 당선자와 협의하여 반드시 국회에서 이법이 통과 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개혁 작업의 대부분이 일거에 끝나게 되고 기업과 국민들은 확연히 앞을 내다볼 수 있게 될 뿐 아니라 국제사회는 정부와 정치권의 굳은 의지를 인정하게 될 것이다. 남는 문제는 법 시행에 따르는 부작용인데 이제는 국제 금융기관에게 당당히 협조를 요청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당선자가 외국을 방문해 보았자 냉대밖에 받을 것이 없을 것이다.

요컨대 국내외에 불신을 어떻게 가라 앉히느냐 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당면한 문제 중의 문제인데 7일 후에 새로운 지도자가 선출되면 사태가 좀 달라지지 않을까 희망을 걸어 본다. 그러나 때와 장소에 따라 말을 바꾸고, 약속을 지키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후보들이 과연 이 신뢰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 그것이 의문이다. 대선에서 누가 당선될지 모르나, 누구이든 온갖 인기 없는 정책을 강력히 밀고 나가, 말보다는 후에 나타나는 결과로서 그 정당성과 지도력을 과시하는 신념의 지도자가 나왔으면 하는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