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국가 운영

 삼성연구소, 21세기 국가전략과 개혁과제(I)에 수록된 논문을 중복을 피하기 위해 일부를 삭제하고 약간의 편집을 가했다.


[인류의 생존 기반인 인구, 토지, 식량, 물, 에너지, 환경 등의 장래를 전망하고 정보화, 세계화의 충격과 문제점을 지적한 다음 국가경영의 기본과제를 생각해 본다.]


 

 I. 인류의 생존기반

지구상에는 토지, 물, 공기, 온난한 기후, 그리고 각종 자원이 있기 때문에 인류가 생존해 왔다. 인구가 늘고 기술과 산업이 발달함에 따라 인류의 경제생활은 크게 향상되었으나 그 반면에 인간의 끝없는 물질적 욕망 추구가 마침내 인간의 생존기반 자체를 위태롭게 만드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대로 가면 인류는 21세기에 큰 재앙을 만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소리가 학계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인구, 토지, 식량, 물

현재의 세계인구는 57억으로 추산되는데 미국의 과학학회의 예측에 의하면 비록 기술 진보가 꾸준히 지속된다 하더라도 지구가 포용할 수 있는 인구의 한계는 100억 내지 300억 정도라 한다.1) 그런데 미국 21세기연구소 소장 애크로이드 등의 연구 보고서에 의하면 세계 인구는 21세기말경에 안정화 추세를 보일 것이나 그때의 인구는 이미 120억 (후진국권 100억, 선진국권 20억)에 이르게 되어 위에서 말한 한계선을 돌파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2)

한편 현재의 농업 생산력으로 120억의 인구를 먹여 살리려면 48억 헥타르의 농경지가 필요한데 지구상에는 잠재적으로 경작이 가능한 토지 면적은 32억 헥타르밖에 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침식, 산림 벌채, 도시 및 산업지역의 확대, 관개용수의 유실 등으로 경작 면적은 해마다 줄어가는 추세에 있다.3)

토지뿐만 아니라 수자원의 부족도 문제가 된다. 샌드라 포스텔에 의하면 이미 27개국이 물 부족 상태에 빠져 있고 1979년부터는 인구 1인당 수리지역 면적이 감소추세에 있고 장차 식량안전은 매우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한다.4)

인구, 토지, 식량, 물의 사정이 위와 같다면 지금 태어나는 어린이들은 그들의 일생 동안에 세계인구와 식량사정의 위기를 맞이하게 될 것인데, 이러한 예측은 19세기의 말다스의 인구론을 연상케 한다. 허나 말다스의 인구론이 그 후의 과학, 기술의 발달에 의하여 부정되었듯이 애크로이드의 예측 또한 어떠한 사정에 의하여 빗나갈지 모른다. 그러나 지구의 인구 수용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은 충격적인 사실이고 인류는 그 사실을 전제하고 지혜롭게 대처해 나가지 않으면 아니 될 것이다. 애크로이드가 지적 한대로 21세기에는 개도국 인구증가의 억제, 식량생산의 증가, 경작 토지의 보전 등이 세계가 직면하는 주요 과제가 될 것이다.

에너지

다음에 가용 천연 자원에도 한계가 있다. 지질학자들의 보고에 의하면 지구상의 석유의 매장량은 대략 2조 바렐 정도라 한다. 석유 산출양은 2000년에 극대점에 이를 것이고 그 후부터는 감소 추세를 보일 것이다. 석유가격은 대체 에너지와의 경쟁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20세기 말에 가면 바렐당 80불선 까지 오를 것이고, 개발도상국의 수요 증가 속도에 따라서는 더 오를 수도 있다. 5)

석유자원이 고갈 상태를 면치 못한다면 대체 에너지를 개발해야 하는데, 노벨 물리학 수상자인 버튼 리히터 박사에 의하면, 풍력과 수력을 포함한 태양 에너지, 원자력, 핵융합의 세 가지 에너지원 중에서, 에너지의 대량 공급 가능성, 환경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경제성을 종합 고려한다면 21세기 초반까지는 원자력이 가장 좋은 에너지원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원자력 발전은 공해물질을 방출하지 않고, 안전 관리도, 실패의 경험이 있기는 하나, 충분히 가능하다고 한다.

환경

가용 토지와 자원의 한계도 문제려니와, 더 심각한 문제는 그러한 자원을 이용하는 인간 활동이 가져온 환경 파괴 현상이다. 오존층의 파괴, 산성비, 지구의 온도 상승, 사막화의 진행, 산업용 및 농업용 화학약품의 부작용, 수질 오염, 방사능 오염 등등 그 어느 하나도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지 않는 것이 없다.

먼저 오존층의 파괴가 큰 문제인데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성층권의 오존층은, 생명체에 유해한 자외선 방사선 (UV-B)의 대부분을 흡수하고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인간이 만들어 낸 일부 화학물질(CFC)이 오존층 파괴 요인의 80%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분무기, 냉장 설비, 용매체, 이산화질소, 메탄 가스, 거품 발생 물질 등이 그것이다. 1985년에 과학자들은 우연히 남극대륙 하늘의 오존층에 대륙 크기 만한 구멍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어 세계를 크게 놀라게 했다.

1987년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하여 몬트리올에서 24개국 대표가 모였는데 이 회의에서 CFC(Chlorofluorocarbon) 물질의 전면적 사용금지가 논의되었으나 반론이 제기되어 결국 1999년까지 이 물질의 세계생산량을 35% 정도 줄이는 것을 촉구하는 선에서 타협하고 말았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인간 및 생물체의 생존을 위하여 전면 금지가 필수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인간 활동이 방출하는 [온실가스]가 지구의 평균 온도를 상승케 하고 있는 것도 큰 문제이다. 이산화탄소와 같은 가스들은 태양 방사선으로 하여금 대기권을 뚫고 지구표면에 까지 이르게 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데, 지구표면이 방사선을 흡수하면 지구의 온도가 올라간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향후 35년간 지구의 평균온도는 5.5°F가 상승할 것이라고 한다.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면 북극, 남극의 얼음이 녹고, 만약 1%만 녹는다 해도, 해수면은 2.5 피이트 상승한다. 그렇게 되면 수십억 이상의 인구가 살고 있는 육지가 바다 물에 잠기게 되고 대대적인 인구 이동이 불가피하게 될 것이다.6)

    그래서 1988년의 토론토 회의에서는 2005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1988년의 실적치의 20%만큼을 감축할 것에 합의 한바 있다. 그러나 예견되는 재앙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국제적 협조와 행동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에 있다. 예컨대 이산화탄소의 최대 배출국인 미국을 비롯하여 러시아 동부 유럽의 나라들은 국내 사정 때문에 국제적 행동 통일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편 개도국들은 오늘의 환경 파괴는 주로 선진국들의 산업화와 소비행위의 결과이니 그들이 주로 책임을 져야 할 문제이고  개도국에게 공해 방지를 위해 석유 에너지의 소비 감축을 요구하여 경제성장을 희생케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맞서고 있다.  

그러나 생태계의 파괴가 가져올 엄청난 재난이 명백한 만큼 이에 대한 위기의식이 고조 될 것이고 각국은 자신의 생존을 위하여 대응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대응책으로는 다음과 같은 사항이 논의의 대상이 될 것이다.

  1. 개도국의 인구 증가율을 억제해야 한다.
  2. 산림을 보존하기 위하여 석탄 자원 대신에 대체 에너지의 개발을 촉진해야 한다.
  3. 수자원 개발과 관리와 함께 수자원 생태계 보호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4. 주요 국이 참가하는 UN 환경기구에서 보다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환경보호기준을 설정해야 한다.
  5.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고 1인당 이산화탄소를 많이 방출하는 선진 산업국가가 보다 큰 조정 부담을 져야 한다.
  6. 가난한 개도국은 선진국으로부터 경제적, 기술적 원조가 없이는 인구증가 억제와 국제환경 규제 조항을 준수할 수 없다.
  7. 후진국과 선진국 사이의 경제적 격차를 축소하지 않고서는 지구의 생명보호장치를 보존할 수 없다.
  8. 선진국들은 필요한 비용을 염출하기 위하여 군사비 (1983년에 약5500억불을 지출하였다.)를 삭감하여 개도국 원조로 돌려야 한다. 이제는 우수한 두뇌를 무기를 설계하고 만드는데 사용할 것이 아니라 인류가 지구상에서 살아 남는 방법을 강구하는 데에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현재로서는 위와 같은 명제가 어느 정도로 실천으로 옮겨질지는 의문이나, 실천하지 못하면 인류는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21세기에 인류는 자신의 운명을 좌우하는 갈림길에 서게 될 것이다.

우리의 대응

        이상의 분석에서 우리가 특히 유의해야 할 사항은 다음과 같다.

  1. 남한의 인구는 안정화 단계에 들어섰으나 북한은 아직도 인구 증가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북한의 인구정책의 수정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2. 국토가 협소한 우리 나라는 가용 토지의 이용 관리에 관한 장기계획이 불가결하다. 남. 북한의 토지제도와 이용상태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3. 수자원의 개발과 수자원 생태계 보호에 대한 장기계획이 수립되어야 한다.
  4. 식량이 국제정치 및 외교의 무기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 (최근 미국, 일본, 남한이 북한에 대한 식량 원조의 전말도 그 일례이다.)
  5. 이런 점과 예상되는 세계 식량 사정을 감안하여 개방체제 하에서도 농업을 포기해서는 아니 된다. 생산성과 소비 패턴의 비약적 개선을 통하여 주식의 최소한의 자급기반을 유지해야 한다.
  6. 농업생산을 증가함에 있어서는 대기권, 토지, 용수에 미치는 환경오염을 줄이고, 특히 화석원료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하여 유전공학과 농업기술의 개발, 그리고 유기농법의 장려가 필요하다.
  7. 국가운영에 있어서 환경보호에 높은 우선 순위를 두어야 한다.
  8. 오존층, 온실가스, 온도, 및 기상변화를 추적하고 그것들이 국토와 생활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 연구하는 전문기관을 두어야 한다.
  9. 환경 보호를 위한 국제협력에 적극 가담하고 우리도 응분의 역할과 책임을 다 해야 한다.
  10. 앞으로 중국의 인구증가와 산업화가 가져오는 대기 오염이 우리 국토에 대량의 산성비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중국 측의 대비책과 국제환경기구의 엄격한 감시가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강력한 국제 환경기구를 필요로 한다.

II. 정보혁명

죠지 바실리우의 말을 빌리면 5000년 전에는 문자가 창조되었고, 500년 전에는 인쇄술이 발명되었고 50년 전에는 시청각 기술과 컴퓨터가 생겨났고, 5년 전부터는 상업적 네트워크의 디지털 시대가 시작되었다.7)

컴퓨터의 발달로 FAX나 E-Mail은 물론 Internet에 의하여 전세계의 컴퓨터 사용자 상호간에 Network이 형성되어 가고 있고 이제는 어디에서나 어느 때나 문서, 영상, 이미지를 순간적으로 교환할 수 있고 또 공유 할 수 있게 되었으며, 방대한 백과사전도 한 장의 CD-ROM에 들어 갈 수 있게 되었다. 한마디로 시간의 단축과 공간의 압축이 정보화의 효과이다.

이러한 정보혁명은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용량 확대 (1초에 1억4천만개의 명령을 수행할 수 있다.) 디지털화와 데이터 압축기술, 복합통신, 컴퓨터와 통신의 동시적 사용 등, 통신기술의 혁명적 발전에 기인하는 것임은 물론이다.

정보화는 우리의 경제생활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고 있고 후술하는 세계화의 추세에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경제적 측면

먼저 경제면에 있어서는 컴퓨터,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통신제품 등의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고 선진국에 있어서는 정보화에 관련된 산업이 GDP의 50-70%를 차지하게 되었다. 앞으로도 정보 관련의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가 계속 등장하여 소득과 고용 창출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정보기술의 발달은 편집, 시청각, 마이크로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전화와 통신 네트웍 등 네 가지 분야에서 업종 통합이 이루어지고 있고 기업 합병과 대규모의 조직 개편이 다른 산업에도 파급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거대한 다국적기업들이 생겨난다.

기업의 경영구조에도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컴퓨터 네트웍의 출현으로 수직적 위계(位階) 중심의 중앙집권적 경영구조가 팀웍 중심의 수평구조로 이행하고 있다. 이제 부장이나 이사(理事)는 컴퓨터 네트웍의 단말(端末)에 위치하고 있을 뿐이다. 모든 정보는 네트웍 전체가 공유하고 의사결정도 수평적 협의에 의하여 처리되는 경우가 많아진다. 위와 같은 네트워킹은 중소기업계에도 확산되고 있다. 즉 선진국에서는 복잡한 경제 관계 하에서 컴퓨터 네트웍으로 연결된 중소기업들이 마치 대기업의 각부서처럼 분업체계를 형성하고, 효율면에서 수직적 위계조직으로 운영되는 대기업을 몰아내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서 요즈음의 대기업은 중소기업에게 외주를 주는 경우가 많아 졌고, 심지어 대기업을 몇 개의 중소기업으로 분해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정보화의 문제점

한편 정보화가 제기하는 문제점도 적지 않다. 첫째로 한 사회 또는 세계가 몇몇 다국적기업들의 지배하에 놓이게 될 것이 아니냐 하는 우려가 있다. 주로 컴퓨터와 통신회사 들로부터 파생된 조직들이 세계적 규모의 엄청난 이익집단으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국내, 국제적으로 정치, 경제 및 문화의 각면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일례로 그들의 네트웍에 통합되어 가고 있는 개도국들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정보화를 추진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현재로서는 이러한 독점체를 적절히 다스릴 수 있는 국제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둘째로 컴퓨터 통신망의 정보원은 대부분 미국에 있고 (Internet의 site와 같이) 영어를 모르면 그러한 정보원에 접근할 수가 없다. 이것은 미국문화가 세계를 지배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문화적 제국주의"를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앞으로 논쟁이 계속될 것이다.

셋째로 두 가지 격차의 문제가 있다. 첫 번째 격차는 식자와 무식자 사이의 격차이다. 한쪽은 컴퓨터를 활용하여 최첨단의 정보와 지식을 얻고 있고, 다른 한편에는 이른바 "컴맹"들이 있어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를 모르고 있으면 양자 사이의 의사 소통이 어렵게 되고 거기에서 정치적, 사회적 갈등이 빚어질 수 있다. 그래서 21세기에는 사회교육이 최대 과제의 하나가 될 것 같다.

또 하나의 격차는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의 격차이다. 정보화시대는 개발도상국에게 하나의 기회이자 함정이기도 하다. 정보수단을 충분히 활용하면 교육, 의료, 과학 등의 분야에서 선진국을 따라 잡는 기회가 될 수 있는 반면에 정보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경제 각면에서 낙오를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넷째로 국제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아진다. 국제통신망을 포괄적으로 규제하는 국제조약이 있어야 하고, 정보기기의 국제 표준을 설정해야 하며, 컴퓨터 바이러스, 통신망 침입 등을 예방하는 조치가 있어야 하고, 사생활 보호, 지적재산권의 보호 등의 방법이 강구되어야 한다.

끝으로 정보화가 문화에 미치는 영향에는 더욱 심각한 문제가 있다. 정보화가 사람들의 문화생활을 풍요하게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반면에 부정적 측면이 적지 않다.

앨런 케이의 말에 의하면 구텐베르그가 발명한 인쇄술은 성경과 음란서적 제작에 제일 먼저 쓰여졌다고 한다. 오늘의 영상 매체도 음란물의 전파에 쓰여지고 있는데 컴퓨터 통신의 위력 때문에 그 전파 효과는 인쇄지면에 비할 바가 아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학생들은 물론 군대의 병사까지도 "삐삐"를 가지고 다니고 있고 청소년들은 전자 오락에 몰두하는데 그 교육적 효과가 의문시된다. 그런가 하면 어른들은 TV영화에 중독되어 무기력한 사람이 되어 가고 있다. 애플 컴퓨터회사의 수석연구원인 앨런 케이는 오늘의 컴퓨터가 "로맨스 소설, 스캔들 폭로, 코메디 책 등 인간 정신에 해가 되는, 한마디로 쓰레기 더미를 찍어내는 데에 사용되고" 있다고 탄하고 있다.8)

한편 닐 포스트먼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과연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고 있다. 즉 "우리는 정보라는 늪에 빠져... 무엇이 의미있고 유용하며 관련된 정보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을 잃어 버렸다. 대부분의 사람들 사이에는 수동적인 태도나 무력감이 확산되고 있으며 필연적으로 결국 자기 자신에게 몰입하게 된다."9)

결국 도덕적 가치관의 길잡이가 없는 정보화는 그 폭발적 위력 때문에 더욱 해악이 크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정보는 정보일 따름이지 그것 자체가 선악과 진부를 가려 주는 것은 아니다. 결국 민주사회에 있어서도 어떠한 사회적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음에 정보매체의 막강한 영향력을 악용하는 사례도 많다. 어떠한 특정 세력이 불법적으로 자신들의 의견과 이익을 관철하기 위하여 정보 매체를 활용하는 경우가 있고 소수의 목소리를 다수의 목소리로 둔갑시키는 일도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 있어서는 언론의 자유를 악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데 이것을 어떻게 다스려 나가느냐 하는 것이 큰 문제이다. 언론기관의 자기개혁과 사회적 견제기능이 병행해야 할 것이다.

III. 세계화 시대

무역, 투자, 금융의 자유화

다음에 세계화와 정보화의 관계를 보기로 하자. 국민국가 사이의 경제교류와 정보교류는 서로 원인이 되고 결과가 되어 국제화가 날로 확대되어 가는 추세에 있고 그것을 가로막는 국가간의 장벽은 점차로 허물어져 가고 있다. 20세기 말엽에 시작된 무역, 투자의 자유화 혹은 개방화의 물결은 21세기로 연장되어 한층 더 가속화할 전망이다. 무역자유화의 움직임은 먼저 자유무역지대의 창설로 나타났다. 서구에서는 종전의 EC가 EU로 확대 발전되었고(1992), 미주 대륙에는 NAFTA가 결성되었고(1988), 태평양 연안에는 APEC, 남태평양에서는 호주와 뉴질랜드간의 자유무역 협정이(1988)이 체결되었다.

이러한 지역주의(regionalism)는 자유무역의 세계화에 역행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비판이 있고 사실상 배타적인 면이 없지 않으나 길게 보면 그것들은 세계적 무역자유화를 지향하는 중간단계라고 볼 수 있다. 1995년에 출범한 WTO는 세계무역자유화의 또 하나의 이정표가 되겠는데 아직도 미해결의 문제가 많고 앞으로 선진국들은 새로운 협상 라운드를 추진하게 될 것이다.

국민국가 개념의 약화

국가간의 경제교류의 자유화가 진전됨에 따라 국민국가의 개념이 달라져 가고 있다. 먼저 국적, 국경, 국민의 의미가 점점 모호해 지고 있다. 나이스빗트(Naisbitt)는 이제 "미국 제품" 혹은 "미국 경제" 운운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한다.10) 중국에서 만든 부품을 한국에서 가공하여 미국에서 조립한 텔레비전이 미국제인지 한국제인지 또는 중국제인지 가릴 수 없고 굳이 말한다면 다국적 제품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다른 예로 "미국"의 대외부채가 문제라고 하지만 채권자와 채무자를 국별로 분류하기 어렵게 되었고 채권자 채무자가 다같이 미국인일 경우가 있다면 어디까지가 미국의 채무인지도 알 수가 없다. 우리 기업들이 국내의 지급보증 없이 외국에서 자금을 차입할 경우 그것이 한국의 채무가 되는 지도 법적으로 분명치 않다. 또 다른 예로 정부가 해외투자를 장려하면, 기업은 생산 기지를 해외로 옮기게 되고 그 결과 외국의 고용은 증가하는 반면, 국내 고용은 감소하는데 그렇다면 구태여 국내 기업을 정책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느냐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그러나 이러한 세계화의 흐름은 전통적 국민국가의 개념과 충돌하여 양자간에 갈등이 일어나고 내셔널리즘을 자극하는 면도 있을 것이다. 특히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에서 그러하다.

경제 우위 시대

제2차 대전 이후 적어도 선진국과 열강 사이에는 전쟁이 없었다. 미. 소간의 냉전 종식에 따라 전쟁 위험은 적어졌고 다만 이란-이락 같은 국제적 분쟁은 계속될 것이다. 이제는 이념이나 군비확장 보다는 경제 발전에 우위를 두는 시대가 될 것이다. 기업들의 국제경쟁력이 강조되는데 그것은 다만 기업의 경영 능력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환경을 형성하는 일체의 요인에 달려 있다. 과학기술, 교통, 통신, 교육제도, 정치, 정책 등 한나라의 모든 측면이 걸려 있는 총력전이 될 것이다.

민주화의 확산

헌팅턴의 말과 같이 "민주주의가 반듯이, 불평등, 부패, 비효율성, 부정, 비효율적 의사결정 등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가장 운영하기 어려운 정치체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개인의 인권과 자유를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를 창출하고 국가간의 전쟁의 가능성을 줄이는 체제라는 점에서 프란시스 후쿠야마의 말과 같이 "인간이 만든 정부의 최종적인 형태"라 할 수 있다.11)

미국의 Freedom House의 추산에 의하면 세계 인구 중에서 자유국가에 사는 인구의 비중이 1975년의 20%이하에서 1988년에는 38.3%로 증가하였다 한다.12) 그러나 민주화를 실험하다가 실패하고 전제주의로 되돌아간 나라들도 적지 않다. Freedom House의 보고에 의하면 1973년의 민주국가 수는 10년 전의 36개국에서 30개국으로 감소하였고, 수단, 나이지리아, 아이티, 페루 등이 그러한 예에 속한다. 최근(1994년)의 보고서에서도 10년만에 처음으로 자유국가들의 숫자가 전혀 증가하지 않았다고 쓰고 있다.13)

결국 민주주의의 성공 여부는 그 나라의 문화적 배경과 경제 발전 수준에 달려 있다고 생각된다. 우리는 지난 40년 동안의 경제발전 성과를 기초로 하여 민주화 시대로 진입할 수 있었는데 우리의 문화적 전통은 반듯이 민주주의와 융합(融合)되는 것은 아니고 따라서 아직은 민주주의가 한국의 문화적 토양에 뿌리를 내렸다고 보기 어렵다. 만약 정치와 사회가 혼란에 빠지고 경제마저 장기적 침체에 빠진다면 사람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잃고 지나간 강권정치를 그리워하게 될지 모른다.

전쟁과 평화

냉전의 종식으로 동서간의 긴장 상태는 크게 완화되었으나 앞으로 미국군사력의 상대적 후퇴, 일본, 중국, 독일, 프랑스 등의 군사력 증강 등으로 열강 사이의 세력 균형에 변화가 생길 경우 새로운 긴장 상태가 조성될 가능성은 없지 않다. 한편 개발도상국에서는 국가간 분규, 내전, 인종적, 종교적 분쟁이 그치지 않을 것이다. 특히 한반도의 안보상태는 불안정하고 북한의 원자무기와 화학무기는 동북아지역 안보에 중대한 위협이 되고 있다.

앞으로 UN에 의한 핵무기, 미사일 및 화학무기에 관한 국제협정과 감시체제가 강화되어야 하고, 선진국이 후진국에 대한 무기에 관련된 기술이전도 국제적 규제를 받아야 한다. 불안정한 지역들의 분쟁해결을 위하여 국제적 협조에 기초한 정치협상이 주요 수단이 되겠지만 UN 경찰군의 개입이 불가피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동북아에서는 한반도를 둘러싼 4강의 지정학적 관계가 미묘한데, 중국의 경제 발전과 군사력이 세력균형의 재구성을 불가피하게 만들 것이다. 최근의 미. 일 신안보협약은 그러한 맥락에서 의미가 크다. 한편 동북아 지역안보체제 창설의 필요성이 강조될 것이다.

세계경제의 중심- 3대 무역권

세계경제에 있어서 북미주가 가장 강력한 무역권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 미국은 1970-80년대에 경제의 효율면에서 이른바 "일본 주식회사"에 패했지만 이제부터는 미국 고유의 유연성과 창조성의 장점을 발휘하여 정보화 산업의 리더가 되고 있다.

서구는 EU를 조직하여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인 경제적 통합을 이루었고 앞으로 수 십년간 북미 다음가는 무역권이 될 것이나. 다만 구 소련 및 동구 제국을 포용하는 문제가 있다.

동아시아 무역권은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지역으로 지목되고 있으나 지역적 경제협력과 통합이 지연되어 세계 제3위의 경제권으로 머무르게 될 것이다. 중국의 경제 규모는 21세기 초반에 미국의 그것을 능가하겠지만 1인당 소득, 시장경제의 침투도, 과학, 기술 수준 등이 낮기 때문에 동아시아 전체의 경제적 위치를 끌어올리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앞으로 지역적 협력에 대한 각성이 높아지고 역내 교역과 상호 투자는 비약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일본경제는 현재 장기 침체를 경험하고 있는데 경직화된 경제체제를 개혁하고 노령화 사회에 대비하는 노력을 계속할 것이다.

동아시아 개도국들은 멕시코와 동구권, 그리고 제3세계로부터 경쟁의 도전을 받게 될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경제적 중심 국가는 중국, 일본, 한국 등인데 이 지역의 경제적 통합이 21세기의 주요 과제가 될 것이다.

IV. 국가경영의 기본과제

국민성의 단점을 극복해야

이상에서 21세기에 예상되는 세계의 변화방향을 개관하였는데 이러한 외부환경에 적응하여 한국사회가 밝은 미래를 열어 가자면 무엇보다도 먼저 국민성의 단점을 극복해야 한다. 우리 국민성의 단점으로는 불신, 비협력, 부정직, 힘의 남용을 들 수 있다. 아마도 이러한 단점은 유사이래 억압과 가난 속에서 살아 온 우리 민족사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서글픈 일이지만 한국사회는 불신 사회라는 말을 듣는다. 국민은 지도자를 믿으려 하지 않고 지도자는 국민을 믿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힘에 통치]밑에서 살아 왔다. 여당과 야당이 서로 믿지 않기 때문에 당략과 당쟁에 여념이 없고 국사를 돌 볼 겨를이 없다. 기업은 정부의 말은 거꾸로 들어야 한다고 하고 법률과 규제의 허점을 악용하는 데에는 뛰어난 재간을 보이고 있다.

소비자는 국산을 믿지 않고 외제에 집착하고, 생산자는 국산 원자재를 믿을 수 없어 외제를 수입하며, 건설공사는 외국인이 감리를 해야 제대로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학생은 스승을 믿으려 하지 않고, 스승은 학생을 믿지 않기 때문에 사제간의 대화가 끊어지고, 일반적으로 기성세대가 후진을 지도하는 권위의 기능이 없어졌다.

남을 의심하고 불신하는 사회에서 협력이 이루어질 까닭이 없다. 한국사람은 개개인의 능력은 세계에서 뛰어나지만 팀웍에는 약하다는 것이 자타가 공인하는 결점이다. 일본의 지도자 오키다 사부로 씨가 나에게 한 말을 잊을 수 없다. 일본인과 한국인을 1대 1로 붙여 놓으면 한국이 이기지만 3대 3으로 붙여 놓으면 일본인이 이긴다는 것이다. 수긍하지 않을 수 없는 관찰이 아니겠는가.

불신은 사람들이 피차가 정직하지 못한 데에서 오는 것이다. 즉 자기가 부정직하니까 남도 그러려니 하는 데에서 오는 것이다. 정치인들의 공약 위반, 부실공사, 불량 제품, 허위광고, 부정 부패 등의 만연 등, 사회악을 추방하자면 우리 모두가 정직으로 돌아가야 한다. 옛날에 외세에 억눌려 살 때에는 정직만으로 살아 갈 수 없었다고 할 수 있으나 이제는 사상 최고의 자유와 물질적 여유를 누리고 있는 터에 부정직과 결별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각자의 각성과 노력이 있으면 된다.

힘에 굶주린 자가 힘을 가지게 되면 그를 남용하기가 쉽다. 권력도 그렇고 금력도 그렇다. 해방 이후 오늘까지 우리는 [힘의 통치]하에서 살아 왔는데 물론 힘의 통치에 부정적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국민의 대다수는 이승만 대통령의 강력한 지도력이 없었다면 남한은 일직이 북한 공산체제에 흡수되었을 것이고, 박정희 대통령의 [힘의 통치]가 없었다면 한국은 조상 전래의 빈곤으로부터 탈출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힘의 통치"는 그 자중(自重) 때문에 쓰러지는 것이 역사의 법칙이다.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은 그 위대한 치적에도 불구하고 권력이라는 힘을 과신했기 때문에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하고 우리에게 유감을 남겨 주었다. 노자(老子)는 공수신퇴천지도 (功遂身退天之道-공을 세웠으면 물러가는 것이 하늘의 뜻)라 하였던가...

"문민정부"의 시대가 되었다 하여 "힘의 통치"가 사라졌다고 할 수는 없다. 최근의 노동법과 보안법의 날치기 통과는 과거의 힘의 통치를 방불케 했다. 사정과 세무사찰과 실명제를 그 본래의 목적 외에 정치통제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고 또 할 수밖에 없는 오늘의 현실도 힘의 통치의 한 단면이라 할 수 있다.

최고 권력자의 주변에서 "실세"를 과시하려는 측근들의 암약도 옛날과 같고, 그에 촉각을 세우는 재개의 풍조에도 다름이 없다. 재벌간의 패권 다툼, 노사의 갈등, 지역적 이기주의 등등, 모두가 힘을 좇고 힘을 과신하고 있는 데에서 오는 현상이다.

굶주렸던 사람이 좀 살게 되면 금력을 과신하게 되기 쉽다. 돈만 있으면 재물은 물론 지위, 권력, 명예, 사랑까지도 살 수 있다고 착각한다. 배금주의에 사로잡힌 사회에서는 부정부패가 만연하게 마련이다.

역사적으로 억압과 가난 속에서 살아오다가 약간의 힘을 얻게 되니까 그를 과시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힘을 행사할 때에는 룰(Rule)을 지켜야 한다. 룰에는 법률도 있고 도덕률도 있다. 이 두 가지 룰을 지키지 않으면 힘의 해악이 생겨난다. 골프를 칠 때처럼 힘을 쓸 때에는 힘을 빼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의 국민성의 약점을 극복하지 못하면 우리는 21세기에 일류 국가가 되기를 바랄 수 없다. 무엇보다도 정직의 바탕 위에서 서로 믿고, 서로 협력하며, 힘보다 합리성과 도덕률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 과연 그것이 가능한가? 지금 한국인들은 어쩌면 자기 멸시 같기도 하고 자기 비판 같기도 한 말을 누구나 한다. 두 사람만 모이면 으례히 "한국 사람은 ..." 하고 한국인의 단점을 개탄한다. 마치 자기는 한국인이 아닌 것처럼. 때로는 불쾌감을 느끼지만, 생각해 보면 거기에는 한국인이 자기를 객관화해서 바라보는 자세가 있는 것이다. 모두가 이러한 자의식을 갖고 있다면 알게 모르게 자기의 행동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국민적 자각을 범국민적 운동으로 조직화할 필요가 있다. 옛날의 새마을 운동과 같은 국민운동을 일으키는 것이다. 물론 깨끗한 대통령이 솔선수범하고 앞장서야 한다. 그리고 이미 일어나고 있는 사회운동을 적극적으로 밀어 주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교육과 종교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이 운동에 가장 빠르고 크게 기여할 수 있는 것은 정보 매체이다. 정보화 시대에 정보매체를 교육과 도덕 재건에 활용하지 못한다면 정보화는 우리에게 그다지 의미가 없다.

정치의 현대화- 제3의 민족적 과제

해방이후 우리가 직면해 온 민족적 과제에는 네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자유민주의 토대 위에 대한민국을 건립하는 것이고, 둘째는 국민을 조상 전래의 빈곤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일이며, 셋째는 우리의 대의정치를 현대화하는 것이고, 넷째는 조국 통일을 이룩하는 것이다. 이중에서 첫째의 과제를 해결한 것이 이승만 대통령의 역사적 사명이었고 둘째의 과제를 해결하는 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사명이었다. 셋째와 넷째의 과제를 해결하는 것은 현재 또는 미래의 대통령의 몫이 된다.

우리의 대의정치에는 문제가 많다. 먼저 정당 운영이 민주화되어야 한다. 민주화 투쟁으로 이름난 정당 대표들도 정당 운영에 있어서는 독재체제를 유지하고 있고 민주주의란 말뿐이다.

둘째로 우리의 정당들은 해마다 자신들의 세력 다툼에 여념이 없고 당연히 해야 할 정책 다툼은 보기 어렵다. 따라서 유권자는 정책에 따라 정당을 선택할 수 없고 당수의 카리스마와 지연에 따라 투표를 한다.

셋째로 국회는 원래 여당과 야당이 정책을 놓고 대화와 토론을 벌이는 마당이다. 외국의 국회를 보면 국회의원 자신들끼리의 정책토론이 중심이 되고 토론에 참고하기 위하여 행정부 측의 증언을 요청하는데, 우리의 경우에는 정부를 힐난하는 질문 공세가 국회의 본령처럼 되어 있다. 거기에서 저질 질문에 무성의한 답변이 되풀이된다.

넷째로 대의정치는 여당과 야당이 어떤 정책을 놓고 논리적 극한까지 토론한 끝에 다수결로 안건을 처리하고 그 결정에 대하여는 다음 선거에서 국민의 심판을 받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우리 국회에서는 이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 야당은 몸싸움으로 의사진행을 방해하는가 하면 여당은 별 도리가 없다고 하여 날치기 통과를 강행한다.

끝으로 금권선거는 오래된 정치적 고질인데 김영삼 정부가 그를 청산하기 위하여 사정의 칼날을 뽑고 선거법을 고치기도 하였지만 최근 한보(韓寶)사건에 나타난 것처럼 정경유착과 부패의 고리는 끊기지 않고 있다. 보다 근원적 대책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

아무래도 대통령 책임제는 그 장점보다 단점을 노정하고 있는 것 같다. 이른바 문민정부하에서도 너무나 많은 일을 대통령에게 의존하다 보니 나라의 운명이 대통령 한 사람에게 달려 있는 감이 든다. 이것은 위험한 일이다. 대통령 책임제는 민주적 의회정치와 병행할 때에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인데 우리의 경우에는 후자가 결여된 상태에서 대통령 책임제를 시행하다 보니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결과를 가져왔고, 심지어 문민정권하에서도 [힘의 정치]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적어도 민주적 대의정치가 궤도에 오를 때까지 대통령제와 내각 책임제를 절충한 "2원 집정제"같은 것을 구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은가 한다.

통일- 배달 민족, 더불어 살자.

남북 통일의 시나리오로, 세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평화적 통일인데 이것은 북한이 적화통일의 망상을 버리고 내부 체제의 개혁과 개방화의 길을 택할 때에 가능하다. 따라서 우리의 평화통일정책은 북한의 개혁과 개방을 유도하고 지원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개혁과 개방 압력은 북한의 반발을 사고 거부 반응을 일으킬 것이므로 제3국의 접근을 매개로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견지에서 미국과 일본 그리고 서구의 선진국들이 북한에 들어가는 것을 사소한 이유로 말릴 필요는 없다. 어떤 이들은 경제적 이해관계를 고려하여 제3국의 선제 진출을 꺼려하는데 어차피 국제화, 세계화 시대이니 너무 구애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미국을 비롯한 우방 국가들이 북한에 들어가 있으면 북한의 군사적 도발의 위험을 감소시킬 수 있다.

둘째는 북한의 체제가 와해하여 흡수 통일이 불가피하게 되는 경우이다. 남한은 일시에 엄청난 정치적, 경제적 부담을 지게 되는데 그러나 이것을 피할 수도 없고 피해서도 안된다.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통일전의 서독과 같이 국제수지 흑자를 쌓아 두면 좋겠는데, 흑자는커녕 적자의 누적을 걱정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하여튼 남한의 주민들은 소득 일부를 북한 동포를 위해 희생해야 하고 일시적으로 경제적 고난을 겪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통일을 위해 치를 만한 대가이다.

셋째는 북한이 절망적 상태에서 무모한 무력 도발을 감행하는 경우이다. 이때에는 무력 통일이 불가피 한데, 그러한 사태에 대비하여 막강한 국방력을 유지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은 지금과 같은 정치적, 사회적 혼란이 계속 될 경우 북한의 오판과 무력 도발의 위험이 커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느 경우에나 통일은 쉽지가 않고 통일후의 문제는 더욱 어렵다. 군사적 통합, 경제적 통합, 사회적 통합, 그리고 문화적 통합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다. 잘못하면 예멘의 경우와 같이 내전이 일어 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통일이 우리의 지상 과제인 만큼, 평소에 통합에 부수되는 문제들을 깊이 연구하고, 먼저 남쪽의 제도와 정책을 통일 후의 통합을 염두에 두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통일 외교- 4강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남북이 통일될 때까지는 우리 외교의 초점은 한반도를 둘러싼 4강(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이 우리의 통일 노력을 지원하거나 적어도 방해하지 않게 하는 데에 있다. 특히 어떻게 하면 중국과 러시아가 한반도의 통일에 반대하지 않고 남. 북에 대하여 중립적인 위치를 택하게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통일외교의 초점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남한에 미군이 주둔하는 상태하에서는 중립을 지키거나 통일을 지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남북통일은 한. 미 군사력이 압록강까지 미치게 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한국 동란 시에 미국이 압록강까지 진출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한국전에 참가했었다. 물론 그 후의 사정은 크게 달라졌고 지금의 중국은 남한의 우방이요 양국간의 경제관계는 확대 일로에 있다. 반면에 중국은 북한의 폐쇄주의와 경제적 실패에 당혹하고 있으면서도 북한과의 혈맹관계와 외롭기 짝이 없는 사회주의 국가간의 상호 연대, 그리고 서방에 대한 전략상의 필요에서 북한을 끌어안고 있어야 할 처지에 있다.

러시아는 개혁과 개방에서 오는 혼란의 와중에 있고 군사적으로도 쇠약해 있어 국제문제에 대한 발언권이 크게 약해졌을 뿐 아니라 한국과는 수교 관계에 있는 반면 북한에 대하여는 염증을 내고 있는 터이므로 우리의 통일 외교가 주효할 수 있는 소지는 있다. 그러나 러시아 역시 한반도가 미국의 세력권 내에 들어가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통일을 방해하려 할지 모른다.

일본도 내심 한반도의 현상유지를 원한다는 관측이 있다. 통일 한국은 동북아에서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다루기 힘든 세력이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이 일본의 기정의 외교정책이라고는 보여지지 않는다. 오히려 중국을 의식하는 일본은 통일 한국이 지금의 한, 미, 일의 3각 협력관계를 유지할 수 있기를 바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중국과 러시아의 입장과 다른 입장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은 한반도의 통일을 지지하지만 통일과정이 한미관계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통일 후의 양국관계에 관하여 어떠한 고정된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중국 또는 러시아가 한반도 통일을 지지하는 조건으로 한미 방위조약의 폐기와 미군 철수를 요구한다면 미국은 어떻게 나올 것인지, 혹은 미국이 정통적 한미관계를 고집하고 남북한 주민들의 자결의 원칙을 주장하여 중국과 러시아의 반통일적 개입을 저지하려 할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판단하기 어렵다. 그것은 4강의 역학관계와 미국의 이해관계의 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문제이다. 원래 미국은 대외정책에 있어서 사태변화에 따라 그리고 선거전략에 따라 방향을 신축적으로 변경하는 나라이다. 그러나 미국은 동북아에 있어서 일본, 중국, 러시아에 대한 막강한 균형화 세력(Counter-Balancing Power)이고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유지에 결정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만큼 우리는 대외정책에 있어서 미국에 큰 비중을 두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4강의 역학관계와 이해관계의 추이(推移)를 예의 주시하면서 전통적 우호관계의 바탕 위에서 대미관계를 조절해 나가지 않으면 아니 될 것이다.

하여튼 분단된 조국의 앞날은 4강의 향배에 달려 있는데 이 4강들의 입장을 우리의 통일 목표로 수렴케 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일까?

첫째는 남한 경제가 계속 발전하여 4강과의 경제적 상호의존을 두텁게 하는 것이다. 즉 우리의 경제력을 길러야 외교 역량도 커질 수 있다.

둘째로 우리는 남북간의 군사적 긴장이 계속되는 한.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유지해야 하는데, 그러나 한편 4강에 대하여 외교상의 균형을 도모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국과 러시아는 상당한 군사력을 지닌 한국이 친서방 국가가 되기보다는 동서에 대하여 중립을 지키는 나라가 되기를 바랄 것이다. 사실상 지정학적 위치와 역사적 배경으로 보면 통일후의 한반도는 중립적 완충지대의 역할을 하는 것이 동북아의 평화를 위하여 바람직한 일 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과거에 조선의 영세 중립이 논의된 때도 있었다.

셋째로 외교상의 균형을 도모하는 한가지 방법은 다자간 협의체를 구성하는 것이다. 협의체를 통하여 4강과 우리의 입장을 노출시키고 상호이해를 도모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어떠한 합의점을 끌어 낼 수도 있다. 그러므로 4강과 한국 혹은 남북한이 참가하는 동북아 안보협의기구를 창설할 필요성이 인정된다. 그러나 처음에는 비공식 민간 협력체로 출발하여 민간, 정부관계자의 협의체로 이행한 다음 궁극에는 정부간 협의체를 구성하는 것이 현실적인 순서이다.

안보협력은 경제협력에 의하여 보강 될 수도 있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는 APEC이외에 NAFTA, ASEAN 등의 소 지역 경제협력 기구가 존재하나 유독 동북아에는 그러한 기구가 없다. 그러한 견지에서 필자는 지역적 협력의 첫 걸음으로 동북아개발은행의 창설을 제창하고 있는 것이다.

끝으로 통일외교에 관련하여 민족주의에 관하여 한마디 하고자 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세계화를 원한다면 우리의 세계관을 바꾸어 나가야 한다. 세계화란 무엇인가? 여러 가지 측면이 있지만 그것은 국경, 민족, 국가, 국적의 의미가 점점 흐려져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돌이켜 보면 인류 역사는 민족, 국가. 계급 사이의 불행한 대립과 싸움으로 점철돼 왔고 그러한 싸움은 지금도 지구상의 이곳 저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역사의 대세로서 민족과 국가의 경계가 흐려진다는 것은 동시에 민족과 국가간의 뼈아픈 과거를 새로운 세계관으로 용해해 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달리 말하면 대부분의 나라가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를 지향하는 가운데 인류 공동체의 인식이 높아져 가고, 보편적 가치 기준이 보다 명백해 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를 바로 세운다 해서 불행했던 과거가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는 그것에서 각성을 얻고 그를 극복함으로써 그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입으로는 세계화를 떠들면서 실제의 사고방식은 옛날의 민족주의 틀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 하기야 우리의 민족주의는 지난날 항일 독립 투쟁의 정신적 지주였고, 남북통일이라는 민족적 과업을 앞에 둔 우리로서 민족 관념을 버릴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물며 세계에서 보기 드문 민족적 단일성과 문화적 전통을 이어 받은 우리로서 어찌 민족적 긍지를 버릴 수 있겠는가.

그러나 세계화 시대의 민족주의는 제국주의 시대의 그것과 달라야 한다. 국적과 국경을 너머 세계를 무대로 활약해야 하는 판에, 불행했던 과거에 집착하여 민족감정을 외교관계에 까지 끌어 들이려 하고, 약간의 힘이 생겼다 하여 배타와 허세를 부린다면, 국제사회에서 빈축을 사는 외에 아무 것도 얻는 것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동북아에서 밝은 미래를 열어 가자면 한말(韓末)이래 한반도에서 마주쳐온 4강들, 즉 미국, 러시아, 중국, 그리고 일본과 선린. 우호 관계를 유지하면서 우리의 실익을 극대화하는 길을 택해야 한다. 요컨대 오늘의 민족주의는 지나간 역사에 대한 화풀이가 아니라 묵묵히 우리의 자강(自强)을 도모하고, 우리의 전통과 문화 속에서 세계의 보편적 가치의 한국적 특징을 찾아내고 그를 선양(宣揚)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방위력의 두 가지 목적

박정희 대통령이 월남 패망 직후 자주국방을 표방하여 율곡 계획을 수립할 당시 필자에게 한 말이 있다.

"만약 평양이 또다시 남침을 해 온다면 내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미군을 서부전선에서 빼는 일이야. " 나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전쟁이 터졌는데 왜 미군을 뺍니까? "대통령의 대답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만약 그들을 일선에서 빼지 않으면 그 들은 뻣뻣이 서서 총을 쏘다가 모두 쓰러질 것이다. 그러면 미국의 텔레비전과 신문 기자들이 그 참상을 낱낱이 보도할 것인데 그렇게 되면 미국의 국론은 화. 전 양론으로 분열되어, 신속한 대응이 늦어지고 그러한 상태가 한달 가량 계속되면 우리는 치명적 타격을 받게 된다.

반대로 전쟁이 발발하자 즉각적으로 미군을 후방으로 철수시키고 전 전선을 우리가 맡게 되면 처음 일주일은 우리가 밀리지만 그 후부터는 공격으로 전환하여 북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국 의회에서는 과연 코리아는 월남과는 다르다. 우리의 혈맹을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 하면서 공군과 병참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육상 작전은 우리 혼자의 힘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박 대통령의 이러한 말이 자주국방의 개념을 단적으로 갈파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우리가 자력으로 나라를 지키려는 굳은 의지를 갖고 있지 않으면 우리를 도우려는 우방도 없을 것이고, 설사 도와주는 우방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나라를 지키지 못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아직도 북한의 원자탄, 화학무기의 악몽에서 벗어 날수 없고, 평양이 어떠한 일을 저지를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태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막강한 방위력을 유지해야 하고 어떠한 도발에도 단호히 대응할 수 있는 힘과 자세를 견지해야 무력 충돌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방위력 증강의 첫째의 목적이다. 그러나 또 하나의 장기적 목적이 있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우리는 숙명적으로 4강을 다루어야 하는 처지에 있다. 그런데 군사적으로는 우리는 그 어느 나라와도 대적할 수 없는 약소국의 위치에 있다. 그러면 우리는 처음부터 군사력을 포기하는 편이 낳지 않은가? 그렇지 않다. 21세기에 국민국가의 개념이 흐려진다 하지만 그래도 국력은 중요하고 국력은 여전히 경제력과 군사력의 함수가 될 것이다. 물론 우리는 군사 대국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상당한 군사력을 지니고 있어야 4강들은 그들의 지정학적 전략에 있어서 한국을 무시할 수 없게 될 것이고 우리는 그 점을 외교의 지렛대로 이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쨌든 군사력과 외교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고 통일 후에도 경제력에 걸맞는 군사력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하기야 21세기에는 선진국들의 군비축소 운동이 본격화할 것이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1. 대규모 전쟁의 위험은 적은 반면에,
  2. 경제경쟁이 치열해 지고,
  3. 자신의 생존을 위하여 후진국을 돕지 않을 수 없고,
  4. 과학, 기술의 발달에 따라 비용이 절감되는 무기체계가 개발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게 되면 우리의 국방비도 상당히 절감될 수 있을 것이다.

사회-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것

한국이 동북아는 물론 국제사회에서 적극적 역할을 할 수 있으려면 먼저 한국 자체를 그에 적합한 모습으로 바꾸어 나가야 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살기 좋고 사업하기 좋은 나라로 바꾸어 가는 것이다. 국제화시대에는 자본, 기술이 국가간에 쉽게 이동한다. 그래서 우리 기업들도 생산시설을 해외로 옮기거나 해외에 신규 투자를 한다. 그런데 한국으로부터 나가는 기업이 있으면 반대로 들어오는 기업도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산업의 공동화와 고용의 감소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외국 기업이 들어오기를 꺼려하고 국내기업 마저 외국으로 도피하는 사례가 있는 이유는 한국이 살기 좋고 사업하기 좋은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자면 우선 사회간접시설을 대폭 확충해야 한다. 조속한 시일 내에 지금의 교통지옥을 해소해야 하고 항만시설과 컨테이너 부두를 대폭 확장해야 하며 영종도 신공항을 세계 최첨단의 공항으로 건설해야 한다. 환경을 철저히 보존하여 그야말로 3천리 금수강산을 되찾아야 하고 상하수도를 비롯한 생활 시설을 확충하여 쾌적한 도시 환경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정부규제를 최소화해야 한다.

살기 좋은 사회는 풍요롭고 자유롭고 합리적이고 공평한 사회를 말함이다. 안정된 법질서와 공정한 사법제도가 있고 개인의 노력에 기초한 기회의 평등이 보장되는 사회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은 앞에서 제시한 기본과제들을 해결해 나가야만 실현될 수 있는 일이다.

창조적 국민 교육

21세기를 바라보는 우리의 국민교육은 네 가지 과제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된다. 첫째는 앞에서 말한 국민 품성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정신교육이고, 둘째는 민주시민을 기르는 교육이고, 셋째는 국민의 창조력을 개발하는 교육이며, 넷째는 직업적 장인정신을 기르는 교육이다.

첫째의 국민 품성의 단점을 고치는 교육에 관하여는 다른 곳에서 자세히 논했으므로 재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둘째의 민주시민을 기르는 교육에 있어서는 두 가지 점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 첫째는 민주주의 이념의 고상함을 가리킬 뿐 아니라 그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보다 철저히 가리킬 필요가 있다. 둘째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 하자면 시민 각자의 주체성이 확립되어 있어야 하고 논리적 사고와 의사표시에 능숙해야 한다. 우리 한국인들은 서방인 들에 비하여 자기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출하는 데에 매우 서투르다.

지금의 청소년들은 입시 전쟁의 환경 속에서 단편적 지식의 암기에 쫓기다 보니 과학적 지식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없다. 청소년들의 창조적 능력을 기르자면 지금의 교육방식을 근본적으로 수정할 필요가 있다. 입시준비를 위한 교육이 아니라 각자가 타고난 천부의 재능을 개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교육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앞으로 과학과 기술이 경제력을 좌우하는 요인이 될 것인즉 일찍부터 수학 교육에 역점을 둘 필요가 있지 않은가 한다.

상품에 대한 소비자의 선택이 까다로워지고 경쟁이 격화하는 21세기에 있어서 장인(匠人) 정신 혹은 프로페셔날리즘이 살아 있지 않으면 우리 제품의 품질과 경쟁력이 문제가 된다. 그런데 우리 수출상품에 있어서 항상 끝마무리가 문제되어 왔고, 국내에서는 부실 공사가 말썽이 되어 왔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장인정신을 길러 내는 교육이 필요하다.

학교 교육도 중요하지만 정보사회에서는 정보매채의 역할이 막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다시 말하거니와 우리가 정보매체를 국민교육에 전략적으로 활용하지 못한다면 정보화의 위력을 스스로 포기하는 결과가 된다.

V. 맺는 말

이상에서 21세기에 예상되는 지구상의 생존조건과 세계의 변화 방향을 살펴보았고, 그를 염두에 두고 우리의 국가운영의 기본과제와 그 해결의 방향을 포괄적으로 생각해 보았다. 결국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우리의 미래를 개척하자면 모든 면에서 우리 자신의 자기개혁이 필요하다는 평범한 결론에 도달한다. 우리 모두의 거듭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 끝