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렇게 극복하자


1997년 11월 28일, 드디어 정부가 IMF 구제금융을 신청한 다음날 한국 무역협회 특별강연에서 위기 극복을 위하여 정부, 기업, 그리고 근로자에게 호소했다.


 

[머리말]

지금 우리 경제는 1973년 석유파동 이후 최대의 고난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습니다 만은 그것을 집약해서 말씀 드리면 우리가 민주화, 개방화, 정보화라는 3중의 변화에 적절히 적응하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연 3化 시대의 도전은 만만치 않고 그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한 과제들을 싸잡아서 구조개혁이라고 하는데 그 중 가장 기본적인 과제는 4대 경제주체 즉 정부, 금융, 기업, 노동단체의 변신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면 이들 경제 주체가 직면한 근본문제는 무엇이며 그 문제해결의 기본 방향은 무엇이냐 하는 점에 관하여 사견을 말씀 드려 볼까 합니다. 지금 금융문제가 심각한 만큼 금융 문제를 중심으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정부의 근본문제]

1. 지도력과 행정의 효율

먼저 정부의 문제점부터 말씀 드리겠습니다. 대선을 앞둔 이 시점에서 지도자에게 고언을 드려 보았자 별 뜻이 없겠습니다 만은 차기 지도자를 위해서라도 한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문제를 골똘히 생각하고, 사태를 추적하고, 국내의 지적 능력을 동원하여 해결책을 강구하고, 일단 해결책이 건의되면 지도자는 어렵더라도 결단을 미루지 말고, 결단 후에는 그것을 정력적으로 추진하는 핵심 세력을 가동해야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4년 9개월 동안에 경제 부총리가 일곱번 바뀌었고 그에 따라 하부 인사 교체가 빈번하니 한자리에 앉아 문제와 끈질기게 대결하는 안정된 관료집단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태가 점점 악화하는데도 불구하고 무사안일주의와 방관적 태도가 일상화하여, 각 분야의 구조개혁을 일관적, 정력적으로 추진하지 못하고 행정이 공전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요컨대 경제에 관한 지도력의 약화와 행정의 불안정 및 능률 저하가 현정부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지금은 앞서 말씀 드린 3化 시대에 적응하기 위하여 모든 분야에서 개혁이 필요한 때입니다 만은 무엇보다도 정부의 지도력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지난 10년 동안의 개혁의 실적은 미미합니다. 이른바 4고 3저, 즉 고임금, 고금리, 고지가, 고물류비용과 저기술, 저부가가치, 저능률이 결합된 우리 경제의 구조적 취약점이 별로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해마다 국제수지는 악화하는데 국민은 과소비에 열을 올리고 정부 또한 내실보다 외관 혹은 "위상"을 중시하여 거품 경제를 조장한 면이 없지 않았습니다.

2. 규제완화의 허실

그동안 규제완화, 자율화를 노래하는 말들은 무성했습니다 만은 재계에서는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다고 불평입니다. 왜 그럴까요? 본인이 보기에는 규제완화의 원칙과 기준이 명확치 않을 뿐만 아니라 규제의 실태를 정부 당국자도 모르고 있고 재계도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총론만 되풀이되고 각론에서는 지엽(枝葉)적인 절차 간소화가 고작인 것 같습니다.

3. PMS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고 있는 것은 경제정책의 총체적 재편성을 위한 법령과 제도의 전반적 재검토입니다. 그러자면 우리 경제에 관한 법률, 시행령, 부령, 규칙 등을 총체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이를 위하여 컴퓨터 프로그램 (data base)을 개발하라고 권고한 일이 있습니다. 즉 경제에 관한 일체의 법령의 각 조문에 분야별, 목적별 등 각종 분류 코드를 붙여 컴퓨터에 입력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령 건축허가를 받을 경우 어떠한 절차와 규제가 있는가를 알고 싶으면 컴퓨터가 각 부처의 전 법령을 검색해서 일목요연하게 제시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모든 경제행위에 대한 법적 규제 사항을 총체적으로 파악 할 수 있고 그 자료를 놓고 규제완화 문제를 논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경제정책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고 따라서 정책 평가와 개발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Policy Monitoring System (PMS)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만약 정부 연구기관이 이 일을 맡게 된다면 필요한 예산과 함께 각 부처가 법령을 제정 또는 변경했을 때에는 반드시 그것을 연구기관에 통보하도록 법제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보화시대에 컴퓨터의 위력을 활용하여 이만한 일을 하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금융의 기본 문제

1. 외압의 효능

다음에 금융분야로 넘어 가겠습니다. 지금 정부가 IMF에 긴급 차관을 요청하자 거기에는 여러 가지 조건이 붙는다 하여 그것을 국제적 [신탁통치]이니 [법정 관리]이니 하는 말이 나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과장된 말입니다. 하기야 우리 나라는 언제나 외압이 있어야 무엇인가 해야 할 일을 해 왔습니다. 본인이 정부에 있을 때에도 IMF의 대기차관을 얻는 대가로 해마다 IMF와 재정안정계획을 약정하였는데 돌이켜 보면 이러한 외압이 있었기에 그나마도 이 나라의 거시정책의 틀을 유지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1970년대 이후에도 외압에 의하여 무역을 개방하였고, 외압에 의하여 산업보호정책을 청산하다가, 이번에는 외압에 의하여 충분한 국내 구조조정이 없이 외환과 주식시장을 일부 개방한 결과 오늘과 같은 금융 파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외압이 우리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그것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필요한 구조개혁을 수행한다면 우리 경제는 제2의 도약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오로지 우리가 하기에 달려 있는 문제입니다.

2. 금융과 기업집단의 유착

우리 나라 금융구조에는 두드러진 특징이 있습니다. 은행은 본래 예금을 받아 들이는 한편 융자 신청이 들어오면 그 용도가 타당하고 대출 회수 가능성이 있는가를 면밀히 검토하는 기업입니다. 우리 은행들은 중소기업에 대하여는 지나치리 만치 그런 일을 하고 담보 없이는 좀처럼 돈을 빌려주지 않습니다 만은 대기업, 특히 기업집단에 대하여는 그렇지 않고 그렇게 할래야 할 수도 없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업집단은 가장 중요한 고객이니, 기업집단과 거래해야 예금, 대출의 외형이 늘어나고 거액의 각종 수수료가 들어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대개 기업집단은 직접 간접으로 금융기관의 중요 주주로 되어 있으니 감히 주주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설사 사업의 건전성이 의문시된다 하더라도 재벌기업은, 그 재무 상태야 어떻든, 당장 부도를 낼 걱정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유수한 재벌들은 그룹내 기업간 금융은 물론, 보험, 증권, 종금사 등 각종 금융기관을 거느리고 있기 때문에, 자금의 임시변통에는 남다른 위력을 발휘합니다. 뿐만 아니라 정경유착 하에서 정치권의 영향 또한 적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금융기관들은 융자의 심사나 리스크 관리를 거의 포기하다시피 하고 외형 확대에만 전념하는 금융 풍토에 안주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금융풍토는 우리 산업 및 경영구조에 중대한 영향을 미쳐 왔습니다. 즉 대출이 기업집단으로 편중되었고 대출이 편중되니까 기업집단의 규모는 점점 커지고 기업집단이 커지니까 금융력이 더욱 강화된다는 악순환이 계속되어 왔습니다.

기업집단이 금융면에서 대규모 경영의 이점을 챙기는 것을 탓할 수는 없으나 재벌이 문어발 식으로 사업을 다각화하여 경영 자원을 지나치게 분산하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몇몇 주력기업에 전력 투구를 해도 외국의 다국적 기업과 대적하기 힘들 터인데 개별 사업의 수지를 무시하고 위세(威勢)와 자급(自給)체제를 구축하기 위하여 투자자원을 분산하는가 하면 집단내의 결손업체를 무한정 끌고 가는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필경 기업집단과 금융이 유착상태에서 오는 현상이 아니냐 하는 내외의 비판이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중복투자, 과잉투자, 문어발 투자가 문제되어 왔습니다 만은 만약 기업진단이 국내은행이 아니라 외국은행에 그러한 투자를 위한 융자 신청을 했다면--물론 국내은행의 지급 보증없이-- 과연 외국은행이 그러한 투자를 용납했을 까요? 미국. 영국, 오스트렐리아, 뉴질랜드 등과 같은 나라에서는 산업과 금융이 엄연히 분립되어 있기 때문에 기업집단의 투자 사업은 은행의 엄정한 타당성 검증을 거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번에 기업집단의 파탄에서 보았듯이 집단내의 한 기업이 무너지면 다른 기업도 안전할 수 없고 피해가 기업집단 전체에 파급된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이른바 선단(船團)식 경영체제의 위험이라 하는 것입니다.

위와 같은 사정은 우리 나라의 고금리의 현상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경제학에서는 금리는 자본의 생산성 혹은 수익성을 반영한다 하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자본의 수익성이 아니라 비효율을 반영하는 것 같습니다. 즉 하도 많은 부실기업들이 끝없이 은행 차입으로 연명해 나가니까 그를 위한 자금 수요가 막대하고 따라서 금리를 자유화해도 좀처럼 낮아지지 않습니다.

한편 은행 융자가 대기업에 편중된 결과로서 우리 나라에서는 중견기업과 중소기업형(型) 산업의 저변이 매우 약하고 그것이 우리경제의 구조적 취약점이 되어 왔습니다. 우리 경제를 인체에 비유한다면 머리만 크고 동체와 다리가 가느다란 모습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지금 이른바 M&A (기업의 매수와 합병)를 촉진한다 하지만 대기업의 부실기업을 매수할 만한 중견기업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3. 금융파탄의 경위

그러나 정보화 개방화에 따라 이러한 금융과 경영구조상의 문제점이 점점 표면화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금융 파탄이 진행되어 온 과정을 돌이켜 보면 이점이 명백히 드러납니다.

먼저 수년 전에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을 부분적으로 개방했더니 외국 은행들은 한국의 고금리와 환율의 안정기조에 현혹되어 한국에 많은 단기자금을 가져 왔습니다. 즉 해외에서 6-7%의 저금리로 자금을 조달하여 한국에 가지고 와서 원화로 환전하여 12-3%의 고금리로 운용하면 환율이 안정되어 있는 한 곱쟁이 장사가 된다는 묘미를 맛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한국이 자본시장을 더욱 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한편 외국투자가들은 우리의 주가가 저평가 되어 있다고 생각하여 주식시장에서 많은 주식을 매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1993-1996년 사이에 수백억불의 단기자본이 유입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외국 금융기관들은 우리 기업집단들의 해외지사를 통한 현지금융에도 적극적으로 응해 주었습니다. 기업집단들이 본사 지급보증으로 해외에서 차입한 외자는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500억불 이상)

그러나 민주화, 개방화, 정보화의 충격은 재력이 비교적 약한 기업집단에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정치적 비자금 사건에 이어 한보(韓寶) 스캔들이 터져 정경유착의 실태가 드러났고 이 나라의 재벌 총수들이 줄줄이 법정에 서게 되니 우리뿐만 아니라 국제사회를 놀라게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어서 기업집단이 부도를 냈고 기아 그룹이 그 뒤를 따르게 되었는데 정부의 결단과 처리가 늦어져서 불안 상태가 장기화하자 경제 분위기가 급속도로 악화하였습니다.

한편 국제수지 악화로 환율은 계속 올라가서 외국투자가들의 원리금 환전시의 환차손이 늘어나는 한편 한국의 국내 사정이 혼미하고, 동남아 제국들이 외환위기에 직면하고 그것이 홍콩, 싱가폴에 까지 파급되니 외국투자가들은 더욱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한국 경제에 관해 여러 가지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 국제수지가 만성적으로 적자인데 과연 대외지급에 문제는 없는 것일까?
  • 대기업들의 자동차, 제철 등에 대한 중복투자가 과연 경쟁력이 있는 것일까?
  • 기업집단들이 연달아 도산하는데 한국 금융기관들의 부실채권은 얼마나 될까?
  • 각 재벌들이 정치권에 바친 수 백억 원의 비자금은 재무제표 어디에 숨겨져 있는 것일까?
  • 한국의 금융기관이나 기업의 재무제표를 그대로 믿을 수 있는 것일까?
  • 현정부는 지금의 위기를 관리할 능력이 있는 것일까?

한 마디로 한국 금융과 대기업, 그리고 정부에 대한 불신이 일시에 분출되어 외국투자가들은 주식과 채권을 투매하여 한국으로 부터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주가가 폭락하고 달러 자금 회수가 일시에 몰리니 외환보유고에 바닥이 나고... 이래서 오늘의 사태를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구조적 위기, 지도력의 위기, 불신의 위기가 동시에 표출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저는 외환시장 개방과 관련하여 투기적 단기자본 유입과 유출에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고 수차 경고한 일이 있습니다 만은 결국, 집안 단속을 하지 않고 외국자본에게 문을 조금 열었다가 이 꼴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외환시장의 개방이 너무 빨랐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의 대내적 구조조정이 너무나 늦었다는 말씀입니다.

    4.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그러면 앞으로 우리는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지금까지 말씀들인 바에 의하여 그 방향은 대충 짐작이 가셨으리라 믿습니다. 정부는 금융안정화 대책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부실채권의 정리, 부실 금융기관의 통폐합, 예금자 보호, 긴급외화 조달 등을 내용으로 하는 것인데 그것들은 응급 대책으로 적절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금융의 근본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구조개혁이 필요합니다.

첫째로 한나라의 가용 자원을 합리적으로 이용하도록 기업을 이끄는 금융 본래의 기능을 확립해야 합니다. 옛날에는 잘했건 못했건 정부가 개발계획을 세워 금융 자금의 배분을 지도해 왔습니다 만은 지금은 정부가 그 일을 할 수도 없고 하여서도 아니 됩니다. 이제는 금융기관이 그 역할을 해야 합니다. 식자들은 이제 모든 일을 시장 기능에 맡겨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 것은 기업이나 금융기관의 잘 잘못은 냉혹한 시장 규율과 제재(制裁)에 맡긴다는 뜻입니다. 즉 금융기관이 본연의 역할을 하지 못하면 부실채권의 누적으로 망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금융기관이 맹목적으로 대기업에게 끌려 다닐 수 없게 되고 이제는 신용 있고 건실한 중소기업을 찾아다니게 된다는 것입니다.

한편 대기업은 국내은행의 지급 보증 없이 해외에서 얼마든지 돈을 빌릴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외국은행의 엄격한 심사를 받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나라에서는 금융기관이 파산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선진 제국에서는 금융기관이 부실 경영으로 망한 예는 적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1980년대에 시카고의 대은행 Continental Illinoi, 보스턴의 Bank of New England가 문을 닫았고, 텍사스 주에서는 80년대 후반에 200여개의 상업은행이 망했습니다. 최근에 일본 북해도 탁식은행이 파산했고 일본 4대 증권사의 하나인 야마이찌 증권회사가 망했다는 뉴스도 들으셨을 것입니다. 이렇듯 냉혹한 시장규율이 서지 않으면 금융이 사회적 기능을 다 할 수 없다는 것이 시장경제체제의 기본 철학입니다. 이제 우리 나라에서도 IMF의 권고에 의하여 몇몇 종금사가 문을 닫게 될 것 같습니다. 이 냉혹한 현실을 교훈 삼아 우리 금융기관들도 독립자존의 자세로 제구실을 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이점에 관련하여 우리 나라 금융기관이 부실화한 것은 주인이 없었기 때문이니 그럴 바에야 재벌에게라도 은행을 맡기는 것이 옳지 않으냐 하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주장에는 허점이 있습니다. 가령 일본의 미쓰비시은행의 주인이 누구냐고 묻는 다면 어느 개인이나 재벌의 이름을 댈 수는 없을 것입니다. 미국의 체이스 맨하탄 은행의 주인이 누구냐고 묻는 다면 아마도 여러개의 재단이나 보험회사 이름을 댈 것입니다. 선진국의 은행들은 이미 자본과 경영이 분리된 상태에 있고 소유주는 빈번히 바뀝니다. 이번에 많은 종금사가 파탄에 직면했는데 그것은 주인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주인은 재벌을 포함해서 분명히 있습니다. 금융기관의 주인을 단일화 하기보다는 오히려 소유와 금융의 유착을 법적으로 차단하고 이사회의 기능을 활성화하는 한편 금융감독을 철저히 하는 것이 올바른 해법이라 생각됩니다.

여기에서 이사회라 함은 은행 집행부의 부장 위의 이사를 말함이 아닙니다. 집행부의 이사는 미국식으로 말하면 부행장(vice president) 이고 주주를 대표하는 이사는 따로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집행부의 역원과 주주를 대표하는 이사회를 엄연히 구별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주주 이사회야말로 주식의 가치를 높이기 위하여 경영정책을 결정하고 집행부를 감시하는 책임을 지는 것이 윈칙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이사회가 제구실을 못하고 유명무실화 한 것은 정부가 은행의 인사, 경영에 간섭하여 이사회의 기능을 저해했기 때문인데 이제부터는 모든 일을 법과 원칙대로 할 때가 되었습니다.

둘째로 그러나 은행이 파탄하면 다수의 예금자가 피해를 보고 사회적 동요를 피 할 수 없음으로 그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하여 엄정한 금융 감독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감독 기능이 유명무실하였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고 심지어 감독원장이 정치자금 조달에 관여한 비리도 있었습니다.

지금 금융개혁 법안과 관련하여 금융감독원의 소속을 놓고 분쟁이 계속되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일은 중앙은행과 금융감독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어떻게 보장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신간 관계로 상세히 말씀 드릴 수는 없지만 요컨대 종래의 이른바 "관치금융"에서 벗어나고, 거시정책의 건전한 틀을 유지하고, 금리, 환율, 통화량등의 정책 변수를 상호 연관적으로 운용하고, 안정된 전문가 집단에게 국제금융 업무를 맡기고, 그리고 궁극적으로 물가안정을 보장하자면 중앙은행과 금융감독기관의 독립성이 필요하다는 것이 오늘의 국제적 공론이고 여러 나라가 그러한 방향으로 제도 개선을 해 왔고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행정적 측면을 보더라도 문제가 있습니다. 저 자신이 재무부장관으로 있을 때에도 시간과 정력의 80%는 금융업무에 시달리고 세정이나 기타 분야는 돌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재무부와 경제기획원을 통합해 놓고 보니 부총리 또한 금융행정의 당사자가 되어 대부분의 시간을 그곳으로 빼앗기고 경제정책 전반을 조정하는 본래의 역할이 약화 된 것 같습니다. 이제는 금융행정은 한은(韓銀)에게 맡기고 재경원은 경제정책 전반을 통괄 조정하는 본래의 위치로 돌아가야 합니다. 은행, 보험, 증권의 겸영(兼營)이 일반적 추세이니 각자의 감독 기능을 통합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나 우선은 국무총리 소속으로 3부를 통괄하는 반관반민의 금융감독위원회를 설치하고 그 산하에 세 감독 기능을 분립케 하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됩니다.

셋째로 은행감독을 철저히 하자면 재무기준이 명확해야 하는데 지금은 국제적 기준에 맞추어 나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부는 국제결재은행이 요구하는 자본비율 (8%)은 물론 부실채권의 정의도 국제기준에 맞추어 나간다고 하니 올바른 결정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기업회계제도 또한 국제적 기준에 맞춰 개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넷째로 정보화시대에는 경영상의 치부를 감출래야 감출 수 없습니다. 옛날에는 정보를 국내에 국한시킬 수도 있었으나 지금은 국내에서 떠도는 이야기는 인터넷과 전자메일을 통하여 삽시간에 전세계에 전파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은행이나 기업들은 재무제표와 경영실태를 투명화 해야 고객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점에 관련하여 일본의 유명 메이커인 "교세라"의 "이나모리" 회장은 "경영자와 사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든 경영정보를 공유하게 하였던 바, 기업으로서의 일체감이 높아지고 높은 사기를 유지할 수 있었다"라고 쓰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는 실태를 그대로 공개하면 심리적으로 내외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을까 염려하여 공개를 꺼리다가 결국은 내외의 신뢰를 잃은 꼴이 되었습니다.

다섯째로 부실채권을 정리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성업공사로 부실채권을 집중시키고 매각, 대손 처리, 증자 등으로 금융기관의 재무상태를 정상화시키는 것은 적절한 조치이고 시급한 과제입니다. 부실채권에 포함된 토지는 토지공사가 채권을 발행하여 매입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끝으로 문제의 근원은 국제수지 적자에 있는 만큼 적자 축소에 전력을 기우려야 하겠습니다. 그를 위하여 수출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정부와 기업의 노력이 배가되어야 하고, 이번의 환율 상승을 최대한 활용해야 하겠습니다. 관광지출을 줄이고 국산품을 애용하며 저축을 늘이도록 범국민적 운동이 전개되어야 하겠습니다. 최근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도 수입을 절감하기 위하여 국산품을 애용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국제수지적자를 줄이자면 아무래도 경제 성장률을 낮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상 말씀 드린 것이 IMF의 요청 사항에도 포함되지 않나 생각되는데 그것들은 어치피 우리가 자신을 위하여 해야 할 일들이므로 적극적으로 수용함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밖에 비현실적이고 무리한 요구를 내놓을지 모르나 그것은 설득과 협상으로 대처해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아마도 외국의 철강, 자동차, 반도체, 석유화학 업계가 한국의 과잉투자를 제지하라고 책동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자신이 해결할 문제이고 외국 정부가 간섭할 일이 아닙니다.

    5. 고통을 분담해야

어쨌든 구조조정에는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고 모든 경제주체가 고통을 분담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첫째로 환율 인상, 이미 도입된 외채에 대한 환차손 처리 등으로 전기요금, 유류대, 항공요금, 교통요금 등의 인상이 불가피하고 금융기관 구조조정에 따르는 통화팽창 요인도 없지 않으니 어느 정도의 물가 상승은 불가피합니다. 우리 생계에 주름살이 오는데 지난날의 과소비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로 금융기관의 통폐합에 따라 정리해고가 불가피한데 이것이 가장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러나 정리해고 사유가 있느니 만큼 실업은 불가피하고, 다만 그것을 최소화하는 대책이 필요한데 여기에는 실업보험금 지급, 대학에 실업자들을 위탁하여 재교육하는 한편, 임금을 적게 받고 실업 대상자와 일자리를 나누는 이른바 일자리 나누기( job sharing)등의 방법을 생각할 수 있는데 이것은 정부, 기업, 노조가 지혜를 모아 최선책을 선택해야 할 문제입니다. 물론 고용 수준을 조속히 회복하자면 건실한 기업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생산과 수출을 촉진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셋째로 구조개혁 과정에서 금융기관들이 극도로 경직화하여 기업에 대한 융자를 기피하고 금리가 상승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수출신용장을 "네고" 할 때에도 담보를 요구하거나 금액 일부를 정기예금으로 예치하라고 강요한다 합니다. 수출금융이 원활하지 않으면 모처럼의 고환율의 이점을 활용할 수 없게 될 것이니 금융기관장들은 지점장들에게 보다 적극적인 업무 방법을 시달하여 무사안일주의와 책임 회피를 최대한 방지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이러한 때는 중소기업 금융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있었으면 합니다. 국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범국민적 저축운동에 참여하여 중소기업과 수출기업을 지원하는 것입니다. 가칭 부흥채권을 발행하고 이자 소득에 대한 세금 감면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업의 근본문제]

1. 경영의 투명성

금융의 부실화와 기업의 부실화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인 만큼 금융구조개혁은 기업 특히 기업집단의 구조개혁이 병행하지 않고서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우리 기업 집단들은 이 나라 경제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해 온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늘에 있어서는 국제사회에서 우리 기업집단의 경영방식과 경영 전략을 부정적인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만약 기업집단이 그룹내 기업들의 연결 재무제표를 작성하면 전체적 수지 상태가 어떻게 나타날까 하고 그들은 묻습니다. 물론 기업집단 중에는 재무상태가 비교적 양호하고 한가지 산업으로 전문화한 집단도 없지 않습니다. 하기야 기업과 금융기관의 분식결산과 공인회계사에 대한 불신은 우리에게만 국한된 일도 아닙니다. 외지를 보니 암스테르담 대학교 Wolferen, 교수는 일본에는 "기업의 실태를 정확히 알려주는 회계사는 거의 없다. 예컨대 거품 경제가 붕괴한 직후 미국의 회계사의 일단을 일본에 보내 금융기관의 실태를 보게 하였더라면 시중은행이나 비은행 금융기관의 대부분이 파탄 상태에 있다고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라고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경영을 투명화하고 재무구조를 개선하지 않고서는 외국에서는 물론 국내에서도 돈을 빌리기 어렵게 될 것입니다.

2. 회계감사

신임 임창열 부총리는 외국의 공인회계사에 의뢰해서 은행의 재무 상태를 투명화 하겠다고 말했는데 이처럼 공인회계사가 불신을 받고 있다는 것을 자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수대교도 외국회사에게 감리를 맡겨야 공사가 제대로 되고, 재무 감사도 외국 회계사에 맡겨야 믿을 수 있다는 이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하겠습니까? 만사가 법과 원칙대로 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불신이 일반화하게 마련입니다.

3. 기업의 구조조정

그러나 기업의 구조조정에는 통폐합, 인원 조정, 자기자본 증가, 재무상태의 투명화 등이 요구되는데 이것은 매우 힘든 일이고 단시일에 실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정부의 지도도 필요하겠지만 은행이 융자와 관련하여 지도력을 발휘함이 바람직하다 하겠습니다. 마치 정부가 IMF로 부터 조건부 융자를 받는 것처럼 은행도 기업에게 실행 가능한 구조조정계획을 요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이른바 M&A 즉 기업 매수와 통합을 어렵게 하는 각종 규제를 과감히 푸는 것입니다. 무릇 시장경제가 능률적으로 기능 하자면 기업의 참입, 퇴출, 합병, 고용 및 해고가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하는데 우리에게는 그러한 신축성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구조조정을 가로막는 또 하나의 요인은 과거의 비리가 들어나고 세무상의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워서 꺼리는 면도 있지 않을까 추측됩니다. 과거의 비리에 대하여는 기업만의 책임이 아닌 만큼, 법적 시효를 소멸하는 특별 조치를 취하여 일거에 과거를 청산하고 기업들로 하여금 심기일전 새 출발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물론 앞으로는 법과 원칙을 가차없이 관철한다는 전제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비리를 사면하면 불공정하고 재발한다는 반론도 있겠으나 이제 경영의 기준과 투명성이 국제적 감시하에 놓이게 되고 새 시대에 새 출발을 해야 하는 이 마당에 과거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노동단체의 근본문제]

1. 노ㆍ사는 동반자

구조조정의 아픔을 근로자도 나눌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노동단체는 기업과 정부가 저지른 잘못을 왜 근로자에게 떠넘기려 하느냐고 할 것입니다. 그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저는 봅니다. 그러나 결국은 우리의 정부요, 우리의 기업이 아닙니까. 우리 인구의 70%는 근로층에 속하고 결국 그들이 이 나라의 주인입니다. 정부와 기업들도 그동안 모진 풍상을 겪어 가면서 근로자들과 함께 우리 경제를 이만큼 키워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지금 정도의 생활수준을 누리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민주화 이후 일부 인사들은 언필층 과거에 정부가 노조운동을 억압했기 때문에 저임금이 강요되고 노동자가 일방적으로 수탈을 당해 왔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노조 운동이 억압되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석유파동의 시기를 제외한다면 임금이 노동생산성 이하로 인위적으로 억제되었다는 증거는 없다는 것이 내외의 경제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과거에 임금 수준이 낮았던 것은 다만 우리 경제개발이 완전 고용 수준에 미치지 못해 만성적으로 인력의 공급이 수요를 초과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당연히 노동이 착취되었을 것이라는 이념적 시각에서 아직도 노조를 계급투쟁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남아 있는 것이 노동단체의 근본문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노. 사는 서로 적이 아니라 고락을 같이하는 동반자임을 인정할 때가 되었습니다.

2. 노조의 협력없이 경제를 구할 수 없다

지금 기업들은 미증유의 역경에 처해 있고 활로를 찾기 위하여 온갖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노동단체들은 지금 한국 경제가 중대한 기로에 처해 있음을 심사숙고하고 어떤 경우에도 합법적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과 같이 어려운 시기에 노사 분규가 격화하면 우리 경제는 그야말로 주저앉고 말 것인데 그것은 결코 근로자의 이익이 될 수 없습니다.

저는 지난날 노사 분규가 극심하고 임금이 급상승할때 노동조합은 명목임금은 결정할 수 있으나 실질 임금은 결정할 수 없다고 신문에 쓴 일이 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하면 임금을 우리 경제의 실력(생산성) 이상으로 올리면, 한편으로 원가 인상 물가 상승, 다른 한편으로 산업의 경쟁력 약화 국제수지 악화 환율 상승 수입 물가 상승으로 이어져서 결국 실질임금을 깎아 내려 우리 경제 실력에 맞는 수준으로 되돌아온다는 말입니다. 지금 우리가 바로 그러한 국면에 직면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임금과 물가가 상승 경쟁을 하면 과거의 남미 제국처럼 경제가 붕괴하고 말 것입니다. 경영자나 노조 지도자나 이 기회에 이 점을 성찰하고 우리 실력에 맞는 임금 수준을 감수해야 하겠습니다. 물론 고통 분담은 당연히 가진 자들이 더 큰 몫을 차지해야 하고 그를 위하여 정부와 경영자가 지혜를 짜내야 하겠습니다.

[21세기는 중소기업의 시대]

1. 소량다품종 생산

지금까지 문제점만 나열하였는데 이 자리에 참석하신 분들은 대개 중소기업 내지 중견 기업인들이므로 희망적인 이야기를 한 토막 드리고 끝맺으려 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관계가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으나 정보화는 중소기업에게 유리한 미래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정보화는 상품에 대한 지식과 경쟁을 촉진하여 소비자의 선택을 까다롭고 다양화하게 만듭니다. 예컨대 자동차나 컴퓨터의 판매에는 여러 가지 옵션을 제공하고 애프터 서비스, 배달, 규격 등에 이르기까지 세심한 신경을 써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종래의 대량생산 방식으로는 이에 대응할 수 없기 때문에 규격화된 상품 생산은 점차로 개도국의 몫이 되어 갈 것입니다. 선진국에서는 소비자의 까다로운 선택에 영합하는 소량 다품종 생산이 중요해지고, 생산과 유통에 있어서 서비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예컨대 지금의 제조업의 내용을 보면 일반 관리, 디자인, 선전, 마케팅과 같은 서비스 부문의 비중이 커지는 것이 오늘의 일반적 경향입니다. 이러한 경향 하에서는 경영의 신축성이 높은 중소기업이 소량 다품종 생산에 보다 적합하고 소비자에게 보다 신속히 접근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이러한 이점을 누리면서 효율면에서 대기업을 압도하는 분야가 많이 생겨날 것입니다.

2. 경영구조의 변화

기업의 경영구조에도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컴퓨터 네트웍의 출현으로 수직적 위계(位階) 중심의 중앙집권적 경영구조가 팀웍 중심의 수평구조로 이행하고 있습니다. 이제 부장이나 이사(理事)는 컴퓨터 네트웍의 단말(端末)에 위치하고 있을 뿐이고 모든 정보는 네트웍 전체가 공유하고 의사결정도 수평적 협의에 의하여 처리되는 경우가 많아질 것입니다. 직원들은 집에 앉아서 컴퓨터 통신망을 통하여 회사에 출근할 때와 똑같은 일을 할 수 있고, Video Conference의 보급으로 업무 협의나 회의를 위해 외국에 나갈 필요도 적어집니다.

위와 같은 네트워킹은 중소기업계에게 새로운 수평을 열어 주고 있습니다. 예컨대 몇 개의 중소기업들이 컴퓨터로 연결되어 마치 대기업의 각부서처럼 기능하여 능률면에서 대기업을 압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가령 건설업을 예로 든다면 건설 관계 중소기업들이 하나의 센터를 중심으로 컴퓨터 통신망을 만들어 놓고 공동으로 수주 활동을 벌입니다. 수주를 하면 센터의 조정하에 멤버 각자가 자기 전문분야를 담당하여 건축물을 완성합니다. 건축의 질이 균일화하고 종전의 하청에 따르는 대기업의 마진(margin)을 배제하게 되므로 대기업에 비해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중소기업들이 이러한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효율면에서 수직적 위계조직으로 운영되는 대기업을 몰아내고 있다 합니다. 그래서 요즈음의 대기업은 중소기업에게 외주(outsourcing)를 주는 경우가 많아 졌고, 심지어 대기업을 몇 개의 중소기업으로 분해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합니다.

3. 기술 집약적 산업으로

저는 우리의 중소기업이 지식과 기술 집약적 산업을 찾아 첨단제품의 부품생산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역설해 왔습니다. 첨단제품일수록 부품의 수가 많고 어느 나라도 부품을 100% 자급할 수 있는 나라는 없습니다. 우리가 부품생산을 일으키지 않으면 대일 무역적자를 감축할 길이 없습니다. 오늘의 사태에 위축되지 말고 외국에 나가 아이디어와 기술과 시장을 발견하기 위하여 동분서주 할 때입니다. 또다시 고언을 드립니다 만은 무역협회 뉴욕 지부가 설문조사를 통해, 한국 기업과의 거래에 있어서 무엇이 가장 큰 애로냐고 물었더니 첫째가 무관심, 둘째가 언어장애라고 대답했다 합니다. 무관심의 일례는 편지를 보내도 답장이 없다는 것인데 인터넷과 전자통신이 유행하는 이때에 의외의 대답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좀더 분발해야 하겠습니다.

[맺음 말]

이제 결론을 맺겠습니다. 지금의 경제 상태가 매우 어렵고 기업환경이 열악한 것은 사실이지만 위에서 말씀 드린 구조개혁을 하고 나면 기업을 제대로 경영하는 기업인이 우대를 받는 공정하고 명랑한 기업풍토가 조성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낙관적인 요인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정부 통계를 보면 단기적으로는 기업 재고율이 줄고 있고 생산도 회복 단계에 있고 기업의 도산율이 높은 반면 개업율은 더 높은 추세에 있고 수출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습니다. 금융기관과 기업들이 비상한 각오로 구조조정을 시작하였고 정치가 발전적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1972년의 닉슨 쇼크, 1973년과 1979년 두차례의 오일 쇼크 1984-1985년의 대불황, 1988-1989년의 불경기, 1991-1992년의 경기하강 등 수많은 도전을 극복한 경험과 저력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수한 인력과 진취적이고 유능한 기업인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결코 비관하지 않습니다.

오늘의 도전을 이기자면 투철한 목적 의식과 신념이 있어야 하겠지요. 그것은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어서 자립정신이 충만한 기업들이 노력과 창의를 발휘하여 적극적으로 기업 활동을 전개하면 이 나라 경제는 반드시 제2의 도약을 할 수 있다는 신념입니다. 우리는 신념을 갖고 다시 한번 뛰어 봅시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