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금융위기와 한ㆍ일 협력

 1998년 12월 15일, 일본, 동경
                            경제단체연합회, 주일한국기업연합회, 경제광고 센터 공동 주최 강연회에서.


[일본 경제인 들에게 한국의 금융 및 기업의 구조조정의 진행상황을 설명하고,그것이 양국 경제협력에 던지는 시사점을 지적한다.
아울러 일본이 동북아 경제개발에 있어서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그와 관련하여 [동북아개발은행] 설립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한국경제 현황

여러분께서 잘 아시는 바와 같이 한국은 작년 11월 외환위기에 직면하여 IMF의 긴급구조 금융을 받게 되었고 그 조건으로 IMF등의 정책적 지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IMF 주도하에 환율의 완전 자유화, 고금리 정책, 금융, 재정의 긴축 정책을 실시한 결과 외환위기는 일단 수습되었습니다 만은 실물경제면의 침체는 매우 심각한 상태에 있습니다. 참고로 이 두 가지 측면을 간략히 설명 드리겠습니다.

먼저 긍정적 측면에서는

  • 환율 (원화의 달러 가격)은 1997년 10월말의 965원에서 한때 (1998년 2월) 1,640원 까지 폭등하였다가 지금은 1,230원 (12월 1일)선에서 안정적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 IMF 개입 직후 한때 40%까지 올랐던 콜금리는 그후 29-30%의 고 수준을 유지하다가 지금은 7-8%선으로 떨어 졌습니다. 회사채 금리는 작년 10월의 12.4%에서 한때 (1998년 12월) 24.3%까지 올랐다가 지금은 9.28% (12월 1일)로 떨어졌습니다.
  • 주가지수는 1997년 10월의 584(1984년1.4=100)에서 지난 9월에 312까지 떨어졌다가 지금 (1998년 12월 1일)은 445까지 회복되었습니다.
  • IMF는 자체 자금 210억 달러 외에 세계은행, 아시아 개발은행(ADB) 및 일본을 포함한 우방국들의 지원약속으로 총 580억 달러의 융자한도를 설정해 주었는데 그 중에서 지금까지 인출 사용한 액수는 약 반에 불과합니다. 한편 IMF의 지원으로 금년 1월 우방 국가들의 은행들이 도합 210억 달러에 달하는 단기채무의 상환기한을 재조정 해 줌으로 해서 외환거래 안정화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국제 경상수지는 작년 말의 81억 달러 적자에서 금년 9월말 현재 311억 달러의 흑자로 반전하였습니다. 이것은 외환위기 국면에서 소비수요가 격감하고 기업들의 설비투자가 위축된 데에 기인합니다.
  • 국제수지 개선과 IMF등으로 부터의 자금 차입을 반영하여 외환 보유고는 작년10월의 305억 달러에서 금년 11월말에는 500억 달러 (가용액 464억 달러)로 증가하였습니다.
  • 한국의 대외 채무구조도 현저히 개선되었습니다. IMF가 새로 정의한 한국의 대외 채무는 1997년 말의 1,580억 달러에서 금년 9월말에는 1,535억 달러로 약간 감소하였고 단기채무의 비중은 1997년의 43%에서 25%로 감소하였습니다.

이상과 같이 한국의 외환거래는 상대적 안정을 회복하였고 미국의 유수한 은행들은 한국은 이미 외환위기에서 벗어났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한편 IMF는 자신의 위기관리정책이 성공한 케이스라고 널리 선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IMF 방식에 따라 금융과 기업의 구조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외환위기는 금융위기로 이어졌고 지금은 총체적인 경제위기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위기의 양상을 요약하면,

  • 작년 말 이후 2만개 이상의 기업들이 도산하였습니다.
  • 약 175만 이상의 (실업률 7.6%)의 실업자가 발생하였습니다.
  • 산업생산이 10%이상 감소하였고,
  • 수출마저 금년 5월부터 감소로 돌아섰습니다.
  • 금융기관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부실채권 (3개월 이상 연체 대출)이 계속 늘어나서 약 140조원 (1997년 GDP의 약30%)에 이르고 있습니다.
  • 금년의 GDP는 IMF와 정부의 당초 예상으로부터 크게 빗나가서 마이너스 6%의 성장률을 기록할 전망입니다.

경제 회생의 전망

한국이 외환위기를 수습하고 금융과 기업의 구조개혁을 완수하자면 위에서 본 경제적 후퇴는 불가피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은 그러나 IMF의 정책처방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IMF는 파탄 초기에 외자의 流出을 억제하고 流入을 촉진하기 위하여 초고금리정책을 시행했으나 동남아시아의 외환위기로 인하여 불안감에 사로잡힌 외국 투자가들의 군중심리의 와중에서 그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 반면 기업에게는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부와 IMF는 금융기관에 대하여 불과 2년 내에 BIS 자본 비율 8%의 충족을 요구한 결과 금융기관들은 융자금 회수에 전념하게 되었고 그로 인한 극심한 신용수축이 경기 냉각의 主因이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IMF체제하에 실물경제가 크게 후퇴하였습니다 만은 지금 한국에서는 경기가 하락의 바닥을 치고 회복 국면으로 들어서고 있다는 낙관론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그 근거로는 투자 기회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외국의 투기자본(hedge fund)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고 있고, 국내 금리가 낮아지는 가운데 자동차, 선박, 반도체의 수출이 다소 늘어나고 있고, 재고 감소를 보충하기 위한 생산 증가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부는 내년 하반기부터 GDP 성장률이 플러스 전환하여 년간 성장률은 2%내외가 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인이 보기에는 아직 낙관은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금융부문과 기업부문의 구조조정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양부문의 정상적 조업을 기대할 수 없고 시설투자는 작년에 3.5%, 금년 상반기에 25%나 격감하였으니 투자의 회임(懷姙)기간을 감안한다면 앞으로 수년동안 성장을 이끌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또 대량 실업이 존속하는 한 소비증가를 기대할 수 없으며, 해외 수요의 침체로 수출도 낙관하기 어려운 상태에 있습니다. 결국 한국의 경기회복 속도는 한국의 금융과 기업부문의 구조개혁 속도와 해외 경기 推移에 달려 있다고 하겠습니다.

한국의 구조개혁

하여튼 지금 한국에서는 이곳 일본과 마찬가지로 금융 및 기업의 구조개혁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양국의 문제의 성격도 비슷하고 또 그를 해결하는 방법에도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즉 기본적 과제로서,

  • 금융기관과 기업의 투명성, 공시성, 책임성 제고
  • 엄정한 금융감독 체제와 기준의 정립
  • 금융기관 자본 비율 개선과 필요한 재정자금 투입
  • 능률적이고 효과적인 부실채권과 부실기업의 정리
  • 자본주와 채무자간의 손익 분담과 조속한 귀속을 위한 법적 개선
  • 구조개선을 촉진하고 지원하는 법적 조치
  •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실업 구제 및 사회적 안전망(安全網)의 확충 등을 들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지금까지 5개의 일반은행, 16개의 종합금융회사, 4개의 리스회사, 2개의 증권회사, 4개의 보험회사, 1개의 투자신탁회사가 각각 면허취소 처분을 받았고, 55개의 대기업 계열기업이 청산단계에 들어갔으며 2개의 대형은행 (서울은행, 제일은행)이 외국의 원매자를 찾고 있습니다. 한국에 있어서도 일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금융개혁을 위해 한해 GDP의 10% 이상 (64조원)의 재정자금이 투입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금융, 기업, 정부, 노조의 구조조정을 위해 수많은 법률이 개폐되었고 지금도 많은 법률들이 국회에 계류 중에 있습니다. 앞으로도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의 정리, 5대 재벌의 구조개혁, 정부기업의 처분, 사회적 안전망 (safety net)의 확충 등이 주요 개혁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동아시아의 위기

한국 뿐만 아니라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시아 등이 외환위기에 직면해 있고 일본 또한 금융위기와 장기적 경제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아직 별일 없다고 하나 국제적인 시각은 반드시 그렇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중국 역시 우리와 유사한, 아니 더 심각한 부실금융과 부실 기업의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다만 중국 정부가 실사구시(實事求是)정책으로 사태를 적절히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동아시아 8개국의 역내 무역은 38.7% (1997)라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서 상호의존 관계가 밀접함으로 역내 일부 국가의 경제위기는 역내의 모든 국가들로 파급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본의 경우를 보더라도 금년 상반기의 역내 수출은 작년 동기 대비 22.5% 감소하였고, 수입도 17.7% 나 감소하였습니다. 한국의 경우에도 금년 9월 까지 일본에 대한 수출이 19.7% 감소하였고 수입은 42.3%나 감소하였습니다. 한국의 ASEAN에 대한 수출도 28.4% 감소하였습니다. 작년의 ASEAN 국가들의 수출과 수입도 각각 12.9% 및 15.2%가 감소하였습니다. 실로 동아시아 국가들은 매우 심각한 경제위기에 처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 지역의 경제 위기는 점차 타 지역으로 파급되어 이제는 세계적 불황을 가져올 수 있다는 인식이 높아져 가고 있고 특히 미국은 아시아의 경제적 침체의 영향을 직감하고 있습니다. 이상과 같은 동아시아 전반의 경제적 위기를 놓고 볼 때 한. 일 양국간의 경제 협력 관계가 양국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나아가 세계경제의 회복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일 경제협력에 있어서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사항에 관하여 말씀 드리겠습니다.

자본 이동

먼저 한국의 경제위기가 외환위기에서 출발하였던 만큼, 지금 한국이 일본에게 절실히 바라고 있는 것은 한국으로 부터 철수한 일본 자본이 다시 한국으로 환류하는 것입니다. 작년에 태국에서 외환위기가 발생한 이후 일본을 포함한 국제은행은 중국을 제외한 주요 채무국들로 부터 대량으로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중에서 한국으로 부터의 자금회수가 가장 큰 몫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즉 국제결재은행(BIS) 통계에 의하면 1998년 1/4 분기에 태국에서 85억 달러, 인도네시아에서 50억 달러를 각각 회수한 반면 한국으로부터는 163억 달러를 회수하였습니다. 특히 일본 은행들의 자금회수가 급격하였고 무역금융 감축은 양국간 무역 위축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다행이 일본의 미야자와 대장상은 지난 10월 6일 IMF 연차 총회 연설에서 300억 달러의 기금을 설치하여 그 중 150억불은 중장기 금융, 나머지 150억불은 단기 무역금융으로 아시아 구조조정 국가들을 지원할 계획임을 분명히 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 수출입은행의 지급보증을 통하여 위기국의 해외자금 조달을 지원하고 이자를 보조하는 제도도 마련하겠다고 언명하였습니다. 이러한 New Miyazawa Initiative는 아시아 국가들의 큰 환영을 받았는데 지난 11월 16일에는 일. 미 정상회담 후의 공동성명을 통하여 이른바 [아시아 성장 회복계획] ( Asian Growth and Recovery Program)을 발표하였습니다. 그 주요 내용은 일. 미 양국과 IBRD, ADB등의 합작으로 일차적으로 50억 달러를 조달하여 아시아 위기국의 구조개혁을 돕는 동시에 양국의 공적 금융기관을 통하여 무역금융과 민간자본 환류를 지원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11월 17-18일 Kuala Lumpur에서 개최된 APEC 정상회의에서도 이와 비슷한 내용의 지원 방안이 합의되었는데 이러한 제안들은 속히 구체화되었으면 합니다. 한.일 양국간의 경제관계가 가장 밀접한 만큼, 일본 정부와 민간은행이 일본 자금이 한국으로 환류 하도록 각별한 배려와 조치가 있기를 바라 마지 않습니다.

무역 확대

동아시아 국가들의 무역 의존도가 큰 만큼 각국이 수출과 수입을 확대하지 않고서는 경기회복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상기한 미국과 일본의 무역금융지원은 무역 증진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만은, 다른 한편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비율빈 등에서 관세율을 인상하여 무역장벽을 높여 가고 있는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아마도 외환위기에 대응한 조치라고 생각됩니다 만은 그러나 역내 무역이 위축되면 외환수지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경기침체를 장기화 할 우려가 있습니다. 미. 일 양국이 자금 지원에 나선만큼 위기국들은 무역장벽을 높이지 않도록 자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역내국 들은 APEC을 통하여 무역자유화를 계속 추진하는 것이 각국의 공동 이익이 될 것이고 그러한 의미에서 중국, 대만, 러시아가 조속히 WTO에 가입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입니다.

양국의 무역 확대를 위하여는 양국의 관세장벽 및 비관세 장벽이 철폐되어야 하겠습니다 마는 당장은 양국의 경기 진작을 위한 총수요 확대 정책이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다행이 일본에서는 최근에 24조엔에 달하는 긴급경제대책을 발표하였고 한국에서도 재정적자를 GDP의 5%까지 허용하는 팽창예산을 편성하였으므로 내년에는 양국의 경기회복과 무역확대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산업협력

한일 양국의 산업 관계는 종래의 수직적 분업에서 점차 수평적 관계로, 산업간 분업에서 기업간 분업으로 이행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미 양국간의 기업협력은 종래의 OEM거래, 기술제휴, 직접 투자에 더하여 상호간의 출자 참여나 인수, 판매제휴, 공동개발 등의 새로운 기업간 협력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말씀 드리면 반도체에 있어서, 삼성과 NEC 및 도시바, LG와 히다찌, 현대와 후지쓰 등이 cross license 계약을 체결했고, 몇 가지 공동개발에 한국이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자, 정보통신 분야에서는 환경보전과 안전기준의 표준화 사업에 한국기업이 참가하고 있으며, 조선, 중공업, 에너지 분야에서는 공동 수주, 공동 개발 등의 협력 관계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자동차 분야에서는 공동부품의 상호조달, 공동 개발, 해외 판매망의 공동 구축 등의 현상을 볼 수 있고 이러한 추세는 세계적 경쟁압력 하에서 더욱 촉진 될 것으로 보여 집니다

지금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구조조정의 결과로서 앞으로 한일간의 산업협력이 크게 촉진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몇 가지 예를 말씀 드리면,

  • 한국 산업의 97% (1,148 업종 중 31개 업종을 제외한)는 이미 완전 개방되었습니다. 나머지 3%는 국가안보 환경보호 등과 관련되는 업종입니다.
  • 한국의 많은 기업들은 경영 합리화를 위해 기업 매각, 합병, 합작 등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특히 5대 재벌들은 일본의 자본참가, 공동경영 등의 협력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습니다.
  • 이제 외국인이 지분의 제한 없이 한국에 은행이나 증권회사를 설립할 수 있습니다.
  • 외국인이 주식을 매수하여 기업의 경영권을 장악하는 소위 "적대적 인수"도 허용되고 있습니다.
  • 과실 송금 내지 외환 거래상의 제한도 거의 없어 졌습니다.

이상과 같은 변화는 일본 기업들에게 절호의 투자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한편 일본에서도 대대적인 금융의 구조조정과 자유화가 진행되고 있고 2001년 4월부터 제2의 Big Bang이 있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양국의 자유화조치는 한일 경제관계에 일대 변화를 가져올 뿐 아니라, 동아시아, 나아가 세계경제에도 중요한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난 오부찌-김대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하여 지금까지 경제협력의 걸림돌이 되어온 정치적, 문화적 장벽도 크게 완화될 것이니 아마도 동북아에서 한.일 양국을 주축으로 하는 자유무역 지대가 형성될 날도 멀지 않았다고 생각됩니다.

엔의 국제화

미야자와 대장상은 IMF총회에서 엔화의 국제화를 추진하겠다고 언명하였습니다. 추측컨대 엔화를 국제화하면 환율 변동에 따라 일본 금융기관의 BIS 자본 적정 비율이 달라지는 폐단을 제거하고, 일본 금융기관들의 해외 차입, 해외 투자에 따르는 환차손의 불이익을 예방하는 동시에 내년부터 유럽에서 EU가 준비통화로 등장하는 것을 계기로 하여 달러-EU-엔 3극 체제를 형성하고자 하는 의도인것 같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달러의 "독재"를 경험한 아시아 국가들은 엔화가 기축 통화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을 환영하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기축통화국의 책임이 막중하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약 일본의 거시정책 또는 기타 사정으로 엔 가치의 변동이 심해지면 준비통화로서의 기능을 유지하기 힘들 것이고 오히려 국제적 통화 불안을 조장할 염려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일본이 우선 해결해야 할 문제는 지금 진행중인 금융개혁을 완수하여 금융의 안정을 회복함과 동시에 동아시아 전체의 경제 성장과 안정을 위해 일본이 어떠한 역할을 할 것인지 분명히 정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북아로 눈을 돌려야

이점에 관련하여 본인은 일본이 동북아시아에서 좀도 적극적으로 지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일본, 중국, 대만, 한반도, 러시아. 몽골이 위치하는 동북아시아는 무한한 경제 발전의 잠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시베리아에는 세계 최대의 매장량을 자랑하는 천연가스가 있고 풍부한 산림자원이 있습니다. 일본이나 한국은 장차 시베리아의 천연가스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에너지원을 확보하기 어려운 시기가 올 것입니다. 중국에는 풍부한 광물자원과 방대한 시장이 있고 미구에 그 경제 규모가 미국을 능가하게 될 것입니다. 일본은 막강한 자본력과 기술을 가지고 있고 한국은 미약하나마 지역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약간의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에 중국에서 파급되는 대기 오염을 막지 못하면 일본이나 한국은 살아갈 수 없습니다.

지난 7월 28일 - 31일 돗도리(鳥取)현 니시오(西尾 邑次 )지사의 주선으로 요나고(米子)에서 제8차 [동북아 경제포럼]이 개최되었습니다. 약 2,000여명이 참가한 이 회의에서 기조연설을 한 전 나까야마 타로(中山太郞) 외상도 위와 같은 견지에서 동북아시아의 지역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런데 동부아시아 지역협력에 있어서 선결요건이 되는 것은 지역내의 해운, 육운, 항공, 파이프 라인 등의 운송수단과 전화, 전파, 위성통신 등의 통신시설을 확충하고 지역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전기 [동북아시아 경제포럼]은 일찍부터 교통, 통신망의 지역적 협력 방안을 집중적으로 논의해 왔고 그 결과 문제에 대한 연구와 상호이해가 크게 진전되었습니다.

그런데 위에서 말한 사회간접시설을 확충하자면 막대한 자본이 필요한데 그것을 어떻게 조달하느냐가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본인은 일찌기 하나의 해결 방안으로 [동북아개발은행]을 창설하자고 제안하였고 이 제안은 해마다 전기 포럼에서 논의되어 왔습니다. 그동안 전 ADB 부총재를 역임한 스탠리 캇쓰(Stanley Katz) 박사는 동북아개발은행이 필요한 이유와 창설에 필요한 소요 자본 조달방법을 연구하여 포럼에 수차 보고 하였는데 그의 논점에 본인의 생각을 가미하여 설명하면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동북아시아에서 사회간접시설을 개발하자면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데 현존 IBRD, ADB 혹은 EDB ( European Development Bank)등의 기존 국제금융 기관들로 부터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들 은행들은 한정된 자원 배분에 있어서 국가간 형평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중국과 러시아가 엄청나게 크다고 하여 그들 나라로 편중 융자를 할 수는 없습니다.

작년 몽골의 울란바타르에서 개최된 제7차 회의에서 Stanley Katz 박사가 보고한 바에 의하면 동북아의 사회간접시설의 개발에 필요한 소요 자금은 최소한으로 잡더라도 년간 75억 달러가 필요한데 현존 국제금융기관, 민간투자, 이국간 원조 등으로 조달 될 수 있는 금액을 모두 합해 보았자 25억 달러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동북아개발은행을 창설하여 국제금융시장에서 자금의 흐름을 동북아로 유도해야 한다고 박사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각국 정부가 집적 투자의 형식으로 민간 자금을 유치할 수도 있으나 사회간접시설에 대한 투자는 회임기간이 길고 사회적 수익성이 크지 않으므로 민간 자본 유치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민간자본을 유치한다 하더라도 공적 개발은행의 매개와 지원이 있으면 그것이 한층 용이해 질 것입니다.

일본의 국제대학 가까스 히로시(嘉數 啓) 교수가 추정한 바에 의하면 ADB와 버금가는 개발은행을 세운다 할때 수권자본은 약 200억 달러 (ADB는 약230억 달러)정도면 되고 불입자본은 그의 반액인 약100억 달러로 하여 5년 분할 납입으로 할 수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국가별로 100억 달러의 불입자본을 동북아 역내국가에 60%, 역외국가에 40%를 배정하고 전기 60%의 자본액을 1995년의 1인당 GDP를 기준으로 하여 역내국에 배정한다면 대략 일본은 22.5억달러, 중국은 15억 달러, 한국은 7.5억 달러를 차지하게 되고, 나머지 15억 달라는 대만(정치적으로 용납된다면), 러시아, 몽골, 북한 등에 적당히 배분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위의 數字는 동북아개발은행의 수량적 개념을 얻기 위한 假想的 試算에 불과합니다 만은 상기 출자액을 5년 分割로 불입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일본, 중국, 한국 등의 소요 부담액이 그다지 크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域外국가로는 미국을 비롯하여 동남아 국가 및 西歐 국가들이 참가하는 것으로 가정하였습니다.1)

결국 이 정도의 자본금을 지렛대로 하여 그 수십 배의 자금을 동북아로 유인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동북아 경제 개발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점을 떠나서라도 동 개발은행은 지역 협력의 매개역할을 할 수가 있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지금 APEC 지도상에 NAFTA, ASEAN, CER(호주와 뉴질랜드 사이의 협약)등의 하위 지역 협력체를 색칠하고 나면 유독 동북아만이 공백으로 남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정치적 장애를 넘어 동북아 협력체제를 구상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그리고 첫 걸음으로 동북아개발은행 설립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 지역의 금융의 역할이 증대된다고 하면 엔화의 국제화가 한층 더 큰 의미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맺는 말

이제 본인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지금 양국은 다 같이 금융개혁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제개혁의 근본 목적은 지난날 경제개발을 이끌었던 정부 간섭주의와 산업 보호정책, 광범한 정부규제, 정경유착, 공공부문의 비대등을 특징으로 하는 구체제를 청산하고 (1)시장원리와 공정 경쟁이 지배하고, (2) 정부는 중립적인 입장에서 감시자와 조정자의 역할을 맡고, (3)산업과 금융이 서로 독립적인 기능을 수행하며, (4) 금융은 자금의 합리적 배분을 매개하고, (5) 모든 경영에는 투명, 공시, 책임의 3대 원리가 지배하고, (6) 부정부패가 적은 새로운 경제질서를 창출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본의 구조개혁의 목적도 비슷한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다만 일본은 외환 문제가 없고 금리가 낮고 경험이 많기 때문에 한국에 비하여 구조개혁이 비교적 쉬운 일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일본이 同病相隣의 입장에서 이웃의 구조개혁을 돕고자 하는 데에 깊은 感銘을 받고 있습니다.

한일 양국이 필요한 경제개혁에 성공하면 양국의 경제관계는 거의 국경이 없는 관계로 변모해 갈 것으로 豫想됩니다. 그리고 양국의 새로운 경제체제와 상호관계는동북아 隣近國은 물론 APEC 국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 됩니다.그러한 의미에서 한.일 양국은 21세기 東北亞시대를 열어가는 동반자로서 견인차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끝


1) J가까스 교수의 시산은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기 이전의 상태를 가정하고 있고 또 그 후 러시아의 사정이 크게 달라졌으므로 각국에 대한 자본 배정 액은 필자가 다소 수정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